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린 전무는 공동 프로젝트 킥오프 회의에 정확히 정각에 들어왔다.검은 정장과 짧게 정리한 머리, 흔들림 없는 걸음.그녀는 나보다 먼저 도현에게 손을 내밀었다.“오랜만이네요, 차 의장님.”도현은 악수를 짧게 받았다.“한 전무.”“여전히 공식적이시네요.”그녀는 웃으며 내 쪽을 바라봤다.“한서윤 대표님, 결혼 축하드립니다.”“감사합니다.”“도현 씨가 결혼할 줄은 몰랐어요.”도현 씨.그 호칭이 귀에 걸렸다.도현은 바로 정정했다.“회사에서는 차 의장이라고 부르십시오.”“예전 습관이 남았네요.”한예린은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았다.회의가 시작되자 개인적인 분위기는 사라졌다.그녀는 폴란드 정부와의 협상 경험이 있었고, 현지 금융기관과도 연결돼 있었다.“상주 조건은 대표 한 명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의사결정자를 요구한 겁니다.”예린이 말했다.“공동 책임 체계를 제안하면 한 대표의 체류 기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가능성이 있습니까?”내 질문에 그녀가 화면을 넘겼다.“차 의장이 기술·투자 책임자로 분기마다 현지에 체류한다는 조건을 붙이면요.”나는 도현을 바라봤다.“도현 씨도 바르샤바에 가야 한다는 뜻이에요?”“회사에서는 의장님.”그가 낮게 정정했다.예린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결혼하신 뒤에도 구분이 엄격하군요.”“필요한 구분입니다.”도현의 목소리는 차가웠다.회의 결과, 한예린의 제안으로 상주 조건 재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사업적으로는 최선이었다.그런데도 마음 한쪽이 불편했다.회의 후 예린이 도현에게 낡은 만년필을 건넸다.“이거 아직 기억해요?”도현의 표정이 굳었다.“어디서 찾았습니까?”“예전 사무실을 정리하다 나왔어요.”“버리십시오.”“아버님이 주신 건데요?”차명희 이사장이 아니라 도현의 돌아가신 아버지가 선물한 물건이었다.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예린은 만년필을 도현의 서류 위에 내려놓았다.“제가 가지고 있을 이유는 없으니까.”그녀가 떠난 뒤에도 도현은 만년필을 집지 않
Last Updated : 2026-08-16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