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운영센터의 첫 출근 날, 나는 한예린과 같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공동 대표라는 호칭, 아직 어색하죠?”“조금요.”“저도 그래요.”문이 열리자 직원들이 두 줄로 서 있었다. 전략·운영은 나, 재무·지배구조는 예린이 책임지는 체제였다.문제는 첫 회의부터 발생했다.르노아 측 임원이 조직도를 띄웠다.“대외적인 대표자는 한 명이어야 합니다.”화면에는 한예린의 이름만 올라가 있었다.“합의된 구조와 다릅니다.”내가 말하자 그는 차분하게 답했다.“한서윤 대표는 네 도시를 오가야 합니다. 상주하는 한 전무가 외부 대표를 맡는 편이 효율적입니다.”“상주 시간이 직급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예린도 내 편에 섰다.“공동 서명 없이는 주요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습니다.”하지만 르노아 측은 이미 보도자료까지 준비해 두었다.[파리 운영센터 초대 대표 한예린.]내 이름은 운영 총괄로 내려가 있었다.회의를 중단시키고 법무팀을 불렀다.그날 오후 도현에게 상황을 알리자 첫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당장 서울 본사 명의로 항의하겠습니다.”“잠깐만요.”“합의된 직함을 일방적으로 바꿨습니다.”“제 자리예요. 제가 되찾을게요.”도현의 표정이 굳었다.“돕지 말라는 겁니까?”“필요하면 요청할게요.”“그동안 잘못된 기사가 먼저 퍼질 수 있습니다.”“그래도 도현 씨 회사 힘으로 눌렀다는 말은 듣기 싫어요.”그는 한동안 침묵했다.“알겠습니다.”말은 받아들였지만 손가락이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었다.“불안해요?”“화가 납니다.”“저한테요?”“당신 이름을 지운 사람들에게.”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오늘은 참아요.”“회사에서도, 집에서도?”“회사에서는요.”도현의 시선이 천천히 짙어졌다.“집에서는 감추지 않아도 됩니까?”“저를 벌하지만 않으면요.”그날 밤 도현은 커프 대신 검은 장갑만 꺼냈다.“오늘은 손대기 전에 전부 묻겠습니다.”“왜요?”“당신의 자리를 빼앗긴 분노를 당신에게 쏟고 싶지 않으니까.”장갑 낀 손이 내
Last Updated : 2026-08-1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