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전란을 끝내기 위해, 나는 스스로 황명을 청해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수인족(獸人族) 부족의 타나오윤과 혼인했다. 혼인 첫날밤, 어느새 초원의 늑대왕이 된 그는 드넓은 초원에서 나와 깊은 정을 나누었고, 우리는 서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때의 나는 타나오윤이 진심으로 나를 연모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훗날 십만 수인족 병사를 친히 이끌고 도성을 짓밟은 이 또한, 다름 아닌 타나오윤이었다. 그는 내가 고개를 돌리지 못하도록 턱을 붙잡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끝까지 지켜보게 했다. 아바마마께서는 굶주린 늑대 떼에 물어뜯겨 돌아가셨고, 태자 오라버니는 말발굽 아래에서 비참하게 숨을 거두었다. 어마마마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자들은 어마마마의 봉관을 잡아 뜯고 예복까지 찢어 놓은 채, 사람들 앞에서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모욕을 가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될 때까지 그 치욕은 끝나지 않았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타나오윤이 웃으며 내게 물었다. 그의 눈에는 지난날의 다정함이라곤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진하선, 비록 네가 경국지색이라 하나, 내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으리라 여겼느냐?” “진나라(秦國) 황실이 내 부족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아느냐? 고작 너 하나를 보내 놓고 이 피맺힌 원한을 없던 일로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단 말이냐!” 마침내 타나오윤은 천하를 손에 넣었고, 연모하는 여인을 황후의 자리에 앉혔다. 반면 나는 아무런 명분도 지위도 없이 냉궁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 때마다, 그는 황릉에서 시신을 파내 내 앞에 가져왔다. 그러고는 뼈를 산산이 부숴 가루로 만들고, 남은 재까지 모조리 흩어 버렸다. “내가 허락하기 전에는 죽을 생각도 마라!” 그 뒤로 나는 더는 죽으려 발버둥 치지 않았다. 어차피 오래전 그를 살리려고 삼켰던 고충(蠱蟲)의 독이 발작했고, 내게 남은 시간은 이제 사흘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View More순간 온 조정이 발칵 뒤집혔다.하지만 타나오윤은 누구에게도 반대할 틈을 주지 않았다.사흘 만에 황위를 넘긴다는 교서를 작성하고 옥새까지 내놓았다.타나오윤이 왕으로서 마지막으로 한 일은 진하선의 장례를 황후의 예에 따라 성대히 치르는 것이었다.봉호는 영안이었다.진하선은 황릉 한가운데에 안장되었고, 바로 곁에는 ‘안청’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작은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모자는 그제야 다시 만났다.진하선을 입관하던 날, 타나오윤은 새로 만든 황후의 예관을 직접 관 안에 넣어 주었다.신은수가 썼던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순금과 동해의 진주로 밤새 새로 만들게 한 것이었다.진하선은 살아 있는 동안 황후의 예복을 입어 보지도, 책봉식을 치르지도 못했고, 후궁으로서의 명분조차 없었다.타나오윤은 살아생전 주지 못했던 모든 것을 죽은 뒤에야 내어 주었다.하지만 관 속의 진하선은 이제 다시 눈을 뜰 수 없었다.타나오윤은 관 옆에 서서 뚜껑에 채 마르지 않은 칠을 손끝으로 가만히 쓸었다.“영안아.”대답은 없었다.꺼지지 않는 촛불만 가볍게 흔들리며 흰 상복을 입은 타나오윤을 비추었다.하룻밤 사이에 타나오윤은 머리가 하얗게 세어 버렸다.황위를 넘기는 날, 타나오윤이 소년에게 옥새를 건네자 소년은 두 손으로 옥새를 받아 들고 눈앞의 수척한 사내를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타나오윤은 한마디만 했다.“해마다 청명절이 되면 황릉에 갈 수 있게 해다오.”소년은 오랫동안 침묵했다.문득 죽음을 앞둔 고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백성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니 더는 싸우지 말라던 말이었다.소년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타나오윤이 몸을 돌려 높은 단상에서 내려오자, 신하들은 감히 그를 바라보지 못한 채 그저 양쪽으로 갈라설 뿐이었다.걸음은 느렸고, 이따금 비틀거리기까지 했다.소매가 흘러내리자 손목을 가득 메운 칼자국과 고독이 퍼뜨린 검은 무늬가 드러났다.그날을 끝으로 도성에서 타나오윤을 보았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어떤 이는 그가 서주의 옛터로 떠났
점점 가늘어지는 진하선의 숨결은 한 줄기 바람에도 꺼질 듯 위태로운 촛불 같았다.타나오윤은 마지막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진하선의 입가에 귀를 가까이 댔지만, 끝내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이윽고 진하선의 입술이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영안아.”타나오윤이 갈라진 목소리로 불렀다.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진하선.”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공주마마...”끝내 대답은 없었다.타나오윤은 진하선의 이름과 신분, 자신이 불러 왔던 모든 호칭을 하나씩 불러 보았으나, 진하선의 가슴은 다시는 오르내리지 않았다.입가에는 긴 고통에서 마침내 벗어난 듯 평온한 미소가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타나오윤은 점점 식어 가는 몸을 품에 안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전각 밖에서 발소리가 다가오더니, 태의가 문턱 앞에 무릎을 꿇었다.“폐하, 소신이...”“꺼져라!”모래를 삼킨 듯 거칠게 갈라진 목소리였다.태의는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바로 그때 고독이 전보다 백 배는 거센 기세로 타나오윤을 덮쳤다.뼛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온 고통이 온몸으로 번지며, 수많은 벌레가 살과 피를 모조리 갉아 먹는 듯했다.타나오윤은 등을 활처럼 웅크렸다. 이마에는 핏줄이 불거졌고 목구멍에서는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진하선은 죽었다.그런데도 독은 사라지지 않았다.무의는 목숨을 잇는 피가 한 번 몸에 섞이면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진하선이 살아 있을 때는 고독이 두 사람의 피를 따라 오가며 모두를 괴롭혔다.그러나 진하선이 죽어 고충이 본래 주인을 잃자, 그 반식(反噬)은 모두 타나오윤 한 사람에게 쏠렸다.타나오윤은 온몸을 거세게 떨면서도 진하선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조금이라도 팔을 풀면 마지막 온기조차 남기지 않은 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만 같았다.그때 태감 하나가 부축하려 다가서자, 타나오윤이 홱 고개를 들었다.핏빛으로 충혈된 눈이 번뜩이는 순간, 손에 쥔 비수가 칼집에서 빠져나왔다.모두가
짙고 곧은 눈썹, 굳게 다문 턱선...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소년의 모습에서 얼핏 태자 오라버니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손을 뻗어 소년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내 손끝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소년의 피부에서는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나는 문득 웃었다.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웃음이었다.“아비를 똑 닮았구나.”소년은 눈시울을 붉힌 채 앙상한 내 손을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고모님, 제가 너무 늦게 왔습니다.”“늦지 않았다.”나는 고개를 저었다.“이렇게 너를 보았으니 늦지 않았어.”타나오윤은 문밖에 선 채 들어오지 않았다.다만 촛불에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어, 문틈 너머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예전에 타나오윤은 내가 진나라 황실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싫어했다.그런데 이제는 진나라 황실의 마지막 핏줄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나를 고모라 부르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소년도 문밖에 누가 있는지 알아챈 듯했다.내 손을 더욱 세게 움켜쥔 채,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칼을 뽑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있었다.소년의 손은 언젠가 태자 오라버니가 내 손을 잡고 글씨를 가르쳐 주던 때처럼 힘이 넘쳤다.“고모님,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소년이 말했다.“여기를 떠나 함께 집으로 돌아가시지요.”나는 희망으로 가득한 젊은 얼굴을 바라보다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나는 이제 아무 데도 갈 수 없단다.”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나는 무언가 말하려는 소년의 손을 붙잡았다.“고모 말을 잘 들어라.”나는 힘겹게 숨을 고른 뒤 겨우 입을 열었다.“이제 싸움은 그만두어라. 백성들은 더 버틸 수 없다. 이 나라를 누가 다스리든 백성들이 편안히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냉궁에서 지내는 동안 수없이 많은 울음소리를 들었다.나라를 잃고 우는 이도 있었고, 자식을 잃고 우는 이도 있었다. 굶주린 채 궁궐 밖에서 쫓겨나며 우는 백성도 있었다.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이 아이마저
“진씨라고 했느냐?”나는 눈을 뜨고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침상 곁에 앉아 전장에서 올라온 보고를 살피고 있던 타나오윤은 내 목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손에 든 종이를 내려놓았다.“깨어났구나.”타나오윤은 대답을 피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하던 끝에 사실을 털어놓았다.“네 태자 오라버니의 핏줄이다. 도성이 함락되던 날, 누군가 아이를 몰래 성 밖으로 빼돌렸다고 한다.”“살아 있었구나.”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이토록 감정이 격해진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태자 오라버니에게 아직 후손이 남아 있었다.진나라 왕실의 핏줄은 끊기지 않았다.필사적으로 참았지만, 눈물은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타나오윤은 복잡한 얼굴로 내 눈물을 바라보았다.그동안 타나오윤은 어떻게든 나를 웃게 하고 울게 하며, 아주 작은 반응이라도 끌어내려 애썼다.그러나 내 마음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그런데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소년이 너무도 쉽게 나를 울리고 말았다. “조정에서는 군사를 보내 진압해야 한다는 말이 빗발쳤다.”타나오윤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허나 짐은 허락하지 않았다.”나는 아무 말 없이 손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이불을 세게 움켜쥐었다.타나오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내게 등을 돌렸다.“영안아, 그 아이를 만나고 싶으냐?”창밖에서 불어온 바람에 촛불이 위태롭게 흔들렸다.입을 열었지만 목이 꽉 막힌 듯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내렸다.타나오윤은 뒤돌아 내 눈물 젖은 얼굴을 바라보았다.어려운 결정을 내리려는 듯,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던 타나오윤은 이내 전각 밖으로 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명을 전하라. 성문을 열되 군사는 단 한 명도 세우지 말고, 의병(義兵)의 수장을 궁으로 들이라.”밖이 삽시간에 술렁였다.“폐하, 아니 되옵니다!”“저들은 반군이옵니다! 성안으로 들였다가는...”“물러가라.”타나오윤의 목소리에는 어떤 반박도 허락하지 않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그는 다시 안으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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