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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os capítulos de 통제 불능: Capítulo 111 - Capítulo 120

130 Capítulos

111화

준혁은 법정에 들어오자마자 나를 봤다.한 달 가까이 제대로 마주친 적이 없었다.그런데도 그 시선은 예전과 똑같았다. 내가 어디에 앉는지, 누구와 눈을 맞추는지, 도현이 근처에 있는지부터 찾았다.나는 나연 옆에 앉아 서류만 펼쳤다.준혁 쪽 변호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원고 역시 혼인 중 부정행위를 했습니다.”곧 사진이 제출됐다.호텔 로비.엘리베이터 앞.도현의 차에서 내리는 나.다음 날 호텔을 나오는 모습까지.준혁은 사진이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나를 쳐다봤다.자기가 이겼다는 얼굴이었다.“원고는 피고의 잘못만을 주장하고 있으나, 혼인관계를 파탄시킨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나연이 내 쪽을 봤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재판장이 물었다.“원고 측, 사진 속 인물이 원고가 맞습니까?”내가 대답했다.“맞습니다.”준혁이 고개를 돌렸다.재판장이 다시 물었다.“사진에 함께 있는 남성과 교제한 사실도 인정합니까?”“인정합니다.”법정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준혁이 피식 웃었다.나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성적인 관계가 있었던 사실도 부인하지 않습니다.”준혁이 바로 몸을 앞으로 숙였다.“보셨죠? 저 여자도 똑같습니다.”재판장이 준혁 쪽을 바라봤다.“피고인은 발언 순서를 지켜주세요.”준혁은 입을 다물었지만 표정까지 감추지는 못했다.그가 원했던 건 이것이었다.내가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순간.그래야 자기에게 쌓인 모든 기록도 반으로 줄어든다고 믿는 얼굴이었다.준혁 측 변호사가 말을 이었다.“피고는 혼인관계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오히려 원고가 다른 남성과 관계를 맺으면서 적극적으로 혼인을 파탄으로 몰고 갔습니다.”나연이 서류철 하나를 들었다.“시간 순서를 보겠습니다.”첫 번째 자료가 화면에 띄워졌다.십 년 연애 당시 준혁이 다른 여자와 주고받은 메시지.결혼 전 호텔 결제 내역.결혼식 직전 문세라와 함께 있었던 기록까지.준혁의 표정이 굳었다.나연이 말했다.“피고의 부정행위는 원고가 서도현 씨를 만나기 훨씬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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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화

“피고는 열 명 이상과 관계한 사실을 인정합니까?”준혁은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그 침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연이 다음 서류철을 꺼냈다.“관련자들의 서면진술과 객관 자료를 제출하겠습니다.”준혁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관련자 누구요?”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첫 번째 이름이 화면에 떴다.윤채린.준혁이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뗐다.“쟤가 뭘 안다고.”채린의 진술은 짧았다.준혁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만났고, 관계를 오래 유지했으며, 서윤을 조롱하기 위한 사진과 메시지를 보낸 것도 사실이라고 적혀 있었다.내 잠옷을 입었던 사진.내 몸을 두고 웃었던 대화.준혁이 직접 보낸 메시지도 붙었다.쟤는 이제 여자 같지도 않아.준혁이 변호사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저거 다 짜깁기라고 해요.”재판장이 말했다.“피고는 변호인과 상의 후 발언하세요.”다음은 오유진이었다.클리닉 진료 관련 기록과 준혁에게 보냈던 메시지가 제출됐다.이번에도 검사 안 하면 진짜 위험해.준혁의 얼굴이 굳었다.유진은 자신이 알고 있던 범위와 준혁에게 검사 필요성을 전달한 시점을 날짜별로 적어두었다.나는 그 날짜를 봤다.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준혁과 같은 집에서 살던 때였다.준혁이 중얼거렸다.“저 여자도 나한테 받은 게 얼마나 많은데.”나연이 바로 받아쳤다.“그래서 금전 내역도 함께 제출했습니다.”준혁이 입을 다물었다.세 번째는 최라희.호텔 이용 기록이었다.객실.법인카드.체크인 시간.준혁과 여자들의 동선까지.라희는 자신이 일부 예약과 비용 처리를 도왔다고 인정했고, 더 이상 준혁을 보호하기 위해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지 않겠다고 적었다.“배신한 년들.”이번에는 분명히 들렸다.재판장이 준혁을 바라봤다.“한 번 더 부적절한 발언을 하시면 제지하겠습니다.”준혁은 턱을 굳힌 채 앞만 봤다.네 번째 이름이 떴다.배지아.지아는 나를 조롱했던 사실부터 인정했다.내 몸무게를 소재로 준혁과 대화했고, 체중계와 식단표를 건넨 것도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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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화

법정 화면에 미선의 얼굴이 뜨자 준혁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영상은 오래전 집 거실에서 시작됐다.미선이 내 앞에 서 있었고, 나는 소파 옆에 붙어 있었다. 하은은 뒤쪽에서 울고 있었다.“이걸 꼭 틀어야 합니까?”준혁 측 변호사가 이의를 제기했지만 나연은 재생을 멈추지 않았다.“원고가 피고 가족으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자료입니다.”영상 속 미선이 내 가방을 바닥에 집어던졌다.“어디서 대들어? 우리 집 돈으로 처먹고 사는 주제에.”나는 그날을 기억했다.말보다 먼저 손이 날아왔고, 준혁은 옆에 있으면서도 말리지 않았다.영상에서 내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뺨을 맞은 순간이었다.미선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내 어깨를 밀고 다시 손을 들었다.그 뒤에 있던 하은이 울면서 내 옷을 잡았다.“고모, 엄마 때리지 마.”법정에서 나는 화면을 보지 않고 책상 가장자리를 봤다.몇 년 전의 일인데 아이 목소리는 그대로 들렸다.준혁이 변호사에게 뭐라고 속삭였고, 곧 상대 측에서 말했다.“가족 사이에 있었던 일시적인 다툼입니다. 영상 일부만으로 장기간 학대라고 규정하는 것은 과도합니다.”나연이 다른 파일을 열었다.“그러면 다른 날짜도 보겠습니다.”준혁의 얼굴이 굳었다.두 번째 영상.장소도 달랐고 날짜도 달랐다.이번에는 미선이 내 팔을 잡아끌고 있었다.“너 지금 어디 가?”“집에요.”“내가 말하는데 가?”“놔주세요.”화면 속 내가 팔을 빼려 하자 미선이 다시 잡았다.준혁은 뒤에서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다.미선이 소리쳤다.“네가 살쪄서 준혁이가 밖으로 도는 걸 왜 우리 집 탓을 해?”나연이 영상을 멈췄다.“이것도 일시적인 가족 간 다툼입니까?”준혁 측에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다음 영상이 올라왔다.나는 그 날짜를 보는 순간 손이 멈췄다.임신 중이었다.배가 아직 크지는 않았지만 병원 기록으로 임신 사실이 확인된 시기였다.미선은 현관 앞을 막고 있었다.“어딜 가.”“병원 예약 있어요.”“사람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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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화

하은의 상담 기록이 내려간 뒤에도 법정 안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준혁은 고개를 숙였고, 옥자는 방청석 끝에서 가방 손잡이만 만지작거렸다.나연이 다음 자료를 꺼냈다.“원고가 피고의 가족에게서 받은 대우와 관련해 추가 자료를 제출하겠습니다.”옥자가 바로 몸을 일으켰다.“또 뭘 내려고 그래.”재판장이 방청석을 향해 말했다.“발언하지 마세요.”옥자는 다시 앉았지만 시선은 내 쪽을 떠나지 않았다.화면에 녹음파일 날짜가 떴다.나는 날짜만 보고도 어디였는지 알았다.시댁 식탁.하은을 데리고 갔던 날이었다.재생 버튼이 눌렸다.잠시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 뒤 옥자의 목소리가 나왔다.“야… 저 코끼리 다리 좀 봐. 그러니 네 남편이 밖으로 나돌지. 너 거울 안 보냐?”법정 한쪽에서 서류 넘기던 손이 멈췄다.나는 화면만 봤다.옥자가 작게 욕을 뱉었다.“저걸 왜 가지고 있어.”나연이 두 번째 녹음을 틀었다.이번에는 미선의 웃음소리까지 선명했다.“여자가 애 낳았다고 저렇게 퍼져 있으면 남자가 집에 붙어 있겠니?”뒤이어 옥자의 말이 나왔다.“남편 바람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여자가 책임져야지.”준혁이 나를 봤다.나는 그 시선을 받지 않았다.나연이 말했다.“원고의 출산 후 체중 변화와 건강 문제를 피고의 반복적인 외도의 원인으로 돌린 발언들입니다.”준혁 측 변호사가 일어났다.“가족 간 언쟁 중 과장된 표현입니다.”나연이 바로 다음 파일을 열었다.“그렇다면 한두 번의 언쟁인지 확인하겠습니다.”다른 날짜.다른 장소.이번에는 내 몸무게를 묻는 옥자의 목소리였다.“몇 킬로야, 지금.”내가 대답하지 않자 다시 들렸다.“그 꼴로 남편 잡으려고 하지 마. 여자가 자기 몸도 관리 못 하면서 무슨 사랑을 받아.”또 다른 녹음.“준혁이 밖에서 누구 좀 만난다고 네가 죽는 것도 아니잖아.”옥자의 얼굴이 점점 굳었다.나연은 녹음을 멈췄다.“원고가 제출한 자료는 수년에 걸쳐 있습니다.”그리고 문자 캡처가 화면에 떴다.옥자가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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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화

“안 걸리게만 하라니까.”옥자의 목소리가 끊긴 뒤에도 준혁은 화면을 보지 못했다.재판장은 다음 자료를 확인했고, 나연은 의료 자문 의견서를 꺼냈다.“원고 측에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준혁의 변호사가 고개를 들었다.“이 사건에서 HIV 감염 사실 자체를 피고의 잘못으로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준혁이 처음으로 나연을 봤다.나연은 말을 이어갔다.“감염은 질환입니다. 도덕성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없고, 감염 사실 하나만으로 배우자를 비난하는 것도 이 사건의 취지가 아닙니다.”의료 자문 내용이 화면에 떴다.치료를 지속적으로 받고 의료진의 관리에 따를 경우 건강 상태를 관리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준혁이 바로 말했다.“그러니까요.”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저 치료받고 있습니다.”준혁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병원도 계속 가고 있고 약도 먹고 있어요. 저 죽을병 걸린 사람 아닙니다. 서윤도 음성 나왔고요.”나연이 물었다.“원고의 추적검사가 아직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까?”준혁의 입이 잠깐 멈췄다.“현재 음성이잖아요.”“그 질문이 아닙니다.”“결과적으로 감염 안 됐으면 된 거 아닙니까?”나는 준혁을 바라봤다.몇 번을 들어도 같은 말이었다.결과가 괜찮으면 과정은 없어지는 사람.나연은 의료 기록 하나를 화면에 띄웠다.확진 결과가 확인된 날짜.감염내과 예약 날짜.그리고 취소 기록.“피고는 자신의 상태를 확인한 뒤 진료 예약을 취소했습니다.”준혁 측 변호사가 말했다.“피고는 현재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현재 치료 여부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닙니다.”나연은 다음 날짜를 띄웠다.“이 기간 동안 배우자에게 감염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하려는 겁니다.”준혁이 말했다.“무서워서 그랬습니다.”“무엇이요?”“가정 깨질까 봐.”“그래서 배우자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원고가 그 사실을 알았다면 성관계 여부, 검사 여부, 의료상 상담 여부를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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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원고에게 양육을 맡기는 건 위험합니다.”준혁의 변호사가 첫 문장부터 그렇게 말했다.나는 고개를 들었다.화면에는 내 과거 진료기록 일부가 떠 있었다.산후우울증.섭식장애 치료.그 아래에는 체중 변화와 상담 기록이 이어졌다.준혁이 내 쪽을 봤다.이번에는 자신이 준비한 카드라는 걸 숨기지 않았다.“원고는 출산 이후 오랫동안 정서적으로 불안정했고, 음식 섭취 문제로 치료까지 받았습니다. 당시 자녀를 안정적으로 돌볼 수 있었는지 검토가 필요합니다.”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나연이 먼저 물었다.“피고 측은 원고가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양육 부적격 사유로 주장하는 겁니까?”준혁의 변호사가 말을 고쳤다.“질환 자체가 아니라 당시 상태와 양육환경을 말씀드리는 겁니다.”준혁이 끼어들었다.“맨날 울었어요.”재판장이 그를 바라봤지만 준혁은 계속 말했다.“애 밥 챙기는 것도 힘들어했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한참 안 나오고. 하은이 앞에서도 제대로 정신 못 차릴 때 많았습니다.”나는 준혁을 봤다.“그래서 당신이 하은이 밥 챙겼어?”준혁의 말이 멈췄다.“병원 데려간 건?”대답이 없었다.“유치원 등원은?”“지금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당신이 내가 아이를 못 돌봤다고 하니까 묻는 거야.”재판장이 우리를 제지했다.나연이 서류를 제출했다.“원고의 치료기록 전체 흐름을 함께 보겠습니다.”정신건강의학과 상담 내역.영양 상담.정기 검진.치료 중단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도움을 받은 기록이었다.이어 하은의 소아과 진료기록과 예방접종 일정, 유치원 출결, 보호자 연락 내역이 나왔다.대부분 보호자 이름은 한서윤이었다.준혁의 이름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나연이 말했다.“원고는 건강 문제를 숨기지 않고 치료받았고, 동시에 자녀의 일상적인 양육을 지속했습니다.”준혁이 바로 말했다.“그건 엄마니까 당연히 한 거죠.”나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나올 뻔했다.나연은 화면을 넘겼다.“그러면 피고의 양육 참여 기록도 보겠습니다.”유치원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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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화

“저 여자 회사 지분도 재산분할 대상 아닙니까?”준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화면에는 리본베이비의 기업가치 자료가 떠 있었다.준혁 측이 제출한 계산표였다.회사 지분.부동산.예금.내 명의 투자자산까지 전부 더해져 있었다.“혼인 중에 만든 회사잖아요. 결혼해 있는 동안 저만큼 키웠으면 나도 권리가 있어야죠.”나연이 서류를 넘겼다.“혼인 중 형성됐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재산이 동일한 방식으로 나뉘는 것은 아닙니다.”준혁이 비웃었다.“내가 집에서 애 봐준 동안 사업한 거잖아.”내가 고개를 들었다.“당신이?”“뭐.”“하은이 몇 번 봤는데.”“남편이 집 지켜준 것도 기여야.”나연이 내 앞을 손으로 막았다.“자료로 말씀드리겠습니다.”첫 번째는 회사 설립 당시 자금 내역이었다.내 퇴직금.결혼 전부터 모아두었던 예금 일부.사업 초기에 받은 대출.그리고 내가 직접 작성한 초기 사업계획서까지.준혁의 돈이 들어간 내역은 없었다.“피고가 회사 설립자금을 제공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습니다.”준혁이 바로 말했다.“내가 생활비 줬잖아요.”나연이 다음 자료를 띄웠다.“생활비 지급 사실은 있습니다. 다만 같은 기간 원고가 가사와 자녀 양육을 담당했고, 회사는 별도의 자금과 경영으로 성장했습니다.”리본베이비의 초창기 매출부터 투자유치까지 날짜별로 이어졌다.직원 채용.제품 개발.창고 계약.온라인 판매.준혁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준혁 측 변호사가 물었다.“혼인생활 유지 자체가 사업 활동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주장은 가능합니다.”“그 부분은 법원이 판단할 사항입니다.”나연은 인정할 건 인정했다.나는 그게 더 편했다.준혁의 외도가 많다고 해서 재산까지 전부 빼앗아야 한다는 식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잘못은 잘못대로.돈은 돈대로 계산하면 됐다.준혁이 나를 봤다.“그래서 너는 회사 하나도 안 내놓겠다고?”“내가 정하는 거 아니야.”“너 이미 다 가져갔잖아.”“뭘.”“집 나갔지. 애 데려갔지. 회사도 네 거라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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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화

준혁의 사원증이 정문에서 먹히지 않았다.삑.한 번 더 찍었다.같은 소리가 났다.“이거 왜 안 돼?”보안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전무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기다리긴 뭘 기다려. 문 열어.”“인사팀 지시가 내려왔습니다.”준혁의 얼굴이 굳었다.“무슨 지시.”직원은 대답하지 않고 내선전화를 걸었다.잠시 뒤 인사팀장과 법무팀 직원 둘이 로비로 내려왔다.인사팀장이 서류봉투부터 내밀었다.“강준혁 전무님, 오늘부로 직무가 정지됐습니다.”“뭐?”“이사회 의결 내용입니다.”준혁은 봉투를 받지 않았다.“아버지 어디 있어.”“회장님 결정도 포함돼 있습니다.”그제야 준혁이 봉투를 낚아챘다.첫 장에 적힌 문장을 읽었다.임원 해임 통지.“장난해?”종이를 넘겼다.내부정보 외부 제공.업무 목적과 무관한 법인카드 사용.특정 거래처에 대한 부당한 압박.회사 명의와 지위를 이용한 사적 편의 제공.목록이 한 장을 넘겼다.“이게 다 뭔 개소리야.”법무팀 직원이 말했다.“회사에서 확인한 자료입니다.”“내부정보를 내가 누구한테 줬는데.”다음 서류가 나왔다.문세라의 회사에 전달된 자료.강림 계열 입점 일정.납품 단가.경쟁업체 조건.공개 전 사업계획 일부까지 포함돼 있었다.준혁의 손이 멈췄다.“세라가 냈어?”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문세라가 이걸 회사에 넘겼냐고!”법무팀 직원은 다른 페이지를 가리켰다.“출처와 별개로 자료의 진위부터 확인했습니다.”이번에는 법인카드 내역이었다.호텔.주류.선물.차량.여자들에게 제공된 비용까지 날짜별로 정리돼 있었다.준혁이 종이를 내려쳤다.“임원이 거래처 사람 만나면서 카드 좀 쓴 게 횡령이야?”“업무 관련성을 소명해주시면 됩니다.”“다 업무였어.”“여성용 가운 다섯 벌도요?”준혁의 입이 닫혔다.인사팀장은 다음 장을 넘겼다.“거래처 대표에게 계약 중단을 언급하며 개인적인 요구를 한 녹취도 접수됐습니다.”“내가 뭘 요구해.”녹취 일부가 인쇄돼 있었다.서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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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화

퇴직 계좌의 압류 예정 표시가 사라지기도 전에 등기가 도착했다.한 통이 아니었다.준혁은 현관 바닥에 놓인 봉투들을 한참 내려다봤다.문세라.윤채린.오유진.최라희.배지아.이름만 달랐고 봉투 윗부분에는 비슷한 문구가 찍혀 있었다.손해배상 청구 및 합의 제안.“미친년들이 단체로 짰나.”첫 번째 봉투를 뜯었다.세라 측은 회사 내부자료를 제공받는 과정에서 발생한 법적 분쟁과 평판 손실에 대해 준혁의 책임을 주장했다.두 번째는 채린이었다.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협박성 연락과 게시물 삭제를 요구했던 메시지들이 붙어 있었다.유진 쪽에는 투자와 병원 관련 약속을 둘러싼 자료가 들어 있었고, 라희는 호텔 기록과 법인카드 사용 문제에 자신까지 끌어들인 책임을 물었다.지아까지 읽고 나자 준혁은 다섯 장을 바닥에 던졌다.“받을 때는 다 받아 처먹어놓고.”그는 곧바로 변호사에게 전화했다.“나도 청구하면 되죠?”“무엇을요?”“내가 쟤들한테 쓴 돈.”잠깐 침묵이 흘렀다.“선물한 거요?”“선물만 있어요? 가방, 시계, 호텔비, 여행, 밥값. 내가 쓴 게 얼만데.”“증여로 볼 수 있는 건 반환 청구가 쉽지 않습니다.”준혁의 눈썹이 올라갔다.“헤어졌는데도?”“교제 중 자발적으로 준 선물이라면 관계가 끝났다는 이유만으로 돌려달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그럼 사기라고 하면 되잖아요.”“어떤 사기요?”“나 좋아하는 척했잖아.”변호사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강 전무님.”“전무 아니라고 하지 마요.”“그 부분부터 감정적으로 대응하시면 소송만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준혁은 전화를 끊었다.곧장 세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내가 사준 거 다 돌려줘.차단이었다.다른 번호로 다시 보냈다.가방, 시계, 차량 비용까지 전부 정산할 거야.답장은 한 시간 뒤 변호사를 통해 왔다.향후 모든 연락은 대리인을 통하시기 바랍니다.준혁이 휴대전화를 소파에 던졌다.그날 오후에는 전 비서에게서 내용증명이 도착했다.개인적인 심부름과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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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

준혁은 판결 선고 날에도 내 옆자리를 봤다.비어 있었다.나연은 내 오른쪽에 앉았고, 준혁은 반대편에서 변호사와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며칠 사이 얼굴이 더 수척해졌다. 회사 직함도 사라졌고, 주식 대부분은 담보에 묶였으며, 다섯 여자와 거래처에서 날아온 청구까지 겹쳐 있었다.그래도 나를 보는 눈은 달라지지 않았다.마치 오늘 판결 하나만 뒤집히면 다시 예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 같았다.재판장이 들어왔다.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앉았다.나는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준혁 측은 마지막까지 내 외도를 강조했다.도현과 함께 호텔에 들어간 사진.혼인 중 관계를 인정했던 진술.태아의 친부가 당시 확정되지 않았던 사실까지 다시 언급됐다.“원고 역시 혼인관계 파탄에 책임이 있습니다.”준혁의 변호사가 말했다.나는 부인하지 않았다.이미 여러 번 인정한 일이었다.내가 도현을 만났고, 관계를 맺었으며,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그러나 판결에서 검토된 시간은 그 사진 몇 장보다 길었다.십 년 연애 시절부터 이어진 준혁의 외도.결혼식 전날의 호텔 기록.결혼 뒤에도 반복된 여자들.요일별 일정표.집으로 다섯 명을 불러들였던 날.시가의 폭언과 폭행.생활비를 줄이고 하은을 빼앗겠다고 했던 메시지.미선이 나를 밀치는 영상.하은의 상담 기록.그리고 HIV 확진 사실을 알고도 숨겼던 기간까지.하나씩 낭독될 때마다 준혁은 자세를 바꿨다.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저도 잘못한 거 인정합니다.”재판장이 그를 봤다.“그런데 저 여자도 잘못했습니다.”준혁은 나를 가리켰다.“왜 저만 가해자처럼 되는 겁니까?”나는 고개를 들었다.준혁은 계속 말했다.“저 사람도 다른 남자 만났고 임신까지 했습니다. 나만 잘못해서 깨진 결혼 아니잖아요.”재판장은 그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그리고 기록을 다시 내려다봤다.내 외도 책임 역시 판단에서 제외되지 않았다.나연이 처음부터 말한 그대로였다.내가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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