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몰락한 상속녀, 7년 만에 첫사랑의 전속 하우스키퍼가 되었다: Chapter 51 - Chapter 60

126 Chapters

제51화 재킷 아래의 질문

 태윤의 재킷은 내 몸에 한참 컸다.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찢어진 등도, 흐트러진 가슴선도, 떨리는 어깨도 전부 가려 줬으니까. 나는 재킷 자락을 움켜쥔 채 태윤의 손을 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태윤아……”“말하지 마. 지금은 괜찮은지만 봐.” 태윤은 내 팔을 받쳐 세운 뒤, 내가 제대로 서 있는 걸 확인하고서야 유라를 돌아봤다. 그때까지도 내 쪽을 향해 있던 눈빛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차갑고, 지나치게 고요했다.◇ 유라는 잠깐 굳었지만 곧 어깨를 으쓱했다.“강 대표님까지 오셨네요. 재수가 없었어요. 옷이 생각보다 약했던 모양이에요.” 주변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번졌다. 누군가는 내 찢어진 드레스를 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태윤의 반응을 지켜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시선 하나하나가 살갗을 찌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태윤은 내 앞을 가로막듯 서 있었다.“약한 옷?” 목소리는 낮았다. 태윤이 내 어깨의 재킷 깃을 정리하며 말했다.“청담동 아틀리에에서 서린이 체형에 맞춰 따로 제작한 드레스입니다. 행사 전에 피팅도 두 번 했고요.” 유라의 입꼬리가 굳었다.“그래서요? 비싼 옷이면 제가 일부러 찢었다는 뜻이에요?”“CCTV와 현장 직원 확인부터 하죠.” 유라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태윤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고의였다면 드레스값으로 끝낼 생각 없습니다. 공식 행사장에서 다른 참석자 옷을 잡아당긴 일이고, 촬영을 시도한 사람도 있었으니까.” 주변 공기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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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호텔로 가는 길

 차가 호텔을 떠난 지 한참 뒤, 태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서린아.”“응?”“왜 아까 바로 말하지 않았어.”“괜히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네가 참으면서 끝낼 일은 아니잖아.” 태윤의 손이 내 쪽으로 움직이다 멈췄다. 대신 흐트러진 재킷 깃만 조심스럽게 바로잡았다.“분하면 분하다고 해. 나한테라도.”“……분했어.” 말로 꺼내는 순간 생각보다 더 아팠다.“무섭기도 했고, 창피하기도 했어. 네 옆에 설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듣고…… 나도 잠깐 그렇게 생각했어.” 태윤의 미간이 좁아졌다.“그건 아니야.”“그것도 네가 정할 일은 아니지.”“맞아.” 너무 빨리 인정해서 오히려 내가 멈칫했다. 태윤이 창밖을 잠깐 보고 다시 말했다.“그래도 네가 유라가 한 말을 네 평가로 받아들이진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지켜 준 건 고맙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직 이 사람을 의심하고 있다. 그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태윤아.”“응.”“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태윤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나는 엄마 병원 이야기를 꺼내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지금 물었다가, 정말 듣기 싫은 답이 돌아오면 어떡하지. 그 망설임을 읽은 듯 태윤이 낮게 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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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가까워지지 않는 밤

 태윤이 재킷을 다시 내 어깨에 둘렀다.“추워?”“조금.” 그는 소파에서 한 자리 떨어진 곳에 앉았다. 손이 내 쪽으로 움직이자 나는 조용히 손목을 잡았다.“……잠깐만.” 태윤이 곧바로 멈췄다.“지금 네가 가까이 오면, 생각을 못 할 것 같아.” 낮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지후의 말. 아버지 회사. 엄마 병원. 확인해야 할 게 있는데 태윤의 체온에 기대 버리면 또 뒤로 미룰 것 같았다.“오늘은…… 그냥 안아 주기만 해.” 태윤은 한동안 나를 바라봤다.“네가 먼저 오면.” 그 말에 가슴이 조금 저렸다. 나는 내가 직접 거리를 좁혀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그제야 팔이 천천히 등을 감쌌다. 찢어진 봉제선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는 손이었다. 정말 그런 걸까. 지후의 목소리가 다시 떠올랐다.‘강태윤은 사업가야. 손해 보는 선택은 하지 않아.’‘윤성홀딩스가 흔들릴 때도 그쪽 채권을 모으고 있었어.’ 눈을 감았다. 지금 여기 있는 온기와, 아직 모르는 과거. 어느 한쪽만 진실이라고 정할 수는 없었다.“태윤아.”“응.”“조만간…… 제대로 이야기해 줘.” 태윤의 팔에 잠깐 힘이 들어갔다가 다시 풀렸다.“알겠어.” 두 번째 대답은 조금 전보다 무거웠다. 창밖의 불빛을 등지고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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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같은 침대, 먼 마음

 새벽이 깊어졌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 반대편에서 태윤의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회사 이야기를 물었을 때 태윤은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가장 알고 싶은 부분은 말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오늘 밤 태윤은 내가 거리를 두자 따라오지 않았다. 의심되면 직접 확인하라고까지 했다. 7년 전의 태윤이라면 내게 생각할 틈조차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변한 걸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 느끼도록 행동하는 것까지 계산한 걸까. 생각할수록 어느 쪽에도 답을 낼 수 없었다. 나는 옆을 돌아봤다. 잠든 태윤은 평소의 압박감이 조금 옅었다. 감긴 눈 아래로도 미간에는 주름이 남아 있었다. 자는 순간까지 무언가와 싸우는 사람 같았다. 목의 사파이어에 손끝을 댔다. 처음에는 만질 때마다 목줄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된 건 아니다. 다만 오늘 밤, 나는 싫을 때 거리를 뒀다. 태윤은 그 선을 넘지 않았다. 아주 작은 일이다. 그래도 그 사실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태윤아, 뭘 숨기고 있는 거야.” 작게 말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등을 돌렸다. 사랑하니까 믿는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미우니까 의심하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태윤이 그 일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앞으로 누가 어떤 자료를 내밀더라도 말만 듣고 결정하지 않겠다. 내가 직접 확인한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숨이 조금 편해졌다. 창밖에서는 잠들지 않는 도시의 불빛이 흐릿하게 번지고 있었다. 창가에 서서 서울의 야경을 내려다봤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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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한지후의 소포

 행사에서 돌아온 뒤 며칠이 지났지만, 그날 밤의 감각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태윤에게 기대었을 때 느낀 온기와 지후가 던진 차가운 의심이 번갈아 떠올랐다. 어느 쪽도 완전히 밀어낼 수 없어서 계속 숨이 막혔다. 그날도 하늘은 낮부터 잿빛이었다. 성북동 집의 거실까지 어둑하게 느껴졌다. 소파에 앉아 책을 펼쳤지만 활자만 눈으로 따라갈 뿐 내용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사모님, 서류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관리 직원의 말에 어깨가 움찔했다. 그가 테이블 위에 두툼한 갈색 봉투를 내려놓았다.“저한테요?”“네. 윤서린 님 앞으로 등기로 왔습니다. 발신인 표시는 없었습니다. 외부 반입 물품이라 경호팀에서 위험물 여부만 확인했습니다.” 발신인 불명. 가슴 한쪽이 불편하게 조여 왔다. 이 집으로 들어오는 내 물건은 경호팀이 확인한다. 그러나 내용까지 읽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마워요. 두고 가 주세요.”“네. 강 대표님은 저녁 일정 때문에 귀가가 늦을 예정입니다.” 직원이 나가자 넓은 거실에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테이블 위의 평범한 갈색 봉투가 이상할 정도로 눈에 걸렸다. 나는 한참 바라보다 손을 뻗었다. 봉인을 뜯자 두꺼운 서류 묶음과 수십 장의 사진이 미끄러져 나왔다. 그 위에 짧은 메모가 한 장 놓여 있었다. 너무 반듯해서 오히려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익숙한 글씨였다.‘진실을 볼 용기가 있어, 서린아?’ 한지후. 이름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보지 말아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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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7년 전의 서류

 사진 속 태윤은 멀리서 내 쪽을 보고 있었다. 그뿐이었다. 지후의 메모가 없었다면, 우연히 마주친 옛 친구를 바라본 사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의심이 들어온 뒤라 같은 장면도 전혀 다르게 보였다.‘강태윤은 널 사랑하는 게 아니야. 네가 무너지는 걸 기다렸던 거야.’ 사진 여백에 적힌 문장이 머릿속에서 지후의 목소리로 되살아났다. 하우스키퍼로 다시 만난 일. 엄마 치료를 도와준 일. 태윤의 오래된 집착. 하나씩 떼어 놓으면 서로 다른 사건인데, 의심을 품고 나니 전부 한 줄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아니야.” 부정하고 싶었다. 그런데 무엇이 아니라고 해야 할지 설명할 수 없었다. 숨이 얕아졌다. 그때 현관 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다녀왔어.” 태윤의 목소리였다. 저녁 일정 때문에 늦는다더니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사진과 서류를 모았다. 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이 먼저 움직였다. 봉투 안에 급히 넣고 소파 쿠션 아래로 밀어 넣은 순간 거실 문이 열렸다.“안 자고 있었네.” 태윤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들어왔다. 늘 보던 얼굴. 늘 보던 눈. 그런데 조금 전 사진을 보고 나니 그 시선의 의미까지 낯설게 느껴졌다.“서린아, 왜 그래. 얼굴이 안 좋아.” 태윤이 손을 뻗었다. 나는 생각하기도 전에 몸을 뒤로 뺐다. 태윤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방 안이 갑자기 지나치게 조용해졌다.“…&hellip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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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채권 양수계약서

 첫 장은 채권 양수계약서였다. 양수인 란에 강태윤의 이름이 있었다. 다음은 긴급 채권보전 계획. 뒤에는 청산 검토 대상 채권 목록이 이어졌다. 경영과 금융을 깊이 아는 편이 아닌 내게 전문용어가 한 번에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버지 회사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태윤이 여러 채권을 넘겨받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여백에는 익숙한 글씨로 짧은 메모가 남아 있었다.‘4/10 양수 완료. 보전 절차 진행.’ 양수 완료. 보전 절차. 청산 검토. 그 단어들만 머릿속에서 점점 커졌다. 지후가 해 준 말이 빈틈 사이로 파고들었다. 태윤이 윤성을 손에 넣었다. 복수하려고 회사가 무너지는 걸 이용했다. 나는 다급하게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중간에는 ‘회생안’, ‘고용 유지’, ‘추가 자금 지원’이라는 제목도 있었다. 정상적인 판단이라면 그 부분부터 읽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눈물이 차올라 글자가 번지고 있었다. 파일 뒤쪽에서 낡은 사진 몇 장이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아버지가 직원들과 나란히 서서 웃고 있는 창업 초기 사진. 정원에서 아버지와 내가 장미를 손질하던 사진. 나는 쪼그려 앉아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주웠다. 태윤이 왜 이런 것까지 가지고 있을까. 회사를 살리려다 확보한 자료 속에 함께 들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윤성가가 잃은 것들을 자기 손안에 남겨 두고 싶었던 걸까. 서류에도 사진에도 답은 없었다. 그런데 한 번 커진 의심은 계속 가장 잔인한 해석만 골라 붙이려 했다.“……태윤아.” 믿고 싶었다. 믿고 싶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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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비 오는 밤의 질문

 내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침대 위에 파일을 펼치고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아까는 두려움과 분노 때문에 눈에 걸리는 단어만 골라 봤다. 이번에는 날짜와 문서를 순서대로 따라갔다.『회생계획안』『고용 유지를 전제로 한 채무 재조정』『윤성가 보유 핵심자산 보전 검토』 처음부터 무너뜨리기 위해 만든 자료라고 보기에는 이상했다. 태윤이 채권을 양수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보전 절차가 진행됐고, 결국 아버지 회사가 사라졌다는 결과도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몇 장의 문서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었다. 나는 페이지를 넘기던 손을 멈췄다. 지후의 말도, 태윤의 말도 지금은 답으로 정하지 않겠다. 아버지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 자금을 대던 금융사들이 왜 태도를 바꿨는지. 태윤이 어디까지 개입했는지. 사실을 하나씩 연결해야 했다.◇ 서재에 남은 태윤은 열린 파일 박스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서린이 가져간 것은 윤성홀딩스의 채권 양수부터 회생 협상까지 정리된 당시 자료였다. 무너지는 회사를 살리려면 채권자들이 제각각 자산을 뜯어 가기 전에 의사결정 구조부터 묶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업을 남기고, 직원들의 고용을 최대한 유지하고, 새 자금을 연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협상은 중간에서 깨졌다. 마지막 브리지 자금이 막혔고, 신용 불안이 번지자 다른 대주와 거래처까지 한꺼번에 조건을 강화했다. 그때는 보이지 않던 연결고리가 지금은 한명금융 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원수라.” 서린이 겁에 질린 이유는 단순히 채권을 샀다는 사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누군가 진짜 기록 위에 가장 잔인한 해석을 덧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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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지금의 네가 무서워

“아버지 회사 채권을 네가 산 건 사실이지?”“사실이야.” 태윤은 망설이지 않았다.“싸게 샀어?”“액면보다 낮은 가격이었어. 그때 윤성의 신용이 이미 크게 떨어져 있었으니까.” 가슴이 아팠다. 알고 있던 일인데도 아버지의 회사가 숫자로 가격 매겨졌다는 사실은 견디기 힘들었다.“담보도 잡았고?”“응. 먼저 보전하지 않으면 다른 채권자들이 각자 회수에 들어갈 상황이었어.”“그 뒤에 아버지는 회사를 잃었잖아.” 태윤은 바로 부정하지 않았다. 그 침묵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내가 진행한 절차가 결과에 영향을 줬다는 건 부정하지 않을게.”“영향?”“나는 회사를 남길 생각이었어. 사업을 살리고 고용도 최대한 유지하려고 채권을 한쪽으로 모았어.”“그런데 못 살렸고.”“……그래.”“아버지도 돌아가셨고.” 태윤의 목울대가 움직였다.“그 일도 잊은 적 없어.” 나는 파일에서 회생계획안이 있는 페이지를 펼쳤다.“그럼 왜 실패했어?”“마지막 자금 조달이 깨졌어. 그 직전부터 주요 대주들이 동시에 조건을 강화했고, 거래처 신용한도도 줄기 시작했어.”“누가 그렇게 만든 거야?”“지금 확인하고 있어.”“한명금융?” 태윤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연결된 흔적은 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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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엄마와 떠날 준비

 한참 뒤 태윤이 낮게 말했다.“……알겠어.” 더 다가오지 않았다.“손대지 않을게. 방도 따로 쓸게.”“그럼 밖에 나가는 것도 내가 정하게 해 줘.” 태윤의 시선이 흔들렸다.“병원도 갈 수 있고, 회사도 네가 원하면 나가. 대신 경호는 지금 당장 없애지 못하겠어.” 역시 그랬다. 가슴 안으로 무거운 것이 가라앉았다.“그걸 자유라고 생각해?”“아니.” 너무 빨리 대답해서 내가 오히려 말을 잃었다. 태윤은 씁쓸한 얼굴이었다.“네가 감시라고 느껴도 할 말 없어. 그래도 지금은 정보가 어디까지 새는지 모르고, 한지후가 왜 네 일정을 알고 있는지도 확인이 안 됐어.”“내가 위험을 알고도 가겠다고 하면?” 태윤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결국 아주 낮게 말했다.“……지금은 못 놓겠어.” 조용한 목소리라 더 선명하게 들렸다.“최악이야.” 말이 입 밖으로 떨어졌다. 태윤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알아.” 변명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화를 냈으면 미워하기 쉬웠을지도 모른다.“오늘은 나가 줘.”“그래.” 태윤은 문으로 걸어갔다. 손잡이를 잡은 뒤 한 번만 돌아봤다.“아버지 일은 반드시 전부 보여 줄게.”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봤다.“나한테 불리한 기록까지.” 문이 닫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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