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혁이 그 인턴을 다시 만난 건 퇴사 후 몇 달 뒤였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의 만남. 직급도, 회사도, 이해관계도 모두 벗어던지고 남자 대 여자로 마주한 것이 바로 그때였다.런던에서 사장단과의 출장을 마치고 나니 일주일 정도 여유가 생겼다. 원래대로라면 곧장 서울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재혁은 귀국편을 바꿨다. 파리를 거쳐 취리히에서 아웃하는 일정으로 항공권을 변경하고, 오랜만에 혼자 여행을 하기로 했다. 파리는 혜원과 자주 왔던 곳이었다. 혜원은 화려한 도시를 좋아했다. 파리, 밀라노, 바르셀로나, 뉴욕. 좋은 호텔과 좋은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아했지만, 무엇보다 미술관을 좋아했다. 직업 때문이기도 했다.루브르, 오르세, 오랑주리, 퐁피두. 혜원과 파리에 오면 하루에 미술관을 두 군데씩 돌 때도 있었다. 재혁은 미술에 별다른 조예가 없었다. 혜원이 그림 앞에 서서 한참을 움직이지 않으면 옆에서 기다렸고, 설명하면 들었다.“이거 봐. 색 미쳤지?”재혁에게는 그냥 파란색이었다.“응.”“뭘 응이야. 제대로 봐.”그러면 다시 봤다. 그래도 파란색이었다. 혜원은 그런 재혁을 보며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혼자였다. 미술관에는 가지 않고 대신 성당에 갔다. 몽마르트르 언덕 끝에 자리한 사크레쾨르 대성당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호텔을 나와 걷다 보니 그쪽이었고, 언덕 위로 하얀 돔이 보이기에 올라갔다. 계단에는 사람이 많았다. 잔디밭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기타를 치는 남자,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재혁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밖과 달리 안은 어두웠다. 촛불이 곳곳에서 흔들렸다. 성당 안에서는 오르간 연주가 한창이었다. 높은 천장 어딘가에서부터 묵직한 음이 내려앉았다. 낮게 울린 소리는 돌기둥 사이를 타고 번졌다가 다시 천장으로 올라갔다. 하나의 음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다음 음이 겹쳐지면서 거대한 공간 전체가 천천히 진동했다 종교는 없었다. 성당에 들어온 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어
ปรับปรุงล่าสุด : 2026-09-13 อ่านเพิ่มเติ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