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Chapter 41 - Chapter 50

420 Chapters

41화. 대표의 가장 가까운 사람

다음 날 아침.출근하자마자 민지가 내 자리로 왔다.“서윤 대리님.”어제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얼굴이었다.“잠깐 얘기해도 돼요?”나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었다.“응.”“어제 제가 올렸던 얘기들 다 지웠어요. 다른 사람들한테도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했고요.”“알겠어.”“그리고 정말 미안해요.”민지는 한참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저 때문에 대표님이 서윤 대리님한테 뭐라고 하신 건 아니죠?”나는 피식 웃었다.“왜 대표님이 나한테 뭐라고 해?”“그래도 회사잖아요. 대표님이랑 대리님이…….”그녀가 말을 흐렸다.나는 굳이 대신 완성해 주지 않았다.“내가 알아서 할게.”“네.”민지는 더 묻지 않고 자리로 돌아갔다.그 정도면 됐다.당장 예전처럼 편하게 대할 수는 없겠지만.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내가 천천히 정하면 됐다.*오전 열한 시.팀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비서실 직원이 나를 불렀다.“한서윤 대리님.”순간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다.“대표님께서 찾으십니다.”하필 지금.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업무 건인가요?”“네. 지난 프로젝트 보고서 관련입니다.”일부러 크게 말해 주는 것이 느껴졌다.나는 파일을 챙겨 대표층으로 올라갔다.*대표실 문을 열자 도현은 정말 일하고 있었다.책상 위에는 결재 서류가 잔뜩 놓여 있었다.“앉으십시오.”“진짜 업무였네요.”도현이 고개를 들었다.“실망했습니까?”“조금?”그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보고서부터 봅시다.”나는 맞은편에 앉아 파일을 펼쳤다.업무 이야기는 십 분 정도 이어졌다.수정할 부분을 확인하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긴 뒤 도현이 펜을 내려놓았다.“여기까지.”“끝이에요?”“업무는.”그 한마디에 괜히 긴장됐다.“그럼 이제 뭐예요?”도현은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어제 소문 때문에 불편한 일은 없었습니까?”“민지가 아침에 다시 사과했어요.”“받아줬습니까?”“사과는 들었어요.”“용서는?”“아직 모르겠어요.”도현이 짧게 고개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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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둘 다 지키는 방법

퇴근 시간이 되자 내가 먼저 도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지금 내려와요.]답장은 바로 왔다.[어디로 갑니까?][내려오면 알려 줄게요.]잠시 뒤.[알겠습니다.]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며 웃었다.어제는 그에게 혼자 오라고 했다.오늘은 장소조차 알려 주지 않았다.*회사 앞에 나온 도현은 나를 발견하자 걸음을 멈췄다.“차는요?”“두고 와요.”“그럼 어떻게 갑니까?”나는 도로 쪽을 가리켰다.“버스.”도현이 처음으로 대답하지 못했다.“왜 그런 표정이에요?”“버스를 타자고 한 겁니까?”“네.”“지금?”“싫어요?”도현이 잠시 나를 바라보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갑시다.”“진짜 탈 거예요?”“당신이 가자는 곳에 가기로 했으니까.”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퇴근 시간 버스는 사람이 많았다.도현은 예상보다 자연스럽게 교통카드를 찍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빈자리가 없었다.나는 손잡이를 잡았고 도현은 내 옆에 섰다.버스가 출발하자 몸이 앞으로 쏠렸다.도현의 손이 반사적으로 내 팔을 잡았다.“괜찮아요.”“알고 있습니다.”그런데 손은 바로 떨어지지 않았다.나는 그의 손을 내려다봤다.“회사 사람 만나면 어떡하려고요?”그제야 도현이 손을 놓았다.“그럼 모르는 척해야 합니까?”“그건 싫은데.”“나도 싫습니다.”버스가 크게 흔들렸다.이번에는 내가 먼저 그의 팔을 잡았다.“이건 넘어질까 봐.”“알겠습니다.”“왜 웃어요?”“안 웃었습니다.”“웃었거든요.”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내 손이 편하게 잡을 수 있도록 팔의 위치만 조금 바꿨다.그 사소한 행동 때문에 괜히 입꼬리가 올라갔다.*내가 데려간 곳은 오래된 골목 안의 작은 식당이었다.도현이 간판을 올려다봤다.“여깁니까?”“네.”“예약은?”“그런 거 없는 데예요.”문을 열자 따뜻한 국물 냄새가 났다.나는 익숙하게 구석 자리에 앉았다.도현이 맞은편에 앉으며 주변을 둘러봤다.“자주 옵니까?”“가끔요. 힘들 때.”그의 시선이 내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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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숨기지 않는 관계

다음 날 아침.출근 준비를 하다가 거울 앞에서 잠시 멈췄다.어젯밤 도현의 집에 갔지만, 검은 리본은 결국 사용하지 않았다.소파에 나란히 앉아 오래 이야기했고.늦은 시간까지 함께 있었고.그걸로도 충분히 가까웠다.휴대전화가 울렸다.[출근했습니까?]나는 바로 답했다.[지금 가는 중이에요.]잠시 뒤.[오늘 점심 같이 먹을 수 있습니까?]나는 피식 웃었다.[회사에서요?][싫습니까?]잠시 고민하다 답했다.[안 싫어요.]이번에는 바로 읽음 표시만 떴다.*회사에 도착하자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대놓고 수군거리는 사람은 없었다.대신 내가 지나갈 때마다 몇몇 시선이 따라왔다.자리에 앉자 민지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서윤 대리님.”“응.”“저 때문에 또 그런 건 아니에요.”“뭐가?”그녀가 주변을 한번 살폈다.“대표님이랑 대리님 사귄다는 얘기요.”손이 멈췄다.“이번에는 누가 말했는데?”“아무도 정확히 몰라요. 그냥 어제 대표실 들어간 거 본 사람도 있고, 요즘 두 분 분위기가 좀 그렇다고…….”민지는 말을 흐렸다.예전 같았으면 바로 불편했을 것이다.그런데 이번에는 생각보다 심장이 뛰지 않았다.“알겠어.”“괜찮아요?”“응.”나는 컴퓨터를 켰다.“누가 직접 물으면 내가 대답할게.”민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점심시간이 되기 직전 도현에게 메시지가 왔다.[1층에서 기다리겠습니다.]나는 화면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굳이 몰래 다른 층에서 만날 수도 있었다.하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도현은 로비 한쪽에 서 있었다.직원 몇 명이 그를 지나가며 고개를 숙였다.그리고 자연스럽게 내 쪽을 봤다.도현도 그 시선을 알아챈 것 같았다.그런데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뭐 먹고 싶습니까?”“여기서 물어봐요?”“왜 안 됩니까?”“사람들 보잖아요.”“점심 메뉴를 묻는 건 문제없습니다.”나는 웃음을 참았다.“그럼 국수요.”“갑시다.”그는 먼저 걷지 않았다.내가 옆으로 올 때까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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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공개된 뒤의 밤

회사 건물을 나선 뒤에도 몇몇 직원의 시선이 따라왔다.오늘은 피하지 않았다.도현 역시 마찬가지였다.주차장에 도착하자 내가 물었다.“그래서 어디 갈 건데요?”“내가 고르라고 했죠?”“네.”도현이 차 문을 열어 주며 말했다.“우리 집.”나는 눈썹을 올렸다.“데이트 장소를 고르랬더니 집이에요?”“밖에서 하루 종일 시선을 받았습니다.”그가 나를 바라봤다.“오늘만큼은 아무도 없는 곳에 있고 싶습니다.”그 말에는 반박하기 어려웠다.“좋아요.”내가 차에 올라타자 도현이 문을 닫았다.*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곧장 넥타이를 풀었다.나는 소파에 앉으며 웃었다.“대표님 모습 진짜 빨리 없어지네요.”“여기까지 가져오고 싶지 않습니다.”“그럼 지금은?”도현이 내 앞에 멈췄다.“그냥 차도현.”오늘 회사에서 처음으로 우리 관계를 인정했다.누군가의 질문에 내가 직접 만나고 있다고 대답했고, 도현도 숨기지 않았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들보다 지금이 더 긴장됐다.나는 그의 손목을 잡아 가까이 당겼다.“오늘 힘들었어요?”“조금.”“솔직하네.”“약속했으니까.”도현의 손이 내 허리에 닿았다가 멈췄다.“안아도 됩니까?”“네.”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품 안으로 끌려갔다.생각보다 강한 힘에 숨이 잠깐 막혔다.“도현 씨.”“네.”“오늘 많이 참았어요?”잠시 침묵하던 그가 내 머리 위로 대답했다.“아주 많이.”웃음이 났다.나는 그의 가슴에서 고개를 들었다.“뭐가 제일 참기 힘들었는데요?”“엘리베이터.”“왜요?”“당신이 내 소매 잡았을 때.”그 장면이 떠올랐다.아무렇지 않은 척 먼저 나왔던 나와, 뒤에서 따라오던 도현.“그때 키스하고 싶었어요?”“네.”“회사에서?”“그래서 참았다고 했습니다.”이번에는 내가 먼저 그의 셔츠 깃을 잡았다.“그럼 지금은 회사 아닌데.”도현의 눈빛이 바로 달라졌다.입술이 맞닿았다.처음에는 천천히.그러다 내가 그의 목에 팔을 감자 키스가 조금 더 깊어졌다.도현이 허리를 끌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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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약속의 조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건 도현의 셔츠였다.정확히는 그 셔츠를 움켜쥔 내 손.언제 그렇게 잠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소파에 기대 있던 도현은 이미 깨어 있었다.“일어났습니까?”나는 급히 손을 놓았다.“왜 안 깨웠어요?”“잘 자길래.”“도현 씨는요?”“조금 잤습니다.”그의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나는 몸을 일으키다 테이블 위에 놓인 검은 리본을 발견했다.어젯밤 결국 쓰지 않았던 것.도현도 내 시선을 따라갔다.“후회합니까?”“뭘요?”“안 쓴 것.”나는 리본을 집어 손가락 사이에 걸었다.“아뇨.”“그럼?”“어제는 그냥 도현 씨가 더 좋았어요.”그의 눈빛이 미세하게 달라졌다.“그 말은 위험합니다.”“왜요?”“아침부터 참기 힘들어지니까.”나는 웃으며 그의 어깨를 밀었다.“회사 가야 돼요.”“알고 있습니다.”도현은 내 손에서 리본을 가져가더니 다시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게 있습니다.”“뭔데요?”그가 잠시 나를 바라봤다.“우리 관계가 회사에서 알려졌으니까.”나는 조금 긴장했다.“문제 생겼어요?”“아직은 없습니다.”도현은 단정하게 대답했다.“하지만 생기기 전에 정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식탁에 마주 앉은 우리는 휴대전화 메모 화면을 사이에 두었다.내가 먼저 물었다.“또 규칙 만들려고요?”“규칙이라기보다 약속.”“뭐가 달라요?”“어기면 벌점을 주진 않을 겁니다.”“원래도 벌점 없었거든요?”도현의 입가가 조금 올라갔다.“첫 번째.”그가 화면에 적었다.**서로의 업무 평가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나는 곧바로 이해했다.“도현 씨가 제 인사평가에서 빠진다는 거예요?”“네.”“굳이?”“굳이 해야 합니다.”도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당신이 잘해도 나 때문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고, 반대로 내가 일부러 더 엄격하게 평가해도 문제가 됩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좋아요.”두 번째 문장이 적혔다.**업무 중에는 직급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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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내 자리를 지키는 법

오전 회의가 끝난 뒤 팀장이 나를 불렀다.“한서윤 대리.”“네.”“잠깐 회의실로 갈까요?”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어제 도현과 회사에서 관계를 숨기지 않기로 한 뒤부터 예상은 하고 있었다.그래도 직접 부름을 받으니 긴장됐다.작은 회의실 안에는 팀장과 인사팀 직원 한 명이 앉아 있었다.나는 맞은편에 앉았다.인사팀 직원이 먼저 말했다.“대표님과의 교제 사실 때문에 업무상 이해충돌 여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네.”“현재까지 한서윤 대리님의 평가나 급여, 승진과 관련해서 대표님의 직접적인 개입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나는 조금 안도했다.“그럼 문제가 없는 건가요?”“다만 앞으로는 대표 직속 업무에서 제외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습니다.”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도현과 오늘 아침 정했던 첫 번째 약속이 떠올랐다.서로의 업무 평가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그건 나도 동의했다.“직속 업무에서 제외되는 건 괜찮아요.”팀장이 나를 바라봤다.“괜찮습니까?”“네. 대신 제가 원래 하던 업무까지 빠지는 건 원하지 않아요.”인사팀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그 부분은 분리해서 검토하겠습니다.”“그리고 하나 더요.”나는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조금 떨렸지만 그대로 말했다.“대표님하고 만난다는 이유만으로 제 평가 기준이 달라지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물론입니다.”“잘했으면 잘한 대로, 못했으면 못한 대로요.”팀장이 작게 웃었다.“원래도 그렇게 평가했습니다.”그 말에 조금 힘이 풀렸다.“네.”회의는 생각보다 짧게 끝났다.밖으로 나오자 휴대전화가 울렸다.도현이었다.[회의 끝났습니까?]나는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네.]곧바로 전화가 왔다.나는 복도 끝으로 이동해 받았다.“네.”“어떻게 됐습니까?”“대표 직속 업무에서는 빠질 수도 있대요.”잠시 침묵.“당신은 괜찮습니까?”“그건 괜찮아요.”“다른 업무는?”“그대로 유지해 달라고 말했어요.”도현이 낮게 대답했다.“잘했습니다.”나는 웃었다.“왜요? 해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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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조작된 과거

다음 주 발표 자료를 맡았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기분 좋았다.오전 내내 자료를 정리하다가 팀장이 내 자리 앞에 멈췄다.“한 대리.”“네.”“잠깐 이것 좀 볼래요?”그가 내민 건 지난 분기 프로젝트 자료였다.“이 수치가 이상해서.”파일을 확인하자 내가 작성했던 보고서 일부가 보였다.그런데 낯선 문장이 끼어 있었다.**[대표 지시로 우선 검토.]**나는 화면을 다시 봤다.“이거 제가 쓴 거 아닌데요.”“그래요?”“네. 원본 확인해 볼게요.”내 컴퓨터에 저장된 최초 파일을 열었다.역시 해당 문장은 없었다.수정 이력을 확인하자 내가 최종 제출한 뒤 다른 계정에서 문장이 추가돼 있었다.팀장의 표정이 굳었다.“누가 수정했지?”나도 알 수 없었다.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누군가 과거 자료만 보면 내가 처음부터 대표의 도움을 받아 일했던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원본 보존해 주세요.”내가 말했다.“인사팀에도 확인 요청할게요.”팀장이 나를 잠시 바라봤다.“괜찮겠어요?”“네.”이번에는 바로 도현에게 달려가고 싶지 않았다.45화에서 우리가 정했던 약속이 있었다.업무에서 생긴 일은 먼저 업무 절차대로 처리한다.나는 원본과 수정본을 따로 저장하고 인사팀에 정식 확인 요청을 보냈다.*점심시간이 지나서야 도현에게 연락이 왔다.[보고서 수정 건 들었습니다.]나는 화면을 보다가 답했다.[빠르네요.][대표니까.]피식 웃음이 나왔다.[제가 먼저 확인하고 있어요.]잠시 뒤.[알겠습니다.]그게 끝이었다.전화도 없었고 대표실로 올라오라는 말도 없었다.오히려 그게 조금 이상했다.결국 내가 먼저 보냈다.[진짜 아무것도 안 할 거예요?]답장은 금방 왔다.[하고 싶습니다.][근데요?][당신이 먼저 처리한다고 했으니까 기다리는 중입니다.]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다 웃었다.차도현이 기다리는 법을 꽤 잘 배우고 있었다.*오후 세 시쯤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다.문제가 된 문장은 약 넉 달 전 추가된 것이었다.그런데 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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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같은 부서의 이름

다음 날 아침.출근하자마자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다.[한서윤 대리 계정 접속 기록 확인 완료. 오전 중 면담 요청드립니다.]어젯밤까지만 해도 조금 화가 났다.그런데 막상 회사에 도착하니 화보다 찝찝함이 더 컸다.누군가 정말 내 계정을 사용한 걸까.아니면 오래된 기록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나는 도현에게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어제 말했으니까.오늘은 내가 먼저 확인해 보기로.*회의실에는 인사팀 직원과 보안 담당자가 기다리고 있었다.화면에는 넉 달 전 접속 기록이 떠 있었다.“한서윤 대리님 계정은 그날 오후 8시 41분에 사내 공용 PC에서 로그인됐습니다.”“저는 여섯 시쯤 퇴근했고요.”“맞습니다.”담당자가 다음 화면을 띄웠다.“그런데 확인된 게 하나 더 있습니다.”공용 PC 사용 신청 기록이었다.그날 마지막 사용자는 같은 부서의 직원.**김민지.**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민지가요?”“네. 다만 이것만으로 민지 사원이 한 대리님 계정을 사용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47화에서 도현도 그랬다.가능성과 사실은 다르다.“민지한테 제가 직접 물어봐도 돼요?”“먼저 사실관계 확인 절차를 진행하는 편이 좋습니다.”“알겠습니다.”회의실을 나오자마자 민지가 보였다.평소처럼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내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들었다.잠시 눈이 마주쳤다.민지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서윤 대리님.”“응.”“인사팀 갔다 왔죠?”내가 멈췄다.“알고 있었어?”민지가 입술을 깨물었다.“아마 제 이름 나왔을 것 같아서요.”*빈 회의실로 들어가자 민지가 먼저 말했다.“제가 공용 PC를 쓴 건 맞아요.”“내 계정도?”“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민지는 손가락을 꽉 맞잡았다.“그날 대리님이 먼저 퇴근하고 제가 급하게 보고서 하나 확인할 일이 있었어요. 공용 PC를 켰는데 한 대리님 계정이 로그인된 상태였어요.”“내 비밀번호는?”“안 쳤어요. 그냥 화면이 열려 있었어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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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새로운 명령

퇴근 시간이 되자 도현에게 메시지가 왔다.[끝났습니까?]나는 시계를 확인했다.[네.][1층에서 기다리겠습니다.]가방을 챙겨 내려가자 도현이 로비 한쪽에 서 있었다.나를 발견한 순간 그의 시선이 내 손으로 내려갔다.“어제 말한 보상.”내가 먼저 꺼내자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기억하고 있습니다.”“오늘은 안 잊었네요.”“잊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나는 웃으며 그의 옆에 섰다.“저녁부터 먹어요.”“좋습니다.”*식사를 마치고 향한 곳은 도현의 집이었다.현관문이 닫히자 회사에서 하루 종일 유지했던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도현이 재킷을 벗는 동안 나는 거실 테이블을 바라봤다.검은 리본이 놓여 있었다.42화에서 내가 골랐던 것.“저거 아직 있었네요.”“버릴 이유가 없으니까.”나는 다가가 리본을 집었다.손가락 사이로 부드러운 천이 흘렀다.“오늘 써 볼까요?”도현의 움직임이 멈췄다.“지금?”“네.”나는 그를 바라봤다.“어제 못 한 거 하기로 했잖아요.”도현이 천천히 가까이 왔다.“그럼 하나 먼저 묻겠습니다.”“뭔데요?”“오늘은 내가 주도해도 됩니까?”심장이 조금 빨라졌다.며칠 동안 우리는 평범하게 만나고, 회사에서 서로의 자리를 지키는 법을 익혔다.그런데 그 시간들이 오히려 이런 순간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나는 검은 리본을 그의 손에 건넸다.“네.”짧은 대답이었다.그걸로 충분했다.도현은 리본을 받아 들고도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새로운 명령을 하나 정하고 싶습니다.”“또 명령이에요?”“싫습니까?”“아뇨.”내가 웃었다.“뭔데요?”도현의 손이 내 허리에 닿았다.“오늘은 원하는 걸 숨기지 마십시오.”나는 눈을 깜빡였다.“그게 명령이에요?”“네.”“너무 쉬운데.”“당신에게는 아닐 것 같은데.”정곡이었다.나는 괜히 그의 셔츠 단추를 만지작거렸다.도현이 기다렸다.재촉하지 않았다.결국 내가 먼저 말했다.“지금은.”“네.”“가까이 와 줬으면 좋겠어요.”그의 팔이 허리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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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동등한 자리

도현이 내민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사내 연애 이해충돌 방지 및 독립 평가 계약서]평가권자는 외부 인사위원회로 변경되고, 내 업무 배정과 승진 심사에서 차도현 대표는 완전히 제외된다는 내용이었다.“이걸 작성하면 대표님은 제 인사에 아무 권한도 없는 거예요?”“네.”“제가 일을 못해도 도와줄 수 없고요?”“도와주지 않을 겁니다.”단호한 대답에 조금 서운해졌다.도현은 내 표정을 살피더니 계약서 마지막 장을 펼쳤다.“대신 누구도 당신을 함부로 끌어내릴 수 없습니다.”외부 평가 기관의 서명란과 이사회 승인란이 이미 채워져 있었다.“언제 준비한 거예요?”“관계를 공개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요.”“저한테 말도 안 하고요?”“완성되지 않은 약속을 먼저 보여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나는 펜을 들었지만 바로 서명하지 않았다.“조건 하나 추가할래요.”“무엇입니까?”“대표님도 저 때문에 회사 결정을 바꾸지 않기.”도현의 눈빛이 미세하게 굳었다.“당신이 위험한 상황이라면 예외입니다.”“그런 상황 말고요. 제가 힘들어한다고 해서 사람을 자르거나, 부서를 바꾸거나, 회의를 없애지 않기.”“누가 당신을 부당하게 대한다면—”“그건 절차대로 처리해요.”나는 계약서 위에 손을 올렸다.“저를 지키는 것과 대신 싸워 주는 건 다르잖아요.”도현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평소라면 그의 침묵이 무서웠을 것이다.하지만 이제는 기다릴 수 있었다.“알겠습니다.”그가 마침내 말했다.“회사에서는 당신의 선택을 먼저 존중하겠습니다.”“회사 밖에서는요?”도현이 내 손목의 팔찌를 천천히 쓸었다.“그때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또 마음대로 하려고요?”“당신이 허락한 범위 안에서만.”나는 그제야 계약서에 이름을 적었다.한서윤.도현은 내 서명 아래 자신의 이름을 썼다.차도현.나란히 적힌 두 이름을 보자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회사에서는 완전히 분리되는 계약인데, 오히려 관계가 더 단단해진 기분이었다.출근 후 계약 내용은 사내 공지로 공개됐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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