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이 현관문을 닫자마자 말했다. “오늘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어.” 도현은 거실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시선만 들었다. “회의 길었습니까.” “세 시간.” 서윤은 가방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파리 쪽은 자기들 보고서가 급하다고 하고, 뮌헨은 다음 분기 예산 먼저 확정해달라고 하고, 프라하는 둘 다 기다리면 된다고 하고.” “카렐은?” “퇴근했어요.” “잘했군요.” “나도 알아.” 서윤은 구두를 벗었다. “그래서 나도 그냥 퇴근했어. 해결 안 된 거 그대로 두고.” 도현이 노트북을 닫았다. “잘했습니다.” 서윤은 그를 빤히 봤다. “오늘은 잔소리 안 하네.” “제가 왜 합니까.” “예전이면 업무가 머릿속에 남아 있냐고 물어봤을 것 같은데.” “남아 있습니까.” “엄청.” “그렇군요.” 끝이었다. 도현은 더 캐묻지 않았다. 서윤은 오히려 그게 이상해 거실로 들어왔다. “끝?” “무엇이.” “질문.” “더 듣고 싶으면 말하십시오.” “아니.” 도현은 다시 노트북을 들려다가 멈췄다. 서윤이 여전히 앞에 서 있었다. “왜.” “그냥.” “그냥?” “오늘 주인님 되게 얌전해서.” 도현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 “얌전하다.” “응.” “집에 들어온 지 삼 분 됐습니다.” “그래서?” 도현은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벌써 판단합니까.” 서윤이 웃었다. “그럼 아닌가 봐.” “모르겠습니다.” 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셔츠 소매를 한 번 접었다. 그리고 한 번 더. 서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의 팔로 내려갔다. 도현이 바로 알아챘다. “왜 봅니까.” “그냥.” “거짓말.” “팔 봤어.” “왜.” “소매 걷으니까.” 도현이 한 걸음 가까이 왔다. “좋습니까.” “응.” “많이?” 서윤이 웃었다. “왜 갑자기 캐물어.”
최신 업데이트 : 2026-09-11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