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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심계피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1 07:52:51

“너 씨발, 어디 모자라?”

충분히 모욕적인 말이었다. 강은택은 도복희가 눈물을 흘릴 거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기분 나쁜 티는 낼 터였다. 그러나 그녀는 말없이 씁쓸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사정이 있겠지. 형은 왜 또 말을 그렇게 하냐….”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던 최지호가 오히려 대신 따져 주었다.

최지호는 잠시 두 사람을 응시했다. 조심스럽게 소파 쪽으로 다가온 그는 바짝 붙어 앉지는 못하고 멀찍이 앉아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상처받았을까 걱정하는 듯했다.

도복희는 입을 떼기가 어려운 듯 짧게 ‘쩝’ 하고 입소리를 냈다. 그리고 작게 한숨을 쉬며 말문을 열었다.

“일자리 구할 때까지 재워 줄 사람이 있었는데, 갑자기 연락이 두절돼서 그래요.”

그 말에 강은택은 아차 싶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심하게 말했단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가 사실 조금은 상처받았으리란 것도,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단 것도 눈치챘다. 강은택은 어쩐지 입안이 꺼끄러워지는 것 같아 괜히 혀로 입천장을 밀었다.

“…미안.”

잠깐의 정적 후에 그가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강은택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지 도복희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이 누그러진 듯, 그녀의 표정이 미세하게 풀어졌다.

“연락 두절됐다는 사람 누군데. 애인? 친구?”

강은택이 불쑥 물었다. 꼭 해결해 주겠다고 묻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궁금했다.

“그냥 아는 언니인데…, 갑자기 이럴 사람은 아니에요. 뭔가 사정이 생겼을 거예요.”

도복희는 ‘그냥 아는 언니’를 대신 변호했다. 강은택이 도복희에게 답답함을 느끼는 이유도 딱 그거였다. 차라리 죽고 못 사는 애인이나 정말 친한 친구라서 적극적으로 대변해준다면 모를까. 듣자 하니 그리 잘 아는 사이도 아닌 듯한데, 왜 그렇게까지 믿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름, 나이, 사는 곳.”

강은택이 신상을 묻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이렇게 엿 먹일 사람은 아니거든요.”

“아, 누가 족친대? 그냥 알아봐 준다고.”

강은택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그 틱틱대는 말투를 듣고도 도복희는 웃었다.

“정말요? 감사해요!”

“아직 찾은 것도 아닌데 뭐가 감사하냐…”

강은택이 민망해하며 괜히 볼을 갉작거렸다. 최지호는 도복희가 웃는 것을 보고 안도하며 다시 가사 일을 하러 떠났다.

잠시 후, 거실 뒷문과 연결된 반지하 차고 쪽으로 엔진 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내 삐리릭― 경쾌한 도어록 해제음과 함께 심우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심우주의 손에는 종이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사다 주고 다시 출근하겠다더니, 정말로 일부러 돌아온 모양이었다. 도복희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근처에 괜찮은 매장이 없더라. 그냥…, 썩 나쁘지 않은 걸로 샀거든? 일단 오늘은 그거 입자.”

“진짜 감사해요.”

꽤 수고로웠을 텐데도 심우주의 얼굴에는 귀찮은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재밌어하는 사람 같았다.

“내일 제대로 골라 줄 테니까, 감사는 그때.”

심우주는 도복희에게 찡긋 윙크를 해 보였다. 그리고 신발도 벗지 않은 채 현관에 서서 바로 쇼핑백을 건넸다. 

“엇….”

도복희는 닫힌 현관문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심우주는 정말로 바로 나가 버렸다.

담요를 치렁치렁 두르고 다니는 것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도복희는 얼른 그가 사다 준 새 옷을 꺼내 보았다. 네이비 색상의 니트 원피스가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좀 작아 보였다.

“흠….”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잠시 요리조리 돌려 가며 옷을 훑어보았다.

“…늘어나는 소재라 입을 수는 있겠지.”

쇼핑백 안에는 옷이 한 장 더 있었다. 강은택이 외출복 하나, 실내복 하나를 요구했으니 아마 잠옷일 터였다.

“이게 뭐지?”

도복희는 손에서 미끄러지는 것만 같은 부드러운 옷을 펼쳐 들었다. 그녀의 손에서 차르르 떨어지며 모양새를 드러낸 것은 옷이라기보단 천 쪼가리에 가까웠다.

“이게 잠옷?”

윤기 나는 실크 슬립을 손에 든 도복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을 본 강은택이 튕기듯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쿵쿵거리며 빠르게 뒷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어젖힌 강은택이 분노하며 차고 쪽을 내다보았다.

“이 또라이 어디 갔어.”

심우주가 이미 떠났단 걸 알고 강은택은 제 주머니에서 거칠게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이게 옷이야? 당장 환불해!”

목덜미가 시뻘게진 강은택이 소리를 질렀다. 큰 소리에 놀란 최지호가 헐레벌떡 나타났다. 그는 도복희의 손에 들린 그 부드럽고 반짝거리는 천 쪼가리를 보고서 상황 파악이 된 듯 이마를 짚었다.

“그냥 내가 사러 나갈걸….”

최지호는 후회했다.

수화기 너머에선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심우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푸하하! 택 떼서 환불 안 되니까 그냥 입으라고 해.」

전화가 뚝 끊겼다.

도복희는 여전히 그 생소한 실크 슬립을 보며 얼떨떨함과 흥미가 뒤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최지호는 귀끝이 빨개진 채 주저앉았다. 그 커다란 몸을 웅크리고서 그녀가 혹시 저걸 진짜로 입겠다고 할까봐 혼자 초조해했다. 강은택은 그 꼴을 보고서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일단 그 니트 원피스라도 입어라.”

“이거요?”

도복희가 잠시 내려 놓았던 네이비색 니트 원피스를 들어 보였다.

“그래. 같이 사러 나가게.”

“어우, 아니에요. 그냥 이거 입으면 돼요. 괜찮아요.”

도복희는 그의 입에서 같이 사러 나가자는 말이 나올 줄은 전혀 몰랐는지 눈이 휘둥그레져선 손을 내저었다. 제법 강경해 보였다.

“…그 꼬라지 계속 보라고.”

그러나 강은택은 이 집에서 여자가 저딴 쪼가리를 입고 돌아다니는 것을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사실 심우주가 골라 온 그 니트 원피스도 기장이 짧아 보여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건조대에 널어 놓은 꼬질꼬질한 그녀의 옷이 아직 마르지가 않았으니, 그거라도 입으라고 한 것 뿐이었다. 강은택은 벽에 걸린 시계를 잠시 확인하며 혀로 아랫입술을 축였다.

“백화점은 곧 닫아. 가까운 마트로 간다.”

그는 통보했다. 그리고 멀뚱히 서 있는 도복희와 눈이 마주쳤다.

“옷.”

강은택의 단호함에 그녀는 결국 옷을 갈아입으러 2층으로 향했다.

“너도 가.”

강은택이 최지호를 돌아보며 짧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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