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몰락한 상속녀, 7년 만에 첫사랑의 전속 하우스키퍼가 되었다: Chapter 31 - Chapter 36

36 Chapters

제31화 거기까지 하지

 유라가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태윤이 내 옆으로 한 걸음 나왔다.“거기까지 하지.” 목소리는 낮았지만 매장 안이 조용해졌다. 유라가 눈을 크게 떴다.“강 대표님, 저는 그냥 사실을……”“무슨 사실.” 태윤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윤서린이 무슨 일을 했고 지금 어떤 형편인지 네가 평가할 권리는 없어.”“하지만 대표님 옆에 있는 이유가……”“내가 설명해야 할 이유도 없고.” 태윤은 잠깐 나를 돌아봤다.“그리고 회사에서 어떤 일을 맡을지는 현강에서 판단해. 네가 아니라.” 유라의 입술이 굳었다.“저 여자가 대표님께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이번에는 태윤이 아주 짧게 웃었다.“그 질문 자체가 우습네.”“뭐라고요?”“내 옆에 누가 어울리는지 왜 남이 정하지?” 유라의 얼굴이 붉어졌다. 태윤은 더 말싸움을 이어 가지 않았다. 매장 매니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오늘 피팅 기록과 매장 내 촬영 여부 확인해 주세요. 고객 동의 없이 사진이 밖으로 나가면 법무팀에서 대응할 겁니다.”“네, 대표님.” 직원들이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유라의 표정이 순간 흔들렸다.“절 의심하는 거예요?”“의심하는 게 아니라 기록을 확인하는 거야.” 태윤의 대답은 단정했다.“괜히 일이 커지기 싫으면 그만해.” 유라는 나를 노려봤다. 분노보다 차가운 계산이 먼저 떠오른 눈이었다.“윤서린 씨.”“네.”“지금 옆에 누가 있다고 너무 안심하지 마.” 그 말을 남기고 유라는 돌아섰다. 높은 구두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나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태윤이 내 얼굴을 살폈다.“괜찮아?”“……괜찮다고 하면 혼내려고요?”“조금.”“그럼 안 괜찮아요.” 내가 솔직하게 말하자 그의 표정이 더 굳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신 싸우겠다는 말부터 하지 않았다.“나가자.”“옷은요?”“네가 고른 검은 거로 해.”“이건요?”“마음에 들면 그것도 사고.”“또 마음대로……”“네가 마음에 들면.” 말을 고쳐 하는 태윤을 보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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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로비에 퍼진 기사

 다음 날 아침, 여의도 현강홀딩스 본사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숨이 막혔다. 냉방은 충분한데 공기만 이상하게 무거웠다. 평소라면 대리석 바닥 위로 구두 소리만 바쁘게 오가던 공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곳곳에서 시선이 붙었다가 빠르게 떨어졌다.“……안녕하세요.” 접수대 근처에서 마주친 직원에게 인사하자 상대는 눈을 피하며 급히 고개만 숙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몇 사람이 휴대전화를 보다가 나를 힐끗거렸다. 심장이 불길하게 뛰었다. 오늘부터 비서실 직무 교육을 받는다는 사실이 벌써 퍼진 걸까. 아니면 청담동에서 태윤과 함께 있었던 걸 본 사람이 있는 걸까.“윤 비서.”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태윤이었다. 회사 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는 나를 ‘윤 비서’라고 부르기로 한 모양이었다.“네, 대표님.”“가자.” 그는 주변의 수군거림 따위는 들리지 않는 얼굴로 먼저 걸었다. 사람들은 대표가 지나가면 곧바로 길을 비켰다. 하지만 우리가 지나친 뒤 웅성거림이 다시 살아났다.“어제 기사 봤어?”“그 청담동 사진?”“몰락한 오너가 딸이 대표 개인 비서로 들어온다던데.”“연애인지 채용인지 구분이 되냐.” 귀에 걸린 몇 마디에 피가 식었다. 기사? 사진? 걸음이 순간 느려졌다. 태윤이 바로 멈췄다. 뒤돌아본 검은 눈이 내 얼굴을 살폈다.“봤어?”“뭘요?” 그가 입술을 굳혔다.“아직 못 봤구나.” 그때 엘리베이터 쪽에서 박현석 비서실장이 급히 다가왔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대표님. 올라가셔서 바로 확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손에 든 태블릿 화면에는 이미 익숙한 내 얼굴이 떠 있었다. 청담동 부티크를 나서는 태윤과 나. 누군가 멀리서 찍은 사진이었다. 비서실에 도착하자 박현석 실장이 태블릿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가십 매체의 톱 기사였다.‘현강홀딩스 강태윤 대표, 몰락한 오너가 딸 특혜 채용? 사적 관계와 인사 논란.’ 제목 아래에는 어제 부티크를 나오는 사진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태윤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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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고개 들고 걷는 법

“죄송합니다…….” 커피를 내려놓으려는데 손끝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잔과 받침이 가볍게 부딪쳤다. 태윤이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서린아.” 회사 안인데 처음으로 이름을 그렇게 불렀다.“이리 와.” 나는 잠시 망설이다 책상 가까이 갔다. 태윤은 내 손을 보더니 손바닥을 위로 내밀었다.“잡아도 돼?” 그 질문에 목이 메었다. 나는 손을 올렸다. 따뜻한 손가락이 차가워진 내 손을 감쌌다. 이번에는 세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그냥 단단했다.“……무서워요.”“알아.”“사람들이 다 저렇게 생각하면 어떡해요.”“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그래도 기사에는……”“기사보다 네가 여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가 결국 더 오래 남아.” 태윤이 나를 똑바로 봤다.“그리고 아까 관계를 부정하지 않은 건 널 숨기고 싶어서가 아니야.” 나는 숨을 멈췄다.“회사 이름으로 네 사생활을 해명하는 순간, 네가 진짜 내 부속품처럼 돼. 그건 싫어.”“그럼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괜찮아요?”“안 괜찮아.” 목소리가 낮아졌다.“지금도 다 고소하고 싶어.” 너무 태윤다운 대답에 어이가 없어 조금 웃음이 났다. 그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허위 사실은 법무팀이 잡는다. 회사에서 네가 받은 업무는 네가 결과로 증명해. 내가 뒤에서 막아야 할 선이 있으면 막을 거고.”“제가 못하면요?”“그럼 못했다고 평가받으면 돼.” 태윤은 담담했다.“내 옆에 있다고 잘했다고 해 줄 생각도 없어.” 그 한마디에 조금 안심이 됐다. 처음으로 회사 안에서 내가 설 자리가 조금 보이는 것 같았다.“회의 시간이다.” 태윤이 손을 놓고 재킷을 챙겼다.“갈 수 있겠어?” 나는 손끝에 남은 온기를 한 번 움켜쥐었다가 폈다.“네. 갈게요.” 회의실로 내려가기 위해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에 탔다. 문이 닫히자 바깥의 시선과 웅성거림이 잠시 끊겼다. 나는 그제야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태윤이 한 걸음 옆으로 움직였다.“여기.” 그가 내 위치를 바꾸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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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번역보다 중요한 것

 비서실에서의 첫날은 생각보다 훨씬 차가웠다. 현강홀딩스 본사 최상층. 선발된 직원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이 공간에서 나는 지나치게 눈에 띄었다. 정식 채용 절차가 진행 중인 임시 배치자. 그것도 대표와 사적인 관계가 있다는 기사가 난 바로 다음 날이었다.“저기, 이 자료 어디에 스캔하면 될까요?” 옆자리 선배 비서에게 물었다. 그녀는 화면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공용 폴더 구조는 안내문에 있어요.”“네, 감사합니다.”“그리고 대표님 개인 일정은 건드리지 마세요. 아직 권한 없으니까.”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분명한 벽이 있었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기사 난 다음 날 바로 비서실이라니.”“실무 평가가 필요하긴 하겠네.” 대놓고 모욕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아팠다. 나는 책상 아래에서 손을 꼭 쥐었다. 그들이 의심하는 것도 이해했다. 나는 공개 채용으로 들어온 사람이 아니다. 태윤의 제안으로 이 자리에 왔다. 그러니 결과를 보여 주기 전까지 특혜라는 의심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그 사실이 싫다고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오전 내내 비서실 매뉴얼과 회의 자료를 읽었다. 일정 시스템, 결재선, 대외 응대 기록, 해외 파트너별 주의사항. 모르는 건 따로 적고, 바로 물어도 되는 것과 먼저 찾아봐야 하는 것을 나눴다. 하우스키퍼로 일하면서 배운 것도 의외로 많았다. 사람이 원하는 걸 말하기 전에 읽는 법. 공간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움직이는 법. 상대가 불편해지는 지점을 먼저 알아채는 법. 예전 집안에서 배운 언어와 예절은, 몰락한 뒤의 노동 경험과 섞여 전혀 다른 기술이 되어 있었다. 그때 입구 쪽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잠시만요! 오늘 일정은 내일로 잡혀 있습니다!” 직원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면에서 시선을 들었다. 입구에는 체격이 큰 중년의 외국인 남성이 서 있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영어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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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기다림의 체면

“베르트랑 이사님, 먼 길 오셨는데 기다리게 해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강 대표도 오늘 직접 뵙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 해외 투자자들과의 화상회의가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프랑스어로 천천히 설명했다. 상대가 말을 끊을 때는 끝까지 듣고, 일정 착오에 대해 변명하지 않았다.“회의 종료까지 약 사십 분 정도 예상됩니다. 괜찮으시다면 별도 응접실로 모시겠습니다. 선호하시는 차나 커피가 있으시면 준비하겠습니다.” 베르트랑 이사의 표정에서 날카로운 기색이 조금씩 사라졌다.“당신 프랑스어가 아주 자연스럽군요.”“감사합니다.”“서울에서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기다리시는 동안 불편하지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박 실장에게 응접실 준비를 요청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선호 음료 아십니까?”“파트너 기록에 다즐링을 자주 요청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없으면 먼저 선택지를 여쭤볼게요.” 박 실장의 눈이 순간 달라졌다. 나는 오전에 읽어 둔 대외 응대 기록을 떠올리며 베르트랑 이사를 안내했다.◇ 약 한 시간 뒤. 화상회의를 마친 태윤과 베르트랑 이사의 미팅도 무사히 끝났다. 나오는 얼굴을 보니 적어도 처음의 분노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오늘은 윤 비서 덕분에 기분을 망치지 않고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베르트랑 이사가 태윤에게 말했다.“강 대표는 좋은 사람을 두셨군요.”“저도 오늘 알았습니다.” 태윤이 태연하게 답했다. 나는 그를 흘겨봤다. 베르트랑 이사가 웃으며 내 손을 가볍게 잡고 감사 인사를 하자, 태윤의 시선이 그 손으로 내려갔다. 표정은 멀쩡한데 눈만 차가워졌다.“이사님, 다음 미팅 일정은 비서실에서 다시 확정해 드리겠습니다.” 태윤이 자연스럽게 대화 사이에 끼어들었다. 베르트랑 이사는 그 미묘한 기류를 눈치챘는지 웃었다.“알겠습니다. 다음에는 날짜를 두 번 확인하지요.”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하고 문이 닫혔다. 그제야 길게 숨이 나왔다. 해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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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내 일로 얻은 자리

 다음 주 임원회의에는 평소보다 많은 임원이 참석했다. 나는 태윤 옆에서 회의록을 작성하며 미리 읽어 둔 해외 사업 자료를 머릿속으로 따라갔다. 안건은 프랑스에서 추진 중인 신규 프로젝트의 예산 배분이었다. 사업총괄 부사장이 손익 계획을 설명하고, 태윤이 숫자의 근거를 하나씩 확인했다. 회의는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래서 한 장의 자료가 더 눈에 걸렸다. 한국어로 정리된 전제 조건과 프랑스 측 원문이 맞지 않았다. 환율 변동 폭이 일정 수준을 넘었을 때 손실을 누가 부담하는가. 원문은 양측이 협의해 분담하도록 되어 있는데, 국내 자료만 보면 현강홀딩스가 전액 부담하는 조건처럼 읽혔다. 페이지를 다시 확인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단순 전재 오류라고 해도 계약서에 그대로 들어가면 손실 규모가 수십억 원까지 커질 수 있었다. 말해야 할지 잠깐 망설였다. 이 자리에 있는 임원들 중에는 아직도 나를 ‘대표가 데려온 여자’로 보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이 회의에 비서로 들어와 있었다. 나는 포스트잇에 짧게 적었다.‘원문 Section 7과 국내 자료 P.18 불일치. 환차손 부담 조건 재확인 필요.’ 자료 가장자리에 끼워 태윤 쪽으로 밀었다. 그의 시선이 잠깐 내려갔다.“부사장님.”“네, 대표님.”“18페이지 부담 조건, 최종 확인 누가 했습니까?” 회의실의 공기가 달라졌다. 부사장이 자료를 다시 보고 법무 담당자가 원문을 열었다. 몇 분 뒤, 외부 번역 업체가 한국어본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생긴 전재 오류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악의적인 수정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대로 승인했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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