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센강 프러포즈로부터 약 2개월 후]한성그룹 서연주 이사는 약속 시각보다 7분 일찍 회의실에 들어왔다.검은 재킷에 아이보리색 셔츠, 장식이라고는 얇은 손목시계 하나뿐이었다. 파리까지 오는 야간 비행을 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흐트러진 곳이 없었다. 그녀는 유럽 본부 임원들과 차례로 악수를 나눈 뒤, 맞은편에 앉은 소율에게 시선을 멈췄다."오랜만이에요, 한 팀장님.""네, 서 이사님. 파리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비행기에서 잤어요. 출장 올 때는 그게 제 특기라서."반듯한 입술 끝에 짧은 미소가 걸렸다. 예전에 보았던 차갑고 도발적인 표정과는 전혀 달랐다.소율은 자신도 모르게 서연주의 왼손을 확인했다. 반지는 없었다. 확인하고 나서야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곧장 노트북 화면으로 눈을 내렸다.알고 있었다.서연주는 지나간 정략혼 후보였을 뿐이고, 도현에게 마음이 있었던 사람도 아니었다. 도현은 센강 위에서 소율에게 반지를 끼워 주었으며, 이제 두 사람의 결혼 날짜까지 정해져 있었다.머리로는 빈틈없이 정리가 끝난 문제였다.그런데 서연주가 도현을 향해 아무렇지 않게 웃는 순간, 소율의 손가락이 펜을 조금 세게 눌렀다."차 본부장님, 한성 쪽에서는 유통망 개방 시점을 1차 출시와 맞추는 쪽으로 검토했습니다. 태성의 현지 법인이 초기 물량을 맡고, 합작법인은 브랜드와 데이터를 함께 관리하는 구조예요.""그렇게 가면 프랑스와 독일의 가격 정책을 분리해야 합니다. 현지 법인 의견은 받으셨습니까?""어제 받았어요. 독일 쪽에서만 조건을 하나 더 달았습니다."서연주가 서류 한 장을 밀자 도현은 내용을 훑어보고 곧바로 문제 조항을 짚었다. 두 사람 사이에 쓸데없는 말은 없었다. 오래 합을 맞춘 사이는 아니어도, 한국 본사의 의사 결정 방식과 숫자를 읽는 속도가 비슷했다.업무가 잘 맞는다는 뜻이었다.소율은 그것이 못마땅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독일 시장 자료를 설명하는 목소리가 평소보다 1
Última atualização : 2026-09-11 Ler ma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