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14일간의 계약 연애: Bab 211 - Bab 220

296 Bab

210화

"도현 씨가 저를 위해 전무 자리를 포기하려고 했을 때 알았어요. 사랑하는 사람의 꿈을 지킨다는 건 그 사람 대신 희생을 결정해 주는 게 아니더라고요. 저는 도현 씨가 원하는 걸 먼저 듣고, 같이 방법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그럼 당신 서약도 보여 줘."소율이 자신의 초안을 내밀었다.[차도현의 강한 모습만 사랑하지 않겠다. 힘들고 불안한 날에는 혼자 버티게 두지 않고, 필요한 사랑을 묻겠다.]도현의 시선이 문장 끝에서 오래 머물렀다."왜 말이 없어졌어요?""수정할 게 있어서.""어디요?""내가 필요한 사랑을 당신이 묻기만 하면, 또 대답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그럴 생각이에요?""예전의 나는 그랬을 거야."도현은 자신의 잘못을 과거형으로 밀어 두는 대신, 같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까지 인정했다. 달라졌다는 자신감과 경계심이 함께 담긴 얼굴이었다."그래서 내가 필요한 걸 직접 말하겠다는 약속도 넣고 싶어. 나흘 전 당신이 했던 것처럼."소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리 협력사의 일방적인 조건 변경을 막던 새벽, 소율은 본사 법무팀 연결과 2시간의 검토 시간을 직접 요청했다. 도현은 그 범위 안에서만 도왔고, 해결권은 소율에게 남겨 두었다. 반대로 도현이 힘든 날에도 같은 방식이 필요했다.서약 초안 두 장을 나란히 놓자 지난 약혼 기간 동안 두 사람이 배운 내용이 선명하게 보였다. 도현은 지시 대신 질문하는 법을, 소율은 혼자 견디는 대신 필요한 도움을 말하는 법을 익혔다.그런데 결혼식 하루 전까지도 한 가지 문제만큼은 빈칸으로 남아 있었다.두 사람이 이미 실수한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현이 탁자 위에 놓인 평생 계약서를 내려다봤다. 다섯 조항으로 시작해 소율이 여섯 번째 조항을 더한 종이에는 아래쪽 여백이 조금 남아 있었다."소율아.""네.""나 내일부터 완벽한 남편이 될 자신은 없어."소율은 떠오른 농담을 삼키고 그의 진심을 그대로 받았다. 도현이 이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오래 생각했는지 표정만으로도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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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화

마지막 마침표까지 적은 소율이 조항 오른쪽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그런 다음 만년필을 도현에게 건넸다.도현은 문장을 처음부터 다시 읽은 뒤 소율의 이름 바로 아래에 서명했다. 다이아몬드 만년필이 두 사람의 이름 사이를 같은 색의 잉크로 이어 놓았다."이제 효력 발생이에요.""위반했을 때 벌칙은?""끝까지 대화하기로 했잖아요.""대화가 끝난 뒤 벌칙.""벌써 위반할 계획부터 세우는 거예요?""위험 관리 차원에서 묻는 거야."소율이 계약서를 파일 안에 넣으며 웃었다."그때 잘못한 사람이 상대에게 화해 방법을 물어보기로 해요. 벌칙까지 혼자 정하지 말고요."도현은 아쉬운 표정을 그대로 드러냈다."입맞춤으로 정하면 간단한데.""그건 벌칙이 아니라 도현 씨 포상 아닌가요?""잘못한 뒤에도 관계를 회복하려는 적극적인 조치지.""계약 해석을 사적으로 이용하지 마세요.""사적인 계약이잖아."정석적인 반박이 돌아와 소율이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도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의 의자 가까이 다가왔다."내가 뭐 실수한 건 없지?""그런데요?""포상만 먼저 받아도 되는지 묻는 거야."소율은 자신을 향해 몸을 낮춘 도현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실수를 두려워한다고 고백하던 남자가 계약서에 서명한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평소의 뻔뻔함을 되찾고 있었다.그 모습이 오히려 안심됐다."내일 결혼식인데 참을 생각은 없어요?""내일 결혼식이라서 더 없어.""회장님이 찾으실 텐데요.""취침 시각까지 18분 남았어."언제 확인했는지 정확한 시간까지 알고 있었다. 소율이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 도현의 손이 그녀의 뺨을 감쌌다."싫으면 말해."소율은 대답 대신 그의 셔츠 깃을 잡아당겼다. 입술이 맞닿자 봄밤의 서늘함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도현은 느리게 다가갔고, 소율이 고개를 기울여 더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짧게 끝날 줄 알았던 입맞춤은 한 번 더 이어졌으나, 두 사람 모두 취침 시각을 지킬 만큼의 여유는 남겨 두었다.먼저 물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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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화

– 왜 영상은 안 받아?"서로 얼굴 보지 말라는 운영 지시였잖아요."– 회장님이 화면까지 금지한다고는 안 했어."도현 씨가 아까 규칙의 의도도 지켜야 한다고 했죠."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당신은... 불리할 때만 해석이 정확해."유리할 때도 정확해요."– 문 열어. 얼굴만 보고 갈게."안 돼요."– 그럼 내가 서관 복도 끝에 서 있을 테니까 당신은 문 안에서 봐."그게 서로 보는 거잖아요."– 거리가 있잖아."거리 문제가 아니라 얼굴을 보지 말라는 지시예요. 그리고 지금 필요한 도움의 범위를 제가 말할게요."도현이 더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지 않고 기다렸다."전화만 해요. 잠들 때까지 목소리 듣고 싶어요."– ...그건 할 수 있어.그의 대답이 조금 전보다 부드러워졌다.소율은 침대 머리맡에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화장대 앞으로 돌아갔다. 스피커 너머로 종이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뭐 하고 있어요?"– 서약 수정 중이야. 당신 이름과 꿈을 지키겠다는 문장 뒤에 내 선택을 혼자 포기하지 않겠다는 내용도 넣고 있어."저도 수정할게요. 도현 씨가 필요한 걸 직접 말하겠다는 약속까지요."– 문장 완성되면 읽어 줘.두 사람은 같은 집의 반대편 방에서 각자의 서약을 고쳤다.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와 짧은 질문, 수정된 문장을 읽는 목소리가 통화 안에서 번갈아 이어졌다.도현의 최종 서약은 한소율의 이름과 꿈을 사랑이라는 이유로 가리지 않고, 중요한 선택 앞에서 먼저 묻겠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선택 역시 소율을 위한다는 이유로 혼자 포기하지 않으며, 잘못한 날에는 숨지 않고 같은 자리로 돌아오겠다는 약속도 담겼다.소율은 차도현의 강한 모습만 사랑하지 않고 힘들고 불안한 날에도 곁에 남겠다고 썼다. 필요한 사랑을 묻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도움도 솔직히 말하겠다는 문장이 뒤를 이었다. 마지막에는 두 사람이 실수한 날에도 대화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나란히 넣었다.– 읽어 보니까 너무 계약서 같나?"우리답고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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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화

[파리 센강 프러포즈로부터 6개월 후, 서울 성북동 본가]"지금 몇 시지?""오전 10시 42분입니다."김 실장이 대답하자 차도현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초침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신랑 입장 전 대기 장소로 이동할 시각까지 18분, 본식 시작까지 38분. 식순표를 외운 그의 머릿속에도 같은 숫자가 들어 있었다.그런데 도현은 30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물었다."신부 대기실 일정은?""회장님께서 10시 30분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정된 대화 시간은 15분입니다.""12분이 지났군.""그렇습니다.""안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은 없었나?""없었습니다."김 실장은 태블릿 화면을 내려다보는 척하며 입술에 걸릴 뻔한 웃음을 감췄다.도현은 오전 9시부터 정원 예식장의 음향과 보안 동선, 고정 카메라의 촬영 범위까지 직접 확인했다. 하객들에게는 평소와 같은 차분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고, 예정에 없던 질문이 들어와도 막힘없이 답했다. 태성그룹 기획본부 전무라는 직함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신부 대기실 문이 닫힌 뒤부터 그 완벽함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도현의 시선이 복도 끝에 있는 문으로 다시 향했다."회장님께서 신부 대기실을 책임지겠다고 하신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습니다.""결혼식 운영 회의에서 직접 합의하셨습니다.""합의한 사실을 묻는 게 아니야. 굳이 단둘이 들어가야 할 이유를 묻는 거지.""제가 확인하고 오겠습니다."김 실장이 한 걸음 움직이자 도현이 곧바로 막았다."됐어. 소율이가 불편하면 직접 연락할 거야."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손은 턱시도 안쪽을 한 번 더 눌렀다.가슴 주머니 안에는 정비를 마친 낡은 만년필이 들어 있었다. 3년 동안 소율의 손에서 닳은 흔적을 그대로 품고, 글을 쓰는 기능만 되살린 펜이었다. 오늘 아침 턱시도를 입으며 주머니 안쪽에서 예상하지 못한 실크 고리를 발견했다. 안감과 같은 색으로 만든 고리가 만년필의 몸체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덕분에 계단을 오르내려도 펜은 조금도 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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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화

소율은 창가 앞에 서 있었다.봄 햇살이 얇은 커튼을 통과해 흰 드레스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어깨선을 따라 흐르는 천과 허리 아래로 넓게 퍼진 치맛자락, 단정히 올린 머리 아래에서 흔들리는 작은 귀걸이까지 도현이 여러 번 확인한 준비 목록에 들어 있던 모습이었다.목록 어디에도 적히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자신을 발견한 소율의 미소.도현은 문을 닫는 일도 잊은 채 멈춰 섰다.소율이 먼저 입을 열었다."어때요?"도현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드레스와 반지, 소율의 얼굴을 차례로 확인한 뒤에도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도현 씨?""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하군.""뭐가요?""지금 나가서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데, 당신을 여기서 데리고 나가기 싫어졌어."소율의 웃음이 조금 더 짙어졌다."신랑이 신부를 숨기면 결혼식은 어떻게 해요?""방법을 찾으면 돼.""38분 동안요?""이제 27분 남았어.""계속 확인했군요.""누가 안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오래 하고 있었으니까."도현이 가까이 다가왔다. 손을 내밀다가 드레스 자락을 보고 동작을 멈춘 뒤, 소율이 먼저 손바닥을 올려 줄 때까지 기다렸다. 맞잡은 손에는 프러포즈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회장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어?""도현 씨의 오래된 흑역사요.""어린 시절 사진은 이미 파리 직원들이 대부분 확보했잖아.""그보다 최근 일이에요.""정확히 언제?""본식이 끝나면 알려 드릴게요."도현은 소율의 표정을 읽으려 했다. 놀란 흔적과 웃음을 참은 흔적은 남아 있었지만 상처받거나 불편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소율이 필요한 도움을 직접 말하기로 한 약속까지 떠올린 그는 질문을 이어가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끝나고 반드시 말해.""네. 숨기지 않을게요."소율의 시선이 그의 턱시도 안쪽으로 내려갔다."고리는 잘 맞아요?"도현이 눈썹을 들어 올렸다."처음부터 알고 있었어?""빈 나무 상자를 봤어요. 도현 씨가 결혼식 날 가져올 거라는 것도 짐작했고요.""왜 안 물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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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화

"왔네요.""기다리라고 했잖아."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였다."얼마나 확인했어요?""시간은 4번. 대기실 문은 세지 않았어.""그건 많이 봤다는 뜻이군요.""지금부터는 당신만 볼 거야."소율이 웃음을 참으며 도현의 옆에 섰다.이혜민 회장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본 뒤 축사를 시작했다. 주말에 분량을 늘리겠다던 위협과 달리 원고는 짧았다. 회장은 도현이 정해진 답만 찾느라 사람의 마음을 놓치던 시절과, 소율이 자신의 마음을 숨긴 채 혼자 견디던 시간을 한 문장씩 짚었다."둘 다 고집은 세고 말은 늦게 배웠다. 그래도 한 명은 묻는 법을 배웠고, 다른 한 명은 원하는 것을 말하는 법을 배웠으니 함께 살 준비는 그 정도면 됐다."정원에 낮은 웃음이 번졌다.회장의 시선이 서연주에게 닿았다. 연주는 아주 작게 잔을 들어 보이듯 손끝을 움직였다. 둘만 알아보는 공범의 인사였다. 소율은 그 장면을 발견하고 입술을 꾹 눌렀다.도현이 즉시 물었다."왜 웃어?""나중에요.""그 대답만 오늘 두 번째야.""본식 중에 취조하면 세 번째도 들을 수 있어요."도현은 더 묻지 못했다. 진행자가 두 사람에게 서약서를 건넸기 때문이다.먼저 도현이 마이크를 들었다.그는 준비한 종이보다 소율의 얼굴을 더 오래 바라봤다."나는 한소율의 이름과 꿈을 사랑이라는 이유로 가리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선택 앞에서 먼저 묻고, 내 선택 또한 당신을 위한다는 이유로 혼자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잘못한 날에는 숨거나 멀어지지 않고 같은 자리로 돌아오겠습니다. 완벽한 남편이 되겠다는 약속 대신, 필요한 마음을 직접 말하고 당신의 대답을 끝까지 듣겠습니다."평소 흔들림 없는 목소리가 마지막 문장에서 조금 낮아졌다.소율은 그 변화를 알아들었다. 도현이 내민 마이크를 받아 들고 자신의 서약서를 펼쳤다."나는 차도현의 강한 모습만 사랑하지 않겠습니다. 힘들고 불안한 날에도 곁에 남아 필요한 사랑을 묻고, 제가 원하는 도움도 숨기지 않고 말하겠습니다. 서로 실수한 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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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화

"두 분이 나를 속였다고?""저까지요.""당신은 진짜로 상처받았어. 그건 연극으로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목소리가 낮아졌다. 당장 두 사람을 불러 세울 기세였지만 소율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그래서 회장님도 결혼식 전에 직접 말하고 싶으셨대요. 그때 제가 도현 씨를 좋아하는 걸 알아보셨고, 그대로 두면 계약이 끝난 뒤 정말 파리로 떠날 것 같아서 판을 흔드셨다고요.""사람 마음을 흔드는 데 합작법인 지분까지 썼겠군."소율이 눈을 크게 떴다."그걸 어떻게 알아요?""서연주 이사가 보상도 없이 그런 연극을 할 사람은 아니니까.""지분 15%였대요."도현의 눈썹이 움직였다."생각보다 많이 받았군.""그러니까 화내는 기준이 그쪽이에요?""감정적 손해와 거래 조건을 따로 계산하는 중이야."소율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결혼식 날까지 사람 마음을 손익으로 정리하려는 남자가 우습기도 했고, 자신이 받은 상처부터 따져 주는 마음이 고맙기도 했다."저는 이제 괜찮아요. 그날은 정말 힘들었지만, 도망친 저를 도현 씨가 붙잡으러 왔잖아요. 계약서를 찢고 진짜 마음도 말했고요.""그래도 방법이 지나쳤어.""맞아요. 나중에 같이 항의해요. 오늘은 결혼식이고, 회장님도 이제 가족이니까 혼자 가서 전쟁을 시작하면 안 돼요."도현이 입을 다물었다.소율은 전날 추가한 제7조가 든 가죽 파일을 손끝으로 두드렸다."같은 자리로 돌아와 끝까지 이야기하기로 했죠. 화낼 일이 생겨도 같이요.""결혼한 지 1시간도 안 됐는데 적용할 조항이 생겼군.""만료일이 없으니까 앞으로도 자주 쓸 거예요.""회장님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도 같이 와.""뭘 받으려고요?"도현은 잠시 생각한 뒤 소율의 손을 들어 프러포즈 반지 위를 엄지로 쓸었다."당신을 가족으로 받아들였다는 말을 매년 직접 하게 할 거야. 결혼식 날만 손주며느리라고 부르고 끝내지 못하게."소율의 웃음이 천천히 잦아들었다.그녀는 자신의 이름으로 적힌 서약서를 바라봤다. 결혼 전에도 한소율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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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화

[결혼식을 올리고 한국에 정착한 지 2개월.]"제가 왜 과장입니까?"차도현은 탁자 위의 사원증을 집어 들었다.[태성로컬 해담지사][운영관리 과장 차도윤]사진 속 자신의 표정은 평소처럼 차분했다. 그 아래 적힌 직급 때문에 도현의 눈썹만 천천히 올라갔다.옆자리에 놓인 사원증도 뒤집어 보았다.[사업기획·지역협력 차장 한서율]한소율의 사진 아래에는 분명히 차장이라고 적혀 있었다.이혜민 회장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소율이 혼자 가도 되는 일인데 네 자리까지 만들었으니, 그 정도면 배려를 받은 셈이지.""제 직함은 기획본부 전무입니다.""알아. 그걸 모르고 월급을 주겠니?"소율은 입술을 안으로 말아 웃음을 눌렀다. 도현이 곧바로 그녀를 돌아보자 찻잔을 들었지만, 이미 눈가까지 접혀 있었다.짧은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소율은 유럽 프로젝트의 책임 구간을 마무리하고 인계를 끝냈다. 본사의 별도 심사와 정식 인사 절차를 거쳐 서울 특별사업팀장으로 옮겼으며, 도현은 기획본부 전무로 바쁜 일상을 이어 가고 있었다.성수동 집에서 함께 눈을 뜨고 같은 식탁에 앉는 아침도 이제 제법 익숙해졌다. 서로 다른 도시에서 일정표를 맞추던 시절에 비하면, 퇴근이 늦어져도 같은 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좋은 날들이었다.월요일 아침, 성북동 본가에 오라는 회장의 연락을 받을 때까지는 그랬다.도현은 자신의 사원증을 다시 내려놓았다."어디로 가는 일인지부터 설명해 주십시오."회장이 얇은 파일 하나를 소율 앞으로 밀었다."해담지사다. 태성로컬이 남해안에 만든 지역 거점."소율이 표지를 열었다. 농수산물 선별과 소포장, 온라인 출고를 맡는 지사였다. 건물 옆에 붙은 해담마켓 사진에는 작은 판매대와 생산자들이 늘어서 있었다.그다음 장의 제목을 읽자 웃음이 잦아들었다.[해담지사 운영 종료 검토]"8개월 연속 적자야. 반품은 늘고 생산자는 떠난다. 냉장차에 쓰는 돈은 계속 오르는데, 직원들 말로는 팔 물건도 손님도 줄었다지.""폐쇄까지 검토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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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화

"소율의 현장 판단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운영과 재무는 제가 맡으면 됩니다. 다시 3개월 동안 떨어져 지낼 이유도 없고요.""네가 고른 이유라면 소율이에게도 물어봐야지."도현이 몸을 돌렸다."같이... 가도 될까?"소율은 그의 얼굴을 잠깐 바라봤다. 먼저 맡겠다고 나서던 사람이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도현 씨가 운영과 재무를 맡아 주면 든든하죠. 제가 현장 총괄인 조건도 괜찮아요?""당신이 잘하는 일이야. 내가 그걸 왜 거절해.""저랑 의견이 다를 때도 제 결정대로 움직여야 할 수 있어요.""근거는 물어볼 거야. 당신도 내가 계산을 틀리면 그대로 두지 말고."소율이 고개를 끄덕이자 회장이 두 사원증을 나란히 정리했다."좋다. 이번 분야에서는 소율이의 경험이 더 앞선다. 사람을 만나고 물건을 팔 방법을 찾는 건 한 차장이 결정하고, 차 과장은 운영과 재무로 받쳐."도현이 사원증을 가리켰다."그 구조는 이해했습니다. 다만 실제 직책과 현장 직급이 다른 이유는 확인해야 합니다.""전무가 내려간다고 하면 창고부터 치울 텐데, 이번에도 정리된 창고만 보고 올 생각이니?""평범한 운영개선 인력으로 들어가라는 뜻이군요.""그래. 한 차장 지시 잘 듣고 사고 치지 마라, 차 과장."소율의 어깨가 작게 흔들렸다. 도현은 이번에는 굳이 돌아보지 않았다. 두 사람을 같이 보면 회장의 만족스러운 표정까지 마주쳐야 했다.그는 파일을 덮지 않은 채 다음 질문을 꺼냈다."제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기획본부는 누가 맡습니까? 일상 결재까지 현장으로 가져가면 업무가 겹칩니다.""김 실장이 맡는다."회장이 서재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문을 두드린 뒤 들어왔다. 도현의 일정과 보고 자료를 늘 정확하게 정리하던 김 실장이었다. 그는 두꺼운 서류 대신 승인서와 연락망이 든 얇은 파일만 탁자에 올렸다.[기획본부 전무 직무대행 김선우]소율의 시선이 익숙한 성 아래 적힌 이름에 머물렀다. 전무실 비서실장 김선우. 결혼식 날까지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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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화

"그리고 제가 가기 전부터 정해져 있던 손실까지 제 책임으로 묶지는 말아 주세요. 확인한 문제, 바꾼 운영, 그 결과를 나눠서 보고하겠습니다. 마지막 판단은 실제 기록으로 해 주셨으면 해요.""네가 가면 반드시 살려 낸다는 서명을 받으려는 게 아니야. 실제로 고칠 수 있는 곳인지 확인하고, 가능하면 살려 보자는 거다. 폐쇄 결정을 늦춘 90일 동안 네 판단을 지켜 줄게.""중간에 현장과 본사 의견이 달라지면요?""근거를 보고 판단한다. 지사장이 목소리가 크다고 네 결정을 뒤집지는 않아. 큰 투자나 인사처럼 별도 승인이 필요한 건 따로 올리고."소율은 잠시 해담마켓 사진을 내려다봤다.팔 물건이 없다는 지사에서 생산자들은 상자를 쌓아 놓고 있었다. 상자 안의 상품 상태와 실제 거래 내역은 현장 기록을 봐야 알 수 있었다. 그 물건들이 제대로 팔렸는지, 반품됐다면 누가 가져갔는지부터 직접 확인해야 했다.그녀가 파일을 닫았다."가겠습니다. 먼저 반품으로 돌아온 물건부터 보고 싶어요. 팔 수 없는 상태인지, 팔 곳을 놓친 건지 구분해야 하니까요."도현의 손끝이 소율의 의자 가까이 내려왔다. 탁자 아래에서 마주친 손을 한 번 가볍게 잡았다가 놓았다."운송과 비용 기록은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현장에서는 소율의 결정에 맞춰 움직이죠."회장은 그제야 승인서의 다음 장을 펼쳤다."그럼 이제 두 사람이 숨겨야 할 것도 확인하자."소율이 사원증을 들어 보았다."이 이름으로 근무하는 거죠?""현장 인사 자료와 사원증에는 프로젝트용 이름을 쓴다. 법무, 인사, 감사 책임자가 비공개 파견으로 승인했어. 실제 급여와 본사 기록은 그대로고."선우가 설명을 보탰다."서류상 업무는 해담지사 운영개선 TF입니다. 현장에는 한 차장님과 차 과장님이 파견된다고만 전달했습니다."도현은 자기 이름을 소리 내어 읽었다."차도윤."소율도 자신의 사원증을 확인했다."한서율. 너무 다르게 부르면 돌아보는 게 늦어질 것 같아서 비슷하게 정했나요?""네가 훨씬 빨리 이해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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