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몰락한 상속녀, 7년 만에 첫사랑의 전속 하우스키퍼가 되었다: Chapter 61 - Chapter 70

126 Chapters

제61화 식탁에 남은 거리

 복도로 나온 태윤은 닫힌 문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지금의 너도 나는 무서워.’ 서린의 목소리가 계속 귀에 남았다. 아버지 일로 의심받는 것보다 그 말이 더 깊이 박혔다. 한지후는 세명의료원 방문 일정까지 알고 있었다. 윤성의 오래된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도 서린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정보가 새는 경로가 있는 건 분명했다. 그래서 경호를 유지하는 판단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위험하니까 안 돼’라고 말하는 순간, 처음 하우스키퍼 계약을 핑계로 서린의 생활을 통제하던 때와 무엇이 다른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서재로 돌아온 태윤은 박현석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지후 쪽 다시 확인해. 세명의료원 일정이 어디서 새었는지, 윤성 자료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두 경로를 따로 봐.”‘알겠습니다.’“서린이 경호는 유지하되 이동을 막지 마. 병원이든 회사든 따라가되 필요 이상으로 붙지 말고.” 거기까지 말한 태윤은 입을 다물었다. 원칙대로라면 경호를 받을지 말지도 서린이 결정하게 해야 하는 걸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놓을 자신이 없었다.“……결국 똑같나.” 아무도 없는 서재에서 혼잣말이 떨어졌다. 잃는 게 두렵다. 그 두려움을 그는 늘 서린의 행동을 제한하는 이유로 바꿔 왔다. 태윤은 책상 위에 7년 전 윤성홀딩스 자료를 펼쳤다. 아버지 일은 기록이 모이는 대로 전부 보여 줄 생각이었다. 채권을 양수한 것. 강한 보전 조치를 밀어붙인 것. 결과적으로 회사를 살리지 못한 것까지 숨기지 않는다. 그걸 다 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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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병원으로 가는 아침

 다음 날 아침, 엄마를 만나러 갈 준비를 하는데 현관에 태윤이 나타났다. 밤늦게까지 자료를 본 모양인지 눈 밑에 옅은 그늘이 있었다.“오늘 세명의료원 가지.”“응.”“차 준비해 뒀어. 경호팀 두 명도 붙을 거야.” 신발을 신던 손을 멈췄다.“차는 필요 없어.”“알겠어.” 생각보다 쉽게 물러났다.“경호도.” 이번에는 태윤의 얼굴이 굳었다.“그건 아직 못 빼.” 역시. 가슴이 가라앉았다.“한지후가 올까 봐?”“한지후만이 아니야. 병원 일정이 어디서 새는지 아직 못 찾았어.”“그 위험까지 포함해서 내가 결정하고 싶다고 했잖아.”“알아.”“모르잖아.” 태윤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 쪽으로 다가오지도 않았다.“……돌아왔으면 좋겠어.” 낮은 목소리였다. 명령이 아니라 정말 부탁처럼 들렸다.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대답할 수는 없었다. 휴대전화에는 지후가 보낸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병원에서 만나면 경호팀과 거리를 둘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했다. 지후를 믿어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직접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왜 병원 일정을 알고 있었는지. 왜 내가 파일을 읽은 시점까지 알고 있었는지. 나는 현관문을 열었다.“다녀올게.” 잠깐 뒤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l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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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닫힌 병동

 지후는 중정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병동을 내려온 뒤에야 문제가 보였다. 경호팀 직원 두 명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내 이동을 막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혼자 이야기할 틈을 줄 생각도 없어 보였다. 숨이 막혔다.“저…… 잠깐 바람 좀 쐬고 싶어요.”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옥상정원에 올라가도 돼요?” 직원들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한 사람이 인이어로 짧게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네. 동행하겠습니다.” 옥상정원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개방된 공간이었다. 정리된 화단 사이로 바람이 불고, 평일 오후라 사람도 많지 않았다. 나는 벤치에 앉아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경호팀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주변을 살폈다. 그때 의료진처럼 옷을 입고 마스크를 쓴 남자가 화단 옆 통로에서 나타났다. 그는 내 앞을 지나가며 작은 종이 한 장을 벤치 옆에 떨어뜨렸다. 심장이 크게 뛰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종이를 주워 손바닥 안에 숨겼다. 직원들은 그 남자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 종이를 펼쳤다. 익숙한 글씨였다.‘10분쯤 뒤 1층에서 비상경보가 울릴 거야.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동쪽 비상계단으로 내려와. 지하 주차장 출입구 쪽에 회색 승합차가 있어.’ 손끝이 차가워졌다. 한지후. 이건 단순히 병원 안에서 잠깐 이야기하자는 계획이 아니었다. 정말 나를 데리고 나갈 생각이다. 경보까지 이용하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머릿속에 태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침 현관에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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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다정한 피난처

 차가 병원을 벗어나자 나는 창밖만 바라봤다. 지후는 엄마를 지금 옮기지 않겠다고 했다. 세명의료원에는 의료진과 태윤의 경호 인력이 남아 있다. 적어도 오늘 당장 무리한 전원으로 엄마가 위험해질 일은 없다. 그 사실에 조금 안심하면서도 가슴 한쪽이 비어 버린 것 같았다. 나는 정말 태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차에 탔다. 그 사람이 무서웠고, 의심스러웠고, 그래도 아직 사랑했다. 서로 모순되는 감정을 그대로 둔 채 일단 거리를 만들기로 했다. 창밖으로 서울의 건물들이 뒤로 흘러갔다.‘태윤아…….’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르는 것만으로 통증이 번졌다. 이게 끝인지 아닌지조차 아직 몰랐다. 그저 지금은, 누구의 집도 누구의 품도 아닌 곳에서 생각해 보고 싶었다.◇ 병원 지하 주차장 출구가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박현석이 서 있었다. 경호팀에서 연락을 받고 직접 내려온 참이었다. 그는 멀어지는 회색 승합차의 번호와 차종을 확인하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기록했다. 서린이 차에 오르는 장면도 보았다. 억지로 끌려가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지후가 미리 병원 안쪽 동선까지 알고 움직였다는 점은 분명히 이상했다. 현석은 곧바로 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한 번 가기도 전에 연결됐다.“대표님. 윤 비서님이 한지후 부사장 차량에 탔습니다.” 전화 너머가 조용했다.“강제로 끌려간 정황은 현재까지 없습니다. 다만 비상경보 직후 이동했고, 사전에 준비된 차량으로 보입니다.” 잠깐의 침묵.‘……알겠어.’ 태윤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낮았다.&lsq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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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숨겨 두는 집

 지후의 손은 허공에 잠깐 머물렀다. 표정에서 온기가 사라진 듯 보였다. 하지만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사이 다시 부드러운 미소로 돌아왔다.“……그래. 아직 많이 놀랐겠지. 좀 쉬어.” 그는 손을 거두고 앞을 봤다. 나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왜 이렇게 불편할까. 지후는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고, 오늘 나를 집 밖으로 나오게 도와준 사람이다. 그런데 손이 다가오는 순간 몸이 먼저 거부했다. 태윤의 손이라고 언제나 편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두렵고 싫었던 때도 많았다. 다만 최근의 태윤은 내가 멈추라고 하면 멈췄고, 기다려 달라고 하면 기다리려고 했다. 그 차이가 지금 와서 선명하게 느껴졌다.‘태윤아…….’ 이름을 생각하자 가슴이 아팠다. 지금쯤 내가 병원에서 사라진 걸 알았을 것이다. 화가 났을까. 상처받았을까. 아니면 또 모든 방법을 동원해 나를 찾으려 할까. 그 생각은 무서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말 나를 찾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을 붙잡았다. 나는 그 모순이 싫었다.◇ 차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산길로 접어들었다. 가로등이 줄고, 마주 오는 차량도 드물어졌다.“……지후야, 아직 멀었어?” 불안해져 시간을 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끝이 빈 천만 훑었다.“어?”“왜?”“내 휴대전화가 없어.” 가방 안도 확인했다. 없었다. 병원에서 나올 때는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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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웃지 않는 미소

 실내는 지나치게 깨끗했다. 흰 벽, 회색 바닥, 형태가 단정한 가구들.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기보다 언제든 촬영할 수 있게 꾸민 쇼룸 같았다. 나는 현관 쪽으로 돌아가 문손잡이를 눌러 봤다. 열리지 않았다.“왜 잠겼어?”“보안 때문이야.” 지후가 외투를 벗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밖에서도 쉽게 들어올 수 없고, 안에서도 인증 없이 열리지 않아.”“내가 나가고 싶으면?”“지금 나갈 이유가 있어?” 질문으로 돌아온 답에 가슴이 식었다.“산책을 하고 싶을 수도 있잖아.”“경호가 정리되면 같이 나가자. 혼자 움직이는 건 위험해.”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지금까지 태윤에게서 도망치려 했던 이유가, 바로 이런 말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지후는 자기가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옷 갈아입자.” 그가 테이블 위에 놓인 상자를 가리켰다.“병원에서 나온 옷 그대로잖아.”“씻고 내 옷 입으면 돼.”“여기엔 네 옷이 없어. 준비해 뒀어.” 상자 안에는 아이보리색 원피스와 얇은 카디건, 새 속옷까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문제는 디자인이었다. 7년 전, 집이 무너지기 전 내가 즐겨 입던 스타일과 너무 닮아 있었다.“이걸 왜 골랐어?”“네가 이런 옷 좋아했잖아.”“스물두 살 때.” 나는 원피스를 다시 상자에 내려놓았다.“지금 나는 스물아홉이야.&rdquo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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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보여 주고 싶던 방

 지하 끝에는 두꺼운 문이 있었다. 잠겨 있지 않았다. 문을 여는 순간, 센서 조명이 천천히 켜졌다.“……뭐야, 이게.” 벽 전체가 사진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전시 공간인 줄 알았다. 한 걸음 들어간 뒤에야 사진 속 사람이 전부 나라는 걸 알아봤다. 대학 건물 앞을 걷는 나. 카페에서 친구와 웃는 나. 성북동 집 정원에서 책을 읽는 나. 집안이 무너진 뒤 좁은 원룸 앞에서 택배 상자를 들고 있는 나. 가사관리사 유니폼을 입고 버스를 기다리는 나. 할인 스티커가 붙은 도시락을 고르는 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까지 있었다. 각도도 이상했다. 멀리서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바로 옆 테이블에서 찍은 듯한 사진, 지하철 승강장 반대편에서 찍은 사진, 아파트 복도 끝에서 찍힌 뒷모습도 있었다. 누가 봐도 우연히 남은 기록이 아니었다. 7년. 내가 태윤과 헤어진 뒤부터 지금까지, 누군가가 내 생활을 계속 모아 왔다. 나는 벽 가까이 다가갔다. 사진 아래 작은 날짜표가 붙어 있었다. 날짜가 끊기지 않았다. 집안이 몰락한 시기에도. 엄마가 병원에 오래 머물기 시작한 시기에도. 내가 하루에 두세 곳씩 청소 일을 뛰던 때에도.“보고 있었으면서…….” 목이 잠겼다. 지후는 내가 힘들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손을 내민 적은 거의 없었다. 필요한 순간에 나타난 사람처럼 행동했지만, 실제로는 필요해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아닐까. 시선이 방 중앙으로 옮겨갔다. 유리 진열장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안에 놓인 물건을 확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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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잘못된 사람에게

“오지 마.” 내가 먼저 말했다. 지후는 한 걸음 멈췄다.“왜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해?”“이 사진들, 네가 찍은 거야?”“전부는 아니야. 부탁한 것도 있고, 받은 것도 있어.”“그럼 이 물건들은?”“네가 버린 거잖아.” 그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주인이 없는 물건이 됐으니까 내가 가져온 거고.” 말의 논리가 너무 차분해서 오히려 숨이 막혔다.“내 머리카락도?” 지후는 잠깐 웃었다.“그건 조금 구하기 어려웠지.” 나는 속이 뒤집히는 걸 참으며 한 걸음 더 물러났다.“한지후 씨.” 처음으로 그렇게 불렀다. 지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왜 그렇게 불러?”“지금 내가 아는 지후야가 아니니까.”“서린아.”“내 이름 그렇게 부르지 마.” 목소리가 떨렸지만 멈추지 않았다.“이건 사랑이 아니야. 감시고, 수집이야. 내가 힘들 때 도와주지 않고 계속 보고만 있었잖아.”“도와줄 때를 기다린 거야.”“내가 네 도움이 없으면 안 되는 때를?” 그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답처럼 느껴졌다. 나는 문 쪽으로 움직였다. 지후가 길을 막았다. 손을 대지는 않았다. 그저 몸 하나로 출구를 가렸다.“지금 나가면 강태윤에게 돌아갈 거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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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두 줄의 테스트기

 그 뒤 며칠 동안 나는 2층 방에서 지냈다. 방문은 바깥에서 잠겼고, 식사 때와 지후가 들어올 때만 열렸다. 휴대전화는 돌려받지 못했다. 엄마의 상태는 지후가 말로 전해 주는 내용밖에 알 수 없었다.“담당 의료진이 안정적이라고 했어.”“누구한테 들었는데?”“확인할 방법이 있어.” 그 이상은 알려 주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지 않기로 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속이 뒤집혔다. 입을 막고 세면대로 달려갔다.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헛구역질이 계속됐다. 며칠 전부터 냄새가 유난히 거슬렸고, 몸이 무겁고, 열이 있는 것처럼 나른했다.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으니 당연하다고. 그런데 세면대 가장자리를 붙잡고 숨을 고르는 순간, 머릿속에서 날짜 하나가 떠올랐다. 생리가 늦었다. 병원과 태윤의 집, 회사 일을 오가느라 정확히 세지 못했지만 평소보다 분명 늦었다.“설마…….” 손바닥이 식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지후가 아침 식사가 놓인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따뜻한 수프 냄새가 퍼지는 순간 속이 다시 울렁거렸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입을 막았다.“냄새…… 치워 줘요.” 지후가 멈췄다.“또 토했어?”“그냥 속이 안 좋아요.” 그는 나를 한참 바라봤다. 걱정보다 관찰에 가까운 시선이었다.“언제부터 이랬지?”“며칠 됐어요.”&ldqu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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