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늘 조용하게 시작된다.누군가는 아직 퇴근길이고, 누군가는 샤워를 하고, 누군가는 TV를 켜놓고 의미 없이 채널을 넘긴다. 겉으로 보면 다들 평범한 밤이다. 그런데 그 평범함 아래에서, 사람 마음은 낮보다 훨씬 더 선명해진다. 낮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덮어두던 것들이, 밤에는 자꾸만 위로 떠오르니까.나는 그날 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노트북은 켜져 있었지만 원고는 한 줄도 늘지 않았고, TV는 켜져 있었지만 무슨 내용이 나오는지도 몰랐다.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었고, 화면엔 도화준과의 채팅창이 열려 있었다.‘오늘은 이도희 씨가 덜 막힌 얼굴이라는 걸 알아서요.’그 문장을 또 보고 있었다.오늘만 몇 번째지. 정말 질릴 법도 한데, 전혀 질리지 않았다. 오히려 볼수록 더 이상해졌다. 대체 저 남자는 왜 저런 식으로 말할까.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 의미 없는 문장도 아니다. 딱, 사람을 조금 더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방식.“이거 진짜 나쁘다….”나는 중얼거리며 핸드폰을 뒤집었다.이대로 계속 보면 또 빠진다.이 남자의 말투는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그래서 나는 일부러 고개를 들어 거실을 둘러봤다.아침에 대충 치워둔 식탁,소파 위에 접어둔 옷,창밖으로 보이는 익숙한 야경.이건 내 세계다.아무것도 특별하지 않은 조금 좁고, 조금 어수선하지만그래도 내가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낮에는 강도윤이 있는 세계도 있다.정돈된 회의실,깔끔한 자료,차분하게 이어지는 대화.그 안에 있으면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진다.‘흔들리지 않게 붙들린다.’나는 그 사실을 아주 천천히 인정했다.‘낮의 남자.강도윤.’그는 내 현실을 붙잡아준다.내 글을 정리해주고, 내 생각을 또렷하게 만들어주고, 내가 흔들릴 때 무너지지 않게 잡아준다.그와 함께 있으면, 나는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된다.그리고, 나는 다시 핸드폰을 뒤집어 화면을 켰다.도화준. 밤의 남자.이 남자는
Última actualización : 2026-08-30 Leer má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