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Chapter 61 - Chapter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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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대표 해임안

월요일 아침.출근하자마자 회사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직원들이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내가 다가가자 대화가 끊겼다.자리로 돌아오니 민지가 조심스럽게 휴대전화를 내밀었다.“한 대리님, 이거 봤어요?”사내 공지였다.**[금일 오전 10시 임시 주주총회 개최.]**안건은 짧았다.**대표이사 해임의 건.**나는 화면을 두 번이나 확인했다.“이게 갑자기 왜?”“나도 방금 봤어.”민지가 목소리를 낮췄다.“공동 브랜드 출시 연기 건이랑 대표님이 한 대리님하고 교제하는 것도 문제 삼았대.”순간 손끝이 차가워졌다.출시를 사흘 미룬 건 내가 제안했다.도현은 그걸 승인했다.그리고 결과적으로 첫 물량은 두 시간 만에 모두 팔렸다.그런데 그 과정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었다.휴대전화가 울렸다.도현이었다.[대표실로 올라올 수 있습니까?]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대표실에 들어가자 도현은 이미 정장을 갖춰 입고 있었다.책상 위에는 주주총회 자료가 펼쳐져 있었다.“진짜예요?”“네.”“왜 미리 말 안 했어요?”“나도 오늘 아침에 정식 안건을 받았습니다.”나는 맞은편에 앉았다.“이유가 뭐예요?”도현이 자료 한 장을 내 앞으로 밀었다.해임 사유는 세 가지였다.공동 브랜드 출시 연기로 인한 단기 손실.대표와 직원의 교제로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그리고 주요 의사결정이 대표 개인의 판단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나는 두 번째 항목에서 시선이 멈췄다.“결국 저도 들어가 있네요.”“우리 관계가 들어가 있는 겁니다.”“그게 그거잖아요.”“아닙니다.”도현이 단호하게 말했다.“당신 개인의 잘못으로 만들지 마십시오.”나는 입을 다물었다.도현이 손가락으로 다른 서류를 짚었다.“우리가 작성한 인사 권한 조정안도 제출했습니다.”내 평가와 승진에서 도현이 빠지고, 대표 직속 업무가 아닌 이상 내 업무 배정에도 관여하지 않기로 했던 문서였다.“HR 확인도 끝났습니다.”“그럼 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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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마지막 한 표

대표실 문을 열자 도현이 창가에 서 있었다.재킷은 벗어 둔 채였다.테이블 위에는 주주총회 자료가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나는 문을 닫자마자 물었다.“어떻게 됐어요?”도현이 나를 돌아봤다.“부결됐습니다.”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진짜요?”“네.”“얼마 차이로요?”그가 잠시 침묵했다.“거의 없었습니다.”도현이 태블릿을 내밀었다.최종 집계 결과가 떠 있었다.**해임 찬성 49.6%.****해임 반대 50.4%.**나는 숫자를 두 번이나 확인했다.“이게 뭐예요.”0.8퍼센트 차이.조금만 달랐어도 결과가 뒤집힐 수 있었다.“마지막에 의결권을 행사한 주주가 있었습니다.”“누구요?”“오랫동안 회사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던 초기 투자자입니다.”“대표님 편이었어요?”도현은 고개를 저었다.“내 편이라기보다 회사 쪽이었습니다.”그 답이 오히려 마음에 걸렸다.“무슨 뜻이에요?”도현이 소파에 앉았다.“해임에는 반대했지만, 지금 체제를 그대로 두는 데도 반대했습니다.”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조건이 있었어요?”“네.”도현이 한 장짜리 문서를 내 앞으로 밀었다.**[경영 투명성 및 이해충돌 관리 개선안.]**내용은 생각보다 단순했다.대표가 직원의 인사 평가와 승진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범위를 줄이고,대규모 계약은 일정 금액 이상일 경우 내부 검토위원회를 거치도록 한다는 내용.그리고 대표와 임직원 사이에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는 사안은 별도로 기록한다.나는 문서를 읽다 도현을 바라봤다.“우리 때문에 생긴 거예요?”“우리만 때문은 아닙니다.”“그래도 영향은 있었잖아요.”“있었습니다.”도현은 부정하지 않았다.“대표에게 권한이 너무 집중돼 있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있었습니다.”나는 문서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읽었다.“받아들일 거예요?”“네.”대답이 너무 빨랐다.“이렇게 바로?”“틀린 내용이 아니니까.”“예전 같았으면?”도현이 잠시 웃었다.“내 회사를 내가 왜 마음대로 못 하냐고 했겠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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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취소된 주문

해외 주문 취소 금액은 생각보다 컸다.전체 초도 물량의 약 40퍼센트.출시 직후 반응은 좋았지만, 해외 유통사 세 곳이 동시에 발주 수량을 줄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다음 날 긴급회의가 열렸다.화면 너머 루카의 표정도 평소보다 진지했다.“뮌헨 쪽에서 계약 안정성을 다시 검토하고 있습니다.”“해임안은 부결됐잖아요.”내 말에 루카가 고개를 저었다.“그건 압니다.”화면에 계약 검토 요청서가 띄워졌다.“문제는 현재 대표가 누구냐가 아닙니다. 경영 구조가 앞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대표 권한 분산.이해충돌 관리 강화.해외 유통사 입장에서는 계약 승인 절차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었다.한 임원이 말했다.“가격을 낮춰서라도 물량을 유지하는 게 낫습니다.”“반품 조건도 완화할 수 있습니다.”“광고비 지원까지 붙이면 다시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나는 수정안을 넘겨보다가 고개를 저었다.“이 조건을 다 받아들이면 매출은 유지돼도 수익성이 무너집니다.”“주문 자체가 없어지는 것보다는 낫죠.”“처음부터 우리가 불안하다고 인정하는 모양이 될 수도 있습니다.”회의실이 조용해졌다.도현은 내 쪽을 보지 않았다.공동 브랜드의 실무 결정은 이미 내가 맡고 있었다.나는 화면에 유통사 세 곳의 요청을 띄웠다.“직접 만나겠습니다.”“독일에 다시 가겠다는 겁니까?”“네.”“출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습니다.”“그래서 지금 가야 합니다.”나는 자료를 넘겼다.“세 곳 모두 취소 사유가 조금씩 다릅니다. 한 곳은 경영 안정성, 한 곳은 반품 조건, 한 곳은 향후 생산 보증을 문제 삼고 있어요.”가격만 깎아 줘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삼 일만 다녀오겠습니다.”루카가 물었다.“삼 일 안에 되돌릴 수 있겠습니까?”“모르겠습니다.”나는 솔직하게 답했다.“대신 무엇을 바꾸면 돌아오는지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그제야 도현이 입을 열었다.“인원은?”“저, 민석 과장, 법무팀 한 명.”“좋습니다.”그 한마디로 결정됐다.회의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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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부정하지 않는 사람

뮌헨에서의 첫 번째 협상은 예상보다 길어졌다.회의실에는 세 유통사 담당자와 우리 쪽 법무 담당자, 민석 과장, 루카가 함께 앉아 있었다.나는 준비해 온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먼저 세 가지를 확인하겠습니다.”회사 경영 구조가 변경되더라도 기존 계약은 유지된다는 법무 검토 의견.생산 중단 상황에 대비한 대체 공급 계획.그리고 출시 연기의 원인이 됐던 포장 인쇄 오류에 대한 재발 방지 자료.첫 번째 유통사 담당자가 서류를 넘겼다.“차도현 대표가 교체돼도 이 계약은 유지됩니까?”“네.”“누가 보장하죠?”“계약 당사자는 차도현 대표 개인이 아니라 세림홀딩스입니다.”나는 법무팀이 준비한 자료를 밀어 놓았다.“대표 변경만으로 계약 효력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두 번째 담당자가 물었다.“한서윤 씨는 계속 실무 책임자를 맡습니까?”“현재는 그렇습니다.”“차 대표와 교제 중인데도요?”회의실이 잠시 조용해졌다.민석 과장이 나를 바라봤다.나는 피하지 않았다.“네.”“그 관계 때문에 이 자리를 맡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그렇다면 제 경력보다 이번 프로젝트 결과를 보시는 게 빠르겠네요.”화면을 넘겼다.초도 물량 판매 실적.출시 연기 전후 품질 자료.뮌헨 생산시설 재검수 결과.그리고 유통사 측과 주고받은 실무 협상 기록까지.“제 업무가 부족하다면 그걸 이유로 계약을 재검토하십시오.”나는 상대를 똑바로 바라봤다.“하지만 누구와 교제하는지는 계약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세 번째 담당자가 팔짱을 꼈다.“관계를 부정할 생각도 없습니까?”“없습니다.”“회사에 불리해져도?”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회사가 요구한 적도 없는 거짓말을 제가 먼저 할 이유는 없습니다.”옆에 있던 법무 담당자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또한 당사는 이미 이해충돌 방지 조치를 시행 중입니다. 차도현 대표는 한서윤 대리의 평가와 승진 심사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관련 서류가 전달됐다.첫 번째 담당자가 한참 문서를 살폈다.“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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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돌아온 뒤의 판결

입국장을 빠져나오자 익숙한 얼굴이 가장 먼저 보였다.도현이었다.이번에도 혼자 나와 있었다.그런데 표정이 평소보다 단단했다.나는 캐리어를 끌고 다가갔다.“화났어요?”도현은 대답 대신 내 캐리어를 가져갔다.“차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화났네.”“네.”너무 바로 인정해서 오히려 할 말이 없어졌다.*차에 올라탔지만 도현은 바로 출발하지 않았다.운전대 위에 손을 올린 채 나를 바라봤다.“왜 그 계약안을 먼저 제안했습니까?”“시간이 없었어요.”“연락할 시간도?”나는 입을 다물었다.사실 없었던 건 아니었다.도현이 반대할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대표님이 싫어할 것 같았어요.”“그래서 묻지 않았습니까?”“네.”도현의 표정이 더 굳었다.“서윤 씨.”“알아요.”“뭘 압니까?”“제가 싫어했던 방식이라는 거.”그가 중요한 일을 혼자 판단할 때마다 내가 했던 말이 있었다.내가 반대할까 봐.걱정할까 봐.떠날까 봐.그런 이유로 내 의견을 들을 기회부터 없애지 말라고.이번에는 내가 그랬다.“미안해요.”도현은 바로 넘어가지 않았다.“무엇이?”나는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대표님이 반대할 거라고 제가 먼저 결론 내린 거.”그의 시선이 조금 누그러졌다.“그리고?”“설명하고 설득할 기회도 안 준 거.”“맞습니다.”“그래도 제안 자체는 후회 안 해요.”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나도 동의합니다.”“네?”“계약안은 합리적입니다.”나는 어이없어 그를 쳐다봤다.“그럼 왜 이렇게 화내요?”“안이 틀려서 화난 게 아니니까.”도현이 시동을 걸었다.“당신이 내 대답을 미리 정했다는 게 싫었습니다.”그 말에는 반박할 수 없었다.“다음에는 먼저 말할게요.”“내가 반대해도?”“설득할게요.”“그래도 반대하면?”나는 잠시 고민했다.“제 권한 안의 일이면 제가 결정하고.”“네.”“대표 승인이 필요한 일이면 끝까지 싸워야죠.”도현의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그게 낫습니다.”“싸우는 게 좋아요?”“당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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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직무정지

최문성 회장은 해임안이 부결된 뒤에도 물러서지 않았다.이번에는 법원이었다.**[대표이사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서류를 읽던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이게 받아들여지면 어떻게 돼요?”“결정 내용에 따라 대표 업무가 일시적으로 제한될 수 있습니다.”도현은 놀랄 만큼 차분했다.“얼마나 걸려요?”“빠르면 며칠 안에도 결정될 수 있습니다.”“그동안은?”“정상적으로 출근합니다.”도현이 서류를 덮었다.“아직 아무 결정도 나오지 않았으니까.”나는 그의 얼굴을 살폈다.“안 무서워요?”“무섭습니다.”이번에도 숨기지 않았다.“그래도 출근은 해야죠.”*회사에 도착하자 분위기는 다시 무거워져 있었다.긴급 임원회의까지 잡혔다.안건은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대표 권한대행 지정이었다.재무담당 부대표 윤석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법원 결정이 갑작스럽게 나오면 주요 계약과 결재가 중단될 수 있습니다.”도현이 자료를 넘겼다.“그래서 권한대행 지정 절차만 준비하면 됩니다.”“일부 권한은 미리 위임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아직 직무정지 결정이 나오지 않았습니다.”도현의 대답은 단호했다.“결정 전에 대표 권한을 넘길 이유는 없습니다.”“회사 안정을 위한 겁니다.”“그렇다면 절차를 준비하십시오.”도현이 윤석진을 바라봤다.“권한은 결정이 나온 뒤 넘기겠습니다.”회의는 거기서 끝났다.*오후에는 공동 브랜드 후속 물량 회의가 있었다.회의실로 향하던 중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한서윤 대리.”윤석진이었다.“네, 부대표님.”“해외 주문은 전부 복구됐다죠?”“네.”“대표 승인 전에 계약 변경안까지 제시했다고 들었습니다.”“협상안을 제시한 겁니다. 최종 계약은 내부 승인 절차를 거쳤고요.”그가 나를 잠시 바라봤다.“계속 프로젝트 책임자를 맡을 생각입니까?”“제가 교체된다는 결정이 있었습니까?”“아직은 없습니다.”“그럼 계속 맡겠습니다.”윤석진이 낮게 웃었다.“대표가 바뀌어도?”“프로젝트 책임자는 대표 개인이 아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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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권한대행의 조건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회사는 평소처럼 돌아가야 했다.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오전 임원회의의 안건은 하나였다.**대표 직무정지 결정에 대비한 권한대행 지정.**도현도 참석했지만 자신의 직무와 직접 관련된 안건인 만큼 결정 과정에는 관여하지 않았다.재무담당 부대표 윤석진이 먼저 자료를 띄웠다.“법원의 결정이 나온 뒤 준비를 시작하면 늦습니다.”화면에는 비상 경영 계획이 떠 있었다.“권한대행이 필요한 상황에 대비해 주요 업무의 연속성을 확보해야 합니다.”한 임원이 물었다.“윤 부대표가 권한대행을 맡겠다는 뜻입니까?”“현재 재무와 투자 현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저라고 생각합니다.”다른 임원이 말을 받았다.“최근 최문성 회장과 별도로 만났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주요 주주와 소통하는 건 재무 담당자로서 필요한 업무입니다.”나는 프로젝트 관련 자료를 들고 회의에 참석해 있었다.처음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다 화면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 순간 눈에 걸리는 항목이 있었다.**[공동 브랜드 사업 축소 검토.]**나는 자료를 다시 확인했다.“질문 있습니다.”윤석진이 나를 바라봤다.“이건 임원회의입니다.”“제 담당 프로젝트와 관련된 내용입니다.”그때 도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실무 책임자로 참석한 사람입니다. 관련 내용은 설명을 듣는 게 맞습니다.”윤석진의 표정이 굳었다.나는 화면을 가리켰다.“사업 축소의 근거가 뭡니까?”“해외 계약 변동성이 큽니다.”“취소됐던 주문은 전부 복구됐습니다.”“대표 관련 위험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그 위험 때문에 사업 자체를 줄인다는 건가요?”“회사 전체를 봐야 한다는 뜻입니다.”나는 준비해 온 자료를 열었다.출시 이후 판매량.재주문 물량.뮌헨 유통사 세 곳의 계약 복구 현황.향후 예상 수익까지.“현재 수치로는 축소보다 유지 쪽이 수익성이 높습니다.”윤석진이 나를 바라봤다.“그건 단기 실적입니다.”“맞습니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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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대표가 아닌 하루

직무정지 신청이 기각된 다음 날.도현은 정말로 휴가를 냈다.이번에는 열이 난 것도 아니었다.아침부터 멀쩡한 얼굴로 주방에 서 있었다.“오늘 회사 안 가요?”“네.”나는 출근 준비를 하다 말고 그를 쳐다봤다.“왜요?”“쉬려고 합니다.”“도현 씨가요?”“그렇게 놀랄 일입니까?”“네.”도현이 커피를 내려 내 앞에 놓았다.정장도 아니었다.흰 셔츠에 편한 바지.회사에서 보던 차도현 대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법원에서 말했잖아요.”“뭘요?”“대표직이 내 전부는 아니라고.”도현이 자신의 커피를 들었다.“그 말이 진짜인지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나는 피식 웃었다.“그래서 하루 동안 백수 체험?”“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그럼 전업 남자친구.”도현의 눈썹이 올라갔다.“그건 조금 낫군요.”나는 가방을 챙겼다.“그럼 전업 남자친구는 오늘 뭐 하는데요?”“저녁을 준비하겠습니다.”발걸음이 멈췄다.“직접?”“네.”“배달 아니고?”“직접.”불안했다.“소화제 사 올까요?”“출근하십시오.”도현이 내 가방을 건넸다.현관을 나서기 전 그가 말했다.“한서윤 대리.”나는 돌아봤다.“회사에서는 일에만 집중하십시오.”“대표님 오늘 휴가인데요?”“그렇군요.”도현이 잠시 생각하더니 정정했다.“그럼 남자친구로 말하겠습니다.”“뭔데요?”“다녀와요.”처음 듣는 평범한 인사였다.나는 웃으며 대답했다.“다녀올게요.”*회사에서는 윤석진 부대표와 관련된 내부 확인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하지만 그건 감사와 인사 쪽에서 처리할 일이었다.나는 공동 브랜드 후속 물량에 집중했다.오후 세 시쯤 휴대전화가 울렸다.도현에게 사진이 한 장 와 있었다.새까맣게 탄 프라이팬이었다.[문제가 생겼습니다.]웃음이 터졌다.민지가 나를 쳐다봤다.“왜 웃어요?”“아무것도 아니야.”나는 책상 아래로 휴대전화를 내려 답장했다.[불은 껐어요?][네.][창문은요?][열었습니다.]잠시 뒤.[프라이팬은 살릴 수 있습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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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후임 대표 후보

월요일 아침.전문경영인 후보 면담을 위해 외부와 해외 지사에서 온 후보들이 차례로 회사를 찾았다.그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사람은 윤세라였다.해외 지사에서 십 년 가까이 근무했고, 적자를 기록하던 사업을 흑자로 전환한 경력도 있었다.로비에서 도현과 마주친 그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오랜만이네요, 차 대표.”“오랜만입니다.”악수는 짧았다.특별한 감정이 보이는 인사도 아니었다.그런데 두 사람이 서로를 오래 알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나는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탔다.굳이 의미를 붙이고 싶지는 않았다.문제는 내가 아니라 주변이었다.“윤세라 상무, 대표님이랑 원래 아는 사이래.”“집안끼리도 친했다던데?”“예전에 결혼 얘기도 있었다는 소문 있던데.”점심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말이 하나씩 붙었다.나는 모니터만 바라봤다.그러다 옆에서 민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서윤 씨.”“응.”“괜찮아요?”“뭐가?”“아니, 그냥.”나는 손을 멈췄다.“나한테 확인 안 된 이야기 전해 주지 않아도 돼.”민지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그걸로 끝났다.궁금하면 당사자에게 물으면 됐다.*점심 무렵 누군가 내 자리 앞에 섰다.“한서윤 대리님?”고개를 들자 윤세라가 서 있었다.“네.”“시간 괜찮으면 커피 한잔하시겠어요?”사내 카페로 내려갔다.윤세라는 차를 주문한 뒤 내 맞은편에 앉았다.“제가 차 대표 후임 후보 중 한 명으로 검토되는 게 불편합니까?”예상보다 직접적이었다.“업무적으로는 아닙니다.”“개인적으로는요?”나는 잠시 생각했다.“조금은요.”윤세라가 웃었다.“솔직하시네요.”“괜찮다고 거짓말할 필요는 없으니까요.”“차 대표와 제가 결혼할 뻔했다는 소문 때문입니까?”이번에는 내가 그녀를 바라봤다.“그런 이야기가 있긴 하더라고요.”“과장된 이야기예요.”윤세라는 찻잔을 내려놓았다.“양가에서 서로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온 적은 있습니다. 그게 전부예요.”“두 분은요?”“둘 다 거절했습니다.”대답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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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같은 집, 다른 자리

윤세라가 후임 후보로 경영회의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회사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졌다.그렇다고 대표가 둘이 된 것은 아니었다.대표는 여전히 차도현이었다.윤세라는 주요 회의에 참석해 회사의 사업 구조와 의사결정 과정을 파악했고, 특히 자신이 오래 맡아 온 해외 사업 쪽 검토에 참여했다.그리고 공동 브랜드 프로젝트에도 그녀가 들어왔다.첫 회의가 시작되기 전, 윤세라가 내게 말했다.“한서윤 대리.”“네.”“한 가지는 미리 정리하죠.”그녀가 자료를 내려놓았다.“차 대표와의 관계는 당신의 업무 평가에 고려하지 않겠습니다.”“네.”“반대로 그것 때문에 일부러 더 낮게 평가하지도 않을 겁니다.”나는 그녀를 바라봤다.“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윤세라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좋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괜히 더 엄격하게 대하는 것 역시 공정한 평가는 아니었다.내가 보여 줘야 하는 건 하나였다.일.*이번 안건은 유럽 추가 생산 라인 선정이었다.후보는 기존 뮌헨 공장과 프라하 신규 공장.뮌헨은 이미 한 차례 품질 문제를 수정한 경험이 있었고 안정적인 관리가 가능했다.반면 프라하는 비용이 낮고 향후 생산량 확대가 쉬웠다.도현은 회의에서 뮌헨 쪽에 무게를 뒀다.“이미 검증을 끝낸 라인입니다. 초기 위험을 다시 감수할 이유가 적습니다.”윤세라는 반대 의견을 냈다.“하지만 장기 비용을 보면 프라하가 유리합니다. 생산량이 늘어날 경우 차이는 더 커집니다.”두 사람 모두 틀린 말은 아니었다.문제는 최종 실무안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나라는 것이었다.*퇴근 후에도 머릿속에서 숫자가 떠나지 않았다.식탁에 노트북을 올려놓자 도현이 맞은편에 앉았다.“자료를 더 볼 겁니까?”“조금만요.”그의 시선이 화면으로 향했다.“뮌헨과 프라하 중—”나는 바로 노트북을 덮었다.도현이 말을 멈췄다.“왜요?”“집에서는 업무 질문 안 하기.”“아.”도현이 뒤늦게 깨달은 얼굴을 했다.“미안합니다.”“대표님 의견은 회사에서 이미 들었어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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