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현이 내민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사내 연애 이해충돌 방지 및 독립 평가 계약서]평가권자는 외부 인사위원회로 변경되고, 내 업무 배정과 승진 심사에서 차도현 대표는 완전히 제외된다는 내용이었다.“이걸 작성하면 대표님은 제 인사에 아무 권한도 없는 거예요?”“네.”“제가 일을 못해도 도와줄 수 없고요?”“도와주지 않을 겁니다.”단호한 대답에 조금 서운해졌다.도현은 내 표정을 살피더니 계약서 마지막 장을 펼쳤다.“대신 누구도 당신을 함부로 끌어내릴 수 없습니다.”외부 평가 기관의 서명란과 이사회 승인란이 이미 채워져 있었다.“언제 준비한 거예요?”“관계를 공개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요.”“저한테 말도 안 하고요?”“완성되지 않은 약속을 먼저 보여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나는 펜을 들었지만 바로 서명하지 않았다.“조건 하나 추가할래요.”“무엇입니까?”“대표님도 저 때문에 회사 결정을 바꾸지 않기.”도현의 눈빛이 미세하게 굳었다.“당신이 위험한 상황이라면 예외입니다.”“그런 상황 말고요. 제가 힘들어한다고 해서 사람을 자르거나, 부서를 바꾸거나, 회의를 없애지 않기.”“누가 당신을 부당하게 대한다면—”“그건 절차대로 처리해요.”나는 계약서 위에 손을 올렸다.“저를 지키는 것과 대신 싸워 주는 건 다르잖아요.”도현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평소라면 그의 침묵이 무서웠을 것이다.하지만 이제는 기다릴 수 있었다.“알겠습니다.”그가 마침내 말했다.“회사에서는 당신의 선택을 먼저 존중하겠습니다.”“회사 밖에서는요?”도현이 내 손목의 팔찌를 천천히 쓸었다.“그때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또 마음대로 하려고요?”“당신이 허락한 범위 안에서만.”나는 그제야 계약서에 이름을 적었다.한서윤.도현은 내 서명 아래 자신의 이름을 썼다.차도현.나란히 적힌 두 이름을 보자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회사에서는 완전히 분리되는 계약인데, 오히려 관계가 더 단단해진 기분이었다.출근 후 계약 내용은 사내 공지로 공개됐다.
Last Updated : 2026-08-06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