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Chapter 161 - Chapter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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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화. 네 번째 좌표

바르샤바 공장 착공이 안정된 지 한 달째.프라하 법인으로 또 하나의 제안이 도착했다.이번에는 프랑스 물류기업 르노아 그룹이었다. 프라하와 바르샤바에서 생산한 제품을 서유럽 전역에 유통하는 대신, 파리에 공동 운영센터를 설립하자는 내용이었다.조건은 좋았다.유통 비용은 18% 줄고, 배송 기간은 평균 이틀 단축된다. 바르샤바 공장이 완공되기 전에 계약을 체결하면 초기 시스템 구축비도 르노아 측이 부담한다.그러나 마지막 조건이 문제였다.[공동 운영센터의 초대 책임자는 한서윤 대표로 한다.]나는 화면을 읽다가 노트북을 덮었다.서울, 프라하, 바르샤바.세 도시만으로도 일정표는 이미 엉켜 있었다.여기에 파리까지 추가되면 도현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더 줄어들 것이다.“왜 안 보여 줍니까?”맞은편에 앉아 있던 도현이 물었다.“아직 제안서예요.”“표정을 보니 단순한 제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나는 노트북을 다시 열어 그에게 돌렸다.도현은 빠르게 문서를 읽었다.마지막 장에서 손이 멈췄다.“파리 상주 기간은?”“초기 여섯 달.”“그 뒤에는?”“월 일주일 정도.”도현의 표정이 바로 굳었다.“거절하십시오.”나는 한숨을 내쉬었다.“이번에도 감정부터 나가네요.”“네.”그는 부정하지 않았다.“당신이 또 다른 도시로 가는 제안은 검토하고 싶지 않습니다.”“회사에는 필요한 일이에요.”“다른 책임자를 세우면 됩니다.”“르노아가 저를 지명했어요.”“그 이유가 무엇입니까?”그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낮아졌다.나는 그 표정을 보고 바로 알아챘다.“또 남자부터 생각해요?”“르노아 그룹의 협상 책임자가 남자인지 아직 묻지 않았습니다.”“눈으로 묻고 있잖아요.”도현은 입을 다물었다.실제로 제안서를 보낸 사람은 앙투안 르노아였다. 그룹 창업주의 손자이자 유럽 유통 부문 총괄.사진은 첨부돼 있지 않았지만 이름만으로도 도현의 시선이 차가워졌다.“결혼 여부도 확인했습니까?”“안 했어요.”“나이는?”“그걸 제가 왜 알아요?”“당신을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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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화. 파리의 협상자

앙투안 르노아는 예상보다 젊었다.서른 중반 정도의 나이, 지나치게 반듯한 정장과 사람을 오래 바라보는 회색 눈.그는 회의실에 들어온 도현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았다.“차도현 의장님도 오셨군요.”“공동 프로젝트의 기술·전략 책임자입니다.”도현은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다.앙투안은 웃으며 내게 시선을 돌렸다.“하지만 오늘 제가 가장 만나고 싶었던 분은 한서윤 대표입니다.”도현의 턱이 아주 조금 굳었다.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제안서의 독점 해지 조항부터 수정하겠습니다.”앙투안은 자리에 앉으며 서류를 펼쳤다.“첫인사보다 계약이 먼저군요.”“업무 미팅이니까요.”“그래서 더 마음에 듭니다.”말은 가벼웠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도현의 펜 끝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그러나 끼어들지는 않았다.두 시간 동안 협상은 팽팽하게 이어졌다.나는 일방적인 위약금 조항 삭제를 요구했고, 앙투안은 대신 운영센터 책임자 임기를 일 년으로 늘리자고 했다.“저를 고정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내 질문에 그가 기대앉았다.“회사의 숫자만 본 건 아닙니다.”“그럼요?”“대표님의 인터뷰를 전부 봤습니다.”도현의 시선이 올라왔다.앙투안은 계속 말했다.“위기가 생길수록 앞으로 나오는 사람. 그런 책임자가 필요합니다.”“개인에 의존하는 계약은 안정적이지 않습니다.”“그래서 후임자 육성 조건을 넣을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초대 책임자도 다른 사람이어야 합니다.”앙투안이 웃었다.“대표님은 자신이 필요한 자리를 왜 자꾸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 합니까?”질문이 예상보다 날카로웠다.나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도현이 입을 열었다.“필요한 자리와 묶어 두려는 자리는 다릅니다.”앙투안의 시선이 도현에게 향했다.“남편으로서 말씀하시는 겁니까?”“전략 책임자로서 말합니다.”“표정은 남편 쪽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회의실 공기가 얼어붙었다.나는 도현의 손등을 손가락으로 눌렀다.그가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도록 보내는 신호였다.도현은 숨을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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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화. 남편이 없는 회의

다음 협상은 내가 혼자 참석하기로 했다.정확히는 법무팀과 재무 담당자가 함께했지만, 도현은 명단에서 빠졌다.“제가 빠지는 것이 협상에 유리합니까?”그가 물었다.“앙투안이 자꾸 도현 씨 반응을 이용해요.”“알고 있습니다.”“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직접 끝낼게요.”도현은 반대하지 않았다.그러나 회의 당일 아침부터 표정이 좋지 않았다.“끝나면 연락하십시오.”“네.”“장소가 바뀌면 바로—”그가 스스로 말을 멈췄다.“또 확인하려고 했습니다.”“이번에는 참았네요.”“쉽지 않습니다.”나는 그의 볼에 짧게 입을 맞췄다.“다녀올게요.”앙투안은 도현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노골적으로 분위기를 바꿨다.회의 장소도 본사 회의실이 아니라 호텔 최상층 라운지였다.법무팀이 함께였기에 문제는 없었지만, 테이블 위에는 계약서보다 와인과 식사가 먼저 준비돼 있었다.“업무 미팅이라고 했습니다.”“긴 협상에는 식사도 필요합니다.”나는 와인을 치우게 했다.“계약부터 보죠.”이번 수정안에서는 독점 해지 조항이 삭제돼 있었다.운영센터 책임자 임기도 여섯 달로 돌아왔다.대신 새로운 조항이 추가됐다.[파리 센터 대표자는 르노아 그룹의 공식 행사와 해외 일정에 동행한다.]“이건 삭제하세요.”“브랜드 간 공동 홍보에 필요합니다.”“업무 범위를 넘어섭니다.”앙투안은 한동안 나를 바라보다 물었다.“차 의장님이 싫어할 것 같습니까?”“제 판단입니다.”“그 말도 자주 하시더군요.”“사실이니까요.”그가 서류를 덮었다.“솔직히 말하겠습니다.”법무팀 직원들이 긴장했다.“저는 회사뿐 아니라 한서윤 대표 개인에게도 관심이 있습니다.”가슴이 싸늘해졌다.“그 말은 협상 책임자로서 부적절합니다.”“알고 있습니다.”“그러면 왜 합니까?”“숨긴 채 계약하는 편이 더 부정직하니까.”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오늘 협상은 끝입니다.”앙투안도 따라 일어났다.“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계약 조건을 불리하게 만든 적은 없습니다.”“대표자를 특정하고 공식 동행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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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화. 닫힌 문 앞에서

새벽 두 시가 넘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도현에게서 연락은 없었다.사과 메시지도, 설명도 없었다.그가 침묵으로 공간을 지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더 답답해졌다.나는 결국 호텔 복도로 나왔다.도현의 방 앞까지 갔지만 벨을 누르지는 못했다.그 순간 안에서 문이 열렸다.도현은 정장을 벗지도 않은 채 서 있었다.“어떻게 알았어요?”“문 앞에서 발소리가 멈췄습니다.”“안 잤어요?”“잠들 수 없었습니다.”그는 문을 더 열었지만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하지 않았다.내가 선택하기를 기다리는 듯했다.“이야기만 할게요.”“알겠습니다.”방 안에는 꺼내 놓은 도구도, 술도 없었다.도현은 창가에서 가장 먼 의자에 앉았다.“왜 그렇게 말했어요?”“그 사람이 당신을 원한다고 말한 순간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그래서 제가 연결될 이유를 찾는다고 생각했어요?”“생각하지 않았습니다.”“그럼요?”“두려움이 생각보다 먼저 말했습니다.”도현은 주먹을 쥐지 않았다.대신 손바닥을 펼쳐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당신이 계약을 계속 검토하면 그 사람과 계속 만나야 한다는 사실만 보였습니다.”“저를 못 믿은 건 아니고요?”“당신은 믿습니다.”“맨날 그 말 하면서 상대가 나타나면 저한테 화내요.”“맞습니다.”이번에도 변명하지 않았다.“저는 상대를 믿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당신이 떠날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겁니다.”그의 눈빛이 내려갔다.“그래서 당신도 의심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숨이 조금씩 풀렸다.화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무엇과 싸우는지는 보였다.“앙투안이 뭐라고 했는지 전부 말할게요.”“말하지 않아도 됩니다.”“제가 말하고 싶어요.”나는 회의 내용을 처음부터 설명했다.개인적인 관심을 인정한 것.동행 조항이 그 이유였다는 것.결혼하지 않았어도 가능성이 없다고 답한 것.도현은 마지막 대답에서 눈을 감았다.“왜요?”“안심해서 그렇습니다.”“그럼 믿으면서도 확인은 필요했네요.”“네.”그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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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화. 제외된 대표

소피 르노아는 첫 화상회의부터 차갑고 단호했다.“앙투안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 사과드립니다.”“공식 사과는 받았습니다.”“재발을 막기 위해 프로젝트 구조를 변경하겠습니다.”화면에 수정 조직도가 나타났다.파리 운영센터 책임자 자리에서 내 이름이 사라져 있었다.대신 르노아 그룹 소속 임원이 들어갔다.“한서윤 대표는 프라하와 바르샤바 생산만 담당하십시오.”“운영센터 계약을 처음 설계한 건 저희입니다.”“하지만 이해충돌이 발생했습니다.”“누구의 이해충돌이죠?”소피는 흔들리지 않았다.“앙투안이 대표님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보였습니다. 함께 일하게 두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앙투안 총괄이 책임자에서 빠졌잖아요.”“그가 그룹 주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그럼 앙투안 총괄을 제한해야지 왜 제가 제외됩니까?”소피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대표님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입니다.”그 말이 가장 불쾌했다.“제 의견은 물으셨습니까?”“위험을 사전에 차단한 겁니다.”“저를 배제하는 방식으로요?”도현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어제의 감정적인 충돌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직접 해결하기로 했다.하지만 소피는 더 강한 조건을 내놓았다.“파리 운영센터에 참여하고 싶다면 한서윤 대표는 르노아 그룹과 개인 행동강령을 체결해야 합니다.”“내용은요?”외부 행사 단독 참석 금지.앙투안과의 개인 연락 금지.모든 출장 일정을 르노아 측 윤리팀에 보고.사실상 내가 문제를 일으킨 사람처럼 관리받는 계약이었다.“거절합니다.”“그럼 운영센터 참여도 어렵습니다.”“계약 전체를 재검토하겠습니다.”나는 회의를 종료했다.도현에게 말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번에는 바로 연락했다.“소피 르노아가 저를 운영센터에서 빼려고 해요.”도현의 첫 질문은 예상과 달랐다.“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습니까?”“남고 싶어요.”“이유는?”“제가 만든 사업이니까.”“그럼 되찾아야 합니다.”“앙투안 때문에 싫다고 할 줄 알았는데.”“싫습니다.”도현은 솔직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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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화. 보이지 않는 매수

소피가 보낸 자료에는 여러 투자회사의 명단이 적혀 있었다.그중 세 곳은 이미 프라하 법인의 소액 채권을 사들이고 있었다.표면상 서로 다른 회사였지만 최종 투자자는 모두 르노아 그룹과 연결돼 있었다.앙투안은 파리 운영센터 계약을 지렛대로 삼아 프라하 법인의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개인적인 관심과 사업적 목적이 동시에 있었던 것이다.“왜 이 자료를 저한테 보내는 거죠?”파리 회의실에서 소피에게 물었다.“앙투안을 막기 위해서입니다.”“가족인데요?”“그래서 더 막아야 합니다.”소피는 냉정했다.“그 아이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회사까지 이용합니다.”“그룹 내부 문제를 저희 회사에 떠넘기는 건가요?”“아닙니다. 함께 해결하자는 겁니다.”그녀가 새로운 계약서를 내밀었다.르노아 그룹이 보유한 프라하 법인 관련 채권을 전부 매각한다.파리 운영센터는 독립 합작법인으로 전환한다.대신 나는 앙투안의 접근과 발언 내용을 공식 진술해야 한다.“회사 내부 징계에 제 진술을 사용하려는 거군요.”“네.”“언론에 공개됩니까?”“원한다면 비공개로 유지하겠습니다.”조건은 합리적이었다.하지만 앙투안이 개인적인 감정을 고백한 순간까지 문서로 남겨야 했다.내 사생활이 다시 회사 절차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불편했다.“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오늘 안에 결정해 주세요.”회의실 밖으로 나오자 도현에게 전화가 와 있었다.나는 받지 않고 메시지를 보냈다.[회의 끝나고 연락할게요.]곧바로 답이 왔다.[알겠습니다.]예전 같으면 어디인지, 누구와 있는지 물었을 것이다.오히려 아무것도 묻지 않으니 내가 먼저 전화하고 싶어졌다.결국 호텔 방에 들어가자마자 영상통화를 걸었다.“왜 바로 안 물어봐요?”도현이 화면 속에서 눈썹을 올렸다.“무엇을?”“협상 어떻게 됐는지.”“당신이 끝나고 연락한다고 했습니다.”“궁금하지 않아요?”“매우 궁금합니다.”“그런데 참았어요?”“당신이 말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으니까.”나는 소피의 조건을 설명했다.도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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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화. 돌아온 앙투안

앙투안의 공식 직무는 정지됐다.르노아 그룹은 채권 매입을 중단했고, 파리 합작법인 설립도 예정대로 진행됐다.모든 일이 정리된 줄 알았다.하지만 프라하로 돌아온 첫날, 회사 로비에서 앙투안을 다시 마주쳤다.그는 혼자였다.“어떻게 들어왔죠?”“방문 신청을 했습니다.”“승인한 적 없습니다.”비서가 곧바로 보안팀을 불렀다.앙투안은 서류봉투 하나를 내밀었다.“사과하러 왔습니다.”“공식 사과는 이미 받았어요.”“그룹이 쓴 사과문 말고, 제가 직접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들을 생각 없습니다.”나는 지나치려 했다.그가 한 걸음 막아섰다.“당신을 이용한 것은 사실입니다.”몸이 굳었다.“처음에는 회사가 목적이었습니다. 프라하 법인의 성장 가능성을 봤고, 대표님이 계약에 가장 강한 연결점이라고 판단했습니다.”“그래서 개인 감정을 섞었습니까?”“반대입니다.”앙투안의 표정에서 처음으로 여유가 사라졌다.“가까이 접근하다 실제로 감정이 생겼습니다.”“그 말도 듣고 싶지 않아요.”“알고 있습니다.”그는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이 안에는 제가 매입한 모든 채권의 포기 서류가 있습니다.”“소피 총괄과 이미 정리했어요.”“그룹 소유분 외에 개인적으로 확보한 것이 더 있습니다.”가슴이 싸늘해졌다.소피가 파악하지 못한 채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대가가 뭡니까?”“없습니다.”“믿으라고요?”“믿지 않아도 됩니다. 법무팀이 확인하십시오.”보안팀이 도착하자 앙투안은 순순히 물러났다.그가 돌아서기 전 마지막으로 말했다.“제가 당신을 선택한 방식이 잘못됐다는 건 압니다.”“저를 선택한 적 없어요.”나는 단호하게 말했다.“제 회사를 사려고 했을 뿐이죠.”앙투안의 얼굴이 굳었다.“그 차이를 이제 알겠습니다.”그가 떠난 뒤 법무팀이 서류를 확인했다.실제로 무상 포기 문서였다.그가 개인 투자회사를 통해 매입한 지분 전환권은 7%.그대로 두었다면 향후 경영권을 흔들 수 있는 규모였다.도현에게 연락하자 그는 첫 비행기로 프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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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화. 사라진 7퍼센트

앙투안이 포기한 7%의 지분 전환권은 예상보다 큰 문제를 남겼다.포기 서류가 유효하려면 프랑스와 체코 양국의 공증이 필요했다.그런데 공증 절차를 시작하기 직전, 원본 중 한 장이 사라졌다.법무팀 금고에 보관된 문서였다.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다.출입 권한을 가진 사람은 네 명.법무팀장, 재무담당자, 내 비서, 그리고 나.도현은 보고를 듣자마자 물었다.“한예린 전무도 접근할 수 있습니까?”“없어요.”“르노아 측은?”“원본 위치도 몰라요.”내가 대답하자 그는 더 묻지 않았다.예전처럼 주변 사람부터 의심하지 않으려는 듯했다.보안기록을 확인하던 중 이상한 장면이 발견됐다.문서가 사라진 시간, 내 출입카드가 금고실에서 사용됐다.하지만 나는 그때 바르샤바와 화상회의 중이었다.복제된 카드였다.오래전 회사 침입 사건이 떠올랐다.등골이 서늘해졌다.“또 누군가 내부에 있는 건가요?”비서가 물었다.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도현이 화면을 확대했다.“카드 복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그럼요?”“예비카드가 사용됐습니다.”대표실 비상 금고에 보관하던 예비 출입카드.최근 사무실 이전 과정에서 물품관리 업체가 금고를 옮겼다.조사 결과 업체 직원이 카드 사진을 찍어 임시 복제본을 만들었다.목적은 경영권 음모가 아니었다.앙투안 측과 연관된 투자 브로커가 문서 한 장을 가져오면 돈을 주겠다고 접근한 것이었다.앙투안은 자신의 행동이 아니라고 부인했다.실제로 브로커는 그가 직무 정지되기 전에 고용한 사람이었다.지시가 취소되지 않은 채 움직인 것이다.“문서는 어디 있습니까?”경찰 조사에서 직원이 대답했다.“전달하기 전에 겁이 나서 숨겼습니다.”원본은 물품창고 천장 안에서 발견됐다.사건은 하루 만에 해결됐지만 회사 분위기는 무너졌다.직원들은 또 내부자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서로를 의심했다.나는 전 직원을 회의실에 모았다.“이번 사건은 특정 직원의 개인 범행입니다.”“대표 카드가 복제됐는데 보안 책임은 누가 집니까?”날카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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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화. 멈춘 세 도시

파리 프로젝트가 유예되자 연쇄적으로 문제가 생겼다.바르샤바 공장 설비 운송 일정도 밀렸고, 프라하 창고에는 출고를 기다리는 제품이 쌓였다.르노아 그룹은 계약 위반 가능성을 언급했다.이사회에서는 내가 무리하게 세 도시 확장을 추진했다는 비판이 나왔다.“한서윤 대표의 판단이 지나치게 개인적이었습니다.”최우진 상무가 말했다.“보안 사고 하나로 전체 사업을 멈춘 것은 과도한 대응입니다.”“대표 출입카드가 복제되고 원본 계약서가 탈취됐습니다.”내가 반박했다.“그렇다면 보안업체를 교체하면 됩니다.”“사고 경로가 완전히 차단됐다는 확신이 없습니다.”“그 확신을 기다리다 시장을 놓칠 수 있습니다.”회의는 팽팽했다.결국 이사회는 파리 프로젝트 재개 여부를 표결에 부치기로 했다.결과는 찬성 세 표, 반대 세 표.마지막 결정권은 도현에게 넘어갔다.기술·전략 의장으로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해야 했다.회의실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도현은 내 얼굴을 보지 않았다.“파리 프로젝트 재개에 반대합니다.”가슴이 내려앉았다.최우진 상무가 물었다.“차 의장님도 보안 위험이 더 크다고 판단하신 겁니까?”“아닙니다.”도현은 자료를 펼쳤다.“현재 물류 구조로도 석 달간 손실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반면 보안체계 미정비 상태에서 합작법인을 시작하면 지분·계약 데이터가 추가로 노출될 수 있습니다.”그는 감정이 아니라 숫자로 설명했다.“따라서 석 달 유예가 합리적입니다.”표결은 최종 부결됐다.회의가 끝난 뒤 나는 먼저 회의실을 나왔다.도현이 따라왔지만 부르지 않았다.엘리베이터 안에서 내가 물었다.“저 때문에 반대한 거예요?”“아닙니다.”“한 치도요?”그는 잠시 침묵했다.“당신이 무너질까 걱정한 마음은 있습니다.”“그럼 역시 개인적인 판단도 섞였네요.”“하지만 자료가 반대 결론을 지지했습니다.”“만약 자료가 재개가 맞다고 했으면요?”도현은 대답하기 전 오래 생각했다.“재개에 표를 던졌을 겁니다.”“제가 반대해도요?”“네.”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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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화. 다시 움직이는 시간

석 달의 유예 기간 동안 우리는 모든 구조를 다시 만들었다.대표 출입카드는 생체 인증으로 전환했다.중요 계약서는 두 명 이상이 동시에 승인해야 열리는 전자금고에 보관했다.외부 업체 직원의 접근 권한은 시간 단위로 제한했다.프라하와 바르샤바, 파리의 보안 시스템도 하나로 통합했다.유예 종료를 일주일 앞두고 최종 점검이 열렸다.외부 감사 결과는 전 항목 적합.파리 프로젝트 재개 조건도 모두 충족했다.그러나 마지막 문제가 남았다.소피 르노아가 새로운 운영센터 대표 후보를 제안했다.한예린 전무였다.“왜 한 전무님이죠?”내 질문에 소피가 답했다.“재무와 지배구조를 모두 이해하고 있고, 르노아 그룹과 개인적 이해관계가 없습니다.”한예린은 화면 너머에서 차분히 말했다.“한 대표님이 원하지 않으면 거절하겠습니다.”사업적으로는 완벽한 후보였다.하지만 나는 파리 센터를 직접 설계했고, 다시 돌아갈 준비까지 해 왔다.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면 안전하지만, 내 역할은 줄어든다.도현은 아무 의견도 말하지 않았다.회의가 끝난 뒤 내가 물었다.“왜 아무 말도 안 해요?”“당신이 결정해야 하니까.”“도현 씨 의견은요?”“둘 다 합리적입니다.”“제가 가면 싫죠?”“네.”너무 빠른 대답에 웃음이 나왔다.“한 전무님이 가는 건요?”“그것도 완전히 좋지는 않습니다.”“왜요?”“당신이 만든 자리를 빼앗긴 것처럼 느낄 수 있으니까.”도현은 내 마음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제가 정해 주기를 원합니까?”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결국 고개를 저었다.“아니요.”“그럼 기다리겠습니다.”나는 이틀 동안 자료를 다시 검토했다.결론은 공동 대표 체제였다.한예린은 파리 센터의 재무·지배구조 책임자.나는 전략·운영 책임자.대신 상주 기간은 월 열흘로 줄이고, 여섯 달 후 현지 후임자에게 운영권을 넘긴다.소피는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명확한 권한 분리와 후임자 육성안을 보고 동의했다.파리 프로젝트는 다시 움직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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