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정략 결혼은 끝냈어야 했다: Chapter 51 - Chapter 60

102 Chapters

51화 초야와 그림자

51화지빌라는 몸을 굳히며 겨우 입을 열었다.“그건… 제가 알아서…….”그의 눈이 짙게 가라앉았다.“그리고—나는 초야를 피하겠다고 말한 적 없어.”그녀는 숨을 삼켰다. 그의 눈빛이 식은 검처럼 날카롭고, 차분했다. 그 안에는 감정이 있었다. 아주 깊고, 어쩌면 오래전부터 자리했던 감정. 그 시선이 그녀의 입술에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눈으로 돌아왔다.***지빌라는 초야의 밤을 떨쳐내려 애쓰며, 황실 만찬장으로 향하는 복도를 바라보았다. 프레데리크와는 단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그의 팔에 손을 얹고 걸었다.그러나 그를 보는 순간, 애써 밀어내려 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그 밤의 감각이, 숨결이, 너무도 생생히 스쳤다.놀란 마음에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정신을 차렸을 땐, 그의 팔뚝을 세차게 움켜쥐고 있었다.“생각이 깊군.”낮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지빌라는 흠칫 고개를 들었다. 짙은 검은 눈동자가 그녀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애써 담담히 말했지만,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을까? …혹시, 초야의 밤을 떠올린 건 아니고?”지빌라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대공께서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실 줄은 몰랐네요.”뒤에서는 프레데리크의 보좌관과 자신의 시녀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오고 있었다.“내가 내 아내에게 그런 말도 못 하나?”프레데리크는 여전히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그제야 지빌라는 그가 일부러 가볍게 넘기려 한 말이었다는 걸 눈치챘다.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냉혹하다고만 여겼던 대공이, 이토록 부드럽게 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낯설었다. 그리고 그 낯섦이, 묘하게 가슴을 간질였다.프레데리크는 하루라도 빨리 북부로 돌아가고 싶었다. 귀족의회 안건을 처리하는 데도, 북부의 정세를 재정비하는 데도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서 더더욱 일에만 집중하려 애썼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끔씩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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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참 보기 좋은 한 쌍이야

52화지빌라는 짧은 숨을 들이쉰 뒤 차분히 답했다.“고마워, 레나토. 북부에 가서는… 나도 제대로 된 대공비가 되어보려 노력할게. 아직은 자신이 없지만.”레나토는 입가에 얄미운 웃음을 띠고 프레데리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대공께서도 너그러이 품어주시길. 누이가 좀… 사치스럽고 입방아에 오르내릴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그 순간, 프레데리크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그는 레나토를 향해 시선을 들며 단호히 말했다.“북부는 대공비에게 그 어떤 것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가 무엇을 원하든,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짧고 날카로운 말에 레나토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이렇게 다정한 대공의 면모는 처음 보는데. 결혼을 혐오하던 분이 이런 말을 하다니, 실로 의외군.”그는 술잔을 비우고는 미간을 찡그린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흥, 참 보기 좋은 한 쌍이야. 바쁜 일이 있어 먼저 일어서겠습니다.”황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뒷모습이 만찬장을 빠져나간 뒤, 식탁엔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고기를 써는 소리만이 식탁 위를 울렸다.황실의 긴 복도.레나토가 걸음을 옮기자, 보좌관들과 시녀들이 도열한 채 고개를 숙였다. 그 틈에, 지빌라의 시녀 레오노라가 서 있었다.레나토는 무심한 듯 그녀에게 시선을 던졌고, 눈빛 하나로 명령을 내렸다.― 따르라.말 한마디 없었지만, 레오노라는 그 뜻을 알아차렸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레오노라는 주변을 빠르게 훑어본 뒤, 곁에 있던 에르나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화장실에 다녀올게요.”에르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오노라는 복도를 빠져나갔다.복도가 꺾이는 지점,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어두운 모퉁이. 그곳엔 레나토의 보좌관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이쪽으로 오십시오.”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일황자의 집무실로 안내받은 레오노라는, 문이 닫히는 순간 스스로에게 물었다.‘정말 명을 따라온 걸까. 아니면… 어딘가 기대한 마음이 있었던 걸까.’그 물음은 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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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숨 막히는 밤(1)

53화레오노라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말도 안 되는 말씀이세요.”“내가 황제가 된다면 그렇게 만들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하지만 아직…….”“아, 그 말 하려던 건가? ‘왜 황태자도 아닌 당신이 황제가 될 수 있겠느냐’고.”레오노라가 움찔하자, 레나토는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그건 내가 곧 보여줄 테니, 그저 결과만 기다리면 돼.”그는 떨어진 주머니를 턱짓으로 가리켰다.“가져가. 필요 없으면 버려도 좋아. 하지만 언젠가―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의 곁에 있고 싶다면, 그걸 쥐고 있는 게 시작일 거야.”레오노라는 망설이다가 무언가에 홀린 듯 결국 바닥에 떨어진 주머니를 손을 뻗어 집어 들었다.‘황녀의 아이만큼은… 안 돼. 그건… 안 돼.’그녀의 눈동자는 갈등과 공포, 그리고 희미한 기대가 뒤섞인 채 흔들렸다.레나토는 보좌관을 불렀다.“차기 대공비 전하께, 사용법을 자세히 설명해 드려라.”레오노라는 창백한 얼굴로 보좌관의 말을 듣고 있었다. 눈앞에서 길이 갈라지고 있었다.사랑과 죄책, 유혹과 배신 사이에서.***어색한 만찬이 끝난 뒤, 지빌라는 이황자 유리안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이제 북부로 떠나시는군요.”“그래. 내가 황궁으로 다시 오는 일은… 한동안 없는 게 너나 나나 좋을 거야.”유리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지빌라는 가볍게 웃으며 이복동생의 무운을 빌었다.“샤를로트를 통해 안부를 전할게. 너도 전하고 싶은 소식이 있으면 주저 말고 전하렴.”“…네.”“그리고 내가 했던 말… 잊지 마. 내가 말한 대로 꼭 청해.”“알겠어요. 걱정 마세요. 누님.”두 사람은 포옹을 나누었다. 그 광경 뒤편에서, 프레데리크가 묵묵히 지빌라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그녀는 만남이 끝났다는 신호처럼 고개를 돌려,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프레데리크는 말없이 발걸음을 옮겨, 나란히 황녀의 궁으로 향했다.궁 입구에 도착하자 지빌라는 그가 곧 자신의 궁으로 돌아갈 거라 짐작하고는 말했다.“새벽 일찍 떠나시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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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숨 막히는 밤(2)

54화지빌라는 그 순간, 그가 예상과 다른 각도로 움직인다는 것을 감지했다.“정략결혼을 원한 건 당신도 마찬가지잖아요.”“그럴지도 모르지.”그는 천천히, 그러나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손길은 따뜻했지만, 지빌라의 등골을 타고 서늘한 전율이 흘렀다. 본능적으로 그 움직임을 늦추기 위해 그녀는 말을 이었다.“그런데 왜… 나를 안으려고 하죠?”그는 짧게 웃었다. 고개를 숙인 그의 입술이 점점 가까워졌다.“그건… 당신 탓이겠지.”프레데리크는 말없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주저 없이, 마치 오래 기다려온 순간이라도 되는 듯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그의 입맞춤은 느리지만 단단했고, 피할 틈조차 허락하지 않았다.지빌라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머리끝까지 스며드는 체온이, 이 관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었다.이토록 뜨겁고 집요한 접촉은 처음이었다.회귀 전, 그녀를 원하는 이는 많았지만, 그 욕망은 선망이나 탐욕에 가까웠다. 그녀라는 인간이 아니라, 황녀라는 이름에 손을 대려는 자들뿐이었다.누구도, 이렇게까지 그녀 자체를 갈구하지는 않았다. 그 사실이, 낯설게도 그녀를 흔들었다.‘정신 차려. 이건 그저… 절차일 뿐이야.’지빌라는 속으로 되뇌었다. 이 결혼은 처음부터 계산이었다. 몸을 섞는 것도, 결국은 후계자를 위한 의무의 연장선일 뿐이라고. 그렇게 선을 그어두지 않으면, 지금 이 순간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하지만 그의 입술이 다시 그녀의 입술 위로 내려앉는 순간, 그 다짐은 손쓸 새도 없이 무너졌다.몸이 먼저 그를 향해 기울고 있었다. 계산도, 전략도 없이. 그저 본능이 이끄는 대로.‘이러면 안 되는데…….’그런 생각도 잠시, 그의 숨결이 다시 가까워지자 머릿속의 모든 계산이 하얗게 지워졌다.그의 혀가 입술 사이를 가르고 들어왔다. 낯선 감촉에 지빌라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지만, 도망칠 곳은 없었다.그는 집요했다. 치열을 훑고, 안쪽 깊은 곳까지 파고들며 그녀의 혀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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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숨 막히는 밤(3)

55화스며든 달빛 아래, 하얀 몸이 은은하게 드러났다. 그가 지금껏 어떤 전리품에서도, 어떤 보석에서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 그 사실이, 그를 더욱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될, 부서질 것 같은 무언가를 대하듯.그의 입술이, 손끝이, 서서히 그녀의 옷을 벗겨냈다. 희미한 등불 아래, 하얀 몸이 은은하게 드러났다. 한 손에 다 담기지 않을 듯한 가슴 위, 옅은 분홍빛 정점이 빠르게 뛰는 심장 박동을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서, 숨을 쉴 때마다 미세하게.프레데리크는 그 순간, 이보다 더 유혹적인 것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이성의 끈이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시선은 이미 홀린 듯 그녀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가는 허리선을 지나, 골반 아래로.그녀는 다리를 오므리며 마지막 남은 곳을 가리려 애썼다. 그러나 그 애처로운 저항이, 오히려 그를 더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곧, 전부 내 것이 될 텐데.’그 생각을, 그는 부인하지 못했다. 부인할 마음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그녀는 눈을 감았다.‘초야의 밤… 그가 원하고 있어.’그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입술이 귓가로 옮겨갔다.“읏……!”귓불을 살짝 깨무는 감촉에, 지빌라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숨결이 귓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낯선 감각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그는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귓가에서 목선을 타고, 다시 쇄골을 지나―그의 입술은 정확히, 그녀조차 몰랐던 예민한 자리들을 하나씩 찾아 짚어갔다.숨결이 목선을 타고 흘러내렸고, 아랫배가 간질거렸다. 열이 차오르고, 처음 겪는 감각들이 쉼 없이 밀려왔다.프레데리크는 말없이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그는 입을 벌려 젖꼭지를 삼켰다. 입 안에 침이 고였다. 물고 빠는 행위를 처음 하는 아이처럼, 그는 서투르게 입을 오므렸다가―이내 참지 못하고 강하게 빨아올렸다. 조심스러움은 그 순간부터 자취를 감췄다. 낮게 흘러나온 그의 숨소리마저, 지금은 그녀의 피부를 뜨겁게 태우는 것 같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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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숨 막히는 밤(4)

56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남자의 몸. 그의 숨결이 그녀의 목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몸이 저도 모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이토록 자신도 원한다고 생각한 건. 그 순간, 단호하게 그녀의 안으로 밀고 들어온 것이 끝에 닿았다. 배를 뚫고 나올 듯이. 곧장 밀려든 예상치 못한 통증에 지빌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프레데리크는 그녀의 이마를 맞대고, 눈썹과 눈 사이에 입을 맞췄다. 떨리는 숨결 속, 젖은 눈빛이 마주했다. 그의 몸이 깊숙이 그녀를 채운 채였다. 가득 차오르는 그 충만한 감각에 손끝과 발끝까지 떨림이 번져갔다. 놀라움 그 자체였다. 지빌라는 눈앞이 아득해지는 걸 느끼며, 저도 모르게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손끝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그는 나직한 숨을 흘렸다. 두려움은 어느새 옅어지고, 그 자리를 낯선 갈망이 채워가고 있었다. 처음 겪는 감각인데도, 몸은 이미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이런 게… 이런 거였구나.’ 회귀 전의 삶에서도, 지금 이 생에서도 알지 못했던 감각이었다. 두 번의 결혼도, 스물몇 해의 세월도 가르쳐주지 못한 것을, 이 새벽이 처음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르며 그녀가 다치지 않도록 절제했고, 시간을 길게 늘여 갔다. 지빌라는 처음으로, 진심으로 그에게 몸을 맡겼다. 그것 말고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때, 머리 위로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지빌라&hell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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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아직 끝나지 않은 무언가

57화문이 닫히고 한참이 지나서야, 지빌라는 눈을 떴다. 그가 앉았던 자리는 이미 다 식어 있었다. 그녀는 잠시 그 빈자리를 바라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황실 예법관이 간단히 그녀의 안색을 살핀 뒤, 시녀들과 함께 욕실로 안내했다. 준비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자, 에르나와 레오노라가 그녀를 맞이했다.“오셨어요, 대공비 전하.”“그래. 준비는 다 되었지?”짐 정리는 예상보다 이르게 끝나 있었다. 랑베르가 가져갈 것은 최소한으로 줄이라 했던 그녀의 말을 충실히 따른 결과였다.시녀들이 마지막으로 방 안을 훑으며 남은 물건들을 상자에 담는 걸 보며, 지빌라는 문득 낯선 기분에 사로잡혔다. 십수 년을 지낸 방이었다. 좋은 기억보다 견뎌낸 기억이 더 많은 곳.그런데도 막상 떠난다고 하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미련일 리 없는데.’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그 감상을 떨쳐냈다. 이곳에 남겨두고 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에르나가 나서서 오늘 일정과 필요한 사항들을 간단히 정리해 전했다. 그때, 대공의 보좌관 랑베르가 방문해 변경된 일정을 보고했다.“미처 전해드리지 못한 내용이 있습니다.”“이제 곧 출발인데, 무슨 일이죠?”“북부로 향하기 전, 서부를 들르게 되었습니다.”지빌라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아… 그럴 줄 알았어요.”그녀의 반응에 랑베르는 순간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짐작했다는 말에, 그녀가 단순한 명목상의 황녀가 아님을 실감했다.지빌라는 흐릿하게 웃었다.서부 변경백 조프루아는 사냥대회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서부로 떠났다. 회귀 전에는 수도에 머물다 때를 놓쳐 재난 복구가 늦어졌었다.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달랐다.황태녀로서 직접 서부에 가고 싶었던 전생의 그녀는 결국 수도에 묶여 있었다. 2년 후 전쟁이 터지고, 대공이 죽은 뒤, 황태녀에서 끌려 내려와 조프루아와 강제로 결혼한 채 서부로 향해야 했다.이제 그녀는 스스로 선택한 자리, 대공비로서 프레데리크와 함께 서부로 향하고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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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입술과 입술 사이

59화지빌라는 그가 또 오해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조금씩, 그의 표정을 읽는 데 익숙해지고 있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아니에요. 따르는 기사들이 힘들까 봐요. 마차를 호위하느라 더 고되겠죠.”그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오래 머물자, 지빌라는 고개를 돌려 먼저 걸음을 옮겼다. 뒤따라오는 발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들렸다.“레오노라에게 조금 들었어요.”그녀의 말에 프레데리크가 고개를 들었다.“친절하다고요.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그 말이 끝나자, 그의 발걸음이 살짝 늦춰졌다. 표정은 굳었지만, 말은 없었다.“…어릴 적 이야기지.”짧게 내뱉은 말. 그 뒤로 덧붙이는 말은 없었다.“…북부 사람들 모두 그렇다고요. 당신이 아니라. 당신에 대해서도 조금 더 물어볼 걸 그랬네요.”지빌라는 괜한 말을 꺼냈다는 생각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이만 돌아가야겠어요.”지빌라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 발을 헛디뎌 휘청였다. 프레데리크가 재빠르게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어두워졌으니, 조심해.”당황한 지빌라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또다시 중심을 잃었다. 이번엔 그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강하게 품속으로 끌어당겼다.“아…!”“조심하라고 했는데.”풀벌레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숲속.두 사람은 서로의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멈춰 섰다.프레데리크는 그녀의 체온이 그의 가슴에 고스란히 스며드는 걸 느꼈다. 얇은 천 너머의 체온만으로도 심장이 요동쳤다. 원하지 않아도, 시선이 제멋대로였다. 그 사실이 불쾌했다.지빌라는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빠져나가려 애쓰자, 그가 낮게 웃었다.“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텐데.”“…왜요?”“당신이 움직일수록, 내 인내심이 시험받거든.”프레데리크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도 은은하게 빛났다. 짐승처럼, 본능적인 갈망이 깃든 눈동자. 자제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날카롭게 드러났다.지빌라는 그가 장난을 치는 건지, 진심인 건지 알 수 없었다. 심장이 조급히 뛰었다.그의 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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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제 이름에 붙은 새로운 성

60화 산책을 다녀온 뒤, 지빌라의 마음은 오히려 무거워졌다. 늦은 귀환을 맞이한 것은 에르나와 레오노라였다. “먼 곳까지 다녀오셨나 봐요?” “응… 그런 셈이지.” 레오노라는 뚜껑이 덮인 찻잔을 내왔다. “기다리는 동안 식어버렸네요. 미리 데워둘 걸 그랬죠… 혹시, 괜찮으실까요?” “아니, 입가심만 하면 될 것 같아.” 지빌라는 말없이 자리에 앉아 찻잔을 받았다. 뚜껑을 여는 순간, 익숙한 향이 그녀의 코로 스몄다. 희미하게 풍겼다가 사라진, 오래전 맡았던 향. 회귀 전, 아주 오랫동안 마셨던 바로 그 차였다. 지빌라는 찻잔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입안에 맴도는 건 차의 향이 아니라, 오래된 기억의 잔향이었다. ‘내가 베라트의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려는 걸까…….’ 초야는 예정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그 밤은 그 경계 너머에서 흘러갔다. 그리고 지빌라는 그제야 알았다. 프레데리크가 레오노라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회귀 전, 그들이 왜 혼인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였다. 그의 눈엔 절절함이 없었다. ‘레오노라, 널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 내 잘못이겠지.’ 차가운 찻잔을 감싼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감정이 아니라 정치. 애정이 아니라 의무. 이번 생에서는,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끌려가지 않겠다고 지빌라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레오노라, 미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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