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Capítulo 501 - Capítulo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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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화. 오백 번째 밤의 빈 페이지

도현이 새 스케치북을 산 건 이틀 뒤였다.서윤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식탁 위의 종이봉투를 발견했다.“이거 뭐야?”주방에서 물을 따르던 도현이 돌아봤다.“열어보십시오.”서윤이 봉투를 열었다.검은 표지의 스케치북.두껍지도, 크지도 않았다.여행 가방에 넣기 좋은 크기였다.옆에는 연필 세 자루와 작은 지우개가 들어 있었다.“벌써 샀어?”“준비물이라면서요.”“여행 아직 한 달 가까이 남았는데.”“미리 준비하면 안 됩니까?”서윤은 스케치북을 꺼냈다.표지를 넘기려다 멈췄다.첫 장은 아직 보지 않았다.“진짜 아무것도 안 그렸죠?”“네.”“첫 장 비어 있어?”“확인해보십시오.”서윤이 천천히 펼쳤다.새하얀 종이.아무것도 없었다.“좋아.”“뭐가 그렇게 좋습니까?”“내가 첫 장 정한다고 했잖아.”“그래서 비워뒀습니다.”서윤은 스케치북을 덮었다.“여행 갈 때까지 절대 그리면 안 돼.”“한 달 동안요?”“응.”“그럼 왜 지금 사라고 했습니까?”“기다리라고.”도현이 헛웃음을 흘렸다.“사진도 기다리고, 여행지도 기다리고, 이것도 기다립니까?”“응.”“제가 기다리는 게 많네요.”서윤이 그의 앞에 섰다.“싫어?”“아니요.”“그럼 됐어.”“대신 조건 하나.”“또?”도현이 스케치북을 가져가 서윤의 손 위에 다시 올려놓았다.“첫 장은 당신이 정하고.”“응.”“두 번째 장은 제가 정하겠습니다.”서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뭘 그릴지도?”“네.”“나한테 안 알려주고?”“그게 공평하지 않습니까?”잠깐 고민하던 서윤이 손을 내밀었다.“좋아.”도현이 그 손을 잡았다.“약속.”저녁을 먹은 뒤에도 스케치북은 식탁 한쪽에 그대로 있었다.서윤은 자꾸 그쪽을 봤다.“도현 씨.”“네.”“첫 장 뭐 그릴지 궁금하지?”“궁금합니다.”“힌트 줄까?”“이번에는 받겠습니다.”서윤이 조금 놀랐다.“왜 갑자기?”“계속 기다리기만 하면 재미없으니까요.”“그래?”서윤은 턱을 괴었다.“사람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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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화. 갑자기 참기 싫어진 순간

토요일 오후.서윤은 외출 준비를 하다 말고 옷장 앞에 서 있었다.“도현 씨.”거실에 있던 도현이 대답했다.“네.”“이거 이상해?”서윤이 방에서 나왔다.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정확히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검은색 얇은 니트였다.목선이 조금 깊게 파여 있었고 몸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붙었다. 아래에는 허리선이 드러나는 긴 스커트를 입었다.평소에도 충분히 입을 법한 옷이었다.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달랐다.머리는 대충 올려 묶었고, 귀 옆으로 잔머리가 몇 가닥 떨어져 있었다.화장도 아직 완성하지 않은 얼굴이었다.그런데 오히려 그게 문제였다.“도현 씨?”서윤이 다시 불렀다.도현의 시선이 느리게 올라왔다.“……안 이상합니다.”“근데 왜 그렇게 봐?”“그냥.”“뭐가 그냥이야.”서윤은 거울 앞으로 가서 옆모습을 확인했다.“너무 붙나?”손으로 허리 부분을 한번 정리했다.그 사소한 동작에 도현의 시선이 다시 멈췄다.서윤이 거울 너머로 그걸 발견했다.“왜.”“서윤.”“응?”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오늘 꼭 나가야 합니까?”서윤이 돌아봤다.“갑자기?”“네.”“왜?”도현은 대답하지 않고 가까이 왔다.그제야 서윤이 그의 표정을 제대로 봤다.평소와 달랐다.조금 전까지 편하게 앉아 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시선이 짙어져 있었다.서윤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설마.”도현이 그녀 앞에 멈췄다.“뭡니까.”“지금 나 때문에 그래?”“네.”대답이 너무 빨랐다.서윤이 오히려 당황했다.“……진짜?”“네.”“나 아직 준비도 다 안 했는데.”“그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뭐가?”도현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훑었다.대충 묶은 머리.완성하지 않은 화장.몸선을 따라 붙은 검은 니트.아무 생각 없이 자신을 보며 웃는 얼굴.“너무 아무렇지 않게 나오니까.”“내가?”“네.”서윤이 피식 웃었다.“나 그냥 옷 물어보러 나온 건데.”“압니다.”“근데 갑자기?”도현이 한 걸음 더 가까워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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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화. 기다리지 않은 도현

도현이 침실 문을 닫았다.서윤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거실에서부터 이어진 분위기가 재미있었다. 평소라면 자신이 한마디 던지고, 도현이 반응하고, 그 반응을 보며 다시 자신이 움직였을 것이다.그런데 오늘은 달랐다.서윤이 먼저 그의 셔츠를 잡으려는 순간이었다.도현이 그 손을 잡아 내렸다.“어?”서윤이 올려다봤다.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신 서윤이 다시 움직이기 전에 허리를 감싸 자신에게 끌어당겼다.입술이 바로 닿았다.“도현 씨…….”대답도 없었다.서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입술이 막혔다.이번에는 서윤도 웃지 못했다.조금 전까지 자신이 놀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흐름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도현은 오늘 서윤에게 다음을 묻지 않았다.어떻게 하고 싶은지.자신이 무엇을 해도 되는지.어느 쪽을 원하는지.대신 서윤의 반응을 보고 움직였다.서윤이 밀어내지 않으면 그대로 가까워졌고, 자신을 붙잡으면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그 차이가 생각보다 컸다.서윤의 손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도현은 그 손을 내려다보지도 않았다.그저 서윤을 끌어안은 채 다시 입을 맞췄다.서윤은 어느 순간 자신이 도현의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오늘 진짜 다르네.”겨우 떨어진 입술 사이로 말했다.도현은 짧게 대답했다.“ 뭐가달라? ”입모양으로 “도현씨.“라 했지만 이번에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서윤을 침대 끝에 앉히고 자신은 그 앞에 섰다.서윤이 고개를 들었다.“도현 씨.”도현은 말대신 서윤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서윤은 그 손길을 따라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그것뿐이었다.굳이 다음을 묻지 않았다.도현도 설명하지 않았다.다시 가까워졌다.서윤은 자연스럽게 그를 받아들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사라지고 있었다.오늘은 그냥 따라가도 됐다.오히려 그게 좋았다.서윤이 무심코 도현의 셔츠 단추에 손을 가져갔다.그 순간 도현이 먼저 그녀의 손을 잡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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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화. 말보다 빠른 손

서윤은 도현이 내민 손을 잡았다.“어디 가?”아까는 묻지 않겠다고 해놓고 습관처럼 튀어나온 말이었다.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맞잡은 손을 당겼다.서윤이 몸을 일으키자 그대로 침대 밖으로 이끌었다.“도현 씨?”이번에도 설명은 없었다.도현이 향한 곳은 드레스룸이었다.문을 열더니 옷장 앞에 멈췄다.서윤이 그의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뭐 하게?”도현은 옷걸이에 걸린 옷들을 훑었다.그리고 하나를 꺼냈다.조금 전 서윤이 입고 있었던 검은 니트와 어울리는 얇은 재킷이었다.“이거 입어요.”“나가게?”“네.”“지금?”“네.”서윤이 시계를 봤다.원래 외출하려던 시간에서는 이미 한참 벗어나 있었다.“어디 가는데?”도현이 재킷을 펼쳐 직접 서윤의 어깨에 걸쳐줬다.“나가면 압니다.”서윤의 눈이 커졌다.“뭐야.”도현은 대답하지 않고 흐트러진 서윤의 머리를 봤다.조금 전까지 단정하게 묶여 있던 머리가 엉망이었다.도현이 머리끈을 풀었다.검은 머리카락이 어깨 아래로 떨어졌다.“잠깐.”서윤이 거울을 봤다.“나 이 상태로 어떻게 나가.”도현이 빗을 집었다.“앉아요.”서윤이 웃음을 터뜨렸다.“오늘 진짜 끝까지 도현 씨 마음대로 하려고?”도현은 의자를 빼줬다.대답은 없었다.서윤은 결국 앉았다.“알았어.”거울 속으로 도현과 눈이 마주쳤다.“해봐.”도현은 서윤의 머리를 천천히 빗어 내렸다.서윤은 가만히 거울을 바라봤다.아까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듯 가까워졌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 맞나 싶었다.지금은 머리카락이 걸리지 않도록 끝부터 조심스럽게 빗고 있었다.“도현 씨.”“네.”“아까랑 너무 다른데.”“뭐가요?”“손.”도현의 움직임이 잠깐 멈췄다.서윤이 거울 속 그를 보며 웃었다.“아까는 그렇게 급하더니 지금은 엄청 조심하잖아.”“머리는 당기면 아프니까요.”“그건 알아?”“압니다.”서윤이 웃었다.도현은 머리를 완전히 묶지 않았다.한쪽을 귀 뒤로 넘겨주고 자연스럽게 풀어두었다.그리고 서윤의 어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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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4화. 집에 도착하고도

현관문이 닫혔다.서윤이 신발을 벗으며 먼저 물었다.“오늘 주도권 아직 도현 씨 거야?”도현이 차 키를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돌려달라고 안 했잖습니까.”서윤의 움직임이 잠깐 멈췄다.그러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맞네.”밖에서는 도현이 정한 곳을 따라갔다.입을 옷도, 머리도, 향도 그가 골랐다.어디에 앉을지조차 도현이 먼저 정했다.그런데 집에 돌아오자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서윤이 가방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도현은 주지 않았다.“왜.”가방을 선반에 내려놓은 도현이 서윤의 손을 잡았다.“이쪽으로 와요.”이번에는 거실도, 침실도 아니었다.주방이었다.“여긴 왜?”도현은 대답하지 않고 냉장고를 열었다.생수 한 병을 꺼내 컵에 따랐다.그리고 서윤 앞에 놓았다.“마셔요.”서윤이 컵과 도현을 번갈아 봤다.“나 목마르다고 안 했는데.”“아까 카페에서 물 거의 안 마셨습니다.”“그것도 봤어?”“네.”서윤은 순순히 컵을 들었다.절반 정도 마시고 내려놓자 도현이 다시 컵을 밀었다.“더.”서윤의 눈썹이 올라갔다.“진짜 오늘 끝까지 이럴 거야?”도현은 아무렇지 않았다.서윤은 결국 남은 물까지 마셨다.“됐죠?”그제야 도현이 컵을 가져갔다.서윤이 웃었다.“나 지금 약간 억울한데.”“왜요?”“분명 내가 도현 씨 마음대로 해보라고 했는데.”“네.”“너무 잘하잖아.”도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이제 알았습니까?”서윤이 침실로 가려는데 도현이 손목을 잡았다.강하게 붙든 것도 아니었다.그런데 서윤은 바로 멈췄다.도현이 먼저 욕실 쪽을 가리켰다.“씻고 나와요.”“지금?”“네.”“도현 씨는?”“그다음.”서윤이 가만히 그를 봤다.“같이 씻자는 것도 아니고?”도현은 웃기만 했다.“알았어.”서윤은 두 걸음쯤 가다가 다시 돌아봤다.“근데 나 일부러 오래 씻으면?”“기다리죠.”“먼저 자면?”“안 잡니다.”“내가 안 나오면?”“나올 때까지 기다립니다.”서윤이 피식 웃었다.“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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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화. 시계를 보지 않은 밤

서윤은 결국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시간을 확인하지 않겠다고 한 건 자신이었다.그런데 침대 옆 탁자에 놓인 화면이 자꾸 신경 쓰였다.“도현 씨.”“네.”“지금 몇 시야?”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봤지?”“안 봤습니다.”“거짓말.”“정말입니다.”서윤이 그의 품에서 몸을 조금 일으켰다.“그럼 확인해봐.”도현은 오히려 휴대폰을 더 멀리 밀었다.“안 됩니다.”“왜?”“확인하지 말라고 했잖습니까.”“그건 아까고.”“아직 오늘입니다.”서윤의 눈이 가늘어졌다.“자정 지났을 수도 있잖아.”“그럴 수도 있죠.”“그럼 주도권 끝난 거야.”도현이 서윤을 바라봤다.“확인하고 싶습니까?”서윤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확인하면 정말 끝이었다.도현이 그걸 알아챘는지 웃었다.“안 보고 싶은 것 같은데요.”“……조용히 해.”서윤은 다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도현의 팔이 자연스럽게 허리를 감쌌다.“오늘만이야.”“알겠습니다.”“내일부터는 나도 마음대로 할 거야.”“그러십시오.”너무 순순한 대답이었다.서윤이 고개를 들었다.“아쉬워한다며.”“아쉽죠.”“근데 왜 붙잡지도 않아?”도현은 잠시 서윤을 내려다봤다.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겼다.서윤의 몸이 그대로 가까워졌다.“이렇게?”서윤이 웃음을 참았다.“그건 좀 마음에 드네.”잠시 후 도현이 먼저 침대에서 일어났다.서윤이 바로 그를 쳐다봤다.“어디 가?”대답 대신 도현이 손을 내밀었다.서윤은 그 손과 얼굴을 번갈아 봤다.“또 따라오라고?”도현이 기다렸다.서윤은 결국 손을 올렸다.“알았어.”도현이 손을 잡아 일으켰다.이번에 향한 곳은 주방이었다.서윤은 식탁 의자에 앉혀졌다.“나 배 안 고픈데.”도현은 냉장고를 열었다.“저는 조금 고픕니다.”“아.”“같이 먹어요.”“뭔데?”도현은 남아 있던 딸기와 요거트를 꺼냈다.서윤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이 밤에 나 데리고 나온 게 이거 먹으려고?”도현은 딸기를 씻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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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화. 참지 않은 쪽

서윤이 도현을 소파 쪽으로 끌었다.조금 전 자신이 말했다.하고 싶은 사람이 먼저 하는 거라고.그 말을 가장 먼저 써먹은 건 도현이었다.서윤이 소파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허리를 감싸는 팔이 들어왔다.“어.”몸이 돌아갔다.도현이 바로 앞에 있었다.“도현 씨.”이번에는 대답보다 입맞춤이 먼저였다.서윤은 순간 눈을 크게 떴다가 곧 그의 셔츠를 움켜쥐었다.어제까지와 또 달랐다.주도권을 누가 갖는지 확인하지 않았다.누가 먼저 시작해야 하는지도 정하지 않았다.도현은 그냥 자신이 원하는 순간 움직였다.입술이 떨어졌다.서윤이 숨을 고르기도 전에 도현의 입술이 턱선을 스쳤다.목 가까이 내려온 온기에 서윤의 손가락이 움찔했다.“잠깐…….”도현이 멈췄다.서윤은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왜 멈춰.”“잠깐이라면서요.”“그건…….”서윤이 헛웃음을 흘렸다.“나도 모르고 나온 말이야.”도현의 눈빛이 달라졌다.서윤은 그걸 보자 오히려 더 가까이 붙었다.“계속해.”이번에는 정말 망설임이 없었다.***도현의 입술이 다시 목선에 닿았다.서윤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평소보다 몸의 감각이 선명했다.도현이 어디에 닿는지.얼마나 가까이 있는지.자신의 호흡이 어떻게 흐트러지는지까지.“도현 씨.”낮아진 목소리가 자신에게도 낯설었다.도현이 고개를 들었다.서윤은 그의 얼굴을 보다가 손을 뻗어 셔츠 단추 하나를 풀었다.도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윤이 두 번째 단추에 손을 가져가자 이번에는 도현이 그 손을 잡았다.“왜.”도현은 서윤의 손을 자신의 목 뒤로 가져갔다.그 순간 서윤이 웃었다.“내가 하지 말라고?”“제가 하려고요.”짧은 대답.서윤의 입술 끝이 올라갔다.“그래.”오늘은 그것도 좋았다.서윤은 그대로 두 팔을 그의 목에 둘렀다.도현이 허리를 끌어안았다.몸이 가까워졌다.니트 너머로 느껴지는 체온 때문에 서윤이 짧게 숨을 삼켰다.“도현 씨.”“네.”“오늘 왜 이렇게 적극적이야.”도현이 서윤의 눈을 똑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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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화. 아침까지 남은 열기

커튼 사이로 빛이 들어왔을 때 서윤이 먼저 눈을 떴다.처음에는 몇 시인지도 몰랐다.그저 몸을 움직이려다 자신의 허리를 감고 있는 팔 때문에 멈췄다.도현이었다.“……도현 씨.”대답이 없었다.서윤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가까운 거리에서 잠든 도현의 얼굴이 보였다.어젯밤의 일이 떠오르자 서윤은 괜히 입술을 꾹 눌렀다.“진짜 안 참았네.”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순간.“그러라고 했잖습니까.”서윤이 흠칫했다.“깼어?”도현이 눈을 떴다.“방금.”“다 들었네.”“네.”서윤은 이불을 끌어올렸다.“그럼 못 들은 척해야지.”“왜요?”“민망하니까.”도현이 웃으며 서윤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서윤은 그 손길을 가만히 받다가 말했다.“근데.”“네.”“어제는 좋았어.”도현의 손이 멈췄다.서윤은 피하지 않고 그를 봤다.“도현 씨가 나 계속 원하는 게 보이는 거.”이번에는 웃음기 없는 말이었다.“예전에는 도현 씨가 너무 참을 때가 있었잖아.”“그랬죠.”“내가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리고.”서윤이 손을 뻗어 그의 턱을 가볍게 만졌다.“근데 나 이제 그거 안 해도 될 것 같아.”“뭘요?”“계속 먼저 허락해주는 거.”서윤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덧붙였다.“내가 싫으면 말할 수 있으니까. 평소에는 도현 씨도 그냥 하고 싶은 걸 보여줘.”도현이 그녀를 바라봤다.“어제처럼?”“응.”서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근데 매일 저러면 나 체력 없어.”도현이 결국 웃었다.“그건 조절하겠습니다.”“그건 또 바로 조절한대.”“당신이 말했으니까요.”“알았어.”서윤이 다시 그의 품으로 들어갔다.“오늘은 그냥 안아줘.”도현의 팔이 곧바로 그녀를 감쌌다.늦은 아침.서윤은 도현의 셔츠 하나를 걸친 채 주방으로 나왔다.커피를 내리던 도현의 손이 멈췄다.서윤이 그걸 바로 발견했다.“왜.”“아무것도 아닙니다.”“거짓말.”서윤이 일부러 그의 앞을 지나 냉장고를 열었다.“또 보고 있잖아.”“네.”이번에는 순순히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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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화. 한 칸 더 생긴 자리

“여기부터 채우기.”서윤이 적은 글씨 옆에는 작은 사각형들이 줄지어 있었다.그리고 그 아래.오래 살아서 모자라게 만들기.도현은 한참 그 문장을 보고 있었다.서윤이 괜히 민망해져 종이를 잡아당겼다.“그만 봐.”도현이 종이 끝을 잡았다.“왜요?”“그냥 쓴 거야.”“안 지울 겁니다.”“누가 지운대?”“방금 가져가려고 했잖습니까.”“민망해서 그런 거거든.”서윤이 손을 놓았다.도현은 다시 연필을 들었다.사진 벽 옆에 작은 선 하나를 그었다.서윤이 바로 고개를 내밀었다.“뭐 추가해?”“조금만요.”“보여줘.”“잠깐.”“내가 요구사항 추가해준 건데 왜 나한테 숨겨.”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몇 번의 선이 더해졌다.벽 끝.바닥에서 조금 올라온 위치에 길고 낮은 수납장이 생겼다.그 위로는 사진.아래에는 여러 개의 서랍.서윤이 물었다.“이건?”“사진에 안 들어가는 것들.”“뭐?”도현이 《사이》 쪽을 한번 바라봤다.“여행에서 가져오는 것들.”강릉에서 가져온 작은 돌.엽서.네 컷 사진.둘이 함께 만든 물건들.앞으로 어디에선가 또 가져올지도 모르는 작은 것들.서윤의 표정이 달라졌다.“사진 벽 아래에?”“네.”“좋다.”이번에는 대답이 빨랐다.서윤이 연필을 가져갔다.수납장 첫 번째 칸에 작은 글씨를 썼다.여행.두 번째 칸에는,둘이 만든 것.세 번째 칸 앞에서는 손이 멈췄다.도현이 물었다.“거긴요?”“아직 몰라.”“비워둘 겁니까?”“응.”서윤은 빈칸을 그대로 남겼다.“나중에 생기겠지.”도현도 더 채우지 않았다.오후 네 시가 넘어갈 무렵.서윤은 소파에 엎드린 채 도현이 그리는 걸 구경하고 있었다.“주방은?”“아직.”“내 작업실은?”“그것도.”“도현 씨 작업실.”“나중에.”서윤이 턱을 괴었다.“그럼 지금 뭐 하는데?”“현관.”“현관?”서윤이 벌떡 일어났다.“사진 벽 하다가 왜 갑자기 현관이야?”도현은 종이를 한 장 더 꺼냈다.이번에는 아주 간단한 스케치였다.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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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화. 이름 없는 서랍

입맞춤이 끝났는데도 서윤은 도현의 옷깃을 놓지 않았다.도현도 물러나지 않았다.둘 사이에 겨우 한 뼘 남짓한 거리가 생겼다.서윤이 먼저 웃었다.“요즘 도현 씨 때문에 이상해졌어.”“제가 뭘 했습니까?”“전에는 키스 끝나면 그냥 끝났잖아.”“지금은요?”서윤이 그의 옷깃을 조금 더 당겼다.“한 번 더 하고 싶어지잖아.”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현이 다시 입을 맞췄다.서윤이 웃으며 그의 어깨를 잡았다.이번에는 짧지 않았다.조금 전까지 둘이 보고 있던 미래의 집도,사진이 걸릴 벽도,이름을 붙이지 않은 서랍도 잠시 잊었다.도현의 손이 허리를 감싸자 서윤은 자연스럽게 더 가까이 붙었다.입술이 떨어진 뒤에도 이마가 맞닿아 있었다.“침실 갈까?”서윤이 물었다.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그녀의 손을 잡았다.“아.”서윤이 웃었다.“또 그냥 데려가려고?”도현이 걸음을 옮겼다.서윤도 순순히 따라갔다.“대답도 안 하네.”“이미 따라오고 있잖습니까.”“그러네.”서윤은 손을 빼지 않았다.오히려 손가락을 단단히 맞물렸다.침실에 들어오자 서윤이 먼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도현은 바로 옆에 앉지 않았다.서윤 앞에 서서 한동안 그녀를 내려다봤다.“왜.”도현의 손이 서윤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 넘겼다.“그냥요.”“또 보는 거야?”“네.”서윤은 이제 피하지 않았다.오히려 턱을 조금 들어 그의 시선을 받았다.“봐.”짧은 한마디였다.도현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서윤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좋아?”“많이.”“얼마나?”도현이 가까이 몸을 숙였다.서윤의 입술 바로 앞에서 멈췄다.“굳이 말해야 압니까?”서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아니.”그 순간 도현이 입을 맞췄다.서윤의 손이 그의 어깨를 타고 올라갔다.도현은 서두르지 않았지만 망설이지도 않았다.서윤이 좋아한다고 말했던 바로 그 방식이었다.원하는 순간에는 먼저 가까워지고,끌어안고 싶을 때는 끌어안았다.서윤 역시 그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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