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꼴딱 새웠는데도 몸이 가벼웠다.출근길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어느 때보다 멀쩡했다.아니, 오히려 조금 밝아 보이기까지 했다.“좋은 일 있어요?”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민 대리가 웃으며 물었다.나는 순간 멈칫했다가 작게 웃었다.“그렇게 보여요?”“네, 오늘 되게 활기차 보여요.”활기차다.그래. 지금 내 마음은 그 어떤 때보다 가벼웠다.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메일을 정리하고, 일정을 확인하고, 민 대리를 도와 회의 자료를 만들었다.회의 중에도 그랬다.“이 부분 이렇게 이끌면 더 좋을 거 같은데 어떠세요?”“아, 그럴 수도 있겠어요.”“유진 씨 벌써 그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어?”“역시, 대표님 조카야.”사람들이 웃었다.나도 따라 웃었다.그리고 웃을 때마다 자꾸 생각났다.ㅡ왜 피해자를 때려.규현 씨 목소리.터진 입가.눈탱이밤탱이.떨리는데도 끝까지 놓지 않던 손.자꾸 웃음이 나오려 했다.업무가 끝난 뒤였다.사람들이 하나둘 퇴근하기 시작했다.“유진 씨 퇴근 안 해요?”나는 웃으며 인사했다.“네, 저 조금 있다가 들어가려고요!”“그래요, 열정적인 거 좋네요. 너무 무리하진 말고 내일 봐요.”민 대리도 퇴근하고, 마지막 사람까지 사무실 문을 닫고 나갔다.조용해졌다.대표실 문은 닫혀 있었다.이모는 늘 가장 늦게 퇴근했다.나는 한동안 그 문만 바라보았다.도망칠 수 있었다.아무 일 없는 척 평소처럼 웃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그게 원래 내가 잘하던 방식이었다.그런데 오늘은 안 될 거 같았다.정확히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나는 천천히 대표실 앞으로 걸어갔다.똑똑.“들어오세요.”낮고 차분한 목소리.문을 열자 익숙한 향이 먼저 코에 닿았다.이모는 오른손에 커피를 들고 두꺼운 검은 노트를 바라보고 있었다.“왜? 할 말 있어?”부드러운 목소리에 순간 무서웠지만, 마음을 가다듬었다.“…이모.”“응? 왜? 나 지금 좀 바쁜데, 급한 거 아니면 나중에 얘기할래?”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
Última atualização : 2026-10-01 Ler ma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