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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붉은 혼서: Chapter 21 - Chapter 30

203 Chapters

21화. 북문 마구간

채찍이 허공을 가르고 말들이 푸르릉거렸다. 젖은 흙이 바퀴 밑에서 튀었다. 곡우는 치맛자락을 걷어 쥔 채 수레 사이를 빠져나갔다. 뒤따르던 노탁이 그녀의 팔을 잡아 길 가장자리로 끌었다.“말 앞을 왜 가로지릅니까?”“제가 안 갔으면 포졸 나리가 먼저 치였어요.”“난 멈춰 있었소.”“그러니 저만 따라오세요.”곡우는 대답도 듣지 않고 성벽을 끼고 걸었다.그녀의 허리에는 청묵재 열쇠가 달려 있었다. 날이 밝기 전에 나오느라 가게 덧문도 열지 못했다. 옥선은 뒤에서 문을 걸어 잠그며 해가 중천에 뜨기 전에 돌아오지 않으면 오늘 번 돈에서 숯값을 먼저 빼겠다고 했다.“노 포졸.”노탁이 돌아봤다.“오늘 가게 문을 못 열면 제 품삯은 누가 줘요?”“그걸 왜 나한테 묻소?”“대리시 일 따라가는 중이잖아요.”노탁은 한참 생각하다 품에서 동전 두 닢을 꺼냈다.곡우가 손바닥 위의 돈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이건 반나절치도 안 돼요.”“내 하루 삯에서 당장 줄 수 있는 게 그만큼이오.”곡우는 더 따지려다가 동전을 주머니에 넣었다.북문 밖길은 성벽의 그림자와 아침 햇빛이 반으로 갈라놓고 있었다. 성안으로 들어가려는 수레는 햇빛 쪽에 길게 늘어섰고, 마구간으로 빠지는 좁은 길에는 여물 부스러기와 검은 물이 섞여 흘렀다. 바퀴가 지나갈 때마다 질척, 질척 진흙이 들러붙었다.마구간은 북문에서 백여 걸음 떨어져 있었다. 낮은 흙담을 들어서면 가운데 마당을 두고 말 우리가 ㄷ자로 둘러섰다. 왼쪽은 수레를 대는 헛간, 오른쪽은 여물 창고였고, 그 사이의 좁은 배수로에서는 김이 올랐다. 말 쉰 마리가 나무 칸막이 너머로 머리를 내밀었다. 푸르릉, 콧김이 연달아 터졌다.아이 둘이 밤새 쌓인 마분을 퍼내고 있었다. 가장 어린 아이는 삽자루보다 키가 조금 컸다. 삽이 바닥을 긁을 때마다 서걱, 젖은 짚이 한 덩이씩 밀려났다.노탁이 대리시 패를 내보이자 마구간 주인이 웃으며 달려왔다.“이른 아침부터 어쩐 일이십니까?”“도삼과 청석을 찾으러 왔소.”주인의 웃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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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아이들이 고른 길

새끼줄로 신을 묶은 소년은 뒤에 선 어린 동생을 더 가까이 붙였다.“제 동생도 말먹이를 날랐습니다. 애가 먹은 걸 왜 제 빚으로 적어요?”말들이 웅성대는 사람들 사이로 코를 울렸다. 마구간 주인이 가장 먼저 말한 소년에게 달려들었다.“네놈이 먹고 잔 게 공짜인 줄 알아?”노탁이 그의 어깨를 틀어 잡았다.“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시오.”“내 일꾼입니다!”“아니에요.”어린 동생이 말했다.“저희는 집에 못 가요.”그 아이는 삽자루를 놓지 못했다. 손바닥에 물집이 터져 피가 말라 있었다.“도삼 아저씨가 아버지 빚을 갚아야 보내준댔어요. 아버지는 재작년에 죽었는데도요.”“도삼이 여기서 무슨 일을 했지?”노탁이 자세를 낮추고 물었다.“밤에 오는 수레를 받았어요. 사람을 태운 수레도요.”“청석도 보았니?”아이는 주인을 보았다.주인이 고함을 질렀다.“저놈이 뭘 안다고—”일꾼들이 한꺼번에 그를 에워쌌다.“내 품삯 내놔!”“어머니가 두 번이나 왔는데 왜 못 만나게 했어?”“오늘은 못 넘어가!”나무통이 넘어져 데구루루 굴렀다. 놀란 말 한 마리가 앞발을 들었다. 히이잉!노탁이 고삐를 잡으러 뛰었다. 곡우는 어린아이들을 우리 밖으로 밀어냈다.“담 쪽에 붙어 있어요! 말 뒤로 가지 말고!”노탁이 말의 목을 붙들고 몇 번이나 함께 돌았다. 진흙이 장화 위로 튀었다. 말이 겨우 앞발을 내리자 그는 숨을 몰아쉬며 주인을 돌아보았다.“모두 멈추시오!”마당이 차츰 조용해졌다.노탁은 인근 순라군에 사람을 보내 마구간 주인을 맡겼다.“말은 누가 돌봅니까?”마구간 주인이 포박된 채 소리쳤다.“이대로 두면 굶어 죽어! 나 잡아가면 저놈들도 품삯 한 푼 못 받아!”일꾼들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당장 떠나면 잘 곳이 없는 아이도 있었고, 품삯을 받지 못하면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마부도 있었다.곡우가 주인의 사무방으로 들어가 돈궤를 들고 나왔다. 자물쇠가 걸려 있어 열지는 않았다.“이건 대리시에서 가져가세요. 밀린 품삯부터 갚는다고 사람들 앞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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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폐염색장의 불길

바람이 갈대밭을 세게 눕혔다. 멀리 무너진 기와지붕이 보였다. 검게 그을린 굴뚝 옆으로 사내 둘이 수레에 짐을 싣고 있었다.노탁이 소년을 말에서 내렸다.“여기 있어.”그 순간 염색장 안에서 무언가 넘어졌다.쾅!곧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이어졌다.곡우가 두 손을 입가에 모았다.“청석아!”“누나!”쉰 목소리가 바람을 뚫고 들려왔다.* * *곡우가 염색장으로 달려갔다.노탁이 그녀의 허리띠를 잡아당겼다.“놓으세요!”“문 앞에 두 놈이 있소.”“안에 청석이가 있어요.”“그러니 살아서 꺼내야지.”말은 그렇게 했지만 노탁의 다른 손은 허리 안쪽의 부적을 꽉 쥐고 있었다. 곡우는 그 손을 보았다. 놀릴 말이 먼저 떠올랐으나 입 밖에 내지 않았다.“제가 수레를 막을 테니 칼 든 사람을 보세요.”“명령은 내가 합니다.”“그럼 빨리 같은 명령을 하세요.”노탁이 부적에서 손을 뗐다.“당신은 수레를 막고, 나는 칼 든 자를 잡소.”수레에 짐을 싣던 사내들이 이쪽을 보았다. 한 놈이 허리춤에서 칼을 뽑았다.폐염색장은 낮은 둑 아래에 반쯤 잠겨 있었다. 서쪽 담은 큰물에 무너져 갈대가 마당까지 밀고 들어왔고, 동쪽 작업채만 기와지붕을 간신히 얹고 있었다. 마당에는 사람 키만 한 염색 통이 여섯 개, 뒤집힌 수레가 두 대 놓여 있었다. 오래 마른 남빛 물이 돌바닥 틈마다 검게 들러붙었다.“누구냐!”노탁이 곤봉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대리시다. 칼 버려!”사내들은 칼을 버리는 대신 수레를 밀었다. 비탈에 서 있던 수레가 삐걱거리며 굴러왔다.“비켜요!”곡우가 노탁의 등을 밀었다. 수레바퀴가 두 사람이 서 있던 자리를 지나 진흙 구덩이에 처박혔다. 쿵! 수레 위의 나무통들이 쏟아졌다.칼을 든 사내가 노탁에게 달려들었다.쇠붙이가 곤봉을 긁었다. 캉!노탁은 한 걸음 물러섰다가 사내의 팔목을 내리쳤다. 칼이 떨어졌다. 다른 사내가 염색장 안으로 뛰어들며 소리쳤다.“태워!”안쪽에서 문이 닫혔다.잠시 뒤 매캐한 연기가 깨진 창으로 솟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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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불길 속의 손

노탁은 문 옆의 빗장을 들어 올렸다. 나무가 열을 먹어 부풀어 있었다. 양손으로 잡아당겨도 빠지지 않았다.밖에서 곡우가 문을 두드렸다.“안에서 밀어요!”노탁이 빗장을 발로 찼다. 한 번. 두 번.콰직!빗장 끝이 부러졌다.문이 열리자 곡우가 염색 통 옆 수로에 적신 말 덮개를 들고 서 있었다.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애들부터!”소년 셋이 비틀거리며 나왔다. 마지막으로 나온 청석은 다리를 절었다. 곡우가 그를 부축하려 하자 청석이 손을 뿌리쳤다.“누나는요?”“청묵재에 있어.”“또 그 아씨 따라갔지요?”“지금 그 말 할 때 아니야. 뛰어!”불붙은 지붕이 우지끈 내려앉았다. 노탁이 문을 빠져나오는 순간 불덩이가 등 뒤로 쏟아졌다. 곡우가 그의 옷깃을 잡고 함께 굴렀다.바람을 맞자 기침이 더 심해졌다. 아이들은 진흙 위에 엎드려 숨을 토했다.염색장 뒤편에서는 말발굽 소리가 멀어졌다. 불을 놓은 자들이 다른 문으로 달아난 뒤였다.“쫓아가야—”노탁이 일어나려 하자 곡우가 어깨를 눌렀다.“지금 쫓아가면 쓰러진 사람 하나 더 생겨요.”노탁은 기침하다 다시 진흙 위에 주저앉았다. 곡우가 젖은 말 덮개의 깨끗한 쪽을 그의 목에 둘러주었다.순라군과 마구간 일꾼들이 도착했을 때 염색장 절반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불길이 들판으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소년은 청석을 보자 멀리서부터 고개를 숙였다.“형, 내가 가야 했는데.”“네 동생은?”“외숙모한테 보냈어.”청석은 한쪽 신발을 새끼줄로 묶은 소년의 발을 내려다보았다.“네가 왔어도 둘이 잡혔겠지. 말부터 챙겨. 저 사람들 다 잡혀가면 굶는 건 말이야.”소년이 고개를 들었다.“형은 돌아올 거야?”청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마구간으로 돌아가면 품삯을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도삼의 사람이 다시 올 수 있었다. 성안으로 들어가면 잘 곳도 일할 곳도 없었다.곡우가 옆에서 말했다.“오늘만 마구간에 있어요. 내일 대리시에서 사람 보내기 전에는 새 주인 말도 듣지 말고. 청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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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문려화로 묻히는 여자

두 사람은 끌어안지 않았다. 청도는 동생의 다리를 살피고, 청석은 누이가 꿰맨 바짓단을 뜯지 않고 접었다.곡우는 안뜰 문밖에서 기다리다 노탁에게 손을 내밀었다.“뭡니까?”“두 닢.”노탁은 젖어 붙은 소매를 뒤져 동전 두 닢을 내놓았다.“가게를 하루 닫았는데 고작 이거예요?”“살아 돌아오면 준다고 했지, 손해를 다 갚는다고는 안 했소.”곡우는 동전을 받아 한 닢을 도로 그의 손에 올렸다.“약값에 보태세요.”노탁은 동전을 내려다봤다.“아까 품삯이라며 받아가지 않았소?”“받았으니까 제 마음대로 쓰는 거예요.”노탁이 돌아서자 곡우가 그의 소매를 잡았다.“잠깐.”그녀가 발끝을 들고 노탁의 턱 아래로 손을 뻗었다. 노탁은 놀라 그 손목을 잡았다. 좁은 문간에서 두 사람의 몸이 가까워졌다. 곡우의 손등에는 진흙이 말라붙어 있었고 노탁의 목에서는 아직 불에 덴 열기가 났다.“놓으세요.”노탁은 바로 손을 풀었다.“갑자기 손이 들어오기에.”“그을음 떼어주려던 거예요. 그 얼굴로 들어가면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불난 줄 알겠어요.”곡우는 이번에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노탁이 피하지 않자 엄지로 턱 아래의 검은 자국을 문질렀다. 타버린 목깃이 함께 벌어지며 붉게 달아오른 피부가 드러났다.“여기도 데었네요.”“별것 아니오.”“다친 사람은 다 그 말부터 해요.”그녀의 손가락이 목깃 안쪽을 스쳤다. 노탁은 하려던 기침을 삼켰다. 곡우도 손을 빼지 않은 채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노탁이 고개를 조금 숙이자 곡우의 손끝이 턱이 아니라 아랫입술에 닿았다. 둘의 숨이 한 번 같은 자리에서 섞였다. 불과 연기에 그을린 노탁의 얼굴에서 입술만 유난히 붉었다.“여기도 다쳤습니까?”그가 너무 진지하게 묻는 바람에 곡우가 먼저 눈을 깜박였다.“아뇨. 거긴 멀쩡하네요.”안뜰에서 청석이 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곡우가 먼저 한 걸음 물러났다.“약은 꼭 사세요.”노탁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바닥의 동전을 쥐었다 폈다 하다가 품에 넣었다.노탁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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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장례에 온 중매쟁이

“상여가 나갈 때까지 방에서 쉬시오.”“당신은 그 아이가 맞다고 믿어요?”세린은 대답하지 않았다.바깥채에서는 상여꾼 우두머리 만복이 집사와 다투고 있었다.“밤새 두 번이나 때를 바꾸셨잖습니까. 사람 여덟을 붙잡아뒀으니 약속한 품삯은 다 주셔야지요.”“상여가 나가기도 전에 돈부터 찾느냐?”“내 아우는 오늘 남의 지붕을 이으러 가야 했습니다. 여기 묶여 있으면 그 집 삯도 못 받습니다.”집사가 목소리를 낮추라고 손짓했다. 만복은 죽은 사람에게 미안하다며 관 쪽에 짧게 절한 뒤에도 품삯 이야기를 거두지 않았다.북이 울렸다. 시비들이 완의 양옆에 섰다.“소란아.”완이 문밖을 향해 불렀다.“려화 방 창을 조금만 열어놓아라.”세린이 아내를 보았지만 이번에는 막지 않았다.문씨 저택의 대문이 열렸다.두 짝짜리 대문은 상여가 빠져나가고도 양옆에 사람이 설 만큼 넓었다. 그러나 문밖 골목은 달랐다. 높은 회벽 담이 양쪽에서 길을 눌러 수레 두 대가 겨우 비켜갈 폭밖에 되지 않았다. 문상객들의 흰 소매가 담을 덮었고, 처마 밑에 매단 조등이 바람을 받아 달각달각 부딪쳤다.곡소리가 골목을 메웠다. 둥, 둥, 북이 울릴 때마다 상여꾼들이 한 걸음씩 나왔다. 흰옷을 입은 문상객들이 담 아래로 비켜섰다.“멈추시오!”경연의 목소리가 북소리를 끊었다.그는 골목 한가운데 서 있었다. 문상객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올라왔고 검은 관복은 넓은 어깨에서 발목까지 곧게 떨어졌다. 밤을 새우고 진창길을 건너왔는데도 깃은 반듯했고 허리띠의 매듭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마로 내려온 머리카락 한 가닥만이 그가 쉬지 못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길고 깊은 눈매는 흔들리지 않았다. 검은 옷 한 벌이 흰 상복의 물결을 정면에서 갈랐다.대리시 포졸들이 골목 양쪽을 막았다. 상여꾼들은 서로 눈을 보며 발을 멈췄다. 맨 앞의 집사가 상장 지팡이를 짚고 나온 문세린에게 달려갔다.“대감, 대리시에서—”“들었다.”세린은 대문 밖으로 내려왔다. 상복 차림인데도 허리와 어깨가 흐트러지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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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관이 멈춘 골목

하인들이 몰려나왔다. 포졸들이 곤봉을 들었다. 맨 앞의 장정들이 급히 멈췄지만 뒤쪽 사람들의 몸은 반걸음 더 밀려왔다. 긴 멜대가 어깨 위에서 미끄러졌고, 접힌 천 하나가 목덜미까지 말려 올라갔다.“만복 형, 더는 못 버텨!”맨 뒤 장정의 무릎이 후들거렸다. 관의 무게가 왼쪽으로 쏠릴 때마다 흰 휘장 안에서 나무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앞쪽 한 걸음만 물러!”“물러나면 포졸이 잡는다잖아!”“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어? 시킨 대로 멘 죄밖에 없지!”만복이 노탁에게 소리쳤다.“나리, 관을 내리게만 해주십시오. 다치면 이 집도 대리시도 우리 식구는 안 먹여 살려줍니다!”“관 내려!”누군가 외쳤다.하인 둘이 대문 안에 두었던 낮은 걸상을 끌고 뛰었다. 관이 기울었다. 끼익, 긴 멜대가 비명을 질렀다.“천천히 내려!”노탁과 하인 둘이 앞쪽 멜대를 받쳤다. 다른 하인이 걸상 하나를 발로 밀어 넣었다.쿵!멜대가 걸상 위에 닿자 마른 흙이 하얗게 일었다. 영패를 든 시동이 뒷걸음질을 쳤고, 지전 광주리가 기울어 흰 종이가 골목 바닥에 쏟아졌다. 사람들은 밟지 않으려고 다시 한 걸음씩 물러났다.“형수는 오늘 삯을 내 손으로 받아오랬어.”“왜 내 돈을 네가 받아?”“어제 받은 선금 두 냥도 안 가져왔잖아.”만복이 아우의 뒤통수를 때렸다.“사람들 앞에서 그 얘기를 왜 해.”“형수가 오늘 못 받아오면 집에 들어오지 말랬어.”“일단 어깨나 주물러.”그때 안채에서 심완이 나왔다.상복 끈 하나가 풀려 땅에 끌렸다. 시비들이 붙잡으려 했으나 완은 손을 뿌리쳤다. 그녀는 관 앞에 서서 뚜껑을 만졌다.“부인.”세린이 불렀다.완은 대답하지 않았다.소의가 가까이 갔다.“려화 아씨가 맞습니까?”“그만 물어라.”세린이 말했다.“부인께 묻고 있습니다.”완은 관을 쓸던 손을 내렸다. 조문 온 이들과 집안 식솔들이 모두 그녀의 입을 보고 있었다.“내가 키웠어.”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열일곱 해를 키웠어. 열이 나면 밤새 업었고, 머리가 길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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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살아 있는 신부

“아닙니다.”완은 한참 그녀를 보다가 돌아섰다. 이번에는 시비들이 양옆에서 부축했다. 세린이 완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경연이 막았다.“문 대감은 남으셔야 합니다.”“내 집에서 나를 잡겠다는 건가?”“문려화의 행방을 아는 사람들을 모두 조사하겠습니다. 문수기 공자도 불러주십시오.”세린의 눈꺼풀이 떨렸다.“수기는 조정에 나갔다.”“오늘은 조회가 없는 날입니다.”세린이 대답하지 않자 노탁이 포졸들에게 명했다.“문수기를 찾아.”사람들이 흩어지는 사이, 소의는 백유진을 붙잡았다.“진문재를 아십니까?”유진은 소의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아버지를 많이 닮으셨군요.”“어떤 일을 함께했습니까?”“혼인하면 죽을 여자들을 다른 이름으로 내보냈습니다. 전쟁 뒤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도 살렸고요. 처음에는 그랬습니다.”“아버지가 관청 기록을 바꿨습니까?”“예.”소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시 물었다.“려화 아씨는 어디 있습니까?”유진은 문씨 저택의 닫힌 대문을 보았다.“살아 있습니다.”“어디에 있습니까?”“그것까지 알았다면 장례가 시작되기 전에 데려왔을 겁니다.”유진은 가마에 오르지 않고 골목 끝으로 걸어갔다.“장은보다 먼저 찾으십시오. 문씨 집안이 데리고 있어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 *경연이 배씨 저택에 들어서자 명주가 회랑 끝에서 달려왔다.배씨 저택은 바깥채에서 안채까지 마당이 셋이었다. 첫 마당에는 손님 가마가 줄지어 섰고, 가운데 연못을 돌아가는 돌길에는 밤새 내린 서리가 남아 있었다. 안채로 이어지는 붉은 회랑은 두 번 꺾였다. 명주의 치맛자락이 모서리를 돌 때마다 사락사락 기둥을 스쳤다.그 뒤로 명주의 시비가 귀고리 한 짝과 비단신을 들고 쫓아왔다.“아씨, 신부터 신으세요!”명주는 한쪽 발에는 붉은 신, 다른 발에는 푸른 신을 신은 채였다. 귀에는 자개 귀고리 하나만 달려 있었다.“오라버니, 웃으세요.”“왜?”“오늘은 사람 잡으러 온 얼굴로 들어가면 안 돼요.”“사람을 잡을 일은 없다.”“저를 잡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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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배씨 집안의 혼담

“명주 아씨가 밝으시니 집안이 늘 즐겁겠습니다.”“집안에서는 제가 말이 너무 많다고 합니다.”“시집가면 차츰 나아지겠지요.”“허 공자는 말 많은 여자를 싫어합니까?”“남편 말을 잘 듣는 여자를 좋아합니다.”“그분 말이 재미있으면 잘 들을 수 있어요.”방여운이 이번에는 찻잔을 딸 손에서 아예 가져갔다.그녀는 허씨 둘째 부인을 향해 웃었다.“허 공자는 화가 나면 어떻게 푸십니까? 말 위에서 오래 지내는 분들은 집 안에서도 손이 먼저 나가는 때가 있다더군요.”둘째 부인의 눈가가 잠깐 굳었다.“우리 아들은 술을 마셔도 흐트러지지 않습니다.”명주가 어머니를 보았다. 방여운은 찻잔 가장자리만 닦고 있었다.명주는 아직 한 번도 싫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허씨 둘째 부인의 웃음은 벌써 세 번이나 굳었고, 중매인은 화제를 찾느라 찻잔만 들었다 놓았다 했다.중매인이 화제를 돌렸다.“허씨 집안은 며느리에게 아주 너그럽습니다. 전 부인으로 들어갔던 주씨도 병들어 세상을 뜨기 전까지 부족함 없이 지냈지요.”명주의 웃음이 멎었다.“그 전 부인 말씀이세요?”“아씨가 그 이름을 어찌 아십니까?”“지난봄 연등 구경에서 만났어요.”둘째 부인의 손이 무릎 위에서 움찔했다.“사람을 잘못 보셨겠지요. 연심이는 이 년 전에 죽었습니다.”“저한테 본인이 허 공자의 전 부인이라고 했는데요.”명주는 손가락으로 턱을 받쳤다.“남편 집을 떠나 남쪽에서 장사를 시작했다고 했어요. 허 공자가 술을 마시면 사람을 때려서 도망쳤다고도 했고요.”마루의 공기가 굳었다.노태부인이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두드렸다.“명주야.”“그분이 거짓말을 했을까요? 아니면 여기 계신 분이 거짓말을 하실까요?”허씨 둘째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이런 모욕을 받고 혼담을 계속할 수는 없습니다.”“저도 그럴 것 같았습니다.”명주가 공손히 절했다.중매인이 급히 뒤따라 나갔다. 방여운은 사람을 시켜 손님들의 가마가 대문을 나갈 때까지 배웅하게 했다.문밖에서 시녀 춘초가 신발 끝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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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어머니가 사라진 밤

노태부인이 시비들에게 나가 있으라 했다. 문이 닫힌 뒤 그녀는 경연을 향해 말했다.“계화사와 엮인 집안을 모두 파헤치면 배씨 집안도 무사하지 못한다.”“무슨 뜻입니까?”“네 어머니 장례도 계화사에서 맡았다.”경연의 얼굴에서 피로가 사라졌다.“누가 맡겼습니까?”“죽은 사람 이야기로 오늘 혼담까지 망칠 셈이냐?”“아버지가 맡겼습니까?”노태부인은 지팡이를 세워 짚고 일어났다.“명주 혼처부터 다시 알아봐라. 네 혼처도 함께.”그녀는 답하지 않고 방을 나갔다.밤이 되어 경연이 저택을 떠나려 할 때, 늙은 유모가 뒷문까지 따라왔다. 어린 경연을 업어 키운 사람이었다.“대감마님께는 제가 왔다고 하지 마십시오.”유모는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어머니 장례를 보았느냐?”“관은 보았습니다. 얼굴은 못 봤고요.”“병으로 돌아가셨다 했지.”“그날 낮까지 걸으셨습니다.”경연이 유모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느냐?”유모는 주름진 두 손을 비볐다.“뒷문으로 수레가 왔습니다. 계화사에서 온 여자 둘이 마님을 태워 갔어요.”“살아 있는 어머니를?”“제가 수레에 오르는 것까지 보았습니다.”유모가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사흘 뒤에는 마님이 돌아가셨다며 관이 들어왔습니다.”* * *두옥선의 주점은 청묵재와 벽 하나를 맞대고 있었다. 앞문을 열면 네 사람이 앉는 상 셋이 길게 놓였고, 안쪽으로는 술독과 빈 병을 쌓아둔 좁은 마루가 이어졌다. 뒷문은 두 사람이 나란히 지나지 못할 만큼 좁아 옥선은 늘 손님에게 앞문으로 나가라고 소리쳤다.그날 옥선은 주점 문 앞에 앉은 사내를 세 번 지나쳤다.첫 번째에는 화로의 재를 버리러 나가느라 손님의 신발만 보았다. 두 번째에는 빈 병 꾸러미를 안고 들어오다 햇빛에 탄 콧등이 낯익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에는 덜컹거리는 덧문을 떼어 들고 나오다가 사내가 빈 술병을 흔들었다.“술을 시켰는데 주인이 사람을 못 보네.”옥선이 멈춰 섰다.“정산해?”“그래.”산해는 쉰을 바라보는 얼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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