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이 회의실을 나온 건 오후 네 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카렐이 뒤에서 불렀다.“한 총괄.”“네.”“뮌헨 쪽에서 수정한 안 왔습니다.”서윤은 걸음을 멈췄다.“어디까지?”“예산은 그대로고, 일정만 일주일 늦췄습니다.”“이유는.”“현장팀이 먼저 요청했습니다.”서윤은 손을 내밀었다.“봐요.”카렐이 태블릿을 건넸다.서윤은 화면을 빠르게 훑었다.이전 같았으면 숫자를 다시 계산하고, 담당자 이름과 다른 도시의 일정까지 직접 확인했을 것이다.그런데 이번에는 중간에서 멈췄다.“이거 당신이 봤죠?”“네.”“문제?”“없습니다.”서윤은 태블릿을 돌려줬다.“그럼 됐어요.”카렐이 잠깐 멈칫했다.“끝입니까?”“왜.”“더 볼 줄 알았습니다.”“나도.”서윤이 웃었다.“근데 안 볼래.”“좋네요.”“또 평가.”“그럼 칭찬.”“그게 더 싫어요.”카렐이 웃었다.“알겠습니다. 아무 말도 안 하겠습니다.”서윤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뒤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한 총괄.”“또 뭐예요.”“오늘 저도 여섯 시 전에 갑니다.”“왜 나한테 보고해.”“예전 습관.”서윤은 눈을 가늘게 떴다.“그거 없애요. 오늘 그냥 가요. 말도 하지 말고.”“네.”이번에는 정말 끝이었다.*집에 들어왔을 때 도현은 거실 테이블에 종이를 펼쳐 놓고 있었다.“또 그림?”“네.”“이번엔 뭐예요?”“창문.”서윤이 옆에 앉았다.종이 위에는 큰 창과 낮은 벤치, 바깥으로 이어지는 작은 테라스가 있었다.“예쁘다.”“어디가.”“창문 큰 거.”“채광 때문에.”“벤치는?”“앉으려고.”“누가.”도현이 연필을 멈췄다.“누구든.”서윤이 웃었다.“주인님 그림에는 사람 잘 안 넣네.”“넣어야 합니까.”“아니.”도현은 다시 선을 그었다.서윤은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봤다.잠시 뒤 도현이 물었다.“왜 계속 봅니까.”“재밌어서.”“제가 그리는 게?”“응.”도현은 종이 위에 시선을 둔 채 말했다.“당신은 결과보다 제가
Last Updated : 2026-09-14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