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Chapter 101 - Chapter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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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화. 법인장 교체안

다음 날 긴급 이사회가 열렸다.안건은 프라하 법인 추가 투자와 경영진 교체.투자자는 거액을 제시했지만 조건은 분명했다.내가 법인장에서 물러나고, 그들이 추천한 인물이 자리를 맡는 것.윤세라는 회의 시작 전 나를 따로 불렀다.“이사회가 절반으로 나뉘었습니다.”“대표님 의견은요?”“투자는 필요하지만 교체 조건은 반대합니다.”“저 때문입니까?”“아니요. 외부 투자자가 인사권까지 가져가는 선례를 만들 수 없어서입니다.”공식 회의에서 투자자 측은 내 경력 부족과 차도현 의장과의 관계를 다시 문제 삼았다.“법인 성과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특정 인물에게 의존한 구조는 위험합니다.”나는 준비한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지난 두 분기 동안 주요 계약과 인사 결정은 현지 위원회 과반 동의로 처리했습니다.”“법인장이 없어도 운영된다는 뜻 아닙니까?”“네.”회의실이 술렁였다.나는 말을 이었다.“제가 없어도 운영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법인장의 역할입니다.”투자자 대표가 미소를 지었다.“그렇다면 교체를 받아들여도 되겠군요.”“아닙니다.”나는 조직도 다음 장을 띄웠다.“현재 교체하면 신규 생산 라인과 유통 재계약이 동시에 중단됩니다. 책임자 교체에 따른 손실은 투자금보다 큽니다.”구체적인 위약금과 일정 손실액이 화면에 나타났다.투자자들의 표정이 굳었다.“인물을 바꾸고 싶다면 계약 안정화 이후 정식 평가 절차를 거치십시오.”“조건을 거절하겠다는 겁니까?”“인사권 요구를 철회하면 투자는 받겠습니다.”협상은 세 시간 동안 이어졌다.결국 투자자는 법인장 교체 조건을 삭제하는 대신, 외부 감사위원 한 명을 파견하기로 했다.회의가 끝난 뒤 도현이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왜 왔어요?”“전략 의장으로 참석한 겁니다.”“회의에서는 한마디도 안 했잖아요.”“당신이 충분히 말하고 있었습니다.”나는 긴장이 풀려 벽에 기대었다.“사실 중간에 대표님이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말하지 않았으니 기다렸습니다.”“그래도 눈치로 알 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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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화. 외부 감사관

프라하 법인에 파견된 외부 감사관은 예상보다 젊었다.이름은 최준호.국제 회계법인 출신으로, 숫자보다 사람의 행동을 먼저 보는 타입이었다.첫날부터 그는 내 사무실 책상 배치와 직원들의 보고 방식까지 기록했다.“감사 범위가 너무 넓은 것 아닙니까?”내 질문에 그가 웃었다.“조직은 장부보다 습관에서 무너집니다.”그는 차도현과의 관계도 피하지 않았다.“의장과 개인적으로 연락합니까?”“사적인 시간에는 합니다.”“업무 조언도 받습니까?”“요청할 때만요.”“기록이 있습니까?”“사적인 대화를 제출할 의무는 없습니다.”이준호는 더 묻지 않았다.대신 법인의 모든 계약을 검토하던 중 뮌헨 품질 관리 계약에서 이상한 비용을 발견했다.실제 지급액과 본사 보고액이 달랐다.차액은 크지 않았지만 누군가 중간에서 수수료를 더한 흔적이었다.“이 계약은 누가 담당했습니까?”“초기에는 제가 직접 협상했습니다.”심장이 무겁게 내려앉았다.내가 승인한 계약에서 문제가 발견된 것이다.조사 결과 현지 구매 담당자가 별도 컨설팅 회사를 끼워 넣었다.그 회사 대표는 구매 담당자의 친척이었다.“법인장 승인 서명도 있습니다.”이준호가 계약서 마지막 장을 보여 줬다.내 서명이 분명했다.“중간 회사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까?”“아니요.”“몰랐다는 것으로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정확한 지적이었다.나는 즉시 구매 담당자를 직무에서 배제하고 내부 조사를 시작했다.윤세라에게도 직접 보고했다.“법인장 책임을 인정합니다.”“사임하려는 겁니까?”“아닙니다.”“그럼 해결하십시오.”차갑지만 필요한 대답이었다.도현에게 말해야 할지 고민됐다.이번에는 숨기지 않기로 했다.영상 통화에서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한참 자료를 확인했다.“제가 조언해도 됩니까?”“네.”“당신의 서명 절차부터 바꾸십시오.”“사람을 더 확인하라는 뜻이에요?”“한 사람이 가져온 자료만 보고 승인하지 말라는 뜻입니다.”도현은 이중 검토와 이해관계 신고 절차를 제안했다.“왜 화 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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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화. 책임의 흔적

구매 담당자는 비리 사실을 인정했다.부당하게 지급된 비용은 전액 환수됐고, 관련 계약도 해지됐다.하지만 외부 감사 보고서에는 내 관리 책임이 명시됐다.[법인장 경고 및 개선 계획 제출.]나는 경고 처분을 받아들였다.직원들 앞에서도 숨기지 않았다.“이번 문제는 제 승인 절차가 부족해서 발생했습니다.”회의실은 조용했다.“앞으로 모든 고액 계약은 법무와 재무의 이중 검토를 거치겠습니다.”누군가는 내가 약해졌다고 볼 수도 있었다.하지만 잘못을 감추는 순간 더 큰 약점이 된다.최준호 감사관은 최종 면담에서 말했다.“경고를 공개한 건 예상 밖입니다.”“숨긴다고 없어지지 않으니까요.”“차도현 의장이 조언했습니까?”“일부 절차는요.”“처분을 피하는 방법은 묻지 않았고요?”“그건 제 책임이니까요.”그는 보고서를 덮었다.“감사 결과는 조건부 적정입니다.”법인은 투자를 유지할 수 있었다.모든 일이 정리된 저녁, 도현과 나는 프라하 아파트에 마주 앉았다.그는 이틀 뒤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이번에는 제가 먼저 카드 쓸게요.”도현이 붉은 카드를 꺼냈다.“무슨 뜻이에요?”“당신이 계속 책임지는 사람으로만 있었으니, 오늘은 내려놓게 하려는 겁니다.”“저 괜찮아요.”“안 괜찮은 척하지 않기로 했습니다.”나는 반박하지 못했다.도현은 침실 의자 앞에 작은 가죽 패드를 깔았다.손목 커프와 안대, 초록색 버튼도 준비돼 있었다.“범위는 이전과 같습니다.”“더 강하게 해도 돼요.”“감정적으로 지친 날에는 강도를 높이지 않습니다.”“그럼 재미없는데요.”도현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재미를 위해 당신 상태를 무시하지 않습니다.”그 단호함에 오히려 숨이 막혔다.나는 안대를 받아 직접 눈을 가렸다.“준비됐어요.”“손을 내미십시오.”커프가 채워졌지만 연결되지 않았다.도현은 손목을 잡아 내 가슴 앞에 모으게 했다.“오늘은 제가 묶지 않습니다.”“왜요?”“당신이 스스로 자세를 유지합니다.”“힘들면요?”“말하십시오.”그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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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화. 마지막 카드

서울로 돌아가기 전날, 남은 카드를 세어 보니 붉은 카드 한 장과 검은 카드 한 장이 남아 있었다.“둘 다 오늘 쓰면 안 돼요?”내가 묻자 도현은 가방을 정리하다 손을 멈췄다.“한 번 사용했을 때도 위험한 조합이었습니다.”“이번에는 규칙을 정하면 되잖아요.”“어떤 규칙입니까?”나는 두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나란히 놓았다.“처음 십 분은 제가, 다음 십 분은 주인님.”“시간이 되면 즉시 바꿉니까?”“네.”“중단 신호는 동일하고요?”“네.”도현은 잠시 생각한 뒤 모래시계 두 개를 가져왔다.하나는 검은 모래.다른 하나는 붉은 모래였다.“첫 번째 선택은 당신입니다.”나는 검은 모래시계를 뒤집었다.“앉아요.”도현은 침대 끝에 앉았다.나는 그의 재킷을 벗기고 소매를 걷었다.이번에는 끈이나 커프를 사용하지 않았다.“손은 뒤로.”도현은 스스로 양손을 등 뒤로 모았다.“움직이지 마요.”“네.”나는 그의 앞에 서서 질문했다.“서울로 돌아가면 제가 또 없어서 힘들 거예요?”“네.”“그러면 솔직하게 연락할 거예요?”“네.”“일이 바쁘다고 참지 않고요?”“약속합니다.”검은 모래가 절반쯤 떨어졌다.나는 그의 턱을 들어 올렸다.“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건요?”도현의 시선이 내 입술로 향했다.“당신을 제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아직 안 돼요.”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참아요.”마지막 모래가 떨어지자마자 도현의 팔이 내 허리를 감쌌다.“시간이 끝났습니다.”그는 나를 침대 위에 앉힌 뒤 붉은 모래시계를 뒤집었다.“이제 손을 머리 위로 올리십시오.”나는 지시를 따랐다.도현은 커프 대신 자신의 넥타이로 손목을 느슨하게 감았다.“불편합니까?”“아니요.”“눈을 감으십시오.”“안대는요?”“오늘은 사용하지 않습니다.”눈을 감자 그의 손이 턱과 목덜미, 어깨를 차례로 쓸었다.강한 손길과 멈추는 순간이 번갈아 이어졌다.“눈을 뜨고 싶습니까?”“네.”“아직.”“검은 카드 때는 주인님이 하고 싶은 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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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화. 열다섯 번째 명령

도현이 서울로 돌아간 뒤, 프라하 법인은 추가 투자를 최종 확정했다.외부 감사도 종료됐고 신규 생산 라인은 안정적으로 돌아갔다.모든 것이 정리된 것처럼 보였다.문제는 본사에서 온 한 통의 공식 문서였다.[프라하 법인 독립 법인 전환 검토.]승인되면 프라하 법인은 서울 본사의 지사가 아니라 별도 회사가 된다.나는 독립 법인의 초대 대표 후보로 추천돼 있었다.임기는 삼 년.윤세라 대표는 영상회의에서 말했다.“이전 제안과는 다릅니다. 이번에는 완전한 경영 책임자가 되는 자리예요.”“서울 본사 소속도 끝나는 건가요?”“네.”“바로 대답해야 합니까?”“한 달 안에 결정하십시오.”삼 년.육 개월 단위 계약과는 전혀 다른 시간이었다.도현에게 바로 말하지 못했다.며칠 뒤 그가 프라하에 도착했을 때도 공항에서는 웃으며 맞았다.하지만 아파트에 들어오자 도현은 내 얼굴을 바라보고 물었다.“숨기는 것이 있습니까?”“티 나요?”“네.”나는 공식 문서를 내밀었다.도현은 끝까지 읽은 뒤 조용히 내려놓았다.“가고 싶습니까?”“무서워요.”“질문에 대한 답은 아닙니다.”“조금 가고 싶어요.”그의 표정이 굳었다.“삼 년입니다.”“알아요.”“서울 집은요?”“유지할 수 있어요.”“우리 생활은요?”그 질문에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지금까지는 돌아올 날짜가 있었다.삼 년은 기다리는 시간보다 삶 자체에 가까웠다.“도현 씨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그는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이번에는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도현의 손이 내 손목 팔찌를 감쌌다.“가지 않았으면 합니다.”가슴이 아프면서도 안도감이 들었다.“그런데 포기하라고 명령하지는 않을 거죠?”“네.”“왜요?”“당신의 인생이니까.”나는 서랍에서 아무 표시도 없는 흰 카드 한 장을 꺼냈다.붉은 카드도 검은 카드도 아닌 빈 카드.“이건 뭐예요?”“새로 만들었어요.”앞면에 숫자 15를 적었다.뒷면에는 한 문장을 썼다.[함께 결정한다.]도현이 카드를 오래 바라봤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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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삼 년의 함정

프라하 법인 독립 전환 계약서를 다시 검토하던 중, 도현의 손이 한 조항에서 멈췄다.“이 부분을 보십시오.”[임기 중 대표자의 임의 사임 및 겸직을 제한한다.]나는 문장을 두 번 읽었다.“겸직 제한이 왜 문제예요?”“서울 본사의 순환 근무까지 겸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그럼 계약 전에 고치면 되잖아요.”“아래도 보십시오.”도현이 다음 항목을 가리켰다.독립 법인의 초대 대표가 계약을 중도 해지할 경우, 투자금 손실 일부를 개인에게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금액은 내가 평생 일해도 갚기 어려운 수준이었다.“이걸 왜 이제 발견했죠?”“최종 계약서에만 추가됐습니다.”초안에는 없던 조항이었다.윤세라 대표에게 연락했지만 이미 새벽이었다. 투자사 측은 내일 오전까지 서명을 요구하고 있었다.거절하면 독립 법인 전환은 무산된다.프라하 생산 시설 확장도 중단되고, 직원 일부가 계약 종료될 가능성이 컸다.“제가 서명하면 직원들은 지킬 수 있어요.”내 말에 도현의 표정이 굳었다.“대신 당신의 선택권이 사라집니다.”“삼 년만 버티면 돼요.”“그 삼 년 동안 무슨 일이 생겨도 돌아올 수 없습니다.”“도현 씨.”“안 됩니다.”단호한 말에 숨이 막혔다.“제 계약이에요.”“알고 있습니다.”“그런데 왜 안 된다고 해요?”“회사도 투자사도 당신이 책임감 때문에 거절하지 못할 걸 알고 넣은 조항입니다.”그의 말이 맞았다.직원들을 생각하면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도현은 계약서를 덮었다.“오늘은 서명하지 않습니다.”“내일까지라고 했잖아요.”“기한을 정한 쪽이 유리한 계약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협상이 깨지면요?”“다른 투자자를 찾습니다.”“그동안 직원들은요?”목소리가 높아졌다.“도현 씨는 회사가 무너질 때도 그렇게 차갑게 기다릴 수 있었겠지만, 저는 못 해요.”말이 끝난 순간 그의 얼굴이 굳었다.내가 과거의 상처를 건드렸다는 걸 바로 알았다.“미안해요.”도현은 잠시 눈을 감았다.“화가 난 것은 아닙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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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화. 서명하지 않은 대표

다음 날 오전, 투자사 회의실에는 차가운 침묵이 흘렀다.계약서와 펜은 내 앞에 놓여 있었다.투자사 대표가 시계를 확인했다.“서명 시간이 지났습니다.”나는 펜을 들지 않았다.“최종본에 추가된 개인 배상 조항을 삭제해 주십시오.”“독립 법인의 책임감을 보장하기 위한 조항입니다.”“책임감과 인질 계약은 다릅니다.”상대의 표정이 굳었다.“서명하지 않으면 독립 전환은 즉시 취소됩니다.”“알고 있습니다.”“프라하 직원들도 그 결과를 알고 있습니까?”가장 아픈 곳을 찌르는 질문이었다.나는 직원들의 얼굴을 떠올렸다.이번 투자를 믿고 이사한 사람.가족과 함께 프라하에 정착한 사람.계약이 깨지면 그들의 생활까지 흔들린다.손이 펜 쪽으로 움직이려는 순간, 회의실 문이 열렸다.윤세라 대표가 들어왔다.“마감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그녀는 내 옆에 앉아 새 문서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서울 본사와 프라하 법인의 공동 운영 보증서.그리고 도현이 제시한 자금 대여안을 이사회가 공식 승인했다는 문서였다.“독립 전환은 투자사 한 곳 없이도 진행할 수 있습니다.”투자사 대표의 표정이 굳었다.“그 자금을 차도현 의장이 제공했습니까?”윤세라가 냉정하게 대답했다.“회사가 정식 계약으로 차입합니다. 개인적인 지원이 아닙니다.”“결국 한서윤 법인장을 위한 특혜 아닙니까?”이번에는 내가 서류를 펼쳤다.이율은 시장 평균보다 높았고, 담보는 프라하 법인의 미래 매출로 설정돼 있었다.“유리한 조건도, 무상 지원도 아닙니다.”나는 원래 계약서를 상대에게 밀어 돌려보냈다.“개인 배상 조항이 삭제되지 않으면 서명하지 않겠습니다.”잠시 후 투자사 대표는 계약을 철회하겠다고 선언하고 회의실을 나갔다.문이 닫히자 숨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제가 다 망친 건 아니죠?”윤세라가 나를 바라봤다.“사람을 묶어 두는 투자라면 받지 않는 게 낫습니다.”“직원들 월급은요?”“일 년 동안은 문제없습니다.”“그 뒤에는 제가 갚아야 하고요.”“그래서 당신을 법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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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화. 사라진 첫 주문

새 투자 없이 독립 법인을 운영하려면 현금 흐름부터 확보해야 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대형 유통사와 체결한 첫 독립 주문이었다.계약 규모는 법인의 석 달 운영비와 맞먹었다.서명 당일, 나는 전 직원과 함께 회의실에서 전자 계약 완료를 기다렸다.화면의 상태가 바뀌었다.[계약 취소.]담당자가 즉시 유통사에 연락했다.답은 짧았다.“제품 안전 인증이 보류됐답니다.”“이미 통과한 인증이잖아요.”“추가 검사 요청이 들어왔다고 합니다.”검사 기간은 최소 한 달.주문이 한 달 밀리면 자금 상환 일정부터 무너진다.나는 인증 기관으로 직접 향했다.담당자는 자료를 확인한 뒤 말했다.“한국 본사에서 성분 변경 가능성을 신고했습니다.”“본사에서요?”신고 문서에는 윤세라 대표의 전자서명이 들어 있었다.하지만 윤세라는 그런 문서를 보낸 적이 없다고 했다.서명이 도용된 것이다.보안팀 조사 결과, 과거 본사와 프라하가 공동으로 사용하던 인증 계정이 폐쇄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퇴사한 외부 컨설턴트가 계정에 접근한 흔적도 발견됐다.이번에는 거대한 배후나 경영권 음모가 아니었다.계약이 종료된 뒤에도 미지급 수수료가 남아 있다고 주장하던 업체가 압박을 위해 허위 신고를 넣은 것이었다.“신고를 취소하게 하면 되는 거죠?”법무 담당자가 고개를 저었다.“한 번 접수된 이상 검사는 진행해야 합니다.”숨이 막혔다.결백을 증명할 자료는 있는데, 절차 때문에 한 달을 기다려야 했다.“다른 방법은 없어요?”인증 담당자가 말했다.“긴급 재검사는 가능합니다. 다만 제품 전량을 별도 기관에 보내야 합니다.”비용은 컸다.그래도 한 달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았다.나는 긴급 재검사를 승인했다.문제는 결과가 나오는 삼 일 동안 유통사가 계약을 유지할지였다.유통사 대표와의 화상회의가 시작됐다.그는 냉정하게 말했다.“안전 문제 가능성이 있는 제품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성분은 변경되지 않았습니다.”“그걸 증명하는 것이 검사 아닙니까?”“삼 일만 기다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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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화. 승리의 대가

첫 주문이 출고된 날, 직원들은 작은 축하 파티를 열었다.샴페인이 터지고 창고 안에 박수가 울렸다.나는 웃고 있었지만 손은 계속 떨렸다.긴장이 풀린 뒤에야 몸이 반응하고 있었다.도현은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챘다.“집으로 갑시다.”“아직 직원들하고—”“법인장이 자리를 비워도 파티는 계속됩니다.”이번에는 반박하지 않았다.아파트에 도착하자 도현은 조명을 낮추고 내 재킷을 벗겨 주었다.테이블 위에는 검은 커프도, 안대도 없었다.대신 폭이 넓은 붉은 리본과 작은 종이 세 장이 놓여 있었다.“오늘은 뭐예요?”“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첫 번째 종이.[말하지 않고 안겨 있기.]두 번째.[주도권을 넘기고 모든 질문에 대답하기.]세 번째.[당신이 저를 통제하기.]나는 두 번째 종이를 골랐다.“확실합니까?”“네.”“오늘은 감정이 크게 흔들린 날입니다.”“그래서 말하고 싶어요.”도현은 의자에 나를 앉힌 뒤 붉은 리본을 손목에 감았다.매듭은 느슨했다.조금만 힘을 주면 스스로 풀 수 있었다.“왜 이렇게 약하게 묶어요?”“오늘의 목적은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그가 내 앞에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췄다.“도망가지 않고 대답하게 하는 겁니다.”첫 번째 질문.“검사 결과가 나쁘면 어떻게 하려고 했습니까?”“법인장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했어요.”“직원들에게는?”“손실을 제가 책임지겠다고 말하려고 했어요.”“혼자서?”나는 대답하지 못했다.도현의 손가락이 리본 위를 천천히 눌렀다.“또 혼자 책임지려고 했군요.”“제가 보증했으니까요.”“회사가 내린 결정이었습니다.”“그래도 최종 서명은 제가 했어요.”“그러면 실패했을 때 절차대로 책임지면 됩니다.”그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당신 삶까지 담보로 내놓는 것이 아니라.”목이 막혔다.계약도, 첫 주문도, 직원들의 생활도 모두 내 어깨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왜 그렇게까지 했습니까?”“제가 이 자리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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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화. 돌아갈 날짜

첫 주문이 성공한 뒤 프라하 법인은 빠르게 안정됐다.자금 상환 일정도 예상보다 앞당겨졌다.이사회는 독립 법인 전환을 정식으로 승인하면서, 내게 수정된 대표 계약서를 보냈다.임기 삼 년.하지만 일 년마다 재계약 여부를 선택할 수 있고, 서울 순환 근무도 보장됐다.개인 배상 조항은 완전히 삭제됐다.나는 계약서를 들고 도현에게 물었다.“이제 서명해도 될까요?”“제 허락을 묻는 겁니까?”“아니요.”나는 웃으며 펜을 들었다.“같이 결정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확인해 달라는 거예요.”도현은 계약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문제없습니다.”“그럼 서명할게요.”펜촉이 종이에 닿기 직전, 휴대전화가 울렸다.서울 본사 인사위원회였다.윤세라 대표가 건강상의 이유로 한 달간 자리를 비우게 됐고, 임시 대표 대행 후보로 도현이 추천됐다는 내용이었다.“대표로 다시 돌아가요?”“한 달 동안만입니다.”“거절할 수도 있어요?”“네.”도현은 쉽게 답하지 않았다.대표 자리에서 내려온 뒤 그는 기다리는 삶을 배웠다.하지만 회사를 이끄는 일 역시 여전히 그의 일부였다.“하고 싶어요?”“조금.”내가 계약서를 내려놓았다.“그럼 해요.”“당신은 프라하에 남아야 합니다.”“한 달이잖아요.”“그 한 달 동안 만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이번에는 제가 기다릴게요.”도현의 눈빛이 흔들렸다.“괜찮습니까?”“안 괜찮을 수도 있어요.”나는 솔직하게 말했다.“그래도 도현 씨가 하고 싶은 걸 포기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도현은 임시 대표직을 받아들였다.나는 독립 법인 대표 계약서에 서명했다.같은 날, 우리는 서로 다른 회사의 대표가 됐다.서울로 돌아가기 전날 밤, 도현은 작은 상자를 내게 건넸다.안에는 새로운 카드 한 장이 들어 있었다.앞면에는 숫자 16.뒷면에는 날짜를 적는 빈칸이 두 개 있었다.“이건 무슨 카드예요?”“다시 만날 날짜를 정하는 카드입니다.”“명령 카드 아니에요?”“이번에는 약속에 가깝습니다.”나는 첫 번째 빈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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