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현이 서울로 돌아간 다음 날, 프라하 법인에 신규 유통사 실무진이 방문했다.대표로 온 사람은 강현우였다.한국계 독일인으로, 유럽 대형 편집숍 세 곳의 유통을 담당하는 본부장이었다.“한서윤 대표님 맞으시죠?”그는 내민 손을 쉽게 놓지 않았다.“생각보다 훨씬 젊으시네요.”“계약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을 텐데요.”“능력도 중요하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중요하죠.”강현우는 웃으며 손을 거뒀다.첫인상은 가벼웠지만 협상은 날카로웠다.그가 요구한 것은 유럽 지역 독점 판매권이었다.“독점은 어렵습니다.”“대신 최소 주문량은 두 배로 보장하겠습니다.”“판매가 예상보다 낮으면요?”“그 위험은 우리가 부담합니다.”조건만 보면 나쁘지 않았다.하지만 특정 유통사에 전 지역을 맡기면 프라하 법인의 협상력이 약해질 수 있었다.“검토 후 답변드리겠습니다.”“그럼 저녁 식사하면서 이어서 이야기하시죠.”“회의실에서 충분합니다.”“업무 이야기만 하자는 뜻입니다.”그의 말투에는 업무 이상의 의미가 섞여 있었다.나는 일정을 확인했다.법무 담당자도 함께 참석하는 조건으로 저녁 미팅을 수락했다.문제는 도현에게 그 사실을 말했을 때였다.영상 통화 속 그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강현우 본부장과 저녁을 먹습니까?”“법무 담당자도 같이 가요.”“그 사람이 먼저 제안했고요?”“네.”“회의실에서는 안 된답니까?”“도현 씨.”내가 이름을 부르자 그가 입을 다물었다.“업무 미팅이에요.”“알고 있습니다.”“그런데 왜 심문하듯 물어요?”도현은 잠시 시선을 내렸다.“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렇습니다.”의외로 빠른 인정이었다.“제가 그 사람이랑 밥 먹는 게요?”“그 사람이 업무 외의 의도를 가진 것처럼 들립니다.”나도 그렇게 느꼈지만 도현의 질투에 맞장구치고 싶지는 않았다.“제가 알아서 선을 지킬게요.”“당신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알아요.”“하지만 상대까지 믿을 이유는 없습니다.”그 말에는 반박할 수 없었다.
Last Updated : 2026-08-1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