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ício / 도성에 복사꽃이 지던 날 / Capítulo 11 - Capítulo 20

Todos os capítulos de 도성에 복사꽃이 지던 날: Capítulo 11 - Capítul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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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무의는 침상에 누운 나를 잠시 바라보았다. 무심하던 눈빛에 처음으로 복잡한 기색이 어렸다.“몸속의 고충이 오랜 세월 살과 피를 갉아먹어 왔사옵니다. 이제는 오장육부 어느 하나 성한 곳이 없으며, 마지막 숨 한 가닥에 의지해 겨우 목숨을 이어 가고 있을 뿐이옵니다.”타나오윤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짐은 살릴 방도를 물었다.”무의는 소매 안에서 작은 자기병 하나를 꺼냈다.병 안에는 검붉은 약물이 절반가량 담겨 있었다.“이 약을 쓰면 잠시 고충을 잠재워, 잠시나마 정신을 되찾게 할 수 있사옵니다. 다만 약인(藥引)이 하나가 필요하옵니다.”무의는 잠시 말을 멈췄다.“이 아이와 목숨으로 이어진 이의 심혈이옵니다.”그리고는 오늘 날씨라도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덧붙였다.“대신 약을 복용한 자는 이 아이와 같은 고충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옵니다. 또한 이 독은 한번 몸에 스며들면 죽는 날까지 풀 수 없사옵니다.”하지만 타나오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비수가 손목을 가르는 소리는 아주 작았다.이내 피가 자기 사발 안으로 뚝뚝 떨어져 검붉은 약물과 뒤섞였다.무의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폐하, 정녕 그리 하시겠사옵니까? 이 고통은 폐하께서 살아 계시는 동안 줄곧 따라다닐 것이옵니다. 이 아이가 겪는 고통보다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옵니다.”“이 아이는 십 년을 견뎠다.”타나오윤의 목소리가 낮게 잠겨 있었다.“짐이 고작 한번 겪어 보는 것조차 두려워해서야 되겠느냐.”무의가 문득 웃었다.그 웃음에는 어딘가 잔인할 만큼 냉정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허나 폐하께서도 아셔야 할 것이 있사옵니다.”“이 아이는 폐하께서 손수 억지로 먹이신 약 한 사발을 마실 때마다, 지금 폐하께서 겪으실 고통보다 몇 배나 더한 아픔을 견뎌야 할 것이옵니다.”“폐하께서는 목숨을 붙들어 두고 계신다 여기셨겠지만, 실은 그때마다 다시 형틀 위로 올려놓은 것이나 다름 없사옵니다.”타나오윤의 손에서 약사발이 하마터면 미끄러질 뻔했다.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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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타나오윤은 숨조차 쉬지 못한 채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방금 움직였던 손가락이 확인이라도 해 주듯 다시 한번 미세하게 움직였다.하지만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태의는 약효가 나타나고 있다는 좋은 징조라며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그러나 언제 눈을 뜰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타나오윤은 그저 기다렸다.이튿날도, 사흘째도 타나오윤은 침상 곁을 떠나지 않았다. 몇 시진마다 손목을 베어 피를 내고 직접 약을 먹였다.시간이 흐를수록 고독이 일으키는 고통은 더욱 거세졌다. 얼굴에서는 핏기가 완전히 가셨고 입술은 바싹 말라 터졌지만, 타나오윤은 단 한 번도 나를 다른 이의 손에 맡기지 않았다.나흘째 밤, 타나오윤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금군에게 명했다.“앞장서라. 냉궁으로 간다.”금군은 타나오윤이 오랫동안 버려진 냉궁에 왜 가려는지 의아한 듯 잠시 머뭇거렸다.냉궁은 황궁 맨 북쪽,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곳에 있었다.문이 열리자 오래 묵은 곰팡내가 코를 찔러 타나오윤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안은 어두웠고 벽에는 이끼와 금이 가득했다. 창문마저 모두 막혀 있어 구석으로 희미한 달빛만 스며들었다.이불은 속이 비칠 만큼 얇았으며, 안의 솜은 딱딱하게 뭉쳐 있었다.숯불도 화로도, 변변한 등잔 하나도 없었다.도성의 겨울은 물방울마저 얼어붙을 만큼 매서웠다.‘나는 이곳에서 어떻게 버틴 것일까?’주위를 둘러보던 타나오윤의 시선이 구석에 멈췄다.구석에는 누렇게 뜨고 곰팡이가 슨 종이가 두툼하게 쌓여 있었다. 차곡차곡 정리해 둔 듯했지만 가장자리는 세월에 닳아 말려 있었다.타나오윤이 다가가 맨 위의 종이를 집어 들자 검붉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내가 손가락을 깨물어 피로 쓴 글이었다.[아바마마, 어마마마. 불효한 딸은 끝내 나라와 가족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다음 생에는 평범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다시는 조정에 발을 들이지 않겠습니다.]타나오윤은 두 번째 서신을 펼쳤다.[오라버니, 미안합니다. 평생 저를 지켜 주겠다 하셨는데, 저는 오라버니의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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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낯익은 향에 잠에서 깨어났다.코끝을 맴도는 냄새는 늑대 송곳니 팔찌에 오래도록 배어 있던 향과 같았다.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자, 황금빛 휘장에 금실로 수놓은 봉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이곳은 냉궁이 아니었다.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향나무로 짠 책장과 백옥으로 만든 붓 씻는 그릇, 창가에 놓인 난초까지...내가 한때 공주로 지내던 침전이었다.기나긴 악몽을 꾼 듯 정신이 아득했다.꿈속에서 나라는 망하고 가족은 모두 죽었다. 나는 대전에 무릎 꿇린 채 사람들 앞에서 옷이 벗겨졌다.하지만 손목의 쓰라림은 그 모든 일이 꿈이 아니었음을 일깨웠다.“영안아!”귓가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다급하게 터져 나왔다. 내가 깨어난 것을 믿지 못하는 듯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어디선가 달려온 타나오윤은 단숨에 침상 곁으로 다가와 두 손으로 내 손목을 붙잡았다.몰라보게 수척해진 얼굴에는 광대뼈가 도드라졌고, 움푹 팬 눈 밑은 검게 그늘져 있었다. 바싹 마른 입술까지 갈라져 있어 며칠째 잠 한숨 자지 못한 사람 같았다.“영안아, 깨어났구나.”타나오윤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목소리에는 기쁨과 애처로울 만큼 절박한 마음이 묻어났다.나는 한동안 타나오윤을 바라보다가 바싹 마른 목으로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폐하.”타나오윤의 손끝이 굳었다.붙잡힌 손목을 빼내려다 이내 포기하고, 낯선 사람을 보듯 무심히 바라보았다.“이 세상에 더는 영안공주는 없습니다. 폐하께서 영안이라 부르시던 여인도 이제 없습니다.”“저는 진하선입니다. 멸망한 진나라 왕실의 남은 죄인이자 노비일 뿐입니다.”말에는 한 점의 감정도 없었다.타나오윤은 찬물을 끼얹은 듯 굳은 채 입술을 달싹였지만, 나는 말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폐하께서 애쓰실 필요 없습니다. 깨어났으니 다시 죄인으로 살아가면 그만입니다.”나는 팔로 몸을 지탱해 침상에서 내려가려 했다.무릎을 꿇고 예를 올리기 위해서였다.타나오윤은 다급히 내 어깨를 붙잡으면서도 힘은 거의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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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방금 무엇이라 했느냐?”타나오윤의 목소리가 크게 흔들렸다.잘못 들은 것인지, 들은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나는 침상 휘장에 수놓인 봉황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아바마마도, 어마마마도 반대하셨지만 저는 대전에서 꼬박 하루 밤낮을 무릎을 꿇고 허락을 받아 냈습니다.”“제가 시집가면 두 나라의 원한을 풀 수 있으리라 믿었으니까요.”“그리고...”잠시 말을 멈췄다.이제 와 입에 담으려니 우스운 말이었다.“폐하를 연모했으니까요.”그 말은 메마른 나뭇잎처럼 힘없이 떨어졌다.이미 지나가 버린 마음이었다.타나오윤은 고개를 돌렸다.옆모습은 굳어 있었고, 목울대가 몇 번이나 크게 움직였지만 눈가에 맺힌 눈물은 끝내 떨어지지 않았다.한참 뒤에야 갈라진 목소리가 힘겹게 흘러나왔다.“폐하라고 부르지 마라.”“초원에서처럼... 이름을 불러도 좋고, 부군이라 불러도 좋다.”“안 되겠느냐?”나는 말없이 타나오윤을 바라보았다.타나오윤도 움직이지 않고 내 대답을 기다렸다. 오래 기다리면 끝내 내가 입을 열 것이라 믿는 듯했다.하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좀 걷고 싶습니다.”타나오윤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다칠세라 조심스럽게 팔을 받쳐 주었다.바닥에 내려서자 다리에 힘이 풀렸고,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숨이 찼다.전각문을 열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걸음을 멈췄다.마당은 누렇게 마른 낙엽으로 뒤덮였고, 나무마다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도 뼛속까지 시릴 만큼 차가웠다.오래 잠들어 있는 사이 계절은 한여름에서 늦가을로 바뀌어 있었다.타나오윤은 내 얇은 옷차림을 보고 겉옷을 벗어 어깨에 둘러 주었다.나는 거절하지도, 고맙다고 하지도 않았다.타나오윤은 내 걸음에 맞춰 천천히 동쪽으로 이끌다 마침내 새로 세운 작은 비석 앞에 멈춰 섰다.황릉 한쪽에 자리한 비석에는 아직 아무 글자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타나오윤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아이를 이곳으로 옮겨 왔다.”소매 안으로 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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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사흘 뒤, 신은수가 봉의궁에서 끌려 나왔다.타나오윤은 신은수를 내 침전 앞까지 끌고 와 내 앞에서 강제로 무릎 꿇게 했다.나는 두꺼운 담요를 두르고 의자에 앉아, 타나오윤이 직접 가져온 따뜻한 국그릇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나를 본 신은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내가 아직 살아서 이곳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폐하,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옵니까?”신은수는 금세 침착함을 되찾고 억울한 듯 물었다.“신첩이 혹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곁에 서 있던 타나오윤이 무표정한 얼굴로 종이 몇 장을 신은수 앞에 내던졌다.“생신연에서 진하선의 옷을 벗기고 춤추게 한 것도 네 짓이었다.”“냉궁에 들이는 숯과 음식을 빼돌린 것도 네가 시킨 일이었고.”“그 늑대 새끼도 미리 길들여 진하선의 피 냄새를 알아보게 했더군.”타나오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리고... 현유림에서 나를 구한 사람은 진하선이었다.”“너는 그 공을 가로채 십 년 동안 나를 속였다.”그제야 신은수의 얼굴이 굳었다.입술을 떨던 신은수는 이내 처연하게 웃으며 더는 숨기려 하지 않았다.“이제 다 아셨습니까? 해서 어쩌겠다는 겁니까!”신은수는 허리를 곧게 펴고 악에 받친 웃음을 터뜨렸다.“진하선은 멸망한 나라의 공주입니다! 저는 폐하께서 이 나라를 차지하도록 도운 공신의 딸이고요!”“우리 신씨 가문이 성문을 열지 않았다면, 십만 수인족 병사를 이끌고도 도성에 발조차 들이지 못했을 겁니다!”“폐하, 우리 가문을 실컷 이용해 놓고 이제 와 버리시겠다는 겁니까?”타나오윤은 대답하지 않았다.몸을 돌려 시종이 들고 있던 사기그릇을 받아 들었다.그릇에 담긴 탕약에서는 코를 찌르는 냄새가 풍겼다.아이를 지우는 약이었다.신은수는 눈이 크게 뜨더니 두 손으로 아랫배를 감싸고 미친 듯이 뒷걸음질 쳤다.“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이는 폐하의 핏줄입니다! 폐하, 지금 이성을 잃으신 것이옵니까?”타나오윤은 신은수의 턱을 거칠게 붙잡고 억지로 약을 들이부었다.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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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타나오윤은 내가 머무는 침전을 예전 모습 그대로 꾸미게 했다.책장에는 내가 어릴 적 즐겨 읽던 시집이 꽂혀 있었고, 창가에는 한때 내가 기르던 난초 화분이 놓여 있었다. 피우는 향마저 기억 속 공주부에서 쓰던 것으로 바꾸었다.타나오윤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세상을 되살리려 애쓰고 있었다.하지만 나는 창가에 앉아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아무런 온기를 느끼지 못했다.“영안아, 배고프지 않으냐?”타나오윤이 계화떡을 담은 접시를 들고 들어와 조심스럽게 내 곁에 놓았다.떡은 모양도 빛깔도 기억 속 모습과 똑같이 정갈하게 빚어져 있었다.나는 한 조각을 집어 한입 베어 물었다.혀끝에 단맛이 번졌지만, 한참을 씹다가 끝내 내려놓았다.“이 맛이 아닙니다.”타나오윤의 손이 허공에서 굳었다.“어마마마께서 만드시던 계화떡에는 소금이 아주 조금 들어갔습니다.”나는 창밖의 앙상한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단맛에 짠맛이 살짝 돌아야 물리지 않는다고 하셨지요.”“이제 다시는 먹을 수 없겠습니다.”창살 사이로 바람이 스치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전각 안이 고요해졌다.타나오윤은 아무 말 없이 접시를 거두어 갔다.요 며칠 내내 그런 식이었다.어떻게든 지난 잘못을 만회하고, 내가 여전히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려 애썼다.그러나 무슨 짓을 해도 나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오후 무렵, 고독이 또다시 도졌다.아무런 기미도 없이 검은 피가 목구멍으로 치밀었다.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지만, 손가락 사이로 검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어디서 나타났는지 타나오윤이 달려와 나를 와락 품에 안았다.“영안아! 영안아...”어쩔 줄 몰라 하며 내 피를 닦아 내는 타나오윤의 목소리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바로 그 순간, 타나오윤의 몸도 갑자기 뻣뻣하게 굳었다.고독이 되받아친 것이다.무의는 내가 고통을 느낄 때 타나오윤도 똑같이 아플 것이라고 했다.타나오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리고 관자놀이에는 핏줄이 불거졌다. 그런데도 이를 악문 채 신음 한 번 흘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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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타나오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저 묵묵히 나를 다시 눕히고 이불을 여며 준 뒤돌아서 나갔다.전각 밖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꽃병인지, 다른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이내 사방이 다시 고요해졌다.그날 이후로 깨어 있는 시간은 점점 짧아졌다.눈을 떴을 때는 대낮이었는데, 다시 눈을 뜨면 어느새 깊은 밤이 되어 있곤 했다.하지만 깨어날 때마다 타나오윤은 늘 곁에 있었다.어느 때는 침상 옆 의자에 앉아 있었고, 어느 때는 침상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는데, 잠든 채로도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무어라 희미하게 중얼거렸다.“영안아... 가지 마라...”타나오윤은 전보다 더 수척해져 있었다. 턱선은 칼로 깎아 놓은 듯 날카로웠고, 눈 밑의 짙은 그늘은 눈두덩과 맞닿을 만큼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그때 전각 밖에서 다급한 신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폐하, 변방에서 급보가 왔사옵니다. 북적(北狄)이 국경을 침범하였사오니 속히 명을 내려 주시옵소서!”“승상을 찾아가거라.”타나오윤은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허나 폐하께서는 벌써 이레째 조회에도 들지 않으셨사옵니다...”“꺼져라.”발소리가 황급히 멀어졌다.언젠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우연히 타나오윤의 손목을 보았다.그곳에는 새로 생긴 상처와 오래된 상처가 빼곡히 뒤엉켜 있었다. 이미 딱지가 앉은 것도 있었고, 아직 피가 배어 나오는 것도 있었다.하루 세 그릇씩 필요한 피.타나오윤은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이제 그만하십시오. 더는 헛되이 피를 흘려서는 아니 되옵니다.”타나오윤은 내게 약을 먹이다가 잠시 손을 멈췄다.그러고는 아무 말도 듣지 못한 듯 다시 숟가락을 내 입가로 가져왔다.나는 고개를 돌리고 입을 다물었다.“폐하, 폐하는 진나라 왕실을 증오하셨잖습니까. 이제 저 하나만 남았습니다.”나는 침상 휘장에 수놓인 봉황을 바라보며 남의 일이라도 말하듯 담담히 말을 이었다.“제가 죽으면 폐하의 복수도 끝나는 건데 잘된 일 아닙니까?”숟가락이 그릇에 떨어지며 작게 부딪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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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진씨라고 했느냐?”나는 눈을 뜨고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침상 곁에 앉아 전장에서 올라온 보고를 살피고 있던 타나오윤은 내 목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손에 든 종이를 내려놓았다.“깨어났구나.”타나오윤은 대답을 피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하던 끝에 사실을 털어놓았다.“네 태자 오라버니의 핏줄이다. 도성이 함락되던 날, 누군가 아이를 몰래 성 밖으로 빼돌렸다고 한다.”“살아 있었구나.”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이토록 감정이 격해진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태자 오라버니에게 아직 후손이 남아 있었다.진나라 왕실의 핏줄은 끊기지 않았다.필사적으로 참았지만, 눈물은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타나오윤은 복잡한 얼굴로 내 눈물을 바라보았다.그동안 타나오윤은 어떻게든 나를 웃게 하고 울게 하며, 아주 작은 반응이라도 끌어내려 애썼다.그러나 내 마음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그런데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소년이 너무도 쉽게 나를 울리고 말았다. “조정에서는 군사를 보내 진압해야 한다는 말이 빗발쳤다.”타나오윤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허나 짐은 허락하지 않았다.”나는 아무 말 없이 손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이불을 세게 움켜쥐었다.타나오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내게 등을 돌렸다.“영안아, 그 아이를 만나고 싶으냐?”창밖에서 불어온 바람에 촛불이 위태롭게 흔들렸다.입을 열었지만 목이 꽉 막힌 듯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내렸다.타나오윤은 뒤돌아 내 눈물 젖은 얼굴을 바라보았다.어려운 결정을 내리려는 듯,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던 타나오윤은 이내 전각 밖으로 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명을 전하라. 성문을 열되 군사는 단 한 명도 세우지 말고, 의병(義兵)의 수장을 궁으로 들이라.”밖이 삽시간에 술렁였다.“폐하, 아니 되옵니다!”“저들은 반군이옵니다! 성안으로 들였다가는...”“물러가라.”타나오윤의 목소리에는 어떤 반박도 허락하지 않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그는 다시 안으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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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짙고 곧은 눈썹, 굳게 다문 턱선...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소년의 모습에서 얼핏 태자 오라버니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손을 뻗어 소년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내 손끝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소년의 피부에서는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나는 문득 웃었다.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웃음이었다.“아비를 똑 닮았구나.”소년은 눈시울을 붉힌 채 앙상한 내 손을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고모님, 제가 너무 늦게 왔습니다.”“늦지 않았다.”나는 고개를 저었다.“이렇게 너를 보았으니 늦지 않았어.”타나오윤은 문밖에 선 채 들어오지 않았다.다만 촛불에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어, 문틈 너머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예전에 타나오윤은 내가 진나라 황실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싫어했다.그런데 이제는 진나라 황실의 마지막 핏줄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나를 고모라 부르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소년도 문밖에 누가 있는지 알아챈 듯했다.내 손을 더욱 세게 움켜쥔 채,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칼을 뽑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있었다.소년의 손은 언젠가 태자 오라버니가 내 손을 잡고 글씨를 가르쳐 주던 때처럼 힘이 넘쳤다.“고모님,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소년이 말했다.“여기를 떠나 함께 집으로 돌아가시지요.”나는 희망으로 가득한 젊은 얼굴을 바라보다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나는 이제 아무 데도 갈 수 없단다.”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나는 무언가 말하려는 소년의 손을 붙잡았다.“고모 말을 잘 들어라.”나는 힘겹게 숨을 고른 뒤 겨우 입을 열었다.“이제 싸움은 그만두어라. 백성들은 더 버틸 수 없다. 이 나라를 누가 다스리든 백성들이 편안히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냉궁에서 지내는 동안 수없이 많은 울음소리를 들었다.나라를 잃고 우는 이도 있었고, 자식을 잃고 우는 이도 있었다. 굶주린 채 궁궐 밖에서 쫓겨나며 우는 백성도 있었다.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이 아이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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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점점 가늘어지는 진하선의 숨결은 한 줄기 바람에도 꺼질 듯 위태로운 촛불 같았다.타나오윤은 마지막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진하선의 입가에 귀를 가까이 댔지만, 끝내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이윽고 진하선의 입술이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영안아.”타나오윤이 갈라진 목소리로 불렀다.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진하선.”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공주마마...”끝내 대답은 없었다.타나오윤은 진하선의 이름과 신분, 자신이 불러 왔던 모든 호칭을 하나씩 불러 보았으나, 진하선의 가슴은 다시는 오르내리지 않았다.입가에는 긴 고통에서 마침내 벗어난 듯 평온한 미소가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타나오윤은 점점 식어 가는 몸을 품에 안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전각 밖에서 발소리가 다가오더니, 태의가 문턱 앞에 무릎을 꿇었다.“폐하, 소신이...”“꺼져라!”모래를 삼킨 듯 거칠게 갈라진 목소리였다.태의는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바로 그때 고독이 전보다 백 배는 거센 기세로 타나오윤을 덮쳤다.뼛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온 고통이 온몸으로 번지며, 수많은 벌레가 살과 피를 모조리 갉아 먹는 듯했다.타나오윤은 등을 활처럼 웅크렸다. 이마에는 핏줄이 불거졌고 목구멍에서는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진하선은 죽었다.그런데도 독은 사라지지 않았다.무의는 목숨을 잇는 피가 한 번 몸에 섞이면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진하선이 살아 있을 때는 고독이 두 사람의 피를 따라 오가며 모두를 괴롭혔다.그러나 진하선이 죽어 고충이 본래 주인을 잃자, 그 반식(反噬)은 모두 타나오윤 한 사람에게 쏠렸다.타나오윤은 온몸을 거세게 떨면서도 진하선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조금이라도 팔을 풀면 마지막 온기조차 남기지 않은 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만 같았다.그때 태감 하나가 부축하려 다가서자, 타나오윤이 홱 고개를 들었다.핏빛으로 충혈된 눈이 번뜩이는 순간, 손에 쥔 비수가 칼집에서 빠져나왔다.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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