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장 큰 후회는 너였다의 모든 챕터: 챕터 61 - 챕터 70

95 챕터

제61화.

찰리가 무대 중앙으로 걸어 올라서자 우렁찬 박수 소리가 연회장 곳곳을 가득 메웠다. 반짝이는 크리스털 조명 아래에서 그는 30억 상당의 고대 비취 목걸이가 들어 있는 검은 벨벳 상자를 건네받았다.VIP석에 있던 엘레나는 조금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굳게 고정된 채 찰리의 작은 몸짓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마스크를 쓴 남자는 마이크 앞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몸을 살짝 숙여 초대받은 귀빈들에게 짧고 품위 있게 예를 표한 뒤 무대에서 내려갔다.‘베인 씨, 아무래도 나와 시비를 붙기 시작한 모양이군.’그 모습을 본 윌리엄은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찰리는 지체 없이 넓은 보폭으로 홀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 뒤로 스테바니의 뒤쪽에 앉아 있던 레이도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따라붙었다.마스크를 쓴 남자의 뒷모습이 천천히 양쪽으로 열린 문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본 엘레나는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영혼을 태우듯 타오르는 호기심이 그녀의 모든 이성과 침착함을 압도했다. 걷잡을 수 없이 강렬한 본능에 이끌린 엘레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VIP 복도를 따라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메인 홀을 빠져나오자 엘레나의 눈에 그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조금 한산한 복도를 따라 자신의 비서와 나란히 걷고 있었다.엘레나의 발걸음이 순간 멈췄다. 그녀는 그 자리에 굳어 선 채 눈앞에 있는 남자의 넓은 등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 체격, 꼿꼿하면서도 여유로운 걸음걸이…… 너무나도 찰리 베인과 똑같았다. 그동안 그녀의 생각과 꿈을 끊임없이 괴롭혀 온 전남편과.더 이상 망설이지 않은 엘레나는 몸을 곧게 세우고, 감정을 억누르느라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베인 씨, 잠시만요!"그 순간, 찰리와 레이의 발걸음이 동시에 멈췄다.찰리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심장이 터질 듯 빠르게 뛰며 가슴을 세차게 두드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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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한산한 복도를 빠져나오자 찰리는 곧바로 걸음을 멈췄다. 엘레나와 마주한 탓에 가슴을 짓누르던 답답함이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고, 애써 꾹꾹 눌러 담고 있던 감정까지 한꺼번에 치솟고 있었다."레이, 지금 당장 택시 잡아."찰리는 목덜미를 쓸어내리며 무거운 목소리로 명령했다.레이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보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레이가 겨우 두 걸음 떨어졌을 때, 찰리의 재킷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진동했다. 화면에는 스테바니의 이름이 떠 있었다. 찰리는 짧게 숨을 내쉰 뒤 통화 버튼을 밀었다."여보세요, 베인 씨? 어디에 계세요?"전화기 너머에서 스테바니가 물었다. 찰리가 경매장으로 돌아오지 않자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스테바니 아가씨,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호텔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갑자기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요."찰리는 침착하게 변명하며 프로페셔널한 가면을 유지했다."아, 그러세요? 의사에게 진찰받아 보시는 게 어때요? 마침 제가 아주 믿을 만한 개인 주치의가 있어요."스테바니가 적극적으로 제안했다."괜찮습니다, 스테바니 아가씨. 저는 그냥……."찰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겼다.찰리는 미간을 찌푸린 채 갑자기 꺼진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말이지, 채 2분도 지나지 않아 샴페인 컬러 드레스를 입은 스테바니가 건물의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서둘러 찰리에게 다가왔다.그와 동시에 레이가 불러 놓은 노란 택시 한 대가 도로 가장자리에 멈춰 섰다. 하지만 스테바니가 더 빨랐다. 그녀는 곧바로 찰리의 앞을 가로막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되어 있던 자신의 고급 승용차의 문을 열었다."어서 타세요, 베인 씨. 반박하지 마세요."스테바니가 단호하면서도 달콤한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그녀의 태도는 찰리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거절하기조차 난처하게 만들 만큼 강압적이었다.방금 택시 문을 열어주려던 레이는 갑자기 그 자리에 굳어 당황했다. 스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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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Aethel Corp 건물 최상층은 차가운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호화로운 올화이트 사무실 안에서 엘레나 빅토리아는 집무실 책상 뒤에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노트북 키보드 위를 빠르게 오갔고, 화면에서 새어 나온 빛이 그녀의 단호한 얼굴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똑똑.문을 두 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리아가 안으로 들어와 비즈니스 퀸의 책상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엘레나는 노트북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아리아, 오늘 저녁 식당 예약은 해뒀나?""네, 마담. 더 그랜드 호라이즌의 VIP 예약 구역에 있는 프라이빗룸으로 예약했습니다."아리아가 재빠르게 대답했다."레이 비서에게 초대 메시지는 직접 전달했나?"엘레나가 다시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무언가를 떠보는 듯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네, 마담. 레이 비서가 베인 씨의 참석 여부를 확인해서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엘레나의 키보드 위에서 움직이던 손가락이 순간 멈췄다. 방 안은 몇 초 동안 침묵에 잠겼다. 이내 엘레나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음모와 감춰진 증오가 가득한 비웃음이었다."두고 보자고……."엘레나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는 낮았지만 차갑게 파고들었다."그 빌어먹을 남자가 오늘 밤 내 앞에 감히 얼굴을 드러내는지."아리아는 등 뒤에서 손가락을 꽉 움켜쥐며 목소리의 떨림을 감추고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다."미리 죄송하지만, 마담…… 직접 만나기 전부터 너무 앞서 추측하는 건 좋지 않지 않을까요? 제 말은…… 알테어 로지스틱스의 소유자가 정말로 마담의 전남편인 찰리 베인 씨라고 확신하시는 건가요?"엘레나는 거칠게 한 번 움직여 노트북 화면을 꺼버렸다. 그리고 호화로운 의자에 등을 기대며 아리아를 바라보았다. 가늘어진 눈매에는 위협적인 기색이 가득했다."나에게 하루면 충분하고도 남아, 아리아."엘레나가 날카롭게 내뱉었다."내가 어젯밤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내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찰리의 무덤을 파헤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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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엘레나는 자신의 방에 놓인 커다란 화장대 거울 앞에 꼿꼿이 서 있었다. 짙은 검은색 이브닝드레스가 그녀의 몸매를 완벽하게 감싸며 우아하면서도 치명적인 차가운 매력을 발산했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짙은 붉은색 립 메이크업을 매만진 그녀는 한 치의 타협도 없는 표정을 더욱 선명하게 다듬었다.“그동안 찰리가 죽었다고 믿었던 내가 얼마나 바보였던 걸까…….”엘레나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얇지만 섬뜩할 만큼 계산적인 미소가 새겨졌다.“새로 생긴 그 물류 회사 뒤에 숨어서 영원히 모습을 감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찰리? 오늘 밤이 지나고 나면 누가 진정한 지배자인지 두고 보자.”그녀의 가슴속에서 한때 꺼졌던 증오의 불길이 다시 거세게 타올랐다. 엘레나는 찰리와 함께했던 차갑고 공허한 결혼 생활 속에서 3년 동안 고통받았던 기억을 결코 잊지 못했다. 만약 알테어 로지스틱스의 소유자가 정말 자신의 전남편이라면, 엘레나는 오늘 밤 당장 그들과의 거대한 협력 계약을 파기하는 데 조금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천문학적인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엘레나는 몸을 돌려 우아하게 방을 나선 뒤, 거실에서 충실하게 기다리고 있던 아리아를 만났다.“아리아, 지금 출발해.”엘레나가 단호하게 명령했다.“알겠습니다, 마담.”더 그랜드 호라이즌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 특별히 예약해 둔 호화로운 분위기의 VIP룸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아직 베인 씨나 그의 비서가 나타난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엘레나는 상석에 앉아 등을 기대고 유리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아리아, 레이 비서에게 다시 연락해. 베인 씨가 정말 오는 건지 확실하게 확인해.”아리아는 몇 걸음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휴대전화를 귀에 가져갔다. 짧은 통화를 마친 그녀가 다시 엘레나의 곁으로 다가왔다.“레이 비서가 베인 씨께서 지금 이 레스토랑으로 오고 계신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마담.”엘레나의 가슴이 조용히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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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더 그랜드 호라이즌 VIP 예약석의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었지만, 아리아가 창백한 얼굴로 다가오는 순간 식탁 주변의 분위기는 얼어붙은 듯 싸늘해졌다.“마담…….”아리아가 낮게 불렀다. 긴장감을 억누르느라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레이 비서가 방금 다시 연락해 왔습니다. 베인 씨께서 오늘 밤 약속을 취소하셨습니다.”그때까지 유리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고 있던 엘레나의 손가락이 순간 멈췄다. 그녀의 눈이 분노의 빛을 번뜩이며 가늘게 좁혀졌다.“취소? 나를 여기서 기다리게 만들어 놓고?!”“알테어 로지스틱스 본사에 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마담.”엘레나의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아리아가 재빨리 말을 끊었다.“한 시간 전, 취리히에 있는 본사의 주요 운영 구역 전체가 불에 탔다고 합니다.”쿵.엘레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급스러운 검은색 이브닝드레스 자락이 우아하게 흘러내렸지만, 그녀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화재?! 그들의 주요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에이텔 코퍼레이션의 확장 사업 물품들은 어떻게 됐지?!”“현지 측에서 아직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마담. 상황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아리아가 대답했다.엘레나의 가슴이 거칠게 요동쳤다. 사업 손실에 대한 두려움과 점점 커지는 의심이 뒤엉켰다. 그녀는 베인 씨가 이번 사고를 핑계로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에게서 빠져나가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만약 그 남자가 자신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이번 화재를 이용한 것이라면,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판단이었다.“당장 전용기를 준비해!”엘레나가 타협의 여지조차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지금 당장 취리히로 간다!”“알겠습니다, 마담!”자신의 전용기를 타고 두 시간 동안 이동하는 시간은 엘레나에게 영원처럼 느껴졌다. 비행기의 바퀴가 활주로에 닿고, 픽업 차량이 그녀를 취리히의 산업 지구로 데려갔을 때는 이미 도시에 밤이 깊게 내려앉아 있었다.알테어 로지스틱스 건물 앞에는 여전히 많은 시민과 소방관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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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희미한 비상등과 코를 찌르는 그을음 냄새 속에서 알테어 로지스틱스 앞마당의 공기는 얼어붙은 듯 싸늘했다.아리아는 두 손을 꽉 맞잡은 채 억지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마담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베인 씨가 이 나무배를 쓰레기통에서 가져갔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럴 리가 있습니까? 베인 씨 정도 되는 분이…… 사모님의 집 앞에서 버려진 물건을 주워 갔다고요?”그 대답은 순전히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아리아는 그저 안전한 길을 택하고 싶었다. 그녀는 에이텔 코퍼레이션에서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자신의 상사를 배신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과거의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 엘레나의 표정이 산산이 무너지는 모습을 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뿐이었다.“내가 말하는 건 그게 아니야!”엘레나가 재빨리 말을 끊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 높아져 있었다.엘레나는 두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손마디가 새하얗게 질릴 정도였다.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분노를 억누르는 동안 목에 가느다란 핏줄이 도드라졌다. 나무배가 들어 있는 플라스틱 상자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엘레나는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건물에서 멀어졌다. 더 이상 그곳에 머물며 소방관들과 남은 물품을 수습하느라 분주한 직원들의 일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찰리 베인…… 너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엘레나는 날카롭게 이를 갈며 공항으로 돌아가기 위한 픽업 차량을 향해 걸어갔다. 정말이지, 그녀는 자신의 이성을 뒤흔들어 놓은 이 미친 수수께끼에 이제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아리아는 잠시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다가, 가슴 깊이 내려앉은 무거운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사업의 여왕을 뒤따랐다.아리아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두운 비밀 하나가 양심을 태우고 있었다.사실 레오의 다섯 번째 생일 파티가 열리기 전, 아리아는 레이와 몰래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비밀스러운 만남은 에이텔 코퍼레이션과의 협력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찰리의 지시를 받은 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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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엘레나와의 통화가 끊기는 소리가 차가운 밤공기 속에 여전히 딱딱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찰리는 알테어 로지스틱스 건물 앞마당에 굳은 듯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더 이상 시커멓게 타버린 건물 잔해를 향하지 않았다. 대신 무사히 건져낸 레오의 나무 모형 배가 들어 있는 투명한 아크릴 상자에 머물러 있었다.찰리는 아무 말 없이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두 손으로 나무 모형 배가 든 상자를 들어 올려 품에 꼭 끌어안은 뒤, 주차되어 있는 검은색 세단으로 향했다.레이가 뒤에서 빠르게 따라왔다. 두 사람이 차 안에 올라탄 순간, 레이는 몸을 돌려 뒷좌석을 향했다.“보스… 이제 어떤 조치를 취하실 겁니까?” 레이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생각 중이야.”찰리의 대답은 짧았다. 목소리는 무척이나 무미건조했다.그 후 찰리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건장한 체격에 마스크를 쓴 남자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희미하게 빛나는 취리히의 가로등 행렬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표정에는 극심한 혼란과 무거운 심적 부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숨 막힐 듯한 침묵이 이동하는 내내 차 안을 가득 메웠다.약 30분이 지나자 검은색 세단은 취리히에 있는 찰리의 개인 저택에 도착했다.찰리는 집 안으로 들어가 거실로 향한 뒤, 나무 모형 배가 들어 있는 아크릴 상자를 유리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남자는 옆에 놓인 티슈 상자를 집어 몇 장을 뽑은 다음, 아크릴 표면에 붙어 있는 그을음과 먼지 자국을 매우 조심스럽게 닦기 시작했다.한편 레이는 몸을 씻기 위해 손님방으로 향했다. 지금처럼 사업 상황이 긴급하고 위태로운 때에는 레이가 보스의 집에서 묵는 일이 꽤 잦았다.고요한 거실에서 찰리의 손가락이 유리 표면 위에서 잠시 멈췄다. 그는 그 안에 들어 있는 나무 모형 배의 세세한 부분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레오… 네 엄마는 화가 나면 꽤 무서운 사람이구나.”찰리는 마치 눈앞에 어린 아들이 있는 것처럼 모형 배를 향해 낮게 속삭였다.조금 전 전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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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에이텔 코프(Aethel Corp) 로비의 대리석 바닥에 울려 퍼지는 찰리의 구두 소리는 마치 사형 집행을 향해 째깍거리는 시계 바늘 소리 같았다. 단정한 검은색 수트와 당당한 체구 뒤로, 찰리의 심장은 폭풍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하면서도 온몸의 신경이 팽팽하게 곤두섰다.최상층에 도착하자 부드러운 알림음과 함께 VIP 전용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발걸음을 내딛자 대표이사실로 이어지는 복도는 차갑고 적막하기만 했다.양쪽으로 열리는 큰 문 앞에는 아리아가 이미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엘레나의 개인 비서인 그녀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고, 눈빛에는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죄책감이 서려 있었다."들어오십시오, 베인 씨." 아리아는 상아색 마스크를 쓴 그의 눈을 차마 바라보지 못한 채, 문을 열어주며 낮게 속삭였다.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찰리는 옅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남은 용기를 쥐어짜 낸 뒤, 문턱을 넘어섰다.뒤이어 문이 쿵 소리를 내며 닫혔다. 약 20평 남짓한 온통 하얀색으로 꾸며진 집무실에는 숨 막히는 정적이 감돌았다. 한낮의 햇살이 커다란 통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높이 올려다보이는 도시 풍경을 등지고 서 있는 한 여인의 실루엣을 비추었다.엘레나 빅토리아. 버건디 색상의 크레이프 드레스가 그녀의 우아한 몸매를 감싸고 있었고, 비즈니스의 여왕다운 절대적인 지배력을 피워내고 있었다."알타이르 로지스틱스의 CEO를 그저 대화나 나누자고 초청하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일 줄이야." 엘레나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커다란 소리는 아니었으나, 뼈를 찌를 듯 차갑고 날카로우며 모멸감이 짙게 깔려 있었다.엘레나가 천천히 돌아서자, 강철처럼 차가운 그녀의 시선이 3미터 앞에 서 있는 찰리에게 정확히 꽂혔다.찰리는 심장이 가슴이 아플 정도로 가쁘게 뛰었지만, 꼿꼿하게 서 있었다. "어제 약속을 취소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엘레나 회장님. 취리히에서 발생한 화재는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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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엘레나의 한마디가 차가운 정적 속에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방 안에 남아 있던 모든 숨결을 앗아가 버릴 듯한 고요가 두 사람을 덮쳤다.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가면을 벗어 던진 그의 또렷한 얼굴에는 더 이상 알타이르 로지스틱스 CEO의 오만함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과거 자신이 남긴 상처가 무자비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음을 깨달은 한 남자의 허망한 포기만이 짙게 깔려 있을 뿐이었다."오늘 중으로 에이텔 코프의 모든 물품에 대한 계약 파기와 손해배상 절차를 진행하겠어, 엘레나."찰리가 닿을 듯 낮게 입을 열었다. 쉰 목소리에는 가슴을 짓눌러 오는 무게감이 가득 실려 있었다."네 뜻대로…… 다시는 네 삶을 침범하지 않겠다. 레오에게도 접근하지 않을 거고."엘레나는 응답하지 않았다. 버건디색 드레스 자락 옆으로 주먹을 쥐어튼 채, 커다란 통유리창 넘어 밖을 바라보는 그녀의 어깨가 가쁘게 숨을 내쉬며 흔들렸다. 두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은 단순한 증오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너지기 직전인 마음속 격랑을 겨우 견뎌내고 있는 까닭이었다.더 이상 할 말이 없음을 깨달은 찰리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탁자 위에 놓아두었던 아이보리색 마스크를 집어 들고는, 후회로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듯 다시 쓰며 양옆으로 열리는 중문으로 발걸음을 돌렸다.철컥.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와 함께 찰리가 남긴 발자국 소리가 무겁게 떨어졌다. 에이텔 코프 최상층 복도가 오늘따라 아득하도록 길고 잔인하게 느껴졌다.비서 Desk 근처에 서 있던 아리아가 황급히 자세를 바르게 고쳤다. 비즈니스계의 여왕이라 불리는 엘레나의 전속 비서인 그녀는, 마스크를 쓴 채 넋이 나간 눈빛으로 걸어 나오는 찰리를 보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베인 님……."아리아가 미안함이 섞인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다가서며 그를 불렀다.찰리는 돌아보지 않은 채 걸음을 멈췄다."안에 있는 엘레나 좀 잘 살펴주게, 아리아. 그리고…… 이 손해배상 청구 서류 좀 보관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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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찰리는 여전히 검은색 세단의 운전석에 앉아 손가락으로 핸들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가 미처 가속 페달을 밟기도 전에, 마스크 너머의 검은 눈동자가 뱅가드 가문의 로고가 새겨진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천천히 에이텔 코퍼레이션 건물 앞마당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포착했다.차량의 문이 열렸다. 윌리엄이 값비싼 정장을 차려입은 채 차에서 내렸다. 그는 옷의 단추를 정리하면서 역겨울 정도로 오만한 기색을 드러냈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건물의 최고층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마치 세상 전체가 이미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처럼.어두운 차창 너머로 찰리의 턱이 단단하게 굳었다. 그의 시선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벼려져, 레이가 방금 전 알테어 로지스틱스의 창고를 사보타주한 사건의 배후로 지목한 남자의 모습에 정확히 꽂혔다.그러니 네가 더러운 수작을 부린 놈이었군, 윌리엄… 찰리는 속으로 이를 갈며 가슴을 태우는 분노를 억눌렀다. 고작 나와 엘레나의 접촉을 끊고 네 오만함을 만족시키겠다고 내 투자를 불태운 건가?윌리엄은 자신이 방금 파괴하려 했던 ‘포식자’가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에이텔 코퍼레이션의 로비 안으로 들어갔다. 찰리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며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감정을 가라앉힌 뒤, 핸들을 돌려 빠르게 공항을 향해 차를 몰았다.밤이 되어 취리히의 도시 전체가 어둠에 잠겼을 무렵, 찰리는 다시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미니멀리즘 양식으로 지어진 집 안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아직 끝내지 못한 업무를 논의하기에 앞서, 찰리는 먼저 몸을 씻었다. 에이텔 코퍼레이션의 이사실에서 보았던 분노한 엘레나의 얼굴을 차가운 물로 씻어내려는 듯했다. 거의 아무것도 놓치지 않았다. 엘레나가 했던 모든 말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30분 후, 찰리는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단정하게 몸을 정돈한 상태였다.거실에서 찰리와 레이는 금융 관련 서류로 가득한 유리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테이블 램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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