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몰락한 상속녀, 7년 만에 첫사랑의 전속 하우스키퍼가 되었다: Bab 191 - Bab 200

218 Bab

제191화 함께 걷는 등굣길

 식탁 위에 필통, 실내화, 체육복이 하나씩 늘었다. 해준이가 자기 이름을 쓰는 동안 이음이는 옆에서 크레용으로 선을 그었다. 태윤은 통학로 지도를 펼쳤다.“여기는 시야가 좁아. 이 교차로는 자전거도 많고.” 빨간 표시가 늘어났다.“차로 데려다주면 더 빠르잖아.”“해준이가 친구들이랑 같이 걷는 걸 기대해. 우선 길을 함께 걸어 보자.” 다음 날 넷이 통학로를 걸었다. 지도에서 보던 것보다 보도가 좁았다. 해준이는 횡단보도 앞에서 스스로 멈춰 이음이에게 오른쪽과 왼쪽을 보라고 했다. 태윤은 차도 쪽에 서서 두 아이가 건널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태윤이 표시 옆에 작은 글씨를 썼다.‘해준이가 스스로 멈춤.’“표시는 안 지워?”“길은 그대로잖아.” 나는 그 옆에 오늘 본 것을 적었다. 태윤이 지도를 내 쪽으로 밀어 줬다. 실제로 걸어 보니 교차로의 차 소리는 지도에서 상상한 것보다 컸다. 이음이는 오빠의 말을 따라 고개를 크게 돌렸다. 내가 쓴 메모는 태윤의 글씨와 부딪히지 않으려 작아졌고, 그는 내 쪽으로 지도를 더 밀어 주었다. 저녁에는 위치 확인 기기와 비상벨의 용도를 해준이에게 설명했다.“아빠가 이걸로 나 계속 보는 거야?”“늦게 오거나 위험할 때만 확인할게.”“정말?”“약속해.” 해준이는 생각하다 가방 안주머니에 기기를 넣었다. 태윤의 표시 옆에, 해준이가 그린 작은 빵 모양도 있었다. 학교 가는 길의 빵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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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화 입학식 전날 밤

 입학식 전날, 다림질하는 내 곁에서 해준이가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내일 입을 옷은 아직 옷걸이에 있는데 양말만 미리 신었다. 이음이도 양쪽에 다른 양말을 신고 따라다녔다. 나는 이름표와 손수건을 확인했다. 이음이가 자기 옷에도 이름표를 달아 달라고 조르자 태윤이 딸을 안아 올렸다.“이음이는 내일 응원 담당이야.”“응원?”“오빠가 긴장하면 멋있다고 말해 줘.” 이음이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윤은 딸의 귀에 “내일 오빠가 떨면 멋있다고 말해 줘” 하고 속삭였다. 해준이는 필통을 세 번째 열었다.“내일은 행사만 하는 날이라 연필이 이렇게 많이 필요하진 않아.”“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누구를 닮았는지 태윤과 눈이 마주쳤다. 그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저녁에는 해준이가 좋아하는 햄버그스테이크를 만들었다. 태윤은 아들 접시에 감자샐러드를 평소보다 조금 더 담았다.“나 내일 울면 어떡해?”“울어도 돼.” 태윤은 자신은 울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와 해준이가 말없이 보자 이음이가 갑자기 “아빠 멋있어!”라고 외쳤다. 오빠에게 해 줄 말을 아빠에게 먼저 써 버린 것이다. 해준이는 동생에게 책가방을 메어 줬다. 너무 커서 이음이가 바닥에 주저앉았다.“나도 학교 갈래.”“넌 아직 학교 갈 나이가 아니야. 조금 더 크면 갈 수 있어.” 태윤의 설명을 다 이해하지 못한 딸은 오빠가 내일 집에 없다는 말에 울상이 됐다.“다시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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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화 내일 아침에 찾을 양말

 아이들 방 문을 조금 열었다. 이불에서 따뜻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이음이가 자기 베개까지 들고 와 해준이 이불에 반쯤 들어가 있었다. 베개 둘이 겹쳐 머리 아래가 높았다. 태윤이 몸을 낮춰 하나를 빼자 딸은 잠깐 찡그렸다가 오빠의 어깨에 얼굴을 비볐다. 해준이는 잠결에 동생을 더 안았다. 바닥에는 양말 한 짝이 떨어져 있었다. 그것을 집어 들자 공룡 그림이 닳고 뒤꿈치가 얇아진 게 보였다.“그거 아직 버리지 마.”“알아. 해준이가 좋아하는 거잖아.” 태윤이 아들의 발끝을 바라봤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아이들 이불을 다시 덮었다. 나는 문을 잡고 그가 두 아이를 한 번 더 볼 때까지 기다렸다. 복도로 나오니 아이들의 숨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오래된 공룡 양말을 쥔 채 입학식에 신길 남색 양말은 따로 준비했음을 떠올렸다. 이 낡은 한 짝도 당장 버릴 수 없었다. 그가 양말을 들지 않은 내 손을 잡았다.“내일 식 끝나면 조금 걷자.”“넷이서?”“응. 학교 근처 케이크 가게까지. 해준이가 거기 딸기 타르트 먹고 싶다고 했어.” 태윤이 잠깐 생각했다. 내가 먼저 침실 쪽으로 걸어가자 문 앞에서 잡은 손이 살짝 당겨졌다.“이음이는 중간에 안아 달라고 할 거야.”“네가 있잖아.” 그가 곤란한 듯 웃었다. 나는 그제야 입학식이 끝난 뒤 네 사람이 걷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날이 맑아야 할 텐데. 밤이라 내일 하늘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케이크 가게에 가는 길에는 해준이가 검은 가방을 메고, 이음이는 어느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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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화 금빛 아침

 봄볕이 거실 바닥에 반듯한 금빛 사각형을 그렸다. 열린 창으로 젖은 흙냄새와 꽃향기가 흘러들었다. 서린은 식탁 옆에서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입학식을 위해 고른 옅은 남색 재킷과 치마가 어쩐지 낯설었다. 새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선 아들을 보며, 서린은 치맛자락을 한 번 쓸어내렸다.“해준 오빠, 멋있어!” 이음이 까치발을 들며 손뼉을 쳤다. 해준은 어깨를 으쓱하면서도 자꾸만 새 책가방의 끈을 만졌다. 가방은 작은 등보다 조금 컸다. 검은 가죽은 아직 뻣뻣했고, 몸을 돌릴 때마다 금속 장식이 작게 울렸다. 어깨에 닿는 감촉이 불편한지 자꾸 끈을 고쳐 올리면서도, 벗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어젯밤까지 준비물을 거듭 확인하던 아이가 이제 학교에 간다. 서린은 그 뒷모습만 봐도 목이 메었다.“정말 잘 어울려, 해준아.”“엄마, 울어?”“안 울어. 네가 갑자기 다 큰 것 같아서 놀란 거야.” 서린이 무릎을 굽혀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가운 바닥의 감촉이 스타킹 너머로 무릎에 닿았다. 방금 감은 머리에서 어린아이용 샴푸 향이 났다. 해준은 입술을 내밀며 비켜섰지만, 엄마의 손길이 닿은 자리를 다시 만졌다.“나 이제 아기 아니거든.”“그래. 오늘부터 학교 다니는 형이지.” 그때 계단 위에서 낮은 목소리가 내려왔다.“아침부터 신났군.” 말끔한 감색 정장 차림의 태윤이었다. 계단을 내려올 때마다 구두 굽이 낮게 울렸다. 오랫동안 써 온 시트러스 향도 가까워졌다. 이음이 달려가 그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회사에서는 눈빛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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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5화 케이크 가게까지

“식이 끝나면 곧장 돌아올 거야?” 서린이 넥타이에서 손을 떼자 태윤이 그 손을 잡으려다 멈췄다. 예전 같았으면 이미 손목을 붙들었을 것이다. 서린은 그의 접힌 손가락을 잠깐 내려다보았다. 손을 잡고 싶다면 물어보면 될 텐데. 아직도 태윤에게는 그 한마디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어젯밤에 얘기했잖아. 학교 끝나고 케이크 가게까지 걸어가기로.”“알아.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태윤에게는 교문 앞 차 한 대도, 낯선 사람의 어깨도 위험해 보였다. 오래전 서린을 잃을 뻔했던 기억이 남긴 두려움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그 걱정 속에서 숨이 막혔다. 특히 오늘처럼 해준이 자기 힘으로 새 세상에 들어가는 날에는, 그 아이에게도 마음껏 걷게 해 주고 싶었다.“아빠, 경호원들이 줄지어 따라오면 창피해.” 해준이 가방끈을 쥔 채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태윤은 당장 반박하려다가 아들의 표정을 보고 말을 삼켰다.“알았다. 눈에 띄지 않게 하마.”“그 정도면 괜찮아. 빨리 가자. 지각하겠어.” 학교 강당은 박수와 아이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서린은 앞줄로 들어오는 해준을 찾았다. 낯선 아이들 사이에서 등을 곧게 편 아들은 몇 번이나 이쪽을 바라봤다. 마지막 줄에 앉은 태윤은 두 팔을 끼고 정면을 응시했다. 주위 학부모들이 곁눈질할 만큼 굳은 얼굴이었다. 정작 해준이 지나갈 때에는 아들의 가방보다 서린의 얼굴을 먼저 살폈다. 그녀가 웃고 있는지, 긴장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 눈길이었다. 서린은 의자 옆으로 손을 내려 그의 손등을 살짝 덮었다. 태윤의 어깨가 움찔하더니 굳었던 손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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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화 멈춘 시간, 열두 해

“가끔은 우리도 평범하게 지내자.” 서린의 말에 태윤은 오랫동안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주먹을 폈다.“그래. 걸어가자. 대신 내가 차도 쪽에 설게.” 해준이 아버지를 돌아보며 눈을 크게 떴다. 태윤은 약속대로 차도 쪽에 섰고 이음을 안아 올렸다. 서린과 해준이 나란히 앞서 걷는 동안 아이는 방금 받은 꽃잎을 아버지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네 사람은 그렇게 교문을 나섰다. 신호가 바뀌어 횡단보도로 들어섰을 때, 멀리서 엔진이 거칠게 울었다. 대형 트럭이 차선을 벗어나 교차로로 달려들었다.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어린아이가 넘어졌다. 어머니는 이미 몇 걸음 앞에 있었다. 서린이 달려가 아이를 안아 인도로 밀어냈다. 동시에 태윤이 해준과 이음을 끌어안았다. 귀를 찢는 경적과 타이어 마찰음이 한꺼번에 덮쳐 왔다. 금속이 부서지는 소리. 서린의 몸이 허공에 떴다. 조금 전까지 맡던 봄꽃 향기는 타는 고무 냄새로 바뀌었다. 구해 낸 아이가 어머니에게 안기는 모습과, 태윤이 자신을 향해 뻗은 손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끊겼다.“서린!” 태윤은 두 아이를 경호원에게 맡기고 서린 곁으로 달려갔다. 구급대가 도착할 때까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수술실 앞에서 의사가 말했다.“뇌좌상과 미만성 축삭 손상이 있습니다. 생명은 건졌지만 의식 장애가 오래갈 수 있습니다.”“깨어날 가능성은 있습니까?”“있습니다. 다만 언제, 어느 정도 회복될지는 지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태윤은 해준과 이음의 손을 다시 잡았다. 이음이 울면서 물었다.“엄마,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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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화 하얀 울타리

 백운여자고등학교 교문 앞에 서 있던 이음은 뒤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돌아섰다. 돌길에 부딪히던 구두 소리가 멎었다. 이웃 남고의 3학년, 농구부 선수 박도현이었다. 친구들이 조금 떨어져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도현은 평소 경기장에서는 주저함이 없는 선수라지만, 지금은 봉투를 쥔 손조차 어색해 보였다.“강이음 씨. 이거…… 읽어 줄 수 있을까요?” 그가 내민 하늘색 봉투를 받아 들었다. 손가락 끝이 떨리고 있었다. 연습이 끝난 뒤인지 옷에서는 땀과 비누 향이 희미하게 났다. 열다섯의 이음은 그 얼굴만 봐도 편지에 무슨 말이 적혔는지 알 수 있었다. 학교에서 이미 몇 번 받아 본 종류의 마음이었다. 상대가 용기를 냈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러니 읽어 달라는 부탁까지 들어줄 수는 없었다.“고마워요. 하지만 읽지는 못하겠어요.”“왜요? 읽어 보고 결정해도 되잖아요.”“내일도 저를 좋아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나요? 3년 뒤에도, 10년 뒤에도요. 제가 엄마처럼 기약 없이 잠들어 있어도 제 손을 잡고 기다릴 수 있다고요?” 이음은 봉투를 다시 내밀었다. 도현의 입술이 움직였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친구들이 지켜보는 곳에서 너무 차갑게 굴었나 싶었다. 하지만 열어 볼 생각이 없는데 편지만 받아 두는 것도 그에게는 거짓 희망일 것이다. 도현이 마침내 봉투를 받아 들었다. 주변에서 ‘도도한 부잣집 딸’이라는 속삭임이 들렸다. 굳이 바로잡고 싶지 않았다. 이음이 본 사랑은 가벼운 고백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답하지 못하는 아내의 손을 열두 해 동안 닦고 쥐어 온 아버지. 집에 돌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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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화 저택 안의 침묵

“해준 오빠는 왔어요?” 이음이 묻자 오래 일한 가사관리사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오늘도 밖에서 식사하신다고 연락이 왔어요.” 오빠의 방 앞을 지나며 이음은 발을 멈췄다. 한때 게임 소리와 서툰 기타 연습 소리가 새어 나오던 문은 이제 하루 종일 닫혀 있었다. 해준은 이 집이 숨 막힌다며 떠났다. 아버지의 걱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사랑에 갇힐 수는 없다는 말을 남겼다. 이음은 그 말이 틀렸다고 할 수 없었다. 아빠는 시험 점수도 생일도 잊지 않았다. 아플 때면 누구보다 빨리 침대 옆에 와 앉았다. 그런데 무언가 해 보고 싶다고 말할 때에는 먼저 위험한 이유가 돌아왔다. 오빠가 떠난 날, 자신의 방 문도 한층 무거워진 듯했다. 이음은 자기 방의 가족사진을 바라봤다. 엄마가 웃고, 오빠와 자신이 엄마 곁에 매달려 있었다. 아이들을 감싼 엄마의 왼손에는 아버지가 선물한 사파이어 반지가 빛났다. 사진 속 네 사람은 아무도 저날이 끝날 것을 알지 못했다. 엄마, 아빠는 나를 보고 있어. 그런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보다, 내가 다칠 수 있는 일부터 보는 것 같아. 아까 돌려준 편지가 떠올랐다. 편지를 쓴 도현이 나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이음은 아버지가 엄마를 바라보듯, 자기 존재를 통째로 덮고 지배할 만큼 강한 열을 바랐다. 그런 바람이 두렵기도 했다. 사랑과 자신을 가두는 울타리가 어디서 갈라지는지, 아직 분간할 수 없었다. 정작 아버지가 주는 관심은 행선지와 귀가 시간을 확인하는 방식으로만 닿았다. 자정 무렵, 아래층에서 문이 열렸다. 이음이 방문을 조금 열자 태윤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밤바람과 병원 소독약 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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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화 백합 향기

 현강홀딩스 본사 최상층. 태윤은 창밖으로 내려가는 해를 등지고 계약서에 서명했다. 윤성홀딩스가 무너질 때 다른 자본에 넘어간 식품 사업회사, 윤성푸드의 전체 지분을 인수하는 마지막 합의서였다. 서린이 깨어난 뒤 그 회사와 다시 관계를 맺고 싶어 할지는 알 수 없었다. 태윤은 적어도 그녀가 직접 고를 수 있을 때까지 그 이름을 지켜 두고 싶었다.“네가 돌아올 때까지만 지켜 둘게, 서린.” 그 말은 아무도 없는 집무실에 남았다. 회사를 인수한다고 해서 서린이 눈을 뜨는 것은 아니다. 돌아온 뒤 회사와 거리를 둘지, 다른 일을 시작할지도 그녀의 몫이었다. 노크와 함께 비서실장 박현석이 들어왔다. 태윤은 서명한 서류를 건넸다.“절차 진행해.” 현석이 서류를 받는 동안 태윤은 서명을 다시 보았다. 옛 회사를 사들이는 절차조차 결국 계약서 몇 장과 서명으로 끝났다. 열두 해를 기다린 일 중 오직 이 한 가지는 자신이 움직여 결과를 바꿀 수 있었다.“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음 양의 학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다른 학교 학생이 편지를 전했다고 합니다.”“이음이는 괜찮고?”“스스로 거절했다고 들었습니다.” 태윤은 더 묻지 않았다. 딸이 불편했는지 직접 물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회사에서 대신 확인하는 일이 익숙해져 있었다. 책상 한쪽의 카사블랑카 화분에서 진한 향이 올라왔다. 서린이 거실에 한 송이 꽂아 두고 좋아하던 꽃이었다. 태윤은 꽃잎 가장자리를 잠깐 만진 뒤 재킷을 집어 들었다. 딸은 자라면서 서린을 닮아 갔다. 태윤은 그 사실이 기쁘면서도, 어느 순간 이음이 아닌 오래전의 서린을 찾는 자신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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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0화 보이지 않는 울타리

“해준이가 집을 나갔어.” 태윤은 서린의 손을 제 이마에 대었다. 오늘 되찾은 회사 이야기를 전한 뒤에도 정작 이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너라면 조금 더 일찍 들어 줬겠지. 이음이도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게 말하지 않아. 내가 먼저 귀가 시간부터 묻거든.” 서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태윤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정리하고 꽃병을 바로 놓았다. 엄마를 대신할 수 없다는 생각에 기대어 아버지로서 할 말을 피할 수는 없었다.“네가 일어나면 나부터 혼내. 그동안 애들한테 어떻게 했는지 다 들려줄게.” 태윤은 서린의 손등에 입술을 대었다.“사랑해, 서린. 네가 눈을 뜰 때까지 기다릴게.” 그는 서린의 손바닥을 넥타이를 맨 자기 목 가까이 가져갔다. 입학식 날, 마지막으로 서린이 매듭을 고쳐 주었던 곳이었다. 당장 깨어나 달라고 여러 번 말해 왔지만, 오늘은 그 말 대신 아이들과 다시 대화하겠다는 약속을 남겼다. 잠시 후 병실을 나서자 박현석이 기다리고 있었다.“해준 씨가 대학 수업을 빠지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경호를 늘릴까요?”“아니. 본인이 도와 달라고 하기 전까지 건드리지 마.”“집과 일자리 모두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그래도.” 태윤은 병실 문을 돌아봤다. 서린이 아직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아들의 선택을 먼저 들어 보라고 했을 것이다. 자신의 불안을 줄이겠다고 아들의 길을 미리 치우는 일은 그만하고 싶었다. 박현석이 뜻밖이라는 듯 태윤을 봤다. 태윤 역시 아들을 혼자 두는 일이 자신에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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