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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지 마, 내 허락 없이: Chapter 131 - Chapter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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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화.

131화.한 시간 전, 서울.영화 크랭크 인 행사가 끝나고 꽤 많은 사람이 회식을 명목으로 고깃집에 모였다.아직 어두운 밤이 아닌데도,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이 테이블마다 폭탄처럼 끼어있었다.그 폭탄 중에서는 유서하도 있었다.주연 배우다 보니, 여기저기서 꽤 술을 받아 마신 것 같았다.유서하가 맥주잔을 들고 재훈의 옆에 풀썩 자리를 잡고 앉았다.“대표님, 술 한 잔 주세요!”탁! 소리가 나게 재훈 앞에 맥주잔을 내려놨다.재훈도 날이 날인지라 꽤 술을 한 상태였다.그가 유서하의 술잔을 바라보며 픽, 웃더니 맥주를 들어 그 잔을 채웠다.어쨌든 간에, 유서하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다.은별의 질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녀를 이용하지 않았었나.재훈이 프로덕션의 수장이 되고 처음으로 진행하는 영화였다.해외 유명 영화제에서 수상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모든 면에서 호흡이 좋아야 했다.저에게 서운했을 유서하를 달래줄 필요가 있었다.“취한 거 같은데, 천천히 마셔요.”재훈의 말에 보란 듯이 반항하듯 유서하가 술을 말끔하게 원샷했다.그러더니 그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채워 재훈에게 건넸다.“대표님도, 원샷!”“깡이 좋네요, 유서하 씨. 맥주잔에 소주라니.”“원샷!”잔말 말고 술이나 마시라는 듯 유서하가 잔을 세게 들었다 놨다.그 바람에 술잔이 팍! 옆으로 엎어지더니 그대로 재훈의 바지 위로 쏟아졌다.재훈은 바지가 차갑게 젖어 드는 것을 느끼며 미간을 미세하게 구겼다.그 모습을 보고 건너편에 앉아 있던 조감독이 얼른 티슈를 뽑아 재훈에게 건넸다.“대표님, 괜찮으세요?”“아, 네…, 뭐. 괜찮습니다.”재훈은 티슈를 건네받고 제 바지를 적신 술을 털어냈다.“서하 씨, 왜 이래! 정신 차려!”조감독이 오히려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건너편 있는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한데 유서하는 정신을 차릴 생각이 없는지, 엎어진 맥주잔을 세우더니, 다시 그 잔에 소주를 가득 채웠다.“대표님, 반칙이에요.”술에 취해 초점을 잃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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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화.

132화.“젠장.”핸드폰을 좌석 위로 던지며 재훈은 마른 세수를 했다.그러곤 몸을 다시 뒷좌석에 깊이 기댔다. 답답한 마음에 셔츠의 단추를 몇 개 풀었다.“하아….”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의 숨결에서 독한 알코올 냄새가 새어 나왔다.은별은 오늘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갔다.결혼식.아직, 두 사람은 하지 못한 예식이다.일분일초라도 빨리 그녀를 제 소유 아래 두려 부랴부랴 혼인 신고만 했었다.오늘 은별은 결혼식장에 가서 대체 무엇을 보고 왔길래 신혼집으로 오지 않고, 어리숙했던 지난날의 모습이 가득한 오피스텔로 갔을까.재훈은 다시금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어느새 거리엔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가로등과 상가 불빛이 곳곳을 밝히고 있었다.삼삼오오 지나가는 사람들, 밝은 빛을 뿜어내며 뭔가를 파는 상점들, 그리고 서로 부둥켜안고 걸어가는 연인.연인….그 연인의 얼굴에 재훈이 시선을 두었다.남자가 여자의 어깨에 팔을 단단히 두르고 있었고, 여자가 남자의 허리를 안은 채 뭐가 재밌는지 까르르 웃고 있었다.휙, 그들의 모습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어진 연인들의 모습들.수많은 군상이 지나가는 거리에 유독 재훈의 눈에는 행복해 보이는 연인들만 보였다.마치 영화의 필름처럼 휙, 휙, 휙, 지나가는 연인들.“…은별아.”그들에게 시선을 둔 채 그가 작게 제 여자를 불러본다.“당신…, 행복하니?”씁쓸한 미소가 재훈의 입가에 걸렸다.…행복할 리가.요즘 은별의 모습은 죽지 못해 사는 것만 같았다.그래서 거기에 갔어?우리의 사랑이 그나마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서?그런데 미안해서 어쩌나. 난 그 시절 철부지 정재훈이 아닌데….재훈은 머리를 뒤흔들 것 같은 두통에 창밖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눈을 감아버렸다.칠흑 같은 어둠이 그의 눈을 덮었다. 재훈은 저도 모르게 수마에 빠져들었다.***“어, 어떡해!”은별은 어둠이 삼켜버린 반지를 찾기 위해 핸드백에서 핸드폰을 꺼냈다.잠금장치를 풀자마자 재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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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화.

133화. 은별과 도준 두 사람 다 그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이내 도준은 미안하다는 표시로 택시를 향해 손을 들었다. “은별 씨, 이렇게 된 김에 내 차에 타요.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게요.” “아, 괜찮아요. 도준 씨.” 그때, 또다시 빵빵! 조금 전보다 더 큰 클랙슨 소리였다. “이런, 이러다 택시 아저씨 화나서 나오겠는데요? 그러지 말고 빨리 타요.” 도준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은별의 의사를 듣지도 않고 보조석 문을 열고 은별을 마구잡이로 태웠다. 은별은 차를 빨리 빼줘야 하는 상황에서 얼떨결에 도준의 차에 타게 되었다. 운전자석으로 가기 전 도준은 제 차 뒤에 있는 택시를 향해 다시 한번 손을 들어 보이고는 얼른 차에 올라 골목길을 벗어났다. 재훈을 태운 택시가 방금 도준의 차가 정차한 곳에 차를 세웠다. “손님, 도착했습니다.” “….” “손님? 도착했어요. 일어나세요.” 택시 기사가 뒷좌석에서 자고 있는 재훈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큰소리로 그를 깨웠다. 그 소리에 재훈이 눈을 감은 채로 미간을 좁히더니 애써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여기가, 어딥니까?” “젊은 분이 정신이 없네요. 아까 강남에서 이쪽으로 넘어가자고 하셨잖아요.” “아, 네…. 얼마죠?” 택시 기사가 요금을 말하자 재훈은 현금으로 그 이상을 주었다. “아이쿠, 이렇게나 많이 주세요?” 돈을 받은 택시 기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편하게 잘 왔습니다, 기사님.” “아, 네. 감사합니다, 손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문을 열고 나오는 재훈의 등 뒤로 택시 기사의 밝을 목소리가 들렸다. 탁, 소리와 함께 택시 문이 닫혔다. 택시는 문이 닫힘과 동시에 그 자리를 벗어났다. 재훈은 아직 술에서 깨지도 않았고, 잠에서도 깨지 않았다. 그가 정신을 차리려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위성인지 별인지 모를 것들이 반짝이며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맞다, 고은별.” 그가 핸드폰을 꺼내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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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화.

134화.재훈은 결혼반지를 손에 들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이윽고 저 멀리 빛을 뿜어내고 있는 가로등을 향해 반지를 들었다.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아이들 장난감 반지일 수도 있으니까.장난감 반지가 아님을 알고 있는데도 그는 한참을 빛에 비춰보았다.이리 보고, 저리 보고, 마지막엔 제 새끼손가락에 살짝 걸쳐보았다.그러고 나서야, 재훈은 반지를 확인하는 것을 멈췄다.이 반지를 살 때 그는 자기 새끼손가락에 걸쳐보고 샀었다.급하게 산 반지였다. 대충 이 정도면 되겠지 싶었고, 은별의 손에 끼워줬을 때 생각보다 잘 맞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은별의 손에 이 반지를 끼워줬을 때, 그동안 불안함에 파묻혀 끊임없이 그녀를 의심했던 감정들이 사그라져가는 것을 느꼈다.내 것이라는 완전한 표식, 영원한 사랑의 증표, 무엇보다 남편 있는 여자라는 증거.반지를 보고 행복한 미소와 함께 예쁘다고 말하던 여자가 너무 사랑스러워 주머니에 쏙 넣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랬는데 은별아….불과 어젯밤, 그렇게 행복해하던 당신의 모습은 이번에도 또 거짓이었나.나는 또 그 거짓말에 바보처럼 당신을 향한 경계를 풀어버렸다.머저리, 정재훈.사랑에 미쳐 한 곳만 바라보더니, 결국엔 바보가 되어버린 병신같은 새끼.재훈은 순간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반지를 제 바지 주머니에 얼른 넣고, 입을 틀어막은 채 건너편에 있는 상가 건물로 향했다.속을 게워 낸 재훈은 상가 1층에 있는 슈퍼에 들어가 생수를 사서 입안을 헹궜다.그나마 속을 비우고 나니 정신이 조금 드는 것 같았다.그가 다시 한번 입안을 깨끗하게 헹구고 생수 한 병을 다 비웠다.빈 병을 찌그러트려 쓰레기통에 버리려 할 때였다.저 아래에서 어떤 여자가 급하게 올라오는 게 보였다.하얀색 부케를 든 여자였다.하늘색 원피스에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였다.불과 오늘 오전만 해도 제 심장의 주인이었던 여자였다.한데… 왜 이리도 저 여자가 낯설게 보일까.재훈은 손에 쥐고 있던 찌그러진 빈병을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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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화.

135화.그 힘에 은별은 재훈을 마주 보게 되었다. 깨물고 있던 입술을 풀고는 불안한 눈길로 재훈을 바라보았다.그런데 재훈은 목소리와 다르게 잔뜩 흐트러져 있는 모습이었다.재훈과 재회 이후로 이렇게 엉망인 그를 본 적이 없었다.은별은 지금 제가 처한 상황을 잊어버리고, 그를 먼저 살폈다.“재, 재훈아, 괜… 찮아?”“괜찮을 리가 있나요. 사랑하는 와이프가 결혼반지를 버려버렸는데.”“그게, 버린 게 아니라!”“순진하게 손가락에 반지 나부랭이나 끼워주는 게 아니었어. 목에 목줄을 걸었어야 했는데.”“…!”“그랬다면, 당신이 우리의 결혼을 이렇게 하찮게 여기지는 않았겠지.”그 말과 동시에 재훈이 은별의 몸을 담벼락으로 확 밀어붙였다.은별의 몸이 퍽 소리와 함께 벽에 부딪혔다.“…!”은별이 몸에 통증을 느끼기도 전에 재훈이 양팔을 벌려 그녀를 벽과 제 사이에 가두었다.이윽고 재훈은 그녀의 귓가에 제 얼굴을 바짝 갖다 댔다.반려를 잃은 성난 맹수처럼 남자의 거친 숨소리는 무서울 정도로 사나웠다.재훈이 뿜어내는 숨결만으로도 은별은 곧 취할 것만 같았다. 그에게선 독한 알코올 냄새가 났다.들숨과 날숨을 불규칙하게 뱉어내던 그가, 분노를 꾹 눌러 참으며 어금니를 아득 깨물고는 입술을 열었다.“하아…, 죽여 버리고 싶어. 그러면 당신이 내 마음을 알까.”“…!”“이제야 알겠네, 이제야. 아버지가 왜 화병에 걸려 죽었었는지.”“…!”재훈은 은별의 귓가에서 얼굴을 떼고는 그녀를 정면으로 응시했다.은별은 저를 무섭게 응시하는 남자의 눈빛에 완전히 얼어붙어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은별아, 나 죽을까?”은별의 눈에 삽시간에 눈물이 고여 후두득, 떨어져 내렸다.재훈은 오늘에서야 알았다.아버지가 왜 사랑하는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보냈는지.아버지는, 엄마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사랑한 것이다.사랑하는 여자를 차마 죽일 수 없어, 보낸 것이다.그리고 죽도록 그 여자를 그리워하며 살았지, 바보처럼.아빠, 난 그렇게 살진 않을 거야.그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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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화.

136화.일주일 뒤.오피스텔 앞에서 그렇게 이별을 고한 뒤로 재훈은 일주일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은별이 그에게 끊임없이 연락해도 그는 받지 않았다.순진하게도 은별은 재훈이 이별을 고한 날, 술에 취한 그가 홧김에 헤어지자고 말했을 거로 생각했었다.집에 들어가면 재훈이 술에 취한 채 잠들어있겠지 싶었다.한데 집은 텅, 비어 있었다.그리고 다음 날부터 집안일과 은별의 식사를 챙겨주던 김 여사는 더는 출근하지 않았다.커다란 집에 덩그러니 고은별만 홀로 남았다.첫째 날은 너무 혼란스러워 방안에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었다.재훈이 자신과 재회 후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그녀의 먹거리였다.한데 저의 음식을 챙겨주던 김 여사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이젠 그녀에게 더는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명백한 의사 표현이었다.둘째 날은 낯선 사람들이 집에 왔다.그 사람들은 서슴없이 집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왔다.낯선 침입에 놀란 은별은 두려운 눈빛으로 물었다.“누, 누구세요?”“보안업체에서 왔습니다. 사장님께서 CCTV를 다 철거하라고 하셔서요.”그 말과 함께 그들은 아주 기계적으로 빠르게 CCTV를 철거했다.그때부터 본격적인 불안감은 시작되었다. 은별은 완전히 혼자라는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방안을 서성이며 안절부절못했고, 서재에 들어가 책을 보려 해도 글자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웠던 대리석 테이블 위에서 재훈과 나눴던 뜨거웠던 사랑만이 홀로그램처럼 선명하게 떠오를 뿐이었다.은별은 이제 단 1분도 서재에 머물 수가 없었다.셋째 날은 천둥 번개가 치며 억수 같은 비가 내렸다.우르릉! 쾅쾅!굉음과 함께 번쩍이는 번개가 침실 통창을 때렸다.그러나 신기하게도 천둥 번개는 더 이상 그녀를 예전처럼 불안하게 만들지 않았다.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견딜만했다.이제 그녀가 미치도록 견딜 수 없는 것은 혼자라는 외로움의 소굴이었다.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불안감.고은별을 향한 정재훈의 사랑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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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화.

137화.새까만 어둠이 깔린 밤, 고급 주택가는 고양이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했다.은별은 그 적막을 뚫고 대로변을 향해 타다닥 달리기 시작했다.발바닥이 아팠으나, 그녀는 왜 아픈지조차 알지 못한 채 뛰기에 바빴다.눈앞에 보이는 거라고는 재훈의 위치를 알리며 깜빡거리는 신호뿐이었다.한참을 달려 대로변에 도착했다.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택시가 은별 앞에 정차했다.은별은 뒷좌석에 타자마자 기사에게 다급하게 말했다.“저기! 제니스! 제니스…!”“네? 어디요?”택시 기사는 조금 짜증 나는 말투로 말하며 고개를 돌려 은별을 바라봤다.택시 기사의 얼굴이 삽시간에 구겨졌다.시야가 어두운 밤이라 그랬는지 여자를 태울 때까지는 몰랐었다.뒷좌석에 앉은 여자의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눈에 보이는 그대로 말하자면 처녀 귀신같은 모습이었다.하얀색 면 원피스에 머리를 풀어헤친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여자는 맨발이었다.아하, 이런. 재수가 없으려니까… 하필, 미친년을 태웠네.“아저씨! 호텔, 호텔 제니스로 가주세요!”여자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세상에서 가장 다급한 표정으로 외치고 있었다.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이봐요, 아가씨. 돈은 있어요?”“네?”“돈은 있냐고요. 돈 없으면 빨리 내려요, 바쁘니까.”“있, 있어요!”은별은 택시 기사에게 핸드폰을 흔들어 보였다.“거짓말하면 경찰서 가는 거 아시죠?”택시 기사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말했다.“네? 거, 거짓말 아니에요. 진짜예요! 선불로 계좌이체 해드릴게요!”“아, 뭐. 그렇게까지는 안 하셔도 되고. 어디 가신다고 하셨죠?”“호텔 제니스요!”택시 기사는 은별이 말한 도착지를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호텔 제니스는 강남에서도 최고급 호텔이었다. 저런 행색으로 갈 만한 곳은 아니었다.택시 기사는 무어라 몇 마디 더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미친년을 상대해 봤자 말이 통할까 싶었다. 자신은 그저 택시비만 떼먹지 않고 받으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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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화.

138화.뭐야, 말을 못 하나?보안요원은 대답 없는 여자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고객님, 여긴 아무나 들어오는 곳이 아닙니다. 이만 돌아가 주시겠어요? 출입구까지 제가 안내하겠습니다.”호텔의 얼굴이 있으니 단호하면서도 예의 바르게 말했다.“아…, 그게.”말 못 하는 여자는 아니었다.보안요원은 그나마 대화가 통할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무슨 일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계속 있을 수는 없습니다. 자, 밖으로 나가시죠.”그는 재차 은별을 설득하며 그녀를 출입구 쪽으로 안내했다.은별은 보안요원이 주는 위압감에 몇 발짝 발을 움직였으나, 얼마 가지 않아 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그와 동시에 보안요원의 눈동자에 짜증이 가득 서렸다.좋게, 좋게 내보내려 했는데, 행색만큼이나 말귀를 못 알아먹는 여자였다.“자꾸 이러시면 억지로 끌어내는 수가 있어요.”엄한 눈빛과 말투로 보안요원이 말했다.은별은 재훈의 머리카락 한오라기조차 보지 못하고 호텔에서 쫓겨나듯 나갈 수는 없었다.그녀가 간절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제가 사, 사람을 찾고 있는데요. 그 사람만 찾고 가도 될까요?”사람을 찾는다는 말에 보안요원의 엄한 얼굴이 조금 느슨해졌다.“일행이 있으셨어요?”“아, 그건 아니고…, 남, 남편이 여기에 있다고 해서요.”은별은 재훈을 찾고자 하는 다급함에 보안 요원에게 핸드폰 전원이 나가기 전, 재훈의 위치가 뜬 위치 앱을 보여줬다.그제야 보안요원은 은별을 향한 짜증스러운 눈동자를 완전히 거두었다. 이내 그는 안쓰러운 눈길로 은별을 바라봤다.아주 간혹 일 년 행사 중 하나처럼 이런 일들이 있었다.이 여자처럼, 바람난 남편을 찾으러 오는 와이프 말이다.그들을 대부분 데스크로 가 남편의 투숙을 확인한다. 한데 그것이 가능할 수가 없었다.여긴 출입객의 통제가 허술한 동네 여관이 아니지 않나.보안요원은 때가 낀 듯 시커먼 먼지가 묻은 은별의 맨발에 잠시 시선을 뒀다.오죽이나 급했으면 맨발로 여기까지 왔을까 싶지만, 이 여자를 도와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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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화.

139화.택시에 올라탔으나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호텔 안쪽으로 향해 있었다.“안녕히 가세요, 고객님.”보안요원의 인사와 함께 택시 문이 쾅, 닫았다.“어디로 모실까요?”택시 기사가 은별에게 도착지를 물었다.그녀는 여전히 호텔 안을 바라보며 혼이 나간 목소리로 신혼집 주소를 말했다.***탁!은별의 등 뒤로 집에 현관문이 닫혔다.그녀는 더는 발을 딛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륵, 주저앉았다.그러곤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얼굴을 묻었다.은별의 뇌리에 마도준과 함께 있던 재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마도준과 대화하며 얼핏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어떻게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일까.두 사람의 연결 고리라고는 고은별, 자신밖에 없었다.재훈이 마도준을 만날 이유가 뭐가 있을까.은별은 도통 재훈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드는 안도감.안도감이라니.재훈이 호텔에서 만난 상대가 여자가 아니라는 것에 은별은 온몸을 휘감고 있던 불안감이 사그라질 정도로 안도감을 느꼈다.호텔에서 재훈이 만난 상대가 마도준이라는 것이 여전히 놀라운 것은 사실이었으나, 마도준과 은별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다.마도준과는 선주의 일로 단 두 번 함께 시간을 보낸 것밖에는 없었다. 그것도 일대일로 만난 것도 아니었다.단양에서 결혼식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오는 그 세 시간이 단둘이 시간을 보낸 전부였다.데이트하고자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었고, 단순히 교통수단을 얻어 탔을 뿐이었다.굳이 확장 시키자면 저를 향한 낯선 남자의 관심과 호의에 어색함과 함께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꼈었다.한데 그런 감정이 마도준을 남자로서 느끼게 한 것은 아니었다.은별에게 마도준은 비익조의 사장이자, 선주 남편의 친한 친구였고, 화가일 뿐이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심지어 은별은 그의 전화번호도 핸드폰에 저장하지 않았다. 그가 전시 통역으로 연락한다며 건넨 명함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만약 재훈이 마도준에게 뭔가를 추궁하기 위해 그를 만난 것이라면, 그렇게 분위기가 화기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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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화.

140화.재훈이 은별을 관찰하며 만족스러운 듯 입가를 얇게 말아 올리더니, 마도준을 정면으로 바라봤다.“내일 오전, 10시. 어떠세요?”“마침 시간이 됩니다.”“다행이네요. 그럼, 메시지로 주소 보내드리겠습니다. 내일 뵙도록 하죠.”“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오늘 만남, 즐거웠습니다.”마도준이 재훈에게 인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훈은 앉은 자리에서 고개만 까닥일 뿐이었다.마도준은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순식간에 수억 원어치에 그림을 팔아서 그런 거겠지, 싶었다.그가 당당한 자세로 앉아 있는 재훈을 뒤로하고 라운지 카페를 나섰다.재훈은 마도준이 호텔을 나가자 다시 CCTV 화면으로 은별을 관찰했다.순진한 고은별은 보안업체가 정말로 CCTV를 철거했다고 믿고 있었다.하나 기존의 기기를 철거하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으로 교체만 했을 뿐.CCTV는 여전히 은별을 감시하고 있었다.고은별은 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한참을 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은별아, 고작 일주일 내가 사라졌다고 그리 불안해하면 쓰나.난 미친놈처럼 소식 없는 당신을 일 년 동안 기다렸었는데….걱정하지 마, 고은별.나 당신 보러 내일 집에 갈 거야. 깜짝 놀랄 선물과 함께.재훈은 호텔 로비에서 미친년처럼 서 있던 은별을 보았었다.일주일 사이 삐쩍 골아 버린 여자의 모습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그녀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곁눈으로만 보았음에도 고은별은 안 본 사이 몸도 마음도 정신도 완전히 망가져 있는 듯했다.마음이 아팠다.그러나 모든 게 정재훈이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었다.***다음 날, 아침.은별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눈을 떠보니 그녀는 여전히 현관을 벗어나지 못한 채였다.어젯밤 집에 도착하자마자 현관에 주저앉아 재훈을 생각하다 그녀도 모르게 잠이든 모양이었다.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었다.어제 호텔에서 재훈과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가 호텔에서 여자를 만난 것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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