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판 / 정략 결혼은 끝냈어야 했다 / 59화 입술과 입술 사이

Share

59화 입술과 입술 사이

Author: 훌리아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0 09:36:37

59화

지빌라는 그가 또 오해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조금씩, 그의 표정을 읽는 데 익숙해지고 있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아니에요. 따르는 기사들이 힘들까 봐요. 마차를 호위하느라 더 고되겠죠.”

그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오래 머물자, 지빌라는 고개를 돌려 먼저 걸음을 옮겼다. 뒤따라오는 발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들렸다.

“레오노라에게 조금 들었어요.”

그녀의 말에 프레데리크가 고개를 들었다.

“친절하다고요.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그 말이 끝나자, 그의 발걸음이 살짝 늦춰졌다. 표정은 굳었지만, 말은 없었다.

“…어릴 적 이야기지.”

짧게 내뱉은 말. 그 뒤로 덧붙이는 말은 없었다.

“…북부 사람들 모두 그렇다고요. 당신이 아니라. 당신에 대해서도 조금 더 물어볼 걸 그랬네요.”

지빌라는 괜한 말을 꺼냈다는 생각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만 돌아가야겠어요.”

지빌라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 발을 헛디뎌 휘청였다. 프레데리크가 재빠르게 그녀의 팔을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정략 결혼은 끝냈어야 했다   88화 얇은 벽 너머의 밤

    88화험한 산세가 이어지는 길이었다. 초겨울의 바람은 점점 차가워지고,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 낮게 깔렸다.산등성이마다 매서운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고, 바람이 스치는 소리는 마치 겨울이 문턱까지 왔음을 알리는 경고처럼 들렸다.대공과 대공비의 행렬은 최소한의 호위만 남기고 조심스레 이동 중이었다. 근처엔 성도, 마땅한 숙사도 없었기에 결국 작은 여관 하나를 빌려야 했다.대공성까지 가기엔 아직 며칠은 더 필요했다.“오늘 밤은 여기서 쉬는 수밖에 없겠군.”프레데리크의 낮은 말에 지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관은 오래되어 삐걱거렸고, 방도 딱 하나뿐이었다.어쩔 수 없이 둘은 한 방에 머물러야만 했다.프레데리크가 보좌관들, 호위들과 함께 주변 산세를 둘러보는 동안이었다. 시녀들이 작은 나무 욕조에 따뜻한 물을 채웠다.지빌라는 그들을 물리고 조용히 목욕을 준비했다. 하얀 김이 피어올라 방 안을 희미하게 흐려놓았다.몸을 담그자 피로가 스르륵 풀리는 듯했다.지빌라는 깜박 잠이 들어 문이 조용히 열리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작은 기척에 눈꺼풀을 들어 올린 그녀는 눈앞의 인영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프레데리크―!”놀란 지빌라는 반쯤 몸을 일으키려다 얼굴을 붉히고는 급히 수건으로 앞을 가렸다.프레데리크는 한 발짝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

  • 정략 결혼은 끝냈어야 했다   87화 은밀한 속삭임

    87화다음 날, 예상대로 후작성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그 옷… 정말 우연이었을까?”“그래도 황녀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지?”“그래서 더 무서운 분이야. 아무 감정도 안 보이셨다잖아.”하녀들 사이에 은밀한 속삭임이 흘렀다.처음엔 단순한 수군거림이었으나, 곧 ‘황녀가 평소 레오노라 영애를 괴롭혔다더라.’는 방향으로 변질되었다.누군가의 ‘보았다’는 증언이 덧붙고, ‘참으려는 영애의 눈물’이라는 표현이 더해지자, 이야기에는 연민이 깃들었다.대공성으로 출발할 준비가 끝났을 때, 지빌라는 후작성을 뒤로한 채 말없이 마차에 올랐다. 그녀에게도 ‘위엄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삼켜버린 수많은 감정들이 있었다. 만찬장에서의 침묵도 그중 하나라고 여겼다.하지만 지금, 그 침묵이 오히려 자신을 고립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서서히 와닿았다.“전하…….”레오노라가 살그머니 다가왔다.“이제 그만 참으셔도 돼요. 저를 용서치 마세요.”지빌라는 눈을 들었다. 레오노라의 얼굴에는 어제와는 다른 결의가 어렴풋이 비쳤다.“참는 것처럼 보였다니… 미안한 일이구나. 내가 화난 것처럼 보였니?&rd

  • 정략 결혼은 끝냈어야 했다   86화 운명의 문

    86화지빌라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작은 미소를 띠며, 천천히 손끝으로 카드를 밀어 일렬로 펼쳤다.“좋아요. 그 진심이 진실이라면, 카드가 응답할 거예요.”그녀가 첫 번째 카드를 꺼내 드는 순간, 촛불이 한 번 크게 흔들리며 벽에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첫 번째 카드— ‘죽음에서의 해방’“이 카드는…….”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되풀이된 죽음, 피할 수 없었던 비극의 고리가 이제 끊어진다.”프레데리크의 시선이 흔들렸다. 두 사람 다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베라트 가문의 저주.지빌라는 안도의 숨을 삼켰다. 모호했던 미래가 조금씩 그녀가 원하는 대로 완성해 나간다는 뜻이었다.그녀는 아르카나를 시전하는 동안, 카드가 전하는 말을 언제나 고해야만 했다. 입은 스스로 닫히지 않았고, 진실만이 흘러나왔다.그러나 이번에 이어진 말은, 차갑게 그녀의 가슴을 쳤다.“하지만 그 대가는… 한쪽의 희생일 수도 있다.”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굳었다.“누군가 대신 짊어진다면, 그건 또 다른 비극이군.”지빌라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한쪽의 희생이 그녀라고 해도 그녀는 물

  • 정략 결혼은 끝냈어야 했다   85화 진실 없이는 열리지 않아요

    85화“괜찮아. 레오노라.”지빌라는 최대한 부드럽게 레오노라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와인은 닦으면 돼. 고개를 들어.”그러나 그 말은 공기 속에서 힘없이 흩어졌다.주변의 귀부인들은 오히려 지빌라를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침착함이 냉정함처럼 비쳤기 때문이다.레오노라는 손끝을 덜덜 떨며 일어났다. 손수건을 꺼내 들며 고개를 숙였다.“전하의 옷을 더럽혔으니, 제 손으로 닦겠습니다….”가늘게 떨리는 음성, 젖은 눈가. 그 모습은 너무 완벽히 ‘가련’했다. 주변에서 조용히 한숨이 새어 나왔다.후작 부인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레오노라, 몸부터 가다듬거라. 전하께서도 놀라셨을 테니….”프레데리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깊었으나,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았다.그날 밤, 만찬의 온기는 완전히 식어버렸다. 대공과 황녀의 화합을 찬미하던 그 자리에서 사람들은 은밀히 속삭였다.“역시 황녀가 레오노라를 곁에 둔 이유가 있었어.”“불쌍하더라. 무릎까지 꿇던데.”방으로 돌아온 레오노라는 거울 앞에 섰다. 치맛자락엔 아직도 붉은 얼룩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미세하게 미소 지었다.

  • 정략 결혼은 끝냈어야 했다   84화 붉은 얼룩의 전조

    84화프레데리크의 팔이 지빌라의 허리를 단단히 감쌌다. 말의 거친 숨소리, 그리고 너무 가까운 거리.지빌라의 심장이 요동쳤다. 손끝이 그의 옷깃에 닿았다. 잠시, 모든 소리가 멎은 듯했다.그가 낮게 속삭였다.“…내가 잡고 있으면, 괜찮겠지?”대답 대신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차가운 북부의 바람보다 더 깊게 스며들었다.프레데리크는 눈을 감은 지빌라를 한참 내려다보았다. 그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때 요제파가 또다시 짧게 울며 발굽을 튕겼다.지빌라의 몸이 뒤로 기울자, 프레데리크가 그녀의 허리를 더 단단히 감았다. 그의 품 안으로 더 파고든 순간이었다.두 사람 사이로 요제파의 거친 숨결이 느껴졌다. 그러나 곧바로 요제파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진정했다.지빌라는 놀란 가슴을 누르며 말의 갈기를 쓸었다.“괜찮아, 요제파. 왜 그러는 거야…….”프레데리크가 시선을 내렸다. 그의 애마 레오니스가 요제파를 향해 나직이 울고 있었다.그는 미묘하게 웃었다.“레오니스 때문인 것 같군.”“레오니스요?”“요제파가 계속 저 녀석을 밀어내더니, 요즘은… 좀 달라졌지.” 

  • 정략 결혼은 끝냈어야 했다   83화 여전히 무모한 눈빛

    83화‘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갚는 성격이군.’사적인 감정을 애써 억누른 채, 의무로 바꾸는 이 여인의 단단함이 프레데리크에게는 낯설고도 흥미로웠다.지빌라는 잠시 망설이다가 속내를 드러냈다. 그녀의 스캔들, 레오노라까지.“대공비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들 생각하겠죠.”프레데리크는 그 한마디로 그녀를 이해했다.‘도망치지 않겠다는 건가. 제 몫을 하려고.’그런 생각이 스치자, 그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지빌라는 그 낯선 미소에 잠시 멈춰 섰다.“그 웃음, 무슨 의미죠?”“당신을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모습이 보여서.”“당신도 역시 실망했나요?”“그게 그렇게 걱정되나?”그의 낮고 묘한 어조에 지빌라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 물음은 마치 ‘당신이 두려워할 게 뭐가 있느냐’ 하고 묻는 듯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은 없다는 거― 그건 당신이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그렇지.”짧게 흔들린 프레데리크의 시선이 그녀의 눈동자에 닿았다.지빌라는 생각했다.&lsq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