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47화. 유년의 흔적

Author: popona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6 02:31:03

민우의 고백으로 마루 분위기가 자못 무거워지려던 찰나, 태성이 밝게 웃으며 그 공기를 풀어보려 애썼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습관처럼 제 옷자락 끝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저는 뭐, 다들 아시겠지만……."

태성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순정을 비롯한 세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태성에게로 향했다.

태성은 테이블 위로 렁이는 촛불 그림자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밥도 안 주고 집을 비워서, 부모님이 먹다 남긴 배달 음식 찌꺼기나 피자 꼬다리 같은 걸로 겨우 끼니를 때웠습니다."

담담한 말투였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순정이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그러다 이웃 신고로 부모님이 양육을 포기하셔서 보육원으로 갔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으면, 집이라는 것도 그냥 외로운 공간일 뿐이라는 걸요."

태성이 옷자락을 쥔 손에 힘을 더 주며 말을 이었다.

"형님이 그 집에서 얼마나 외롭고 답답하셨을지…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하숙집을 구원함   65화. 서열 최하위의 눈물겨운 구애

    하숙집 생태계 최하위로 낙인찍힌 태성이었지만, 이대로 순순히 물러설 윤태성이 아니었다.먹을 것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데 실패했다면, 고양이의 본능을 자극하는 ‘놀이’로 호감을 사겠다는 단단하고 집념 어린 투지가 태성의 눈빛에서 불타올랐다.“주사 맞고 병원 다녀와서 꿀꿀해진 기분엔 역시 스트레스 해소가 짱이죠! 기다려라, 알밤아! 이 형이 비장의 무기를 꺼낼 테니까!”태성이는 마당에 던져두었던 파스 냄새나는 유도복 가방을 홱 열어제꼈다.그러더니 아까 동물병원 카운터 옆 진열대에서 사 온 알록달록한 고양이 장난감 하나를 짠 하고 꺼내 들었다.끝부분에 투명하고 바스락거리는 비닐 날개가 달린, 일명 ‘카샤카샤 붕붕’ 낚싯대였다.“이게 요즘 집사들 사이에서 대통령급 인기를 자랑하는 마약 장난감이래요! 이거 한 번 흔들어주면 아무리 차가운 고양이도 나한테 바로 넘어온다고 했습니다!”태성이는 쪼그려 앉아 카샤카샤 낚싯대를 야심 차게 집어 들었다.그러고는 손끝에 유도 선수의 정교한 손놀림을 담아 낚싯대를 공중에 살랑살랑 흔들기 시작했다.“슈슈슉— 바스락! 바스락!”카샤카샤 특유의 경쾌하고 바스락거리는 비닐 날개 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지자, 도경의 무릎 위에 편안하게 누워있던 알밤이의 귀가 쫑긋 섰다.둥글게 확장된 알밤이의 까만 동공이 공중에서 살랑거리는 카샤카샤 날개를 따라 좌우로 데굴데굴 움직이기 시작했다.“오오! 반응 온다! 봤죠, 형들?! 알밤아, 덤벼라!”흥분한 태성이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낚싯대를 휘두르는 속도를 한껏 올렸다.하지만 유도 체대생 특유의 넘쳐나는 피지컬과 과도한 열정이 화근이었다.“슉! 슉! 슈슈슈슉—!”태성이가 커다랗고 두툼한 팔통을 크게 휘두르자, 카샤카샤는 살랑거리는 곤충 소리가 아니라 거의 태풍이 불어오는 듯한 ‘휘이잉- 팍! 팍!’ 소리를 내며 바람을 갈라댔다.앙증맞고 귀여운 고양이 장난감이 윤태성의 거친 손에 들어가자마자 순간 위협적인 둔기로 변해버린 꼴이었다.알밤이는 호기심을 보이기는커녕, 제 몸집만 한 거

  •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하숙집을 구원함   64화. 고양이보다 밑

    삐쳐서 꼼짝도 안 하는 알밤이의 둥근 뒷모습을 보던 한도경이 마당 한구석 수도가로 걸어가 손을 깨끗이 씻었다.콸콸 쏟아지는 차가운 물에 손을 헹구고 돌아온 도경은, 주머니 속에 슬쩍 찔러 넣어두었던 작은 비닐 봉지 하나를 무심하게 꺼내 들었다.아까 동네 동물병원에서 나오면서 수의사 선생님이 ‘오늘 주사 맞느라 고생한 착한 고양이용’이라며 챙겨준 츄르였다.도경이 손가락 끝으로 츄르 절단면을 잡고 ‘바스락’ 소리가 나게 살짝 뜯어내는 순간이었다.그 아주 미세한 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지자마자, 원목 집 구석에 웅크린 채 삐쳐서 꼼짝도 않던 알밤이의 조그만 삼색 귀가 쫑긋 솟아올랐다.그러더니 번개처럼 고개가 홱 돌아갔다.알밤이의 동그란 눈동자가 도경의 손끝에 들린 츄르 봉지를 정확하게 포착했다.방금 전까지 서러워서 삐쳐 있던 것도 잊었는지, 알밤이는 앙증맞은 솜방망이 발걸음으로 원목 집에서 우다다 튀어나왔다.그러더니 툇마루 끝에 앉아있는 도경의 긴 허벅지에 조그만 머리를 팍 박으며 사정없이 몸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냐아옹, 냐아옹 하는 가느다란 응석까지 섞어서 말이다.툇마루에 앉아 그 광경을 지관하던 순정이 기가 차다는 듯 허리춤에 손을 얹으며 웃음을 터뜨렸다.“와, 알밤이 너 방금까지 세상 무너진 표정으로 삐쳐있던 거 맞아?"도경은 여전히 덤덤하고 무심한 표정으로 츄르를 살짝 짜내어 알밤이의 작은 입앞에 내밀어 주었다. 그리고 옆에서 기가 차서 쳐다보는 순정과 억울함에 눈을 부릅뜨고 있는 태성을 향해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나직하게 툭 던졌다.“삐친 게 아니라 그냥 배가 고팠던 거다.”“넌 어떻게 그렇게 알밤이 속마음을 잘 알아? 고양이 언어라도 통하나봐?”순정이 장난스럽게 감탄하며 픽 웃자,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윤태성의 눈에서 순간 의문의 번쩍이는 광채가 타올랐다.억울함과 서러움으로 가슴을 쥐어짜던 태성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도경의 두툼한 손에 들려 있던 츄르 봉지를 덥석 뺏어 들었다.“도경이 형! 이번엔 내가 줘볼게요! 원

  •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하숙집을 구원함   63화. 알밤이 검진

    삼나무 캣타워 사건이 지나간 며칠 뒤, 하숙집은 아침부터 묘한 긴장감에 휩싸였다.이유가 다른 게 아니라, 오늘은 알밤이의 생애 첫 동물병원 예방접종과 종합 검진이 예약된 날이었기 때문이다.이동장에 알밤이를 넣는 것부터 한도경의 솜씨로 겨우 성공한 식구들은, 굳은 표정으로 동네 동물병원 진료실로 들어섰다.진료대 위에 올라간 알밤이는 낯선 알코올 냄새와 수의사의 흰 가운을 보자마자 귀를 뒤로 팍 접으며 털을 바짝 곤두세웠다.“자, 녀석 아주 건강해 보이네요. 청진기 좀 대볼게요~”젊은 수의사가 둥근 청진기를 알밤이 가슴에 가져다 대는 순간이었다.“캬아아악—!”알밤이가 세상을 잃은 듯 앙칼진 비명을 지르며 솜방망이를 사정없이 휘둘렀다.수의사가 깜짝 놀라 손을 떼자, 옆에 서 있던 윤태성이 거구를 웅크리며 안절부절못했다.“어어! 선생님! 조심하세요! 우리 알밤이가 보기보다 손기술이 맵습니다!”“태성아, 네가 더 시끄러워서 고양이가 놀라잖아. 좀 조용히 해.”서민우가 안경테를 스르륵 올리며 덤덤하게 제지했지만, 이번엔 주사기가 등장하자 상황은 더 아수라장이 되었다.주사바늘이 살짝 닿기도 전에 알밤이는 거의 오페라 가수 수준으로 '꺄앙!' 하고 울부뜯으며 진료대를 탈출하려 몸부림쳤다.수의사 보조원 두 명이 붙어도 감당이 안 될 정도로 팔딱거리는 바람에, 옆에서 차분히 관망하던 한도경이 참다못해 긴 다리로 진료대 앞에 바짝 다가섰다.도경은 커다랗고 두툼한 손으로 알밤이의 목덜미와 머리를 누르고, 귓가에 낮고 무심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가만히 있어라. 안 죽는다.”희한하게도 도경이 묵직한 손길로 눌러주자, 앙칼지게 발악하던 알밤이가 순식간에 얌전해지며 도경의 손가락에 코를 묻었다.그 틈을 타 수의사가 재빠르게 주사를 놓았고, 체온 측정과 구충제 투여까지 일사천리로 끝났다.수의사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감탄했다.“와, 주인분 손길을 엄청 잘 타네요. 주사 맞을 때 이렇게 서럽게 엄살 피우는 녀석도 드문데, 아빠 손길 한 번에 바로 진정하네요

  •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하숙집을 구원함   62화. 인간 캣타워

    주말 아침, 하숙집 마당은 새벽부터 불어오는 서늘한 공기를 가르는 요란한 공구 소리로 깨어났다.“탕! 탕! 탕! 쓱싹, 쓱싹.”묵직한 망치질 소리와 날카로운 톱질 소리가 마당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툇마루 문을 열고 부스스한 머리로 나오던 순정이 눈을 비비며 마당을 내려다보았다.마당 한가운데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삼나무 원목 합판들과 갖가지 목공 도구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 도경이 팔소매를 걷어붙인 채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순정이 툇마루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어? 야, 한도경. 너 아침부터 마당에서 뭐 해? 과제 만드는 거야?”순정의 물음에 도경은 손에 든 샌딩기를 잠시 멈추고 땀을 닦지도 않은 채 무심하게 툭 응수했다.“알밤이 집.”“알밤이 집? 평상 밑에 박스 깔아주고 헌 홑이불 넣어준 거 있잖아.”“비 오면 젖는다. 그리고 가을 지나고 겨울 되면 추워.”도경은 덤덤하게 말하며 툇마루 위에 자신이 직접 스케치한 목공 도면 한 장을 툭 내려놓았다.마침 주방에서 따뜻한 차를 담은 컵을 들고 나오던 서민우와, 챙모자를 눌러쓰고 기지개를 켜며 나오던 이현이 그 도면을 함께 내려다보았다.도면을 본 민우가 안경테를 스르륵 올리며 다정한 목소리로 팩트를 던졌다.“한도경, 너 대충 만든다더니 도면이 왜 이렇게 정교해? 이건 그냥 고양이 집이 아니라 수제 원목 빌라 수준인데.”이현도 챙모자 밑으로 나른한 눈빛을 반짝이며 거들었다.“그러게요. 도경이 형, 건축학과 금손이라더니 고양이 집 짓는 데 전공 지식을 다 쏟아붓고 계시네요. 이거 시중에서 수제 주문 제작으로 사려면 최소 50만 원 이상은 줘야 하는 캣타워 같은데요.”도경의 정교한 손놀림 끝에 단 몇 시간 만에 근사한 수제 2층 원목 고양이 집과 스크래쳐 캣타워가 완성되었다.갓 깎아낸 삼나무 특유의 은은한 향이 마당 전체로 기분 좋게 퍼져나갔다.완성된 원목 집의 압도적인

  •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하숙집을 구원함   61화. 통조림

    알밤이라는 공식 이름이 생긴 지 사흘째 되던 날 아침, 하숙집 대문 앞으로 커다란 택배 상자 하나가 배달되었다.유도 대회 후유증으로 온몸에 한방 파스를 붙인 윤태성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마당으로 들어오다 묵직한 상자를 덥석 들어 올렸다.“어? 이거 뭐지? 받는 사람이 민우 형으로 되어 있는데요?”툇마루에서 차를 마시던 서민우가 안경테를 스르륵 올리며 차분한 걸음걸이로 내려왔다.민우는 주머니에서 커터칼을 꺼내 택배 상자의 테이프를 정갈하게 자르더니, 안에서 알록달록한 고급 통조림 캔 수십 개가 들어있는 상자를 꺼냈다.“민우 형, 이게 다 뭐야? 웬 통조림이 이렇게 많아?”태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민우가 상자 하나를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응수했다.“알밤이 밥이다. 도경이가 매일 먹이는 그 비닐 간식은 사람으로 치면 그냥 인스턴트 조미료 덩어리야. 길고양이 시기 단백질 함량과 필수 아미노산인 타우린 수치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약 40퍼센트 이상이거든. 영양 균형도 안 맞고 뼈 자라는 데 도움도 안 돼. 이건 청정 지역 연어랑 닭가슴살 베이스로 만든 고급 영양 캔이야.”마침 거실에서 느릿하게 걸어 나오던 강이현이 챙모자를 고쳐 쓰며 픽 웃었다.“와, 민우 형. 그 캔 하나에 얼마인데요?”“가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성분이 중요하지. 알밤이 아직 덜 자랐잖아.”민우가 덤덤하게 말하며 영양 캔 하나를 툇마루 위에 내려놓았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순정이 픽 웃으며 털털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마당에서 전공 강의 하는 줄? 우리 알밤이 오늘 완전 호강하겠네!”순정은 신이 나서 툇마루로 다가가 캔 하나를 집어 들었다.원터치 캔 뚜껑의 고리를 손가락에 걸고 툭 소리와 함께 캔을 뜯어내려는데, 얇고 날카로운 캔 뚜껑 절단면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순정의 손가락 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앗, 이거 뚜껑이 좀 날카롭네. 알밤이 그릇 어디 있냐? 덜어줘야겠다.”순정이 아무렇지도 않게 캔 뚜껑을 완전히 젖히며 그릇을 찾으려던 그 순간이었다.마당

  •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하숙집을 구원함   60화. 이름 짓기

    순정이 주방으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당에 모여 있던 남주들도 하나둘 툇마루를 통해 집 안으로 들어섰다.아침 식사를 깔끔하게 마치고 거실로 나온 식구들은 툇마루와 연결된 넓은 통창 아래 모여 앉았다.마당 평상 밑에서는 방금 전 도경이 준 츄르를 싹싹 비워 낸 삼색 길고양이가 여전히 온몸의 털을 바짝 세운 채, 창문 너머의 사람들을 향해 앙칼진 눈빛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아침 밥상을 물리고 따뜻한 보리차를 마시던 서민우가 안경테를 스르륵 올리며 먼저 입을 열었다.“우선 마당에 기어들어 온 저 고양이 말이야. 날도 선선해지는데 그냥 쫓아낼 수는 없으니, 당분간 하숙집에서 임시 보호를 하면서 주인을 찾거나 입양처를 알아보는 게 좋겠어.”민우의 차분한 제안에 툇마루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던 순정이 찬성하듯 고개를 끄덕였다.“좋지! 우리 하숙집 마당이 넓으니까 임보하기엔 딱이다. 근데 임보를 하더라도 부를 이름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맨날 ‘야’나 ‘고양이’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순정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거실 바닥에 큼직한 몸집을 구그리고 앉아 있던 윤태성의 눈이 반짝였다.태성은 큼직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호기롭게 손을 들었다.“어이, 꼬맹이! 형님이 이름 하나 거창하게 지어줄 테니까 감사히 받아라. 덩치도 조그만 게 성깔 하나는 기가 막히잖아. 굳세게 살라는 의미에서 ‘마동석’ 어때요? 아니면 유도 기술에서 따서 ‘한판이’!”태성이 금메달리스트다운 호쾌한 기세로 소리치자, 민우가 안경을 고쳐 쓰며 특유의 다정한 목소리로 팩트를 날렸다.“……너는 고양이한테 고소당해도 할 말 없겠다, 태성아. 아무리 생각해도 네 감성은 고양이 이름이랑은 너무 거리가 멀어. 마동석이 뭐니, 마동석이.”옆에서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챙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던 강이현도 헝클어진 머리칼을 느릿하게 긁적이며 거들었다. 마감의 피로가 아직 다 풀리지 않은 나른한 목소리였다.“그냥 털 색깔대로 삼색이로 해. 직관적이고 부르기도 편하고 좋잖아.”“야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