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색이 끝난 피규어의 표면 위로 아직 마르지 않은 도료의 광택이 번들거렸다.벌써 해는 떴고, 난 여전히 채영을 기다리고 있었다.매듭은 내가 지어야만 했으니까.불현듯 채영을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강남의 클럽.나와는 다른 세상을 사는 것 같던 모습의 여자.“채영 씨는 내게 고마운 사람이었어.”그녀를 처음 만났던 날과 함께 번들거리는 피규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처음 무언가를 만들었던 어린 날이 떠올랐다.고무찰흙으로 빚었던 작은 얼굴.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있었다.***21년 전 여름 장마철이었다.좁은 골목길 위로 빗물이 흘러내렸고,오래된 담벼락 여기저기에는 세월이 얼룩처럼 번져 있었다.나는 어머니 손에 이끌린 채 골목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아버지는 말없이 뒤따라오고 있었다.어머니의 걸음이 멈추고, 고개를 들자 낡은 집이 보였다.회색 시멘트벽은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고,창문에는 누렇게 바랜 신문지가 반쯤 붙어 있었다.지금 생각하면 집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곳이었다.아니, 솔직해지자. 판잣집에 가까웠다.어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잠시 뒤, 안쪽에서 질질 끄는 발소리가 들렸다.끼익.문이 열리자, 냄새가 먼저 훅 끼쳤다.젖은 걸레를 오래 방치한 것 같은 냄새가.나는 본능적으로 숨을 조금 멈췄다.집 안은 어두웠다.낮인데도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여기저기 갈라진 싱크대에는 까맣게 눌어붙은 냄비들이 쌓여 있었고, 벽지는 축축하게 들떠 있었다.그때였다.천장 위에서 우다다닥 소리가 났다.나는 고개를 들었다.천장 안쪽에서 뭔가 뛰어다니고 있었다.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들어와라.”나는 뒤를 돌아보았다.어머니는 이미 내 가방을 문 옆에 내려놓고 있었다.아버지는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할머니 손에 쥐여줬다.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나는 가만히 서서 부모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둘은 내 쪽을 보지 않았다.어머니는 머리카락만 귀 뒤로 넘겼고,아버지는 땅만 내려다보고
Last Updated : 2026-10-14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