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Chapter 131 - Chapter 140

215 Chapters

131화 받는 손

상궁은 마루 아래에 서 있었는데, 짙은 자색 옷에 신이 깨끗했고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자세가 오래 그렇게 서 있어 본 사람의 자세였다.마루 위에 놓인 것은 한 번도 보지 않았는데, 제가 들고 온 물건을 안 보는 것도 배우는 것이구나 싶었다.소하가 등을 든 채 반 걸음 뒤에 섰는데, 등불이 낮아서 옥패의 아래쪽만 밝았고 인이 있는 쪽은 그늘에 들어가 있었다.그 불이 상궁의 옷단과 소맷부리까지만 닿아서 자색이 거기서 먹빛으로 가라앉았고, 깃과 어깨선은 아예 어둠에 들어가 있었다.한경이 그 옷을 값 매기듯 훑었다."이거 받으면 어떻게 되는데요.""예?""받으면 뭐가 달라지느냐고요."상궁이 잠깐 말을 고르는 동안 눈이 마당 흙으로 갔다가 돌아왔다.고개를 돌리자 어깨에 얹혔던 등불빛이 자락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다."…궁문이 열립니다.""어느 문요.""…동문이옵니다. 태후마마 처소로 드는 문이지요.어전 쪽 회랑으로는 드시지 못하고, 물목 입회도 아니 되시고, 아침 명부에도 오르지 않으십니다.대신 마마께서 부르시면 언제든 드십니다.""부르시면 언제든.""…예.""안 부르시면요.""…부르십니다."한경이 웃었는데, 웃음이 짧게 났다가 그쳤다.'…이 사람 대답 잘하네.'* * *"하나만 더 물을게요.""…예.""이거 받으면 나는 누구 사람이 돼요?"상궁의 두 손이 앞에서 한 번 고쳐 쥐어졌다."…부인께서는 육가 안주인이십니다.""그건 지금도 그렇고요.""…""내가 묻는 건, 이거 받고 나서 육가랑 태후마마가 서로 다른 걸 시키면 내가 어디 걸 하냐는 거예요."마당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부엌 문지방에 반쯤 나와 있던 오어멈이 그 자리에서 손에 든 것을 놓쳤고, 놓친 것을 줍지 않았다.상궁이 고개를 들어 넉 달 동안 궁에서 본 어느 얼굴보다 오래 한경을 봤다."…소인이 열셋에 궁에 들어와 스물여덟 해를 살았습니다.그동안 그 물음을 소리 내어 하신 분을 뵌 적이 없습니다.다들 받고 나서 아셨지요.아시고 나서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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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화 별당

별당은 곳간을 뜯어고친 방이라 북향이었고 창이 하나였다.그 창을 낮에도 닫아 두어 별당에서는 시각을 알 수 없었는데, 육설은 그것을 좋아했다.등잔을 넷 켜 놓으면 낮이고 밤이고 같은 빛이었고, 같은 빛 아래서는 지는 것이 덜 지는 것 같았다.골패가 돌았다. 여자가 넷이었는데, 시전 비단전 안주인, 남문 안 약재상의 후처, 그리고 이름을 밝히지 않는 여자 하나였다.마지막 하나가 연옥이었다."아씨, 이번 판은 아씨가 가져가시겠는데요.""…가져가겠는데."육설이 패를 뒤집고 나서 오른쪽 어금니로 약과를 한 번 씹었다."가져가겠는데, 이게 가져가는 게 아니라 도로 물어 주는 거지.지난달에 내가 자네한테 얼마를 냈더라.""엿 냥 두 돈이요."연옥이 셈을 하지 않고 대답했는데, 늘 그랬다.날짜도 액수도 대면서 종이를 꺼내는 법이 없었다."…엿 냥 두 돈.""그리고 그저께가 석 냥이시고요.다 해서 아홉 냥 두 돈인데, 아씨.소인이 셈이 밝아서 미움 받습니다. 그렇지요?"여자 셋이 웃었고 육설도 웃었다.웃지 않으면 눈이 찬 사람인데, 이 방에서는 웃을 일이 많았다.* * *술이 떨어져서 사람을 불렀더니 들어온 것은 총관이었다.종을 시키면 될 일인데 직접 들고 왔고, 들고 와서 내려놓고, 내려놓고 나서 문 앞에 섰다."…더 필요한 것은.""됐어.""…예."총관이 나가지 않았고, 육설이 패를 든 채로 그를 올려다봤다."총관.""예, 아씨.""자네 요즘 이 방에 자주 오네.""술을 나르는 일이 총관 소관이라.""스물세 해 동안 한 번도 자네 소관이 아니었는데."연옥이 패를 놓으면서 웃었는데, 놓는 손이 느렸다."아씨. 총관 나리께서 아씨 술 축나는 게 아까우신 게지요.이 댁 살림을 스물세 해 지키신 분인데, 아씨가 하룻밤에 서 말을 비우시면 그 셈이 어디로 가겠어요.다 총관 나리 장부로 가지요."방이 웃었다. 넷 중 셋이 웃었으면 방이 웃은 것이 된다.총관은 웃지 않았다.웃지 않은 채로 문을 닫고 나갔고, 닫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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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화 물 긷는 밤

안채 시녀들의 방은 마루 끝 곁방이었고 셋이 잤다.삼월이 문 쪽, 단이가 가운데, 버들이 벽 쪽이었는데, 자리가 정해진 지 두 해가 되었고 두 해 동안 바뀐 적이 없었다.삼월이 눈을 뜬 것은 자시가 넘어서였다.벽 쪽 자리가 비어 있었고, 이불이 개켜져 있지 않고 반쯤 젖혀진 채였는데, 젖힌 모양이 급히 나간 모양은 아니었다.소리 나지 않게 나간 모양이었다.단이도 깨어 있었는데, 눈을 감고 있었으나 자는 사람의 숨을 쉬지 않았다."…또 갔니.""…""단아.""물 길으러 갔겠지.""이 시각에 물을 왜 긷는데."단이가 돌아누웠다. 벽 쪽으로."삼월아.""응.""우리가 무슨 수로요."삼월이 천장을 봤다.바깥에서 두레박 줄 감기는 소리가 났다.한 번, 그리고 한참 뒤에 또 한 번.줄이 감기는 속도가 느렸는데, 물을 긷는 사람이 힘이 없거나 서두를 이유가 없거나 둘 중 하나였다.문중 작은댁 어른이 이 집에 든 지 사흘째였다.* * *한경이 깬 것은 새벽이었다.눈을 뜨자마자 손부터 펴서 열 손가락을 벌렸다가 하나씩 접었다. 안 떨렸다.넉 달 반째 하는 짓이었고 여전히 왜 하는지는 몰랐다.물을 마시려는데 물그릇이 비어 있어서 마루로 나가니 마당에 등이 하나 있었다. 우물가였다.등을 땅에 놓고 두레박을 올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물동이가 셋 놓여 있었고 그중 둘이 차 있었다."버들아?"아이가 두레박을 놓쳤고, 물이 우물 안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깊은 데서 소리가 올라왔다."…부인. 소인이.""이 시각에 물을 왜 길어.""낮에 못 길어서요.""낮에 뭐 했는데.""…"한경이 마루에서 내려섰는데, 맨발이었고 흙이 찼다.우물가까지 열 걸음을 갔다.그 열 걸음 동안 아이가 물동이 하나를 제 앞으로 끌어다 놓았다.앞을 가리는 자세였다.* * *등을 들어 얼굴 쪽으로 옮기자 버들이 고개를 돌렸다.돌리는 쪽이 왼쪽이었다.한경이 그 턱을 잡아 오른쪽으로 돌리자 오른쪽 광대 아래에 자국이 있었는데, 붉지 않고 누런 것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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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화 작은댁 어른

낮에 육가 사랑에는 문중 문서가 펼쳐져 있었다.작은댁 어른 육겸이 아랫목에 앉았고 육정이 그 맞은편이었다.오십 줄에 살이 두툼하고 목이 짧은 사내였는데, 자색 옷이 아니라 갈색이었고 그 갈색이 값나갔으며 손가락에 낀 것이 셋이었다.한경이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안주인이 사랑에 드는 법은 없었다.종이 뒤에서 무어라 아뢰려다 말았다."조카며느리."육겸이 먼저 웃었다.화를 내지 않았다.화를 내려면 이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여겨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얼굴에 없었다."어른께 여쭐 것이 있어서요.""여쭈시게. 내 조카가 요즘 부인 말은 잘 듣는다더구먼."육정이 왼쪽 광대의 흉을 엄지로 문질렀다.* * *"저희 안채에 버들이라고 열넷짜리가 있습니다."방이 조용해졌다. 육정이 고개를 들었는데, 든 얼굴이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얼굴이었다가, 반 박자 뒤에 아는 얼굴이 되었다.한경이 그것을 봤다.'…알고 있었네.'"버들이라.""어른께서 이 집에 드실 때마다 그 아이를 부르신다고요.""부르지."육겸이 찻잔을 들었는데, 드는 손에 낀 반지가 살에 파묻혀 있었다."내가 이 집 어른일세.아랫것 하나 부르는 데 조카며느리한테 아뢰어야 하는가.""부르셔서 뭐 하시는데요.""조카며느리.""묻는 겁니다.""허."육겸이 웃으면서 육정 쪽으로 눈을 돌렸다.조카를 보는 눈이 아니라, 개를 데려온 사람을 보고 있었다."자네 처가 오늘 좀 이상하구먼."육정이 무릎 위에서 두 주먹을 쥐었고, 쥔 것을 숙부가 보지 못하게 소매로 덮었다."숙부님.""말해 보게.""…"거기서 말이 나오지 않았고, 한경은 남편을 보지 않았다.보면 지금 이 사람이 무너지는 것을 봐야 하고, 그것은 나중에 봐도 되는 일이었다.* * *한경이 반 걸음 들어가자 소반 모서리가 치맛단에 닿았다."어른.""…""손 좀 보여 주시겠어요."육겸의 웃음이 반쯤 남은 채로 얼굴에 걸렸다."무어라?""손요. 지금 찻잔 드신 그 손.""조카며느리가 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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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화 손이 떨리는 밤

그날 밤 서하당에 육정이 왔고, 문 앞에서 옷자락이 문설주에 스치는 소리가 났다.넉 달 전 여름밤에 처음 들었던 것과 같은 소리였는데, 그때는 문지방 안쪽에 한 발만 들여놓고 섰던 사람이 오늘은 두 걸음을 들어와 섰다.관복을 벗고 속적삼 위에 얇은 것만 걸쳤는데, 머리를 풀었고 씻고 온 사람의 냄새가 났다.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부인.""앉으세요.""…""거기 서 계시면 내가 올려다봐야 하잖아요."육정이 앉았다. 앉는 데 오래 걸렸다.소반이 두 사람 사이에 있었고, 잔이 둘 놓였는데 저녁에 우린 것이라 김이 없었다.둘 다 손대지 않은 잔이었다.* * *"…낮에.""예.""…내가 알고 있었소."한경이 그를 봤는데, 등불이 낮아서 눈 밑 그늘이 짙었다.보고 나서 잔 하나를 그의 앞으로 밀었다."식었어요."육정이 무릎 위에서 두 손을 겹치고 나서, 겹친 손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숙부님은 문중 어른이고, 문중 어른이 이 집에 드시면 아랫것을 부리시는 것이 예로부터 있어 온 일이며, 있어 온 일을 두고 조카가 무어라 하면 그것이 문중에 가고 문중에 가면 어머니께 가는 까닭에, 하여 나는 이 일을 알고도—""나리.""…""찻잔이요."육정의 입이 다물리고, 다문 자리에서 턱이 한 번 움직였다.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는데, 잔이 소반에 닿는 소리가 두 번 났다.방에 촛불이 하나였는데, 심지가 타면서 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그칠 때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무서웠소."세 글자였다."…열넷짜리 아이가 밤에 물을 긷는 소리를 내가 들었소.서재에서 들었고, 듣고 나서 창을 닫았소.닫으면 안 들리니까.""…""그러고 잤소, 부인.나는 그러고 잤소."육정이 거기서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낮에 광대의 흉을 문지르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손이 무릎에 그대로 있었다.문지를 데가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 *한경이 소반 너머로 손을 내밀어 손바닥을 위로 폈다."이리 와 보세요."육정이 움직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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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화 스무 해치

이튿날 사시에 육가 대청에 문중 어른이 일곱 모였다.작은댁 육겸이 소집했고, 명분은 어공에서 빠진 집이 종가 노릇을 계속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큰댁 어른이 상석에 앉았고 나머지가 좌우로 앉았으며, 육정이 아랫자리에 방석 하나를 놓고 앉았다.한경은 대청에 들지 않고, 곁방 문을 반 뼘 열어 놓고 그 안에 앉았다."조카."큰댁 어른이 부채를 무릎에 놓은 채로 먼저 물었다."어공이 빠진 것이 사실인가.""사실입니다.""그러면 종가 몫도 다시 헤아려야 하지 않겠는가.""헤아리셔야지요."육정이 그 말을 하고 나서 무릎 옆의 보퉁이를 풀었다.종이가 나왔다. 한 장이 아니었다.* * *"…무엇인가, 그것은.""세찬 장부입니다."육겸의 어깨가 한 번 움직였고, 앉은 자세가 반 뼘 뒤로 갔다."세찬을 왜 여기서.""헤아리자 하셨으니 헤아리는 것입니다, 숙부님."육정이 종이를 한 장씩 폈고, 펴서 상 위에 옆으로 늘어놓았다.스무 장이 넘었다.늘어놓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기묘년부터입니다.해마다 섣달에 종가에서 문중으로 나가는 세찬이고, 큰댁에 두 짐, 작은댁에 한 짐, 나머지 댁에 반 짐씩이 예입니다.""그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 않은가.""예.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육정이 세 번째 장을 손끝으로 짚었는데, 짚은 자리에 붉은 표가 하나 있었다."기묘년에 작은댁이 한 짐 반을 가져가셨습니다.그해에는 흉년이라 종가가 반 짐을 더 얹었고, 얹은 것이 문서에 적혀 있으니 이것은 아무 흠이 아닙니다.그런데 이듬해에도 한 짐 반이 나갔습니다.그해는 흉년이 아니었고요."육겸이 찻잔에 손을 댔다가 놓자 잔이 소반에서 반 치 밀렸다."…그 이듬해에도 한 짐 반.그다음 해에도 한 짐 반. 스무 해입니다.""조카.""숙부님.""…""제가 지금 숙부님을 나무라는 것이 아닙니다.나무랄 일이면 진작 아뢰었을 것이고, 진작 아뢰지 않은 것은 종가가 얹어 드린 것을 종가가 세는 것이 예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한경이 곁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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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화 흰 실

이레째 되는 날 새벽에 한경은 뒤채 담 그늘에 서 있었다.아직 파랗지도 않은 하늘 아래에서 담이 검게만 보였고, 담을 따라 심은 회양목이 무릎께까지 와서 치맛단이 자꾸 걸렸다.소하가 옆에 쪼그려 앉아 있다가 다리가 저린지 자세를 바꿨다."부인. 저 솔직히 아까부터 궁금했는데요, 이게 우리가 왜 여기 있는 거냐면 어멈이 이레에 한 번이라고 했으니까 오늘이 이레째인 건 맞는데, 근데 이레라는 게 어멈이 세신 이레잖아요.어멈이 잘못 세셨으면 어떡해요.아니 어멈이 잘못 세실 분은 아닌데 그래도 사람이 스무 해를 세다 보면 한 번쯤은—""입 다물고 다리만 주물러."소하가 입을 다물고 다리를 주물렀다.주무르면서도 어깨가 한 번씩 들썩였는데, 추워서 그런 것인지 아까 하던 말이 아직 남아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뒤채 방에 불이 한 번 켜졌다가 꺼졌다.켜진 것이 잠깐이었고, 꺼지고 나서도 창호지 안쪽의 그림자가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서란은 일어나 있었다.일어나 있으면서 문을 열지 않았고, 열지 않는 채로 밖을 향해 앉은 사람의 그림자 각도였다.소하가 그것을 보고 무어라 하려는 것을 한경이 손을 들어 막았다.* * *사람이 온 것은 하늘이 잿빛으로 한 겹 밝아지고 나서였다.등을 들지 않았고 걸음에 소리가 없었으며, 담을 따라 오는 것이 아니라 담에서 반 자쯤 떨어져 걸었다.담 밑은 밤새 이슬이 앉아 발자국이 남는다.그것을 아는 사람의 걸음이었다.뒤채 문 앞에 이르자 그 사람이 허리를 굽혔다.굽히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굽힌 김에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 댓돌 오른쪽 귀퉁이에 놓았다.기름종이였고 흰 실로 두 번 감겨 있었다.놓고 나서 그가 손끝으로 댓돌 귀퉁이를 한 번 쓸었다.흙이 묻었을까 보아 쓴 손이 아니라, 놓은 것이 반듯한지 보느라 쓴 손이었다.스무 해를 같은 자리에 놓은 손은 그렇게 움직인다.* * *돌아서는 데서 그가 걸음을 멈췄다.담 그늘에서 한경이 나와 마당 가운데에 서 있었다.새벽빛이 아직 얕아 얼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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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화 받아 준 손

닭이 두 번째로 울고 나서야 총관이 다시 입을 열었는데, 이번에는 문장이 짧았다."…별당에서 받습니다."한경이 기름종이를 소매에 넣었다.넣는 동안 총관의 눈이 그 소매를 따라갔다가 저도 모르게 따라간 것을 알고 바닥으로 떨어졌다."작은아씨가 주세요?""…예.""언제부터.""…작년 가을부텁니다.그 전에는 안채에서 받았습니다."부엌 쪽에서 첫 물 긷는 소리가 났다.이 집이 깨는 소리였고, 총관이 그 소리에 고개를 반쯤 돌렸다가 도로 바로 했다."안에 뭐 든지는 알아요?""…모릅니다.""스무 해를 놓으면서.""소인은 놓으라 하시면 놓고, 놓지 말라 하시면 안 놓습니다.이 댁 살림을 그리 배웠습니다.배운 대로 하면 아무 일도 안 생기는 것이 이 집인데, 그러니까 소인이 여쭤 본 적이 없다는 것이지 알고도 모른 척했다는 것이—""이레 뒤에도 놓으세요."총관이 고개를 들었다.스물세 해 동안 이 집에서 그런 명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 *별당은 해가 들어야 문을 여는 집이었다.한경이 중문을 지나 별당 마당에 들어섰을 때 방 안에서 골패 부딪는 소리가 났다.밤새 판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으로, 댓돌에 신이 넷 놓여 있었고 그중 하나는 코가 젖어 있었다.문을 열자 등잔이 아직 켜져 있었다.켜 놓은 채로 아침이 든 방은 어디를 보아도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었고, 술 냄새와 기름 냄새와 사람 냄새가 한 겹씩 앉아 있었다.여자 셋이 한꺼번에 일어섰다.육설만 앉은 채로 패를 뒤집었다."…언니가 여긴 웬일이세요.""물어볼 게 있어서.""지금요?""응."연옥이 패를 모아 소매에 넣고 일어섰고, 나머지 둘이 그 뒤를 따라 나갔다.나가면서 아무도 인사를 하지 않았는데, 인사를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지금 이 방에서 나가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었다.* * *한경이 소매에서 기름종이를 꺼내 상 위에 놓았다.육설의 손이 패 위에서 멎었다.멎은 자리에서 손가락 하나가 패를 반쯤 세웠다가 도로 눕혔다."이거 어디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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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화 손바닥

분이어멈이 소반을 내려놓지 않고 문지방에 선 채로 먼저 말했다."오늘 것이 없는 것은 소인이 늦게 나와서가 아닙니다.원래 이 시각에 나옵니다.스무 해를 하루도 안 어겼습니다.소인은 묻지 않고 나르기만 했습니다.그러니까 소인은.""어멈.""…예, 부인.""내가 가져갔어요."어멈의 손에서 소반이 반 치 기울었다가 도로 섰는데, 도로 세우는 데 걸린 시간이 기우는 데 걸린 시간보다 길었다.마당 저쪽에서 총관이 그것을 보고 있다가 한경과 눈이 마주치자 허리를 굽혔고, 굽힌 채로 물러가면서 뒷걸음을 쳤다.이 집에서 스물세 해 동안 안주인에게 뒷걸음으로 물러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 *방에 들어와 문을 닫고서야 한경이 실을 풀었다.흰 실은 두 번 감겨 있었고 매듭이 오른쪽으로 뉘어 있었으니, 매듭을 그렇게 짓는 손은 왼손잡이거나 왼손으로 잡아 주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뜻이었다.실을 풀어 소매에 넣고 종이는 찢지 않고 폈다.안에 든 것은 손톱만 한 흰 덩이 다섯이었는데, 마르고 가벼웠으며 빛에 대자 가장자리가 얕게 비쳤다.하나를 집어 손끝으로 문질러 보니 미끄러웠다.기름처럼 겉으로 미끄러지는 것이 아니라 살 쪽으로 스며들면서 미끄러웠고, 문지른 자리에서 살결이 잠깐 반들거리다 도로 가라앉았다.한경이 그 손가락을 코에 대지 않았다.대신 창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가 우물가에서 손을 씻었는데, 비누를 쓰지 않고 찬물에만 오래 씻었으며 손톱 밑까지 두 번 문질렀다.들어와 남은 넷을 종이에 도로 싸면서 열여섯 해를 이 집 안주인이라 불린 사람의 살결이 왜 그렇게 고왔는지를 셈해 보았다.셈이 금방 끝났다.* * *안채에는 낮에도 발이 드리워 있었는데, 그것이 걷힌 지 오래였다.대부인은 아랫목에 누워 굳은 팔을 몸 옆에 붙인 채 천장을 보고 있다가 며느리가 들어오는 기척에 고개를 반만 돌렸다.돌아간 쪽은 굳지 않은 쪽이었다.한경이 이불을 걷지 않고 머리맡에 앉아, 방 안을 한 번 둘러보고 나서 물었다.경대 위에 백자 합이 놓여 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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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화 먼저 보던 아이

동트기 전 태후 처소 뜰에 물 뿌리는 소리가 났다.비질하던 아이가 물동이를 내려놓고 물러섰고, 그 자리를 지나 류 상궁이 섬돌 아래에 섰다.발 안쪽에서 염주 알이 옆으로 밀리는 소리가 두 번 났다."오늘은 왼쪽으로 들이지 말고.""…예.""안쪽 방을 열어 두어라.궤는 그대로 두고 덮개만 걷어.등은 켜 놓고 창은 닫아라.아침에 창을 열면 뜰에 있는 것이 다 보이는데, 보이는 것을 앞에 두고 사람이 딴생각을 하게 된다.""예. 마마."류 상궁이 물러나 뜰을 가로지르는데 비질하던 아이가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손에서 빗자루가 반쯤 내려와 있었다."쓸어라."아이가 놀라 비질을 시작했다.상궁은 그 소리를 등 뒤에 두고 걸었다.* * *해가 뜨기 전에 한경이 동문에 닿았는데, 밤새 언 흙이 아직 안 풀려서 발밑에서 버석거렸다.문지기가 옥패를 받아 명부의 숫자와 맞춰 보고 돌려주는 동안, 소하가 문 밖에서 발끝으로 문지방을 두어 번 건드렸다.여기서부터 못 들어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그랬다."부인. 저녁에 나오실 때 여기 서 있을게요.아까 오는 길에 보니까 저 아래 골목에 만두 찌는 데가 새로 생겼던데요, 근데 거기 서 있으면 문이 안 보이고 여기 서 있으면 만두를 못 사서, 소인이 그걸 아까부터 생각을 해 봤는데요.""사 먹고 여기 와 있어.""예!"소하가 대답을 너무 크게 해서 문지기가 돌아봤다.소하가 얼른 두 손으로 입을 막았는데, 막고 나서도 눈이 웃고 있었다.회랑이 길었고 앞서 걷는 류 상궁의 신이 오늘도 깨끗했다.한경이 입은 것은 옅은 자색 적삼에 남색 마면군이었는데, 깃이 낮고 소매 끝에 은실로 넝쿨을 놓아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창빛을 한 번씩 머금었다.넉 달 동안 어전에 들 때 입던 옷이었고, 새벽에 소하가 그것을 꺼내 놓자 한경이 다른 것으로 하라 했다가 도로 그것으로 했다.걸으면서 한경이 왼손을 소매 안에서 한 번 쥐었다 놓았다.갈림에서 상궁이 오른쪽으로 돌았다.한경의 걸음이 반 박자 늦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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