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가지 마, 내 허락 없이: Chapter 71 - Chapter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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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71화.아빠의 결정은 생각보다 쉬웠다.“좋다. 그렇게 하렴.”“방금 말씀, 꼭 지켜주세요.”“걱정 말고, 넌 유학 갈 준비나 해.”“네. 그럴게요.”유학을 간다는 은별의 말에 그제야 아빠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이 드리워졌다.잠시 뒤.은별은 아빠가 떠난 자리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조금 전 자신이 아빠에게 무슨 말을 쏟아냈는지 도통 모겠다.무슨 생각으로 재훈과 결혼한다는 얘기를 연달아 부모님에게 말하는 걸까.정작 재훈이 결혼하자고 할 때는 대답조차 피하면서 말이다.참, 우스운 일이 아닌가.그녀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철컹. 현관문이 열렸다.재훈이 씁쓸한 얼굴을 한 채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은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앞에 섰다. 안쓰러운 눈길로 재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재훈아, 어디 있었어?”“차에 있었어.”“미안해.”“당신이 뭐가 미안해. 오히려 내가 당신한테 미안하지. 꼴이 엄청 우스웠잖아. 아버님 처음 뵈는데….”은별은 풀이 죽어 있는 재훈을 향해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그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러곤 얼굴을 들어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고마워, 재훈아.”“뭐가?”“그냥, 다.”“저기, 은별아. 아버님이 뭐라 그러셨어? 혹시, 나랑… 헤어지라고 하신 건 아니지?”은별은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표정을 짓고 말하는 재훈을 보며 덩달아 마음이 아파졌다.“아, 아니야. 재훈아, 잠깐 앉아봐.”은별이 재훈의 손을 잡아끌어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마주 보고 앉은 두 사람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다.재훈은 은별의 입에서 혹시나 헤어지자는 말이 나올까 걱정했고, 은별은 재훈이 과연 저의 프랑스 유학 결정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했다.은별이 재훈의 얼굴을 찬찬히 눈에 담았다.얼마 뒤 군대에 가는 정재훈. 아마도 은별은 이번 동화 프로젝트가 끝나는 봄에 프랑스로 갈 것이다.재훈의 입대와 자신의 유학은 어찌 보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서로에게 성장의 시간이 될 수도 있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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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72화.은별이 재훈의 손에서 벗어나며 그를 달래듯 말했다.“재훈아.”“할 거지? 혼인신고 할 거지?”“그건, 나중에. 너 제대하고. 나 공부 끝나고 하자.”실망감과 절망감이 재훈의 얼굴에 주렁주렁 자리했다.은별이 손을 들어 일그러진 그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그 대신 우리, 어머니 수목장에 같이 가자.”“…뭐?”“우리, 그걸로 혼인신고서 대신 하는 거야. 어때?”엄마 수목장이라니.재훈은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엄마가 돌아가신 날도 병원 주차장에서 밤을 새웠었다.크리스마스 날에도 수목장 주차장에서 바라만 봤을 뿐, 거기까지였다.엄마…. 엄마가 원하는 게 내가 은별이랑 엄마한테 인사 가는 거였어?생각해 보니, 엄마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고은별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그게 연민이든 사랑이든 그녀와 벌어진 거리를 좁힌 것은 엄마의 죽음이었으니까.엄마, 은별이… 엄마가 준 선물인 거 맞아?하…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그래도 엄마, 나 엄마를 용서할 수는 없어. 하지만 엄마 보러는 갈게.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인사하러 간다는데 막을 수는 없잖아. 안 그래?생각을 정리한 재훈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그래, 가자. 엄마한테.”은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재훈을 꼭 끌어안았다.선택하고 싶지 않았던 프랑스 유학 결정이 재훈이 엄마를 찾아가는 물꼬가 되었다니.그 사실 만으로도 은별은 모든 상황이 고맙기만 했다.***재훈의 스포츠카가 출판사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갑작스러운 아빠의 방문으로 미팅 시간에 늦자 재훈이 번개처럼 빠르게 그녀를 실어 날랐다.“끝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게.”재훈이 은별의 볼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했다.“괜찮아. 언제 끝날지 모르잖아. 먼저 집에 가.”“싫어. 이제 함께 보낼 날도 많지 않은데 1분 1초도 아까워할 거야.”은별이 재훈의 고집에 헛웃음을 짓더니 못 이긴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그럼, 여기서 기다리지 말고 근처 카페에 가 있어. 끝나면 전화할게.”“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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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73화.출판사에 도착한 두 사람은 곧장 회의실로 향했다.상반기 동화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각 부서의 담당자들이 모여 열띤 회의를 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정후가 필요한 서류를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은별 씨는 저 좀 잠깐 보고 가시죠.”“네. 대표님.”두 사람이 회의실을 나와 대표실에 마주 앉았다.“어떻게, 번역일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나요?”“아, 네. 잘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편하게 말씀하세요.”“아무래도 이번 프로젝트를 마지막으로 번역 일을 내려놔야 할 것 같아서요.”정후는 은별을 오랜만에 만나 번역 일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려 했었다.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나온 뜻밖에 말에 그가 놀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혹시, 우리 출판사 대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요?”“아, 그런 건 절대 아니고요. 사실, 봄에 프랑스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요.”“프랑스요?”“네. 마무리 짓지 못한 공부가 있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생겨서 마저 공부하고 들어올 생각입니다.”“음. 공부라…. 뭐, 일단 그 결정엔 박수를 보냅니다.”“아, 감사합니다. 대표님.”“그렇다고 우리 출판사와 일은 안 하겠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네요.”“네? 아, 아무래도 제가 외국에 있으면 소통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요.”“은별 씨.”“네, 대표님.”“요즘 같은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걱정입니다.”“네?”“회의야 화상으로 하면 될 일 아니겠어요? 그리고 솔직히 프랑스에서 살면서 불어 번역을 하다 보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습니다.”“아…, 제가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습니다.”“그건 그렇고, 은별 씨.”“네.”“요즘, 행복한가요?”“…네?”은별은 정후의 뜻밖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고은별, 너… 행복하니?“얼굴이 편안해 보여서요. 제 눈에는 행복해 보이는데.”오랜 시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니까.은별이 정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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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74화.사랑이 뜻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간절하다가, 점점 퇴색될 수도, 심지어 어떤 장애물 앞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그런데도 우리는 사랑을 지킬 수 있을 거라, 자만한다. 어리석게도.***2년 후.미치도록 사랑하는 나의 여자, 은별에게.은별아, 오늘 이 편지가 군대에서 당신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거야.당신을 만날 생각에 내 심장은 며칠 전부터 총에 맞은 것처럼 정상이 아니었지. 오랜만에 터질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잠을 설쳤어.기억나? 당신이 내 손을 당신 심장에 놓고 고백했던 순간 말이야.‘이 심장이 멈추는 순간까지, 난 널 사랑할 거야.’팡팡! 마치 수류탄이 공중에서 터지는 것처럼 난 숨을 쉴 수가 없었지.나의 사랑, 고은별.이 편지가 당신에게 도착할 때에, 난 당신을 품에 안고 침대 위에서 황홀한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당신의 보드라운 살결을 쓸어내리며, 당신의 귓가에 입술을 묻고 이 편지를 직접 읽어 줄 거야.그러니 고은별.도망갈 생각일랑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당신 지구 끝까지 쫓아갈 거거든.***명백한 불행이었다.1년 전,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프랑스 파리 시내 곳곳에서 무분별한 총격과 폭탄 테러 사건이 일어난 것은.수십 명의 사망자와 백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끔찍한 사고는 뉴스를 타고 세계 곳곳에 전해졌으며, 군대에 있는 재훈이 그 소식을 접한 것은 다음날이었다.통화가 가능한 시간에 은별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신호만 갈 뿐 연결이 되지 않았다.제기랄!자신의 위치가 나라 지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군인이라는 사실에 절망하며 며칠을 보냈다.사촌 형에게 부탁해 대사관을 통해 사상자와 부상자 명단에 고은별이 있는지 알아보았으나, 사고 명단에 은별은 존재하지 않았다.탈영할까….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었다. 하나 은별이 있는 곳은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머나먼 타국이다.비행기 표를 끊는 순간, 군 당국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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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75화.계절은 2년 전과 같은 겨울이 되었다.강릉에 있는 조용한 어촌에 낡은 집을 개조해 만든 1층짜리 카페, ‘디데이.’짤랑거리는 풍경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은별아.”은별은 저를 부르는 소리에 커피를 마시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툭. 툭. 툭. 목발이 카페 바닥에 닿는 소리와 함께 기태가 그녀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기태 씨!”은별은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태에게 재빨리 다가갔다. 그러곤 그의 왼쪽 팔에 팔짱을 껴 그를 부축하며 물었다.“여기 올 거였으면 전화하지. 길 미끄럽진 않았어?”“오늘 날씨 따뜻하잖아. 괜찮더라고.”“그래도 곳곳에 얼음이 있던데….”은별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기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은별을 보며 기태가 재차 괜찮다고 말하고는 은별이 앉은 자리에 앉았다.은별이 기태의 목발을 벽에 기대어 놓으며 물었다.“커피?”“좋지.”기태가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은별은 곧장 카운터로 가 기태가 마실 커피를 주문했다.“사장님, 기태 씨 커피요.”“카페오레?”카페 사장인 무진이 알면서도 확인했다.“네, 우유 조금만 넣어주세요.”“알았어, 잠시만 기다려.”은별과 기태가 강릉에 내려온 지도 수개월이 흘렀다.어느새 카페 단골이 된 두 사람은 이곳 사장과 꽤 친분이 두터워졌다. 무진은 오십이 훨씬 넘은 사람으로 서울에 살다가 퇴직하고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카운터를 바라보는 자리에 앉았던 기태는 커피를 주문하는 은별을 애잔한 눈길로 바라보았다.1년 전, 프랑스에서 테러 사건이 있었던 날.기태는 은별과 파리 시내의 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그곳에서 극단주의자들이 쏜 총에 그의 다리에 총알 두 개가 박혔다.하나는 왼쪽 허벅지를 관통했고 나머지 하나는 오른쪽 무릎에 박혀 신경을 끊어버렸다.그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이었고, 자신의 옆에는 은별이 눈물범벅이 된 채 옆을 지키고 있었다.그날의 일이 불행이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그날이 없었다면, 지금 고은별은 제 옆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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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76화.은별과 기태, 두 사람이 사는 곳이 한적한 어촌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관광지인 강릉이다.평일에는 간혹가다 관광객들이 보였지만, 주말에는 방문객들이 심심찮게 있는 마을이었다.그렇다고 숙박시설이 발달 된 곳은 아니었다. 민박 몇 채가 전부인 그런 곳.두 사람이 사는 집은 불과 얼마 전까지 에어비앤비로 관광객을 상대하던 곳이었는데, 두 사람이 1년을 월세로 계약하고 들어왔다.빨간 기와지붕에 흰색 벽돌집.대문 너머 바로 앞이 선착장이라 고기잡이배가 묶여 있는, 바다가 곧장 보이는 집이었다.어른 허리만큼 오는 하얀색 나무 펜스가 집을 둘러싸고 있고, 그보다 조금 더 높은 갈색의 나무 대문이 있었다.대문을 열고 십여 발짝 정도 걸으면 철제로 된 집 현관문에 다다랐다.문을 열고 들어서면 적당한 크기에 거실과 욕실, 그 옆에 주방, 그 옆으로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그 방 건너편에 욕실이 딸린 침실이 있었다.방이 두 개이면서 욕실이 두 개인 집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 집을 선택한 큰 이유 중 하나였다.이 어촌 마을에 둥지를 튼 것은, 은별의 뜻이었다. 미련이라는 것이 찐득한 초콜릿처럼 미련스럽게 그녀의 심장에 남아 있었다.어쩌겠다고 이곳을 선택했을까.이곳은… 재훈과 크리스마스이브에 첫 외박을 했던 어촌 마을이다.2년이 지났으니, 그는 제대를 했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무책임했던 자신의 사랑에 대한 참회라도 하듯, 그녀는 이곳에서 매일 재훈을 추억하며 힘들어했다.며칠째 잠을 설친 은별은 늦잠을 잤다. 개운한 잠을 잔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항상 무겁게 침대에서 일어났다.시간을 보니 오전 9시가 넘었다. 은별은 씻으러 방을 나와 욕실로 향했다.그녀가 주방을 지날 때였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일어났어?”“기태 씨…. 지금, 뭐 하는 거야?”은별은 놀라며 재빨리 기태에게 다가갔다. 그도 그럴 것이, 기태가 목발을 한 채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었다.“별거 아니야. 오늘 너 생일이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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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77화.딸랑, 딸랑.풍경이 자리를 잡으며 내는 울음소리에 남자는 풍경이 움직이지 않도록 한번 잡아주었다.언제 울었냐는 듯, 풍경은 말이 없었다.그 과정을 눈에 담던 은별은 저도 모르게 삽시간에 온몸이 굳어왔다.“…!”불규칙한 심장 박동이 끝을 모르고 올라갔다.남자가 은별이 있는 계산대를 향해 몸을 돌렸다.“어서 와, 재훈 씨.”재훈에게 먼저 알은 채를 한 사람은 무진이였다.그 사실에 은별은 더 놀랐다.“제가 좀 늦었죠? 어딜 좀 다녀오느라고요. 죄송합니다.”재훈이 계산대로 다가오며 머리에 묻은 빗물을 가볍게 털어내고는 머쓱한 얼굴로 예의 바르게 말했다.은별은 얼음 동상이 되어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렇지 않아도 방금 단골손님 주문이 들어왔는데, 재훈 씨가 해볼래?”“아, 그럴까요? 그런데 제가 사장님만큼 맛을 잘 낼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요.”“겸손은. 재훈 씨 실력이야 내가 잘 아는데. 아 참, 은별 씨.”무진은 아직 계산대를 벗어나지 않은 은별을 보며 재훈을 인사시킬 참이었다.그런데 은별은 제 불음에도 못 볼 사람을 본 것처럼 사색이 되어 재훈을 바라보고 있었다.아는 사람인가?무진은 속으로 갸우뚱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아는 사람이라면 재훈이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서로 알은 채를 했을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 재훈이 이 마을에 들어온 지는 불과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 거기다 해가 진 저녁에만 카페에 와서 음료 만드는 법을 배우고 갔었다.두 사람이 마을에서 마주치기는 쉽지 않았을 테다.무진은 이곳에 카페를 차리기 위해 강릉에서 손에 꼽는 로스팅 선생에게 수업을 받았었다. 얼마 전, 그 선생으로부터 연락이 왔었다.로스팅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데, 며칠 음료를 가르쳐 보니 아주 뛰어난 친구라고 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당분간 강릉에서 지낼 계획이라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마을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그래서 카페 ‘디데이’가 있는 마을이 생각났다고 했다.왜냐하면 무진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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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78화.기태는 초조함에 고개를 숙였다. 그사이 은별이 건너편에 앉았다.그가 고개를 들어 은별을 바라봤다. 여자의 눈에 금세 물기가 차올랐다.‘울지 마, 은별 아.’‘…응.’아랫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무는 여자를 보며 기태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잠시간 카페 안은 무진과 재훈의 웃음 섞인 대화 소리와 음료를 만드는 소리로 채워졌다.은별은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삼키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그 세 빗줄기는 더 거세졌고, 밖은 낮인데도 밤처럼 어두웠다.“…!”창밖을 보던 은별은 이곳에서 재훈을 마주쳤던 순간처럼 놀랐다.어두운 창으로 재훈의 모습이 비쳐서다.화이트 셔츠에 검은 슬랙스를 입은 그가 음료가 든 트레이를 들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은별은 재빨리 시선을 창에서 거뒀다. 그리고 테이블 위로 시선을 떨궜다. 다시금 눈가가 시큰해졌다.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 앞에서 재훈이 걸음을 멈췄다.빗소리보다 더 무거운 저음의 목소리가 이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커피 놔 드릴게요.”재훈이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 위에 음료를 세팅했다. 탁. 탁. 탁.카페오레, 에스프레소, 케이크.케이크…?주문하지 않은 둥근 모양의 초콜릿케이크가 테이블에 놓였다.은별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들어 재훈을 바라봤다.너…, 알고 있었어? 오늘이 내 생일.“사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남자 손님이 은별 씨를 위해 미리 주문했었다고. 서프라이즈로.”마치 행복을 전달하는 이벤트 회사 직원처럼 재훈이 즐거운 음성으로 말했다.은별은 재훈의 말에 다시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태를 바라봤다.멋쩍은 듯한 미소가 기태의 입가에 걸렸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그런 얼굴로.재훈은 제 본분을 다하려는 듯, 바지 주머니에서 초와 지포 라이터를 꺼냈다.그러곤 아주 천천히 나무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심듯 초콜릿케이크에 초를 꽂았다.긴 초 세 개와 작은 초 세 개를.33살 고은별의 생일을 축하하며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지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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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79화.어쩌다 저 새끼의 다리가 망가졌는지 모르지만, 어쩌다 고은별이 저 새끼랑 함께 있는 건지 모르지만, 고은별이 정재훈을 버리고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은별아, 2년 전 내 생일에 당신을 붙잡기 위해서 난, 욕실에서 기절한 척을 했었지.2년이 지난 지금, 당신은 날 떠나기 위해 기절한 척을 하네. 그치?그런데 말이야, 발버둥도 적당히 해야 장단을 맞춰주지.김기태의 다리가 망가졌다고 그와 재결합을 선택한 당신 같은 맘 약한 여자가, 척 하는 짓에 목숨을 걸면 쓰나. 쯧.“은별아! 정신 차려! 고은별!”기태가 은별의 어깨를 연신 탁탁 치며 의식을 깨우려 애썼다.그 사이 무진은 젖은 수건을 들고 왔다. 이윽고 바닥에 누워있는 은별의 가슴에 한쪽 귀를 바짝 붙이고 은별의 심장 박동을 확인했다. 다행히 은별의 심장은 뛰고 있었다.무진이 젖은 수건을 은별의 얼굴에 갖다 대며 다급히 소리쳤다.“은별 씨! 괜찮아? 눈 떠 봐! 은별 씨!”재훈은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아직 눈을 뜨지 못하는 은별을 무감은 눈으로 바라봤다.그가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은별이 쓰러진 지 2분 정도가 지났다.고은별, 이제 눈을 뜰 때가 되지 않았어? 눈 떠, 은별아. 나에게 더는 이런 개수작 통하지 않아.그때였다.“…하아.”은별이 미세한 신음과 함께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은별아!”“은별 씨!”눈을 뜬 은별을 보며 기태와 무진 두 사람 다 안도감에 목소리를 높여 그녀를 불렀다.한데 은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장승처럼 서서 저를 무심히 내려다보는 정재훈뿐이었다.‘재, 재훈아….’은별은 축 처진 손을 재훈을 향해 들어 올리려 했다.“은별 씨, 아직 움직이지 마. 잠시 더 누워 있어.”무진이 은별의 움직임을 제지하며 석상처럼 서 있기만 한 재훈에게 시선을 뒀다. 그가 보기엔 재훈은 너무 놀라 넋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하긴 저도 이렇게 놀랐는데 카페에서 일하는 첫날 기절한 단골손님을 봤으니 충분히 넋을 잃을 만도 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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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80화.그러곤 망설임 없이 은별을 업으려 등을 돌리고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었다.그가 입은 화이트 셔츠 위로 탄탄하게 발달 된 등 근육이 은별의 눈앞에 광활하게 펼쳐졌다. 마치 새가 날개를 펼치듯 재훈이 팔을 뒤로 뻗었다. 어서 업히라고 손바닥까지 까닥거리며.무진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은별을 보며 적극적으로 그녀를 도우려는 재훈에게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은별 씨, 업힐까? 재훈 씨가 민망하겠어.”“아, 네….”은별은 마지못해 대답하고는 마지막으로 기태를 바라보며 무언의 동의를 구했다.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재훈의 등에 업혀 그녀가 가는 목적지는 기태와 그녀가 함께 지내는 공간이었으니까.기태는 은별의 뜻을 알고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그가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 않나.은별은 그제야 검푸른 바다와 같이 넓고, 돌처럼 딱딱한 재훈의 등에 제 몸을 실었다.딸랑....풍경 소리와 함께 탁! 하며 카페 문이 닫혔다.곧이어 여자를 등에 업은 남자가 차디찬 음성을 뱉어냈다.“뒤로 꼬꾸라지고 싶지 않으면, 내 목 꽉 붙들어.”그러면서 재훈은 등에 업힌 은별의 몸을 위로 한번 추슬렀다.그 반동에 은별은 몸이 잠깐 휘청이자 반사적으로 재훈의 목에 제 팔을 휘감았다.그로 인해 은별의 한쪽 뺨이 재훈의 목덜미에 닿았다.피식, 재훈의 입가가 소리 없이 올라갔다.겁쟁이 고은별. 이러니 내가 당신을 어떻게 혼자 두나. 다리가 망가진 당신 애인은 이런 것, 해 주지도 못하잖아.쿵. 쿵. 쿵. 강렬하면서도 일정하게 뛰는 남자의 맥박이 은별의 뺨에 그대로 전해졌다.청량한 남자의 체취가 그녀의 들숨을 타고 그녀의 폐부에 다다랐다.하아….차마 뱉어내지 못하는 탄식을 은별은 속으로 꾸역꾸역 삼켜야만 했다.시큰거리는 눈가를 어찌할까. 차라리 우산을 쓰지 않았다면 좋으련만. 그러면 떨어지는 빗방울에 펑펑 울어버릴 텐데….재훈은 은별의 엉덩이를 한쪽 팔로 단단히 받히고, 다른 팔로 우산을 들어 그녀가 비를 맞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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