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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los capítulos de 내 아래 너를 두고: Capítulo 11 - Capítulo 20

162 Capítulos

11화.

11화. ‘그 더러운 이름을 감히 누구 앞에서 입에 올려!’ ‘준석 씨…!’ 여진의 얼굴을 틀어쥐고 있던 손가락이 그녀의 바싹 마른 입술을 거칠게 쓸고 지나갔다. 언제나 촉촉이 젖어 있던 입술은 어디 갔나. 이렇게 살결이 다 일어나도록 물어뜯어 놓은 것은 한정혁일까. 제기랄! ‘이런 입술은 그 새끼 취향인가? 역겨운 꿀 향도 그 새끼 취향이야?’ 여진은 몰아붙이기만 하는 남편을 향해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흐느껴 울뿐. ‘흐흐흑….’ ‘한정혁이 오늘 나한테 연락을 했더군.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이 아닐 텐데, 그 용기가 진심으로 가상했어.’ ‘흐흑….’ ‘만나자고 하길래, 만나보려고 해. 감히 주제도 모르고 내 회사로 온다더라고. 내가 정중히 거절했어. 빈센트 갤러리라고 했나? 내가 직접 거기로 가기로 했지. 아, 거기에 당신 작품도 있다고 했었나?’ ‘…!’ ‘옛 약혼자를 잊지 못해, 그 여자의 작품을 전시하는 남자라…. 눈 뜨고는 못 봐줄 순애보야.’ ‘그, 그게 아니라….’ ‘난 그것도 모르고 등신처럼 당신이 그 새끼랑 일하도록 허락했지. 전시회를 핑계로 한정혁과 당신이 함께한 시간이 수개월이야. 아내를 향한 내 아량의 결과가 외간 남자와 호텔이라. 뒤통수가 아릴 정도야.’ ‘준석 씨! 정말 아니에요! 내가 어떻게 해야 믿어줄 건가요? 네?’ ‘시간 끌지 말고 이혼해. 내가 내일 한정혁을 만나는 건, 당신과 이혼을 더 단축하기 위해서니까.’ 준석이 여진의 얼굴을 움켜쥐고 있던 손을 미련 없이 떨어트렸다. 억울함에 뒤덮인 여자의 얼굴이 바닥을 향해 힘없이 떨어졌다. 준석은 다시금 손을 뻗어 아내의 얼굴을 한 손에 감싸더니 그녀의 뺨을 가볍게 쓸었다. 조금 전 거친 음성은 사라지고 이성을 찾은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여진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서늘함과 함께. ‘날 더 이상 미치게 하지 마. 그땐, 내가 널 어떻게 할지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 고급 한식당. “장 의원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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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12화.갤러리 빈센트는 성북동에 위치 해있었다.조용하고 어두컴컴 밤, 최고급 세단이 소리 없이 지상 주차장에 멈춰 섰다.차에서 내린 준석은 늦은 밤인데도 환하게 빛을 밝히고 있는 4층짜리 갤러리를 올려다보았다.앞면이 유리로 된 갤러리는 밖에서 그 안에 전시물이 보일 정도로 밝았다.갤러리 한쪽 벽면에 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커다랗게 걸려있었다.현수막 위로 밝은 조명이 비추고 있어 밤인데도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그 현수막을 눈에 두며 준석은 반쯤 풀린 넥타이를 마저 풀어 벗어버리고는 옆에 있는 정 비서에게 건넸다.“성훈이 넌, 여기서 대기해.”“옷, 괜찮으시겠습니까?”성훈은 준석의 흐트러진 옷차림을 지적했다.평소 그의 상사는 지독히도 깔끔한 사람이었다.흔치 않은 일이지만, 골치 아픈 미팅을 하고 난 후에는 유독 이런 모습을 보이긴 했었다.한데 지금 차준석은 그의 아내 윤여진의 외도남을 만나러 간다.넥타이는 고사하고 풀어 헤쳐진 셔츠가 성훈의 참견을 불러일으켰다.“내 아내의 노리개를 상대하러 가는데, 옷을 갖춰 입어야 하나?”“아, 아닙니다. 다녀오십시오.”성훈은 상사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더는 말을 보태지 않았다.준석은 정 비서를 지나쳐 갤러리 입구로 향했다.갤러리의 출입문을 힘껏 밀었다.마치 손님을 기다린 듯 그 어떤 저항도 없이 문이 열렸다.1층에 들어서자마자 엘리베이터 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탁. 탁. 탁. 묵직한 구둣발 소리가 1층 전시실 전체를 짓누르듯 울렸다.잠시 뒤.엘리베이터가 사무실이 있는 4층에 도착했다.문이 열리고, 준석의 검은 눈동자에 한 남자가 박히듯 들어왔다.단정한 차림새로 저를 맞이한 남자는 제 아내의 외도남, 한정혁이었다.준석이 시선을 그에게 고정한 채 엘리베이터를 벗어났다.189센티미터의 키를 가진 준석의 보폭은 다른 사람에 비해 크고 넓었다.저벅저벅,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창을 등지고 그를 맞이하고 있는 한정혁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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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13화.오만한 남자 차준석의 입에서 나온 속된 단어에 정혁은 속으로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분노가 극대화될수록 이 상황은 그에게 유리했다.“선배님.”조소가 담긴 얼굴로 정혁이 준석을 불렀다.어디서 건방지게 저 딴 표정으로 나를 부르나.준석은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 정혁의 표정에 미간을 일그러트렸다.“선배 소리 그만해. 내가 허락한 적도 없는 자리 더 듣고 있기 역겨우니까.”“제가 진짜로 여진이의 장난감일 거라고 생각하시나요?”“아니라는 증거 있나?”“맞다는 증거도 없죠. 그깟 사진 몇 장이 우리의 관계를 정의할 수는 없으니까요.”“하하, 내가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렸었나. 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할 때까지 입 닥치고 있었어야 했는데. 내가 실수했네, 실수했어.”비아냥 가득한 목소리였다.“선배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날 우리가 놀아났다면, 증거를 가지고 소송을 거세요. 그깟 사진 몇 장이 증거로 채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이 새X가!”준석은 적반하장격인 정혁의 말에 삽시간에 심사가 뒤틀렸다.제 앞에 고개를 바짝 들고 서 있는 정혁을 찍어 누르듯 내려다보았다.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혁은 제 할 말을 이어갔다.“여진이한테 이혼을 요구했다고 들었습니다. 결백하다고 말하는 아내의 말을 믿지 못하는 남편이라면 저 또한 여진이가 이혼했으면 좋겠습니다.”“하! 배짱 좋게 날 만나자길래 무릎이라도 꿇을 줄 알았더니, 나보고 내 아내하고 이혼을 해라? 그딴 개소리를 지껄이다니. 한정혁은 목숨이 두 갠가?”“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여진이가 선배님과 이혼한다면 전 여진이의 재혼 상대가 될 겁니다.”“…뭐? 듣자 듣자 하니까.”“선배님도 아시잖아요. 저 여진이와 약혼했던 사이입니다. 삼 년 전, 안타깝게 깨진 결혼. 다시 붙여 보려고요. 저희 꽤 잘 어울렸거든요.”퍽!순식간의 일이었다.정혁의 등이 그가 등지고 있던 유리창에 강하게 부딪혔다.“윽!”단발의 비명이 정혁의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왔다.유리창이 깨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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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14화.M 호텔 라운지 BAR.콸콸콸.온더록스 잔에 연갈색 술이 채워졌다.준석이 한 손으로 잔을 감싸며 들었다.윤여진이 차준석에게 줬던 삼 년간의 안락함은 신이 그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그랬는데….한정혁을 만나고 나니, 그 선물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여진이가 선배님과 이혼한다면 전 여진이의 재혼 상대가 될 겁니다.’그런 개 같은 헛소리를 들은 채로 집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이대로 집에 갔다간, 아내를 정말 그렇게 만들어 버릴지도 몰랐으니까.그가 잔을 비우고 다시 잔을 채우려 할 때였다.그의 옆을 묵묵히 지키던 정 비서가 술병을 붙잡았다.“그만하시죠. 많이 드셨습니다.”“손 치워.”“내일 한국경제인연합회에서 주최하는 오찬 모임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네요.”정 비서는 일부러 ‘오늘’이라는 말을 강조했다.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오늘이라는 말이 맞았다.이렇게 새벽까지 술을 먹다가는 오찬 모임에 준석이 참석하는 게 무리라는 판단이 섰다.34살의 차준석 대표. HK 그룹의 자회사로 분리한 ‘오토매틱 로봇’을 성장시키기 위해 그는 언제나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오찬 모임은 제법 연륜이 있는 그룹 총수들만 참석하는 자리였으나, 그의 할아버지인 차 회장의 명령이었다.아마도 손주의 자리를 미리미리 탄탄하게 만들려는 그의 포석이리라.준석은 평소 철두철미하게 일을 잘하는 정 비서가 이 순간에는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래도 정 비서의 말이 틀지는 않았다.사적인 가정사로 공적인 일에 지장을 주는 것은 그의 사전에 없었다.준석은 손에 쥐고 있던 술병을 내려놓았다.***검은색 세단이 연희동의 최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갔다.모든 세대마다 단독 주택으로 구성된 집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주택이 준석과 여진의 보금자리였다.1층과 연결된 지하 주차장에 차가 멈춰 섰다.“대표님, 도착했습니다.”정 비서가 눈을 감은 채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준석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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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15화.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든 아내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새근새근 아기 숨 소리만 내었다.“내 아내는 속이 참 편한가 보네.”준석은 여진의 머리가 놓인 쪽으로 조심스레 걸터앉았다.갈색의 머리칼이 그녀의 얼굴을 살짝 덮고 있었다.그가 그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올려 그녀의 귀 뒤로 꽂아 주었다.“으음….”그 손길에 여진이 옅은 소리를 내더니 마치 강아지처럼 소파에 얼굴을 몇 번 비볐다.그 움직임에 그녀의 정수리가 준석의 허벅지에 닿았다.여진은 잠결에 습관처럼 제 머리를 그의 허벅지 위에 툭 올렸다.그러곤 두 팔을 들어 마치 통나무를 끌어 안 듯, 남편의 허벅지를 꽉 끌어안았다.잠결인데도 여진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그녀가 남편의 허벅지 위에 얼굴을 몇 번 더 비볐다.“하!”준석은 평소 했던 대로 행동하는 아내의 모습에 할 말을 잃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생각 같아선 당장에 몸을 일으키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밀착해오는 아내의 부드러운 손길이 그의 이성을 정지시켰다.“미치겠군.”준석이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어느새 시간은 새벽 3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3시간 뒤에는 출근해야 했다.침대에서 자더라도 편하게 자기엔 그른 시간이었다.잠시 이러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생각을 정리한 준석은 몸을 비틀어 던져놨던 재킷을 향해 팔을 길게 뻗어 손에 쥐었다.그가 소리가 나지 않게 재킷을 펼쳐 아내의 여리고 둥근 어깨 위를 덮었다.“줏대 없는 놈.”스스로에게 말하며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기껏해야 두어 시간 눈을 붙일 수 있었다.그 시간만큼 눈을 뜨고 있다고 한들 죽지는 않겠지.준석은 제 허벅지를 생명줄 붙잡듯이 잡고 있는 아내를 내려다보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그러곤 혼잣말을 한다.“윤여진. 나랑 이혼해도 너, 재혼은 꿈도 꾸지 마.”“….”“내가 허락 안 해. 나랑 이혼하면 죽을 때까지 혼자 사는 거야, 너.”소유욕 짙은 음성이 진한 알콜향과 함께 여진의 얼굴을 덮었다.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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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16화.“너는 아직 어리긴 하다만, 준석이가 마냥 어리지만은 않다.”“…네.”“자고로 남자란 말이지, 제 처와 자식이 있어야 더 책임감 있게 일하는 법이야. 그건 사람이든 동물이든 구분이 없어. 제 새끼가 태어났는데 어떤 아비가 먹을 것을 넉넉히 챙기지 않겠냐, 이 말이야.”“….”“차 대표는 장차 우리 HK의 머리가 될 아이야. 그런데 그놈이 요즘 인공지능에 빠져 있어서는 영 본사 일에 소홀하단 말이지. 그래서 말인데, 여진아.”“네.”“올해를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아기 울음소리 말이다.”“아…, 네. 남편과 이야기해 볼게요.”“역시, 사내놈한테 백날 말해봐야 소용이 없어. 진즉에 너를 부를 것을 그랬구나. 하하하.”차 회장은 안심한 듯 만면에 미소 짓고는 마저 차를 마셨다.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여진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다.저의 외도를 의심하며 이혼을 종용하는 남편에게 아이 얘기를 어떻게 꺼낼 수 있다는 말인가.여진은 근심 어린 표정을 애써 지우며 차 회장을 향해 엷게 미소 지었다.***연희동 집.오늘도 자정이 다된 시간이었지만, 준석은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여진은 화장대 앞에서 몸을 정돈했다.그녀는 새하얀 살결에 잘 어울리는 스킨 색의 부드러운 실크 소재의 잠옷을 입었다.갈색의 웨이브 된 긴 머리가 부드러운 실크와 하나가 된 듯 잘 어울렸다.여진은 화장대 한편을 장식하고 있는 여러 개의 향수에 눈을 두었다.모두 준석이 해외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그녀에게 선물했던 향수였다.대부분 백화점에서 볼 수 없는, 현지에서도 구하기 힘든 희소성 있는 제품들이었다.지난번 출장에도 그는 여진의 향수를 사 왔었다.평소와 다른 것이 있었다면 그 향수를 그가 직접 준 것이 아니라, 집안일을 하는 서씨 아주머니가 여진에게 건넸었다.‘대표님 물건을 정리하는데 이게 있더라고요. 사모님 선물인가 봐요.’호화스럽게 포장된 향수였다.그 향수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그가 이혼을 말하기 전이었다.내심 기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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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17화.여진은 거울 속에 자신을 가만히 응시했다.까슬까슬하게 일어난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남편은 촉촉한 제 입술을 좋아했었는데…. 언제 이렇게 거칠어 진 걸까.여진은 립밤을 들어 입술 위에 충분히 덧발랐다. 이내 침실을 나와 1층으로 향했다.1층에 도착하니 목이 말랐다. 그녀가 주방으로 발을 옮겼다.아일랜드 조리대 위에 평소처럼 크리스털 물병과 유리컵이 놓여 있었다.여진은 물병에 든 물을 컵에 따라 꿀꺽, 넘겼다.“우욱!”갑자기 훅, 하고 올라오는 물비린내에 여진이 헛구역질했다.우욱, 욱. 그 자리에 선 채로 몇 번 더 헛구역질해댔다.“갑자기…, 왜 이러지?”항상 마시던 물이었다.아주머니는 퇴근할 때 물병에 꼭 새 물을 채워놨었다.오래된 물도 아닌데, 갑자기 물비린내라니….여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빈 컵을 들고 주방 한편에 있는 정수기로 향했다.그러곤 물을 받아 다시 마셨다. 그런데 이번에도.“우욱!”헛구역질이 나왔다.연이은 헛구역질로 물이 흘러내려 그녀의 가슴 부분이 흥건히 젖었다.여진은 근처에 있는 티슈를 뽑아 얼른 입가부터 닦았다.그때였다.띠릭,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여진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이내 손에 들고 있던 티슈를 버리고 재빨리 주방을 나와 거실로 향했다.집에 들어온 준석은 이제 막 구두를 벗고 있었다.여진은 급한 마음에 종종거리며 그 앞에 섰다.“왔어요? 늦었네요.”용기 내 말을 걸었다.그녀의 인사에 준석은 거실로 발을 딛으며 곁눈질로 그녀를 쳐다봤다.아내를 향한 무심함을 담고 있던 검은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다 제자리를 찾았다.그가 물기로 젖은 아내의 잠옷에 시선을 두고 비웃듯 입가를 삐딱하게 올렸다.“내가 알던 윤여진이 이렇게 난잡한 여자였나?”“그게 무슨….”여진은 남편의 알 수 없는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준석은 그런 여진을 날카롭게 응시하며 말했다.“그렇게 젖은 채로 날 유혹할 참이었어?”“준석 씨….”“이걸 어쩌나, 안타깝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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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18화.욕조를 채운 물이 그 움직임에 찰박거리며 강하게 요동쳐 밖으로 촥 흘러내렸다.‘내일 나랑 잠옷 사러 가자.’‘나 혼자 가도 돼요.’‘싫은데? 나는 너랑 같이 갈 건데?’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여진의 귓바퀴를 감싸며 간지럽게 들려왔다.준석은 평소와 달리 부부간에 은밀한 시간을 가질 때만은 어린 소년처럼 짓궂은 모습을 자주 보였다.‘당신 출장 준비 때문에 바쁘잖아요.’‘바쁘지. 무진장 바쁘지. 그래도 내 아내 잠옷 살 시간은 낼 수 있지.’그렇게 시간을 내어 산 잠옷이 오늘 여진이 입었던 슬립이었다.그때를 생각하던 여진은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쓱 닦아냈다.“하아…. 차준석, 나쁜 사람. 흐흐흑.”여진은 서늘한 공기로 가득한 거실을 한동안 벗어날 수 없었다.***며칠 뒤.오토매틱 로봇, 대표실.정 비서가 태블릿으로 문서를 확인하고 있는 준석을 향해 말했다.“금성 산업 1분기 사업보고서입니다. 매출액은 작년도 보다 7퍼센트 증가했으나 실질적인 영업이익은 현저히 감소한 추세입니다. 순이익은 영업이익의 절반밖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이유는?”“지나친 사업 확장으로 과도한 대출과 사채에 들어가는 이자 비용입니다.”“장인어른께서 내가 모르는 사이 또 사업을 확장하셨나?”“윤 사장님보다는 금성 산업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윤태성 부사장이 진행한 것 같습니다.”윤태성은 금성 산업의 후계자, 여진의 하나밖에 없는 친오빠다.준석은 번들번들한 얼굴을 하고 제게 아부를 떨던 윤태성을 떠올리며 미간을 잘근 구겼다.“철없는 망나니로 소문나서 사업엔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망나니면 망나니답게 살면 속이 참 편할 텐데 말이야. 깜냥도 되지 않은 사람이 사업을 한다고 설치고 다니니, 이런 허접한 재무제표가 나온단 말이지.”예리한 눈빛으로 문서를 살피던 준석은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여진의 아버지의 회사 금성 산업은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여진과 결혼 전부터 차명으로 금성 산업에 투자한 돈이 수백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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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19화.성훈의 아버지, 정승범은 알아주는 공대 출신이었다.그는 훤칠한 외모에 공대에서 4년 내내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머리가 비범한 남자였다.그런 완벽한 그에게 있는 유일한 흠결은 그가 고아라는 사실이었다.운명처럼 대학에 새내기로 입학한 준석의 엄마, 차애란을 만났었다.불꽃처럼 타오른 청춘의 사랑이었다.온 세상에 둘만 있는 것처럼 서로를 사랑했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차원호 회장은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 격 떨어지는 연애를 하는 것을 몹시 못마땅해했다.그래서 차애란의 휴학을 강제로 결정하고 집 밖을 나가지 못하도록 가두기까지 했었다.그것이 화가 되어 두 사람은 서로를 더 깊이 갈망했다.어느 날,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차애란은 정승범과 야반도주를 하고 말았다.둘은 사랑했으나 어린 나이였기에 기반이란 것이 없었다.도망자의 수순이 그렇듯 두 사람의 행복은 불과 얼마 가지 않아 파탄에 이르렀다.재벌가의 외동딸로 더할 나위 없이 귀하게 자란 차애란이 아닌가.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제 처지를 비관했다.결국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쪽지 하나만을 남기고, 아버지인 차원호 회장에게 돌아갔다.그렇게 준석의 부모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그들의 사랑의 말로는 이제 막 ‘사랑해요’라고 입을 떼기 시작한 어린아이, 차준석의 행복을 완전히 망가트렸다.탁.준석이 기울였던 몸을 바로 하고 성훈의 어깨에 커다란 손을 얹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정면에서 마주쳤다.준석이 표정을 부드럽게 풀며 말한다.“배고프다, 밥이나 먹자. 담백하고 시원한 거로.”담백하고 시원한 것.두 사람의 아버지였던 승범이 좋아하던 음식이다.“갈비탕으로 할까요?”“입 아프게 뭘 물어. 가자.”형제는 아버지의 입맛을 그대로 닮았다.준석은 정장 걸이에 걸린 재킷을 손에 들었다.그 모습에 성훈이 재빠르게 움직여 준석의 손에서 재킷을 가져와 그가 입기 편하게 펼쳤다.야단 한 번 듣더니 더 깍듯해진 동생이 준석은 형으로서 마음에 들었다.반쪽짜리 핏줄이라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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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20화.“그런 자잘한 얘기는 편하게 밥 먹으면서 할까요? 오전 내내 말만 했더니, 배도 고프고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예요.”“아, 이런. 죄송합니다, 팀장님.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제가 사겠습니다.”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유미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여진과 정혁도 덩달아 일어났다.“이 근방에 유명한 갈비탕 집이 있다고 들었어요. 거기 어때요?”“좋죠. 여진이 너도 괜찮지?”정혁이 여진의 의견을 물었다.이 근방에 있는 유명한 갈비탕 집은 여진의 남편 차준석이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오래전 일이지만, 그와 함께 몇 번 간 적이 있었다.젖은 슬립을 입고 있다고 저를 힐난하던 준석이 떠올라 마음 한편이 여전히 불편하긴 했다.그래도 그와 추억이 있는 갈비탕 집에는 가고 싶었다.여진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당연히 좋죠. 저도 갈비탕 좋아해요.”“역시, 내 눈은 정확하다니까요. 여진 씨는 식성까지 내 스타일이네요.”나유미는 입가를 환하게 올리며 여진의 음식 취향을 반겼다.***잠시 뒤.세 사람이 성북동에서 유명한 갈비탕 집에 들어갔다.한참 점심시간 이라선지 홀이 넓은 곳인데도 모든 테이블이 만석이었다.주인이 정혁을 알아보고 급하게 다가왔다.“아이고, 관장님 오셨어요?”갤러리 근처 식당이라 정혁과는 친분이 있었다.“안녕하세요, 사장님. 자리가 없는데 저희 세 사람 앉을 방이 있을까요?”“이를 어쩌죠. 그곳에 지금 단골손님이 식사하고 계셔서요.”“아, 이런….”정혁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나유미 팀장도 그렇지만 여진이가 갈비탕을 좋아한다며 환하게 웃질 않았나.그때 주인이 뭔가 생각난 듯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아! 손님 방 옆에 저희 직원들 휴식하는 방이 있는데, 거긴 어떠세요? 쉬기만 하는 곳이라 아주 깨끗합니다.”“그래요? 그럼, 거기라도.”정혁은 나유미와 여진의 표정을 번갈아 살폈다.두 사람 다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곧이어 세 사람은 주인의 안내를 따라 손님 방, 옆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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