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그냥 지루했을 뿐이야: Kapitel 51 – Kapitel 60

116 Kapitel

51화

남친. 그 단어가 이상하게 귀에 남았다.둘은 다시 해변을 걸었다. 하늘에서는 갈매기들이 몇 마리씩 무리를 지어 빙빙 돌고 있었다. 누군가 던져준 과자를 발견했는지 한꺼번에 낮게 내려왔다가 다시 날아올랐다. 유건이 갑자기 서하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서하도 묻지 않았다. 그냥 잡힌 채 걸었다.주변에는 손을 잡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니까 별것 아닌 일처럼 느껴졌다. “누나.” “응.” “우리 커플 같지 않아?” 서하가 피식 웃었다. “커플 아니잖아.” “알아.” 유건도 웃었다. 그게 끝이었다. 사귀자는 말도, 그럼 우리는 뭔데, 같은 질문도 없었다. 둘은 다시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번에는 서하가 먼저 유건의 팔을 잡았다. 유건이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 웃으며 다시 찍었고, 서하가 눈을 감으면 유건이 놀렸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오래 사귄 연인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그저 바닷가를 걷는 수많은 연인들 사이에 섞여 있는 남자와 여자일 뿐이었다.서하는 유건의 손을 조금 더 단단히 잡았다. 유건이 내려다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멀리서 파도가 부서졌다. 갈매기들이 바람을 타고 두 사람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서하는 문득 생각했다. 일요일이 조금 늦게 왔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 생각이 든 순간, 자신이 생각보다 이 여행을 훨씬 좋아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다음 날도 비슷했다.느지막이 눈을 뜨고, 한참을 침대에서 뒹굴다가 함께 샤워를 했다.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호텔을 나섰을 때는 햇빛이 제법 높이 올라와 있었다. 바닷가를 걸었다. 어제와 같은 바다였는데도 이상하게 지루하지 않았다.파도가 들어왔다 나가고, 갈매기가 날고, 사람들이 지나갔다. 둘은 별것 아닌 이야기를 했다. 유건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고, 서하는 회사에서 제일 싫어하는 회의 방식에 대해 떠들었다.“회의를 왜 두 시간씩 하는지 모르겠어.”“누나도 말 많이 하잖아.”“나는 필요한 말만 해.”“지금도 십 분째 회사 얘기 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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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누가 먼저였는지는 나중에는 기억나지도 않았다. 입술이 맞닿았고, 하프타임 십오 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계획은 처음부터 틀렸다.침대 위에서 두 사람은 금세 알몸이 되었다. 맥주 한 캔 때문인지, 대관람차에서부터 이어진 흥분 때문인지 서하는 평소보다 더 달아올라 있었다.오늘은 유건이 자신을 탐하게 두기보다 먼저 그의 몸을 탐하고 싶었다. 69자세로 옆으로 누워서 서로의 것을 무아지경으로 빨아댔다.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과 손이 상대를 찾아갔다. 숨이 흐트러지고, 몸이 얽히고, 감각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시간도 잊었다.그러다 서하는 문득 엉뚱한 생각을 했다. 이걸 그대로 본뜬 걸 하나 갖고 싶다. 완벽한 모양이었다. 끝은 상대적으로 가늘고 가운데로 갈수록 굵어지는, 매끈한 항아리 같은 형태.자신이 왜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는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왜 웃어?”유건이 숨을 고르며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야.”“또 이상한 생각했지.”“응.”“뭔데.”“말 안 해.”서하가 웃으며 유건을 끌어당겼다. 유건이 그녀의 위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천천히 가까워졌다. 유건이 천천히 그리고 강하게 자신의 것을 밀어넣는다. “쓰읍…… 허억.”서하의 숨이 순간적으로 막혔다. 이틀 동안 몇 번이나 서로의 몸을 익혔는데도 이상했다. 유건과 완전히 합체하는 순간만큼은 매번 처음처럼 숨을 삼키게 됐다. 서하가 유건의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 처음에는 느렸던 움직임이 조금씩 빨라졌다.“아…… 건아…….”자신도 모르게 이름이 흘러나왔다. 유건이 고개를 숙였다. 서하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붙인 채 한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속초에 온 뒤로는 계속 그랬다. 밥을 먹다가도, 바다를 걷다가도, 축구를 보다가도, 서로를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시간이 통째로 사라져 있었다. 한참 뒤에야 둘은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서하는 힘이 빠진 채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숨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유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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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일요일 아침. 서하는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 한동안 천장을 바라봤다. 낯설었던 호텔 천장이 이제는 제법 익숙했다. 옆에서는 유건이 자고 있었다. 서하는 몸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처음 이 방에 들어왔던 금요일 새벽에는 모든 게 충동적이었다. 서울에서 갑자기 버스를 타고, 새벽 세 시에 속초에 도착하고, 호텔 직원의 묘한 시선을 받으며 방을 잡았다.그런데 고작 사흘을 있었을 뿐인데 이상하게 이 방을 떠나는 게 아쉬웠다. 바닥에는 유건의 운동화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고, 의자에는 서하의 카디건과 유건의 후드티가 겹쳐 걸려 있었다.테이블 위에는 어제 먹다 남은 닭강정 상자와 빈 맥주캔, 충전기 두 개, 편의점에서 산 생수, 시장 봉투.며칠 사이 둘이 만들어놓은 생활의 흔적이었다. 서하는 휴대전화를 집었다.오전 9시 12분. 잠금 화면에 알림이 몇 개 떠 있었다.회사 메일, 단체 채팅방, 광고.그리고— 박재혁.서하의 손가락이 멈췄다. 부재중 전화 한 통. 금요일 밤이었다.그 아래에는 메시지도 있었다.[뭐해?]그리고 어제 오후에 하나 더.[전화 한번 해]서하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이상했다. 재혁에게 연락이 왔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신이 이걸 이제야 제대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금요일 밤에도 분명 봤다.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는 것을. 토요일에도 메시지가 온 것을 알았다.그런데 그냥 넘겼다. 나중에 해야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그러고는 잊었다. 완전히. 서하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조금씩 사라졌다. 재혁을 잊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 사흘이나 걸렸다.최근 며칠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회사에서 마주치지 않는 날에도 문득 생각났고, 연락이 없으면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그의 집에서 돌아온 날이면 냄새가 남아 있는 것 같았고, 며칠 만나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나눴던 말이 떠올랐다.자신이 먼저 연락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날에는 오히려 더 많이 생각했다.그랬는데— 속초에서는 아니었다.바다를 걸을 때도, 시장에서 국수를 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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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하지만 아직은 속초였다. 유건이 손을 내밀었다. 서하는 아무 말 없이 그 손을 잡았다. 둘은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파도가 들어왔다가 빠져나갔다. “누나.” “응.” “재밌었어?” “응.” “얼마나?” 서하는 잠깐 생각했다. “생각보다 많이.” “난 엄청.” “알겠어.” “또 올래?” 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잡은 손에 조금 힘을 주었다. 유건도 따라서 손을 꽉 잡았다. 그 순간 서하는 깨달았다.속초에서 자신이 좋았던 이유는 바다 때문만은 아니었다.회도, 시장도, 대관람차도 아니었다.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었다.재혁을 기다리지 않아도 됐고, 그의 마음을 가늠하지 않아도 됐고, 자신과 그의 관계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그냥 눈앞에 있는 사람만 보면 됐다.유건도 비슷했다. 채원이 어디서 뭐하는지, 왜 답톡이 늦는지, 자신이 왜 그게 궁금한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서하와 있으면 됐다.그 사실을 두 사람은 아직 서로에게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오후가 되자 두 사람은 속초를 떠났다. 서울행 버스에 올라 이번에도 나란히 앉았다. 금요일 새벽과 같은 자리였다.하지만 올 때와는 달랐다. 그때는 앞으로 무엇을 할지만 생각했다.지금은— 돌아가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를 생각했다.버스가 출발했다. 바다가 조금씩 멀어졌다.서하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화면에 이름이 떴다.박재혁.거의 동시에 유건의 휴대전화도 울렸다.채원.두 사람은 각자의 화면을 바라봤다.그리고 이상하게도— 누구도 바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서하가 먼저 휴대전화를 뒤집어놓았다. 잠시 후 유건도 똑같이 했다.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왜 안 받아?“ 서하가 물었다. 유건이 되물었다. “누나는?” 서하는 잠깐 말이 없었다. 그러다 창밖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조금 있다가.” 유건도 창밖을 봤다. “나도.” 그렇게 두 사람은 조금만 더, 속초에 남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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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마치 내집인양 익숙한 복도였다. 채원의 원룸 문 앞에는 배달된 치킨 한 봉지가 놓여 있었다. 유건의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뭐야. 집에 있네. 그제야 조금 안도했다. 사흘째 학교에도 나오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메시지도 읽지 않았다. 별일이 있는 건 아닌지, 아픈 건 아닌지, 혼자 집에서 쓰러져 있기라도 한 건 아닌지 별별 생각을 다 했다. 유건은 벨을 눌렀다. 딩동. 기다리는 몇 초조차 길게 느껴졌다. 급한 마음에 문까지 두드렸다 철컥. 잠금장치가 풀렸다. 문이 빼꼼 열리고, 부스스하게 헝클어진 머리, 짧은 핫팬츠에 얇은 나시티 노브라 차림의 채원이 모습을 보였다. 막 잠에서 깬 것처럼 채원의 눈가에는 아직 잠기운이 남아 있었다. 멀쩡했다. 그 얼굴을 확인한 순간 유건은 저도 모르게 숨을 내쉬었다. “야, 너 왜 전화 안—” 채원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황급히 검지를 입술에 가져갔다. 쉿. 유건의 말이 끊겼다.— 뭐야?그렇게 묻기도 전이었다. 방 안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유건의 표정이 굳었다. 채원이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아니, 치킨 배달.” 유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열린 문틈 사이로 시선이 들어갔다.현관 한쪽에 처음 보는 신발이 놓여 있었다.군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누군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채원이 황급히 몸을 숙여 문 앞의 치킨 봉지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유건을 보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나중에 연락할게.” 철컥. 문이 닫혔다. 유건은 그대로 굳은 듯이 서 있었다. 닫힌 문을 바라보면서. 안에서 희미하게 무슨 소리가 들렸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아니, 듣고 싶지도 않았다. 돌아서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채원이 걱정돼서 미칠 것 같았다. 멀쩡한 얼굴을 확인하면 화부터 내려고 했다.왜 학교 안 왔냐고, 왜 전화를 안 받았냐고, 사람 걱정하게 왜 그러냐고. 그런데 정작 채원을 보고 나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유건이 헛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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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유건은 괜히 축구화 끈을 풀었다가 다시 묶었다. 한 번 꽉 조였다가, 마음에 안 드는지 다시 풀었다.“유건아!!! 빨리 들어와!!!”멀리서 동아리 선배가 소리쳤다.“알았다고!”유건은 마지못해 일어났다. 가볍게 목을 돌리고 허벅지를 당겨 몸을 풀었다. 잔디 위를 몇 번 뛰어본 뒤 그대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동아리 회원들끼리 하는 가벼운 연습 경기였다.몸싸움을 세게 할 이유도, 위험하게 태클을 들어올 이유도 없는 경기. 그래서 방심했다. 유건의 포지션은 후방 수비수였다. 전방에서 길게 넘어온 공을 유건이 가볍게 잡았다. 주변에 상대도 없었다.한 번 돌면서 시야를 확인한 뒤 여유 있게 골키퍼에게 공을 돌리려던 순간이었다.퍽—뒤쪽에서 강한 충격이 들어왔다. 유건의 상체가 앞으로 휘청했다.“아, 씨…….”뒤통수까지 울렸다. 유건이 돌아봤다. 그 인성터진 개자식이었다.“아, 미안.”놈이 두 손을 들었다.“속도 조절을 못해서.”유건은 대답하지 않고 그냥 쳐다봤다. 고의였다. 축구를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다. 공은 이미 빠졌고, 굳이 저 위치까지 따라 들어올 필요도 없었다. 속도를 못 줄인 게 아니라 애초에 줄일 생각이 없었던 거다. 놈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 유건은 혀로 볼 안쪽을 밀었다.개자식. 그래도 참았다. 연습 경기였다. 괜히 분위기 망칠 필요 없었다. 잠시 휴식한 뒤 후반전이 시작됐다. 유건은 별말 없이 다시 자기 위치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식이 공을 몰고 유건 쪽으로 들어왔다. 유건이 앞으로 붙었다. 거리를 좁혔다. 놈이 유건을 보자 공을 반대편으로 밀어냈다. 공은 이미 발을 떠났다. 그런데 스쳐 지나가며 다시 어깨를 밀고 들어왔다. 그 순간 유건의 표정이 변했다.이번에는 참지 않았다. 유건의 발이 뒤에서 놈의 지지하는 다리를 걷어찼다.“악!”놈이 그대로 잔디 위로 나뒹굴었다. 유건은 쓰러진 놈을 내려다봤다.순간적으로 발이 올라갔다. 종아리를 그대로 짓밟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마지막 순간 발을 틀었다.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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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원룸에 들어서마자 남친이 채원을 힘껏 안았다. “먼저 씻어야 하지 않아?” “먼저 하고 씻을래.” “아니, 그래ㄷ—-ㅗ” 남친이 채원의 입을 입으로 틀어막았다. 손은 등쪽 티셔츠 안으로 집어 넣어 브래지어 후크를 풀었다. “하…살결이 너무 부드러워.” 남친이 채원의 젖가슴을 주므르면서 말했다. 금세 채원을 알몸으로 만든 남친은 그제서야 군복을 벗기 시작했다. “볼륨감이 더 생겼는데? 미쳤다. 나 오늘 많이 할거야.” “뭐래.ㅋㅋ” 채원이 남친의 바지 벗는 걸 거든다. 고작 2달인데, 꽤 오래된 거 같다. 그동안 유건의 것에 익숙해졌는지 남친의 성기가 낯설게 느껴진다. 유건보다 작고 얇은. 아직 충분히 젖지 않았는데도 남친이 거칠게 채원의 밑을 파고 든다. “아.. 아파..” “좀만…좀만 참아봐.” 남친이 위에서 채원의 안을 느끼고 있을 때, 채원은 유건을 떠올렸다. 묵직함, 안을 가득 채우는 느낌, 그리고 강렬한 피스톤. 같이 나누던 대화들. 조용히 방 안에는 철퍽 철퍽하는 소리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휴가 첫날이 지나갔다. 둘째 날도 비슷했다. 늦게 일어나 배달 음식을 시켰고, 침대에 누워 영상을 봤다. 남친은 잘 때도 채원의 가슴을 만졌고 하지 않더라도 성기를 채원의 것에 비볐다. 셋째 날에도 느지막이 일어났다. 점심이라고 하기엔 늦고 저녁이라고 하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채원은 침대에 누운 채 배달 앱을 뒤적이다 치킨을 시켰다. 남자친구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휴가 첫날에는 좋았다. 두 달 만에 보는 얼굴이 반가웠고, 오랜만에 같이 있는 것도, 오래된 습관같은 섹스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사흘째가 되니 할 일이 없었다. 밖에 나가자고 하면 피곤하다고 했고, 영화를 보자고 하면 집에서 보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딩동. “치킨 왔나 봐.”채원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손으로 정리하고 현관으로 나갔다. 문 앞에 치킨 봉투가 놓여 있었다.그걸 집으려고 문을 연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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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유건은 수업이 다 끝나고 선크림을 사러 정문 근처 올영에 들렀다.테스터를 손등에 짜서 문지르는데 자꾸 옆에서 여직원 하나가 알짱거렸다.—뭐지?유건이 자리를 비켜주려고 옆으로 움직이려던 순간이었다. 여직원이 갑자기 장난스럽게 유건의 방망이를 확 잡았다.“헛?”유건이 화들짝 놀라 돌아봤다. 모자를 푹 눌러쓴 여직원이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채원이었다.“ㅋㅋㅋㅋ 오랜만이야.”“뭐야, 씨…… 깜짝 놀랐잖아.”“표정 봐.”“너 왜 학교 안 나와.”웃고 있던 채원의 표정이 조금 미안해졌다.“남친이 갑자기 포상휴가 받았대서. 미안. 연락 못 해서.”유건은 입술을 삐죽였다.“쳇. 됐어.”그러면서도 얼굴에는 반가운 기색이 감춰지지 않았다.“그래서 남친은 복귀했어?”“응. 어제.”“……그래?”“근데 너도 할말은 없는거 알지? 이걸로 퉁치자.”채원이 유건의 팔을 툭 쳤다.“그리고 나 알바 끝날 때까지 기다려.”“왜.”“나랑 영화 보러 가자. 나 알바비 받았어. 저녁 내가 쏠게.”“영화?”“응.”유건이 괜히 물었다.“남친이랑 데이트 안 했어?”“안 했어.”“왜?”“그냥 계속 집에 있었어.”“닷새 동안?”“응.”유건은 어이가 없었다.뭐야. 아무리 군인이라 오랜만에 여자친구를 만난 거라지만, 그래도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닷새 내내 집에만 있었다고? 괜히 채원의 남자친구가 마음에 안 들었다.—남친 너무하네.채원의 알바가 끝난 뒤 둘은 성수로 갔다.“나 여기 처음 와.”지하철역을 나오자마자 채원이 두리번거렸다.“진짜?”“응. 맨날 와봐야지 해놓고 한 번도 안 왔어.”처음 와봤다는 사람치고는 신이 너무 났다. 골목 하나를 지날 때마다 멈췄다.“야, 여기 봐봐.”“또?”“사진 찍자.”스티커 사진도 찍었다. 영화관에서는 남은 자리가 거기뿐이라는 핑계로 커플석에 나란히 앉았다. 유건은 자연스럽게 채원의 허리를 감싸 안았고 채원도 반쯤 유건에게 안겨서 함께 영화를 봤다.영화가 끝난 뒤에는 유명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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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서하는 연신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공항 체크인까지는 시간이 충분했다.ㅍ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평범한 출장이 아니었다. 사장을 비롯한 고위 임원진이 동행하는 해외 일정이었다. 약속된 집결 시간보다 최소 삼십 분은 먼저 도착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차가 조금이라도 속도를 늦출 때마다 서하는 고개를 빼꼼 내밀어 앞쪽 도로를 살폈다. “많이 막히나요?” 기사에게 묻자 룸미러 너머로 대답이 돌아왔다. “이 정도면 괜찮습니다. 예상 시간보다 십 분 정도 일찍 도착할 것 같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서하는 그제야 등을 시트에 붙였다. 그러나 불과 몇 초 뒤 다시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 라스베이거스행. 회사에서 CES 실무단으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은 것은 불과 한 달 전이었다. 처음 이름을 확인했을 때는 기뻤다. 팀장 승진 이후 자신이 맡아온 프로젝트가 회사 안에서 제대로 평가받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하지만 성취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번 출장은 단순한 전시회 참관이 아니었다. 회사가 지난 몇 년 동안 개발해온 차세대 기술을 처음으로 해외 시장에 공개하는 자리였다. 문제는 경쟁사였다.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기술 격차가 적어도 일 년 이상 난다고 판단했던 경쟁사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따라붙고 있었다. CES에서 어느 쪽이 먼저 시장의 관심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이후의 판도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더구나 전시 둘째 날에는 미국의 대형 테크 기업과 비공개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다. 단순한 업무협약이 아니었다.계약이 성사되면 향후 몇 년간의 공급 물량과 해외 레퍼런스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다. 반대로 놓치면 그 자리를 경쟁사가 가져갈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사장까지 직접 움직였다.구본일.서하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이자 이번 출장단의 최고 책임자였다. 그 아래로 전략담당 부사장과 기술총괄 전무, 해외사업본부장, 법무팀 임원까지 따라붙었다. 실무진은 그보다 훨씬 적었다. 그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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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서하는 잠이 덜 깬 눈으로 기사를 바라봤다.서혜원.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름이었다. 대기업가의 막내딸. 경영 전면에 나선 인물은 아니었지만 집안 자체가 워낙 유명했다. 뉴욕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돌아와 집안의 문화·갤러리 사업에 관여한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었다. 결혼 당시에도 잠깐 화제가 됐던 것으로 기억했다. 상대가 재벌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기사에는 과거 결혼 당시 사진이 함께 실려 있었다.>서하는 대수롭지 않게 다시 눈을 감으려 했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눈을 떴다. 본일이 여전히 같은 기사를 보고 있었다. 아니, 다른 기사였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또 다른 기사, 그리고 또 하나. 본일은 이혼 소식을 계속 찾아보고 있었다.서하는 의아해졌다. —아는 사이인가? 재벌가 사람들끼리야 서로 아는 경우가 많으니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런데 단순한 호기심으로 보기에는 본일의 표정이 묘했다. 놀란 것도, 흥미로워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 알고 있던 일을 확인하는 사람 같았다. 본일이 태블릿 화면을 껐다. 서하는 얼른 눈을 감어 잠든 척했다. 잠시 뒤 옆에서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본일이 이번에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서하는 다시 눈을 아주 조금 떴다. 메신저라도 확인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화면에 떠오른 것은 사진이었다.오래된 사진. 서하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멈췄다. 지금보다 훨씬 어린 구본일이 있었다. 편안한 트레이닝 차림이었다. 고등학생쯤 되어 보였다. 지금의 단정하고 무게감 있는 사장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에 머리도 조금 길었고, 카메라를 향해 거리낌 없이 웃고 있었다.그리고 그 옆에 여자애가 있었다. 서하는 조금 전 기사에서 본 얼굴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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