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27층 대회의실, 정기 이사회가 예정된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다.상석 옆, 늘 정준호의 이름이 적혀 있던 명패 자리가 오늘따라 유독 휑하게 비어 있었다. 비서실에서도 별다른 연락을 받지 못한 채, 그의 부재만이 확인되고 있었다.가장 상석, 오늘은 이례적으로 정 회장이 직접 자리했다. 평소 정기 이사회에는 좀처럼 얼굴을 비치지 않던 그였기에, 그 존재만으로도 회의실 안 공기는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정 실장, 오늘도 연락이 안 됩니까?"한 임원이 옆자리에 조용히 물었다."어제부터 완전히 두절이랍니다. 현제이 사장님도 함께 자취를 감췄고요.""두 분이 같이요?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닙니까?""그러게 말입니다. 비서실 쪽에서도 위치 파악이 전혀 안 된다고……."낮은 웅성거림이 회의실 안을 채웠다. 다들 서류를 뒤적이면서도 시선은 자꾸 그 빈자리와, 그 옆에 말없이 앉아 있는 정 회장의 얼굴을 번갈아 살폈다. 회장의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그 무거운 침묵 한가운데, 정 부회장이 여유로운 걸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정성스레 덧입혀져 있었지만, 눈빛 깊은 곳에는 숨길 수 없는 흥분이 일렁이고 있었다. 아버지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지금 이 순간에는 그에게 위축이 아니라 오히려 무대를 넓혀주는 판처럼 느껴졌다."아버지, 그리고 여기 계신 이사님들. 다들 걱정이 크실 텐데,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부회장이 정 회장을 슬쩍 곁눈질하며 운을 뗐다."조카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저도 애가 탑니다. 다만……."그는 잠깐 뜸을 들이며 좌중을 둘러보았다."이런 중대한 이사회를, 후계자라는 사람이 사전 통보 하나 없이 통째로 내팽개친다는 게, 과연 정상적인 일인지는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부회장님, 그래도 실종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실종이라면 더더욱 걱정입니다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요?"부회장이 말을 자르며 목소리를 높였다."신입사원 하나와 눈이 맞아서, 회사의 중대사를
Last Updated : 2026-08-2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