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안채에 등을 둘 켰는데, 하나는 서안 모서리에 놓고 하나는 소하가 들었다.소하가 장부 위쪽에 서서 팔이 아픈지 두 손을 번갈아 바꿔 가며 들었고, 바꿀 때마다 종이 위로 그림자가 한 번씩 건너갔다."아휴, 부인. 저 이거 왜 이렇게 무거워요.종이가 무거운 게 아니라 등이 무거운 건데요, 근데 등이 무거우면 종이도 무거워지는 것 같지 않으세요?아니 무슨 말이냐면요, 소인이 아까부터—""말은 해도 되는데 등은 좀 가만히 있어.""예. 근데 그건 좀 어려운데요."한경이 소리 내어 웃었다.웃는 바람에 어깨가 흔들렸고, 어깨가 흔들리자 그 위로 지나가던 등불 그림자도 종이 위에서 한 번 크게 건너뛰었다."부인. 부인 웃으시면 글씨 흔들려요.""등을 네가 들었잖아.""…아 맞다."장부는 겉장이 손때로 검고 속이 누랬는데, 아래쪽 모서리만 닳아 둥근 것이 한 손이 늘 같은 자리를 쥐었다는 뜻이라 한경이 그 모서리에 잠깐 엄지를 대 보았다가 뗐다.열두 해 치가 한 권에 들어 있었고 든 것과 나간 것이 줄을 바꿔 가며 적혔는데, 줄과 줄 사이가 자로 잰 듯 고르고 글씨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 것이었다.한경이 첫 장을 폈다가 도로 덮고 뒤에서부터 펼쳤다.* * *"참. 소하야, 너 저잣거리에서 콩 살 때 파는 사람이 뭐라고 해.""…서 되 반이요, 하죠.""딱 서 되라고 해?""어우, 그렇게는 잘 안 해요.되질하면 늘 어중간하게 남으니까요.""그렇지."한경이 장을 앞으로 넘겨 가며 다른 것은 다 흘리고 숫자만 보았는데, 그렇게 훑는 동안 소하의 등이 종이를 따라 조금씩 왼쪽으로 옮겨 갔다.숫자들이 하나같이 어중간했다.서 근 두 냥, 열한 근 닷 돈, 스물아홉 근 서 돈.재고 나서 적은 손이었다.그러다 한 줄에서 손이 멎었다.스무 근.한경이 그 줄에 손톱을 대고 뒤로 넘겼는데, 두 장 뒤에 서른 근이 있었고 그다음 장에 열 근이 있어서 손톱을 댄 채로 세 장을 한꺼번에 붙들게 되었다.셋 다 나간 쪽이었고, 셋 다 그해
Last Updated : 2026-08-3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