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스물다섯으로 돌아온 날, 그 재벌이 나를 찍었다: Chapter 31 - Chapter 40

95 Chapters

31. 대한민국이 멈춘 날

다음 날, 회장실에서 공문 하나가 TF로 내려왔다.온라인몰 런칭 일정, 일주일 앞당길 것.준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시스템 안정화도, 파트너사 조율도 아직 안 끝났는데 일주일을 당기라니. 이건 그냥 실패하라는 소리예요.""할아버님이 직접 지시하신 거예요?""네. '준비된 유능함을 증명하겠다면, 일주일 뒤에 바로 오픈하라'고 하셨대요."준호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대놓고 고사시키려는 거죠."팀원들 사이에서도 술렁임이 일었다. 시스템 테스트도 덜 끝난 상태에서 오픈이라니, 다들 얼굴이 사색이 됐다."실장님, 이거 그냥 재고 요청드리면 안 될까요?"수정이 조심스레 물었다."이미 결정된 사안이라, 재고는 안 받아들여질 거예요."준호가 씁쓸하게 대답했다. 회의실 안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제이는 그 공문을 보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이 날짜.지난 생, 바로 이맘때쯤 전국을 뒤흔들었던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화물 노동자들의 대규모 총파업. 전국의 물류망이 통째로 멈췄던 그 며칠이었다.뉴스마다 배송 대란 소식으로 도배됐고, 온라인 쇼핑몰 몇 곳은 그 여파로 한동안 회복하지 못했었다.원래 일정대로였다면 이 파업과 정확히 겹치지 않았을 텐데, 지금 앞당겨진 날짜는 파업이 시작되는 바로 그 시점이었다.할아버님은 이 파업 정보를 미리 알고 계셨던 거야.대기업 수뇌부들끼리 미리 도는 정부 동향이었을 것이다. 준비도 안 된 신생 팀을 하필 그 시점에 밀어 넣어, 물류 대란 속에 첫날부터 대규모 환불 사태를 겪게 만들려는 속셈이었다."제이 씨, 표정이 왜 그래요?"준호가 물었다."실장님, 저 믿고 하나만 해주실 수 있어요?""뭔데요?""한별특송이라고, 요즘 막 물류 사업 시작한 업체가 있어요. 원래는 편지나 소량 소포만 배달하던 곳인데, 최근에 물류 쪽으로 사업을 넓혔더라고요.아직 큰 거래처가 없어서 전국 어디든, 시골 구석까지도 배송망이 촘촘하게 깔려 있어요. 대형 업체들이 놓치는 지역까지 다 커버가 되는 곳이에요.""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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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왕관을 쓴 다음 날

대회의실 전면 모니터에 숫자가 떴다.첫날 가입자 수, 매출 모두 회장이 제시했던 목표치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서 있었다. 임원들 사이에서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박영철 상무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숫자를 다시 확인했다."이게, 하루 만에 나온 수치라고요?""네, 정확합니다."준호가 담담하게 대답했다.회장은 그 보고서를 한참 내려다보다, 짧게 입을 열었다."TF는 오늘부로 사장 직속 독립 본부로 승격한다."그리고 시선을 제이 쪽으로 옮겼다."현제이 씨는 기획팀장으로 승진 발령 낸다."회의실 안이 술렁였다. 몇몇 임원들은 놀란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고, 몇몇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는 담담한 얼굴이었지만, 그 속으로는 분명한 승리감이 차오르고 있었다.회의가 끝나고, 팀원들이 하나둘 제이를 둘러싸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팀장님! 축하드려요!"수정이 가장 먼저 달려와 손을 붙잡았다. 얼마 전까지 신입사원이었던 사람이 팀장 발령을 받는 건, 이 회사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다들 고마워요. 저 혼자 한 거 아니에요."제이는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만감이 교차했다. 지난 생, 조희철 밑에서 위축된 채 일하던 그 시절과 지금이 겹쳐 보였다.그날 저녁, 준호는 다시 제이를 프리덤으로 데려갔다.이번엔 구석 테이블이 아니라, 손님도 없는 텅 빈 무대 위였다. 조명 하나만 켜진 그 자리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았다."오늘은 특별히, 딱 한 곡만."준호가 기타 대신 베이스를 들고 짧은 연주를 들려줬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오직 제이만을 위한 연주였다. 텅 빈 홀에 낮게 울리는 선율이, 오늘 하루의 긴장을 천천히 녹여내는 것 같았다.연주가 끝나자, 준호가 샴페인 잔을 내밀었다."수고했어요, 팀장님.""실장님도요."잔이 가볍게 부딪쳤다."솔직히,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이길 줄은 몰랐어요."준호가 웃으며 말했다."저도 반은 확신, 반은 도박이었어요.""그 도박, 완전히 성공했네요.""제이 씨가 제 운명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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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마지막 발악

감사팀에 투서 하나가 접수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건, 협박 문자를 받은 지 이틀 만이었다.한별특송과의 독점 계약, 리베이트 및 사전 정보 유출 의혹.내용은 명확했다. 제이가 특송 업체로부터 뒷돈을 받고 계약을 밀어붙였으며, 파업 정보 역시 불법적인 경로로 미리 입수한 것 아니냐는 투서였다.수정이 사색이 된 얼굴로 달려왔다."제이 씨, 이거 봤어요? 사내 게시판에도 비슷한 글이 돌고 있어요."게시판에는 투서 내용과 함께, 훨씬 더 지저분한 소문까지 덧붙어 있었다.조희철, 도일, 그리고 준호까지, 사내 고위직 남자들을 차례로 이용해 자리를 꿰찼다는 식의 이야기였다.몇 달 전 주고받았던 메시지 캡처 화면까지 짜깁기되어 떠돌고 있었다.제이는 그 게시글을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다. 예상했던 수순이었다."이거, 캡처된 메시지도 다 짜깁기한 거예요. 앞뒤 문맥 다 잘라내고, 이상한 부분만 이어 붙였어요."수정이 분한 얼굴로 화면을 가리켰다."눈에 보여요. 조작한 티가 너무 나서, 오히려 저는 별로 걱정 안 돼요."제이가 담담하게 대꾸했다.준호가 그 소식을 듣고 곧장 제이의 자리로 왔다."괜찮아요?""괜찮아요. 예상했던 일이니까요.""이번엔 저도 같이 감사팀 들어갈게요.""아니요, 이건 제가 혼자 해결하는 게 나아요. 실장님이 같이 들어가시면, 오히려 저를 뒤에서 봐준다는 인상만 더 짙어질 거예요."준호는 잠깐 말이 없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대신, 끝나고 바로 연락해요."감사팀 면담이 잡혔다. 제이는 미리 준비한 자료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한별특송과의 계약 배경부터 설명해주시겠습니까?"감사팀장이 물었다."당시 화물 노동자 단체의 임금 협상이 몇 달째 결렬 상태였고, 관련 업계 소식지와 노조 성명 자료를 통해 파업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습니다.저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그 흐름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고, 대형 업체 대신 파업 영향이 적은 신생 업체를 검토한 겁니다.한별특송은 규모는 작지만 전국 배송망이 촘촘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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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무덤이라 불리는 곳

물류 파업 속에서도 정상 배송을 해낸 일이 화제가 된 지 며칠 뒤, 제이는 다시 본가로 불려간 준호를 따라나섰다.이번엔 준호 혼자가 아니라, 제이도 함께 호출된 자리였다."저까지 부르신 거면, 좋은 얘기는 아니겠네요."차 안에서 제이가 담담하게 말했다."그럴 것 같아서, 마음의 준비는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준호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서재 안, 회장은 두 사람을 앉혀놓고 서류 한 장을 테이블 위로 밀었다."현제이 씨."회장이 낮게 입을 열었다."물류 파업 때, 우리 온라인몰만 배송 정상 운영했다는 보고 받았다. 그 판단, 자네 머리에서 나온 거라고.""감사합니다.""근데."회장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근데 그런 유능한 사람이, 하필 준호랑 사적으로 얽혀 있다는 게 문제지. 준호가 자네 일이라면 냉정한 판단을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제이 씨를 사장 직속 본부에서 빼서, 유통사업부 산하 계열사로 발령 낼 생각이다."회장이 서류를 톡톡 두드렸다.준호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거기, 실적 최악으로 매각 예정인 그 계열사 말씀이세요?""맞다. 사내에서는 무덤이라고 부르지."회장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적자만 몇 년째 쌓이고, 조만간 매각 절차 들어갈 곳이다. 능력을 증명해 보이겠다면, 저길 한 달 안에 살려내 봐라.""그런 델 한 달 만에 살려내는 게 말이 됩니까? 그냥 대놓고 실패하라는 거잖아요.""할아버지, 이건 너무 노골적인..."준호가 발끈하며 나섰지만, 회장은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성공하면, 준호 옆자리 인정하마. 하지만 실패하면, 그땐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야 할 거다."명백한 고사 작전이었다. 이대로 정상적으로 회복될 수 없는 계열사에 발령을 내, 실패라는 결과를 스스로 만들어내게 하려는 속셈이었다.준호는 당장이라도 반박하려 했지만, 제이가 먼저 그 손을 가만히 잡았다."할게요."제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준호가 놀란 얼굴로 제이를 돌아봤다."제이 씨, 지금 이게 무슨 조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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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웃음기를 뺀 얼굴

발령 첫 주, 새 사무실은 소문으로 들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군데군데 긁힌 자국이 남은 낡은 책상들, 이미 누군가 떠난 듯 절반쯤 비어 있는 자리들, 그리고 이유를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묵직하게 가라앉은 공기까지.사람들은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눈이 마주쳐도 가볍게 인사만 할 뿐, 그 이상의 교류는 없었다. 며칠 지켜본 끝에야 알았다.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조차, 이미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걸.“여기 오래 있을 데는 아니에요.”누군가 툭 던지듯 말한 적도 있었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그렇게 첫 주가 흘렀다.​퇴근 시간. 건물 밖으로 나서자 서늘한 바람이 스쳤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낯익은 차 한 대를 발견했다.잠시 걸음을 멈췄다.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차 문이 열리는 순간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이영민이었다."오랜만이네요, 현제이 씨."평소의 여유로운 미소는 없었다. 표정도, 말투도 이전과는 확실히 달랐다."좌천되셨다는 얘기, 들었습니다.""소문 빠르네요.""업계가 좁으니까요."이영민이 짧게 대답했다. 예전 같았으면 장난스러운 한마디쯤 더 붙였을 텐데, 오늘은 그런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타시죠. 이번엔 억지로 태우는 거 아니고, 정식으로 부탁드리는 겁니다."제이는 잠깐 망설이다, 차에 올랐다. 이번엔 그도 굳이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조용한 카페에 마주 앉은 이영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말씀하세요.""저희 쪽으로 오세요. 이번엔 장난 아니고, 진심입니다."이영민의 눈빛에 장난기가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았다."물류 대란 해결한 것도, 그 전에 그렌펠 협상 살린 것도, 다 제이 씨가 만든 결과라는 거 압니다. 근데 그 회사는 지금 제이 씨를 무덤 같은 계열사에 처박아뒀죠.""...정확히 알고 계시네요.""이 정도 능력이면, 저희 쪽에서는 상무급 대우로 모실 수 있습니다. 연봉은 부르는 대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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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놓치면 안 된다

"이영민 대표 카드, 이번에 한 번 써볼까 해요."제이가 서류를 넘기며 담담하게 말했다. 계열사 재건 계획을 검토하던 오후, 회의실 안에는 두 사람뿐이었다."그 사람, 다시 만났어요?"준호의 목소리가 짧게 끊겼다."연락, 계속하는 거예요?""연락은 아니고요, 이번 계열사 건에 그쪽 유통망을 살짝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제이는 여전히 서류에 시선을 둔 채였다."그 사람 쪽 지방 물류센터가 저희 계열사 창고랑 동선이 겹치거든요. 협력 제안하면, 서로 손해 볼 거 없는 그림이 나와요.""제이 씨."준호가 낮게 불렀다. 말투가 평소보다 한 톤 가라앉아 있었다."이 대표한테 직접 연락할 생각이에요?""네, 조만간 미팅 한번 잡으려고요."준호는 잠깐 말이 없었다. 제이는 계속 전략을 설명하고 있었지만, 준호의 시선은 어느새 서류가 아니라 제이의 얼굴에 고정돼 있었다."저 사람, 아직도 제이 씨한테 관심 있는 거 알죠?""업무상 관심이겠죠.""그럴 리가요."준호가 짧게 대꾸했다. 제이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준호를 바라봤다."질투하시는 거예요?""아니요."대답이 너무 빨랐다. 제이는 그 반응에 결국 웃음이 터졌다."표정 보니까 맞는 것 같은데."준호는 대답 대신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귀 끝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됐고요, 계속 설명해봐요. 협력 제안, 구체적으로 어떻게 짤 거예요?"애써 화제를 돌리는 게 눈에 보였다. 제이는 그 모습이 재밌어서 잠깐 더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은 넘어가주기로 했다.저 나이에, 저 판단력에, 저 깡.준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겁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제이는 늘 계산을 다 끝낸 다음에야 움직였다.위험을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망해도 다음 수를 이미 들고 있는 타입, 그게 제이였다.어떻게 저런 식으로 판을 뒤집는 거지.이영민 카드를 이렇게 태연하게 꺼내 드는 것도, 상대의 약점을 정확히 짚어 자기 쪽 이득으로 바꿔내는 방식도, 매번 예상을 벗어났다.처음엔 그저 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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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같은 편

며칠 전부터, 사소하게 어긋나는 것들이 있었다.책상 위 서류 순서가 미묘하게 바뀌어 있거나, 잠갔다고 생각한 모니터가 살짝 다른 각도로 돌아가 있거나. 확신할 만한 증거는 아니었지만, 반복되니 무시할 수 없는 패턴이었다.누가 있나.제이는 그 낌새를 조용히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확인할 방법 하나를 준비하기로 했다.제이는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기획서 하나를 마무리하고 있었다.오프라인 매장 절반을 물류 거점으로 전환하는 안. 배송 속도는 확실히 빨라지지만, 구조적으로 무리한 확장이었다. 자금 조달 계획도 허술하게 비워뒀다.어차피 이 자리에 그런 눈이 있다면, 뭘 보여줄지는 내가 고른다.일부러 만든 미끼였다. 이걸로 누군가를 무너뜨리려는 게 아니라, 정확히 누가, 왜 이 자리를 흔들고 있는지부터 확인하려는 것이었다.제이는 파일을 저장한 채로, 자리를 잠깐 비웠다."팀장님, 커피 한잔하세요."김 대리가 다가와 종이컵을 내밀었다. 요 며칠 유난히 살가운 태도였다. 야근할 때마다 먼저 다가와 챙기고, 사소한 일에도 과하게 친절했다.도일과는 결이 달랐다. 도일의 친절엔 항상 사심이 배어 있었지만, 김 대리의 친절에는 어딘가 불안함이 섞여 있었다. 무언가에 떠밀려 억지로 움직이는 사람 같았다."고마워요, 김 대리님."제이는 커피를 받아 들고 잠깐 자리를 비웠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짧은 시간이었다.돌아오는 길, 유리문 너머로 김 대리가 제이의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우스를 움직여 방금 저장해둔 그 기획서를 열어보는 손길이 초조해 보였다.제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자리로 돌아갔다."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김 대리가 화들짝 놀라며 모니터에서 손을 뗐다."아, 아니에요. 그냥 화면 보호기가 이상해서.""그러시구나."제이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며 자리에 앉았다. 김 대리는 서둘러 자기 자리로 돌아갔지만, 그 뒷모습에 남은 어색함까지는 숨기지 못했다.걸렸다.김 대리가 자리로 돌아간 뒤, 제이는 속으로 짧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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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준비된 승부

본사에서 회의를 잡았다. 안건은 하나였다."매장을 창고로 바꾸겠다"는 제이의 계획. 이게 잘되면 회사는 돈을 번다. 하지만 망하면, 그 책임은 전부 제이가 진다.며칠 전, 김 대리가 몰래 훔쳐본 그 기획서가 결국 여기까지 올라온 거였다. 제이가 일부러 빈틈을 남겨둔 초안이었다. 본사로 흘러갈 걸 알고 있었기에, 어떤 질문이 날아올지도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그 빈틈은 하나였다. 자금 조달 계획란을 통째로 비워둔 것. 사업 전체 그림은 그럴듯했지만, 정작 "돈을 어디서 끌어올 건지"에 대한 답이 빠져 있는 문서였다. 본사 쪽에서 이걸 보고 가만있을 리 없었다. 분명 그 빈틈부터 물고 늘어질 것이었다. 제이는 그 반응을 미리 읽고, 진짜 자금 조달안을 따로 준비해뒀다.회의실로 향하는 길, 수정이 걱정스레 물었다."팀장님, 진짜 괜찮으시겠어요? 저 안에 계신 분들, 다들 만만치 않은데.""괜찮아요.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미 알고 들어가는 거라서요.""진짜 자신 있으신 거죠?""네, 걱정 말고 기다려요."제이는 수정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회의실 문 앞에 섰다.대회의실, 임원 십여 명이 자리했다. 준호도 참석했지만, 상석이 아니라 구석 자리였다. 두 사람은 회의실에 들어서면서도 서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아무 사이도 아닌 것처럼, 철저하게 남처럼 굴었다."이거 실패하면 누가 책임집니까?"한 임원이 물었다."솔직히 말해서, 지금 우리 계열사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잖아요."말은 복잡했지만, 뜻은 하나였다. 위험하니까 하지 말자.제이는 그 질문에 담담하게 답했다."지금 진행하지 않으면, 이후에 더 큰 손실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무리한 계획 아니냐는 말씀이시군요.""물류 거점으로 쓸 수 있는 매장 자리는, 아무 곳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통 접근성이 좋고 창고로 개조하기 쉬운 자리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지금 저희가 선점하지 않으면, 그 자리들부터 경쟁사가 먼저 가져갈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후에는 더 좋지 않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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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다음 게임

"팀장님, 그 매장 확장 계획, 그대로 진행하는 거죠?"팀원 하나가 물었다. 임원 회의에서 승인받았던 그 계획, 매장을 전부 물류 거점으로 바꾸겠다던 그 안이었다.회의실 안, 다들 그 답을 기다리며 제이를 쳐다봤다. 예산도 나왔고 승인도 떨어졌으니, 이제 그대로 밀어붙이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었다."그대로 안 합니다."제이가 짧게 답했다.여기저기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네? 승인까지 다 났는데, 왜 갑자기...""같은 틀인데, 방향만 바꿀 거예요."회의실 안 시선이 일제히 제이에게 쏠렸다."확장이 아니라 선별이에요. 전 매장을 바꾸는 게 아니라, 도심 요지에 있는 매장 몇 곳만 골라서 당일 배송 거점으로 씁니다.""전부가 아니라 몇 곳만요?""네. 그게 핵심이에요.""근데 그럼, 본사에 올린 그 계획서랑은 완전히 다른 거잖아요."또 다른 팀원이 조심스레 물었다."맞아요. 그건 애초에 다른 용도였으니까요."몇몇 팀원은 아직 그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서로 눈치를 보며 웅성거리기만 했다. 그때, 한 명이 먼저 눈을 크게 떴다."잠깐만요. 그 도심 매장들, 재고가 다 생필품 위주잖아요. 그럼..."수정이 말끝을 흐리다, 다시 이었다."그럼 당일 배송, 진짜 가능하겠는데요?"제이는 그 말에 옅게 웃었다."맞아요. 그 자리들, 다 걸어서 배송 가능한 반경 안에 있어요. 재고도 매일 나가는 물건들이고요. 굳이 큰 물류센터 새로 안 지어도, 지금 있는 매장이 그대로 배송 거점이 되는 거예요."한 줄 설명에, 팀원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여기저기서 낮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진짜 소름 돋는데요, 이거."수정이 중얼거리듯 말했다."그럼 그 확장안은...""본사 눈 돌리는 용이었죠. 진짜는 이거였고요."한동안 회의실 안이 조용했다. 다들 방금 들은 설명을 머릿속으로 다시 정리하는 눈치였다."그럼 저희, 지금부터 뭐부터 준비하면 돼요?"수정이 먼저 물었다."매장 리스트 추리는 것부터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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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같은 편

이영민과의 미팅 장소로 향하는 차 안, 준호는 평소보다 훨씬 신경 쓴 차림이었다.넥타이 매듭까지 완벽했다. 슈트도 새로 맞춘 듯 몸에 딱 맞았다. 머리도 평소보다 더 단정하게 넘긴 모습이었다."오늘따라 유난히 신경 쓰셨네요."제이가 슬쩍 웃으며 말했다."경쟁사 대표 만나는 자리니까요. 격식은 갖춰야죠."준호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말과 달리, 운전대를 잡은 손끝에는 은근한 긴장이 묻어 있었다. 사실은 이영민과 나란히 섰을 때 조금이라도 덜 빛나 보이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 마음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신호에 걸려 차가 잠시 멈추자, 준호가 백미러로 슬쩍 넥타이 매듭을 다시 확인했다. 제이는 그 모습을 곁눈질로 지켜보며 웃음을 참았다."이영민 대표, 바람둥이 기질 있다는 소문 그냥 흘려듣지 마요."준호가 정면을 보며 낮게 말했다."오늘 미팅에서 선 넘는 소리 하면, 제가 알아서 자를 테니까. 제이 씨는 철저하게 비즈니스만 얘기해요.""저 걱정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견제하시는 거예요?""둘 다요."제이는 그 대답에 결국 웃음이 터졌다. 회귀 전, 산전수전 다 겪어본 제이의 눈에는 이렇게 안달 난 준호의 모습이 오히려 귀엽게 느껴졌다."걱정 마세요. 저 그렇게 쉽게 안 흔들려요.""알아요. 근데 그것도 좀 얄미워요."준호가 짧게 대꾸했다. 제이는 그 옆얼굴을 보며 옅게 웃었다. 이렇게 사소한 순간에도, 이 사람과 함께라는 사실이 든든했다.고급 일식집 프라이빗 룸, 이영민이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문이 열리고 제이와 함께 준호가 들어서자, 이영민의 눈빛이 흥미롭게 번뜩였다."어라, 정준호 본부장님이 직접 오실 줄은 몰랐는데."이영민이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목례까지 건넸다."현제이 팀장을 향한 보호 본능이 대단하십니다?""우리 팀 핵심 인재를 만나는 자리인데, 본부장인 제가 빠질 수 없죠."준호는 흔들림 없이 그 시선을 받아치며, 제이의 옆자리를 자연스럽게 선점했다. 이영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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