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미쳐버린 북부대공의 인형 노릇은 사양하겠습니다: Bab 71 - Bab 80

100 Bab

자루 없는 검의 피비린내 (1)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에이든하르트 대공성의 밤. 고요하던 복도 끝에서부터 질척하고 기괴한 발소리가 다가오고 있었다.그것은 마치 늪지대를 걷는 짐승의 발걸음 같기도 했고, 무언가 끔찍하게 젖어 있는 무거운 물체가 대리석 바닥을 짓이기며 끌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머지않아 육중한 침소의 철문이 거칠게 열렸다. 훅 하고 밀려드는 혹한의 바람결을 타고, 숨통을 틀어막을 만큼 역겨운 피비린내가 쏟아져 들어왔다. 화로의 온기로 가득했던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차갑고 붉은 죽음의 냄새로 물들었다.아일라는 얇은 슬립 차림으로 창가에 서서, 문을 열고 들어온 이 끔찍한 불청객을 고요하게 응시했다.카일락 에이든하르트. 대륙의 지배자이자 미쳐버린 폭군이 그곳에 서 있었다.그의 모습은 참혹했다. 칠흑같이 검은 머리카락은 검붉은 핏물에 젖어 얼굴을 가린 채 들러붙어 있었고, 넓은 어깨와 흉터 진 목덜미 위로는 타인의 몸에서 터져 나온 핏방울들이 점점이 말라붙어 있었다. 그의 한쪽 손에 들린 거대한 장검의 끝에서, 아직 식지 않은 누군가의 핏물이 뚝, 뚝 떨어져 내리며 침소의 깨끗한 융단 위를 더럽혔다.오늘 오후, 서부 광산의 채굴량 문제로 불만을 품고 은밀히 사병을 규합하려던 변방의 소규모 영주들이 있었다. 대공이 곁에 둔 미친 인형에게 눈이 멀어 정무를 돌보지 않는다는 불경한 소문이 그들의 입술을 탔다는 보고가 올라왔다.카일락은 기사단이나 토벌대를 보내지 않았다. 그저 단신으로, 가장 빠르고 잔혹한 말을 집어 타고 영지로 달려가 반역을 입에 올린 자들의 사지를 그 자리에서 찢어발겼다. 그들에게 변명할 기회나 재판의 과정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대공의 심기를 거스른 자, 특히 아일라의 존재를 입에 올린 자에게 내려지는 형벌은 오직 살점과 뼈가 분리되는 완벽한 몰살뿐이었다.챙랑!카일락의 손에서 피 묻은 장검이 바닥으로 나뒹굴었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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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루 없는 검의 피비린내 (2)

폭력으로 억누를 수는 있어도, 체제를 장악할 수는 없다. 명분 없는 피바람은 결국 북부 전체를 통제 불능의 혼돈으로 몰아넣을 것이고, 그 혼란 속에서 아일라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또다시 카일락의 품 안으로, 그 지독한 유리장 안으로 숨어들어야만 할 것이다.그것은 방패를 얻는 길이 아니라, 스스로 감옥의 문을 닫는 짓이었다.이 미친 사냥개를 완벽한 나의 무기로 쓰기 위해서는, 사냥개가 함부로 날뛰지 못하도록 내가 쥐고 휘두를 단단한 '자루'가 필요했다. 모두가 납득할 수밖에 없는 명분. 재무부 관료가 대공의 변덕에 억울하게 죽은 희생양이 아니라, 로젤 황실과 내통하여 북부의 심장을 팔아넘긴 끔찍한 반역자임을 만천하에 드러낼 결정적인 물증.어제 낮, 재무부 실무실에서 확인했던 황동색 열쇠의 모양이 아일라의 망막 위에 선명하게 떠올랐다.서부 광산의 채굴량을 조작하고, 바르토 백작을 통해 남부로 자금을 빼돌린 잿빛 머리카락의 총괄 관료. 그가 숨기고 있는 진짜 장부만 내 손에 들어온다면, 그것이 바로 카일락이라는 폭력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완벽한 검의 자루가 된다."아일라? 왜,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내가 더러워? 내 냄새가 끔찍해? 당장 내 가죽을 벗겨내고서라도 네 앞에……."초조함에 짓눌린 카일락이 발작하듯 속삭이며 자신의 목덜미를 거칠게 긁어내리려 했다.***아일라는 제 손바닥에 묻은 타인의 핏물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하얀 물수건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카일락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그의 얼굴에 튄 핏방울들을 느릿하고 정성스럽게 닦아내기 시작했다.거친 피부 위로 차가운 수건이 닿을 때마다, 대륙의 지배자는 어미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는 짐승처럼 애처롭게 숨을 죽였다."조용히 해요, 카일락."고요하고 서늘한 음성에 카일락의 거구가 조각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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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저린 짐승의 도주로 (1)

에이든하르트 대공성의 집무실은 짙은 긴장감으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숨소리조차 온전히 내뱉을 수 없는 압도적인 공포가 공기를 짓누르고 있었다.거대한 흑요석 책상 앞에는 잿빛 머리카락의 재무부 총괄 관료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단독으로 대공의 부름을 받은 그의 이마에서는 차가운 식은땀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대리석 바닥을 적셨다. 평소라면 주변에 다른 가신들이라도 섞여 있어 이 미쳐버린 폭군의 살기를 분산시킬 수 있었겠지만, 오늘 이 거대하고 삭막한 집무실 안에 숨을 쉬는 자는 단 세 명뿐이었다.바닥에 납작 엎드린 관료. 옥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은 흉포한 대공 카일락 에이든하르트. 그리고 카일락의 무릎을 베고 누워 허공만 응시하고 있는 텅 빈 인형, 아일라.아일라는 얇은 숄을 두른 채 죽은 듯이 가만히 누워 있었다. 초점 없는 눈동자는 천장의 화려한 샹들리에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지만, 그녀의 서늘한 이성은 발밑에서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잿빛 머리카락의 사내를 완벽하게 해부하고 있었다."내가 어제 융통성이 부족하다고 했던가."낮고 서늘한 카일락의 음성이 텅 빈 집무실을 울렸다. 마치 날카로운 칼날을 바닥에 긁는 듯한 기괴한 쇳소리였다.카일락의 커다란 손은 제 무릎을 베고 누운 아일라의 머리카락을 맹목적으로, 그리고 병적으로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타인의 생사를 쥐락펴락하는 무자비한 손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다정한 몸짓이었다. 그러나 그의 붉은 눈동자는 바닥에 엎드린 관료의 정수리를 갈기갈기 찢어발길 듯한 살기로 번들거렸다."예, 예, 주군! 어제 부족했던 보고서와 예산안은 오늘 정오까지 완벽하게 수정하여…….""서부 광산."관료의 다급한 변명을 차갑게 자르고 들어간 단어에, 잿빛 머리의 사내가 흠칫 굳어버렸다.아일라는 카일락의 무릎 위에서 미세하게 호흡을 가라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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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저린 짐승의 도주로 (2)

"혓바닥이 지나치게 길군. 그 더러운 주둥이에서 쏟아지는 변명 따위는 내 알 바 아니다. 당장 네놈의 목을 썰어 금고 앞에 매달아두면, 은화가 새는 구멍 정도는 틀어막을 수 있겠지."당장이라도 칼날이 뽑혀 관료의 목덜미를 날려버릴 것 같은 끔찍한 순간. 사색이 된 관료가 숨조차 쉬지 못하고 눈을 까뒤집으려던 찰나였다.아일라가 가만히 손을 들어 올렸다.그리고 제 머리칼을 쓰다듬고 있던 카일락의 거칠고 커다란 손가락을, 아주 미세하게, 그저 아주 가볍게 얽어 쥐었다."……."그 단 한 번의 가느다란 접촉.마치 마법처럼, 검자루를 쥐고 있던 카일락의 억센 팔에서 팽팽하던 힘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그는 살기를 폭발시키려던 맹수에서, 단숨에 주인의 가벼운 쓰다듬 한 번에 온순해진 사냥개로 돌변했다. 장검을 밀어 올리던 손은 어느새 힘없이 떨어져 내렸고, 핏발이 서 있던 붉은 눈동자는 허공을 헤매다 다급히 아일라의 시선을 찾아 얽어왔다.왜 멈추게 하느냐는 원망 따위는 없었다. 그저 자신이 내뿜은 살기가 아일라의 심기를 거스른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하는 애처로운 기색만이 가득했다.아일라는 여전히 초점을 잃은 인형의 연기를 유지한 채, 카일락의 손가락을 얽어 쥔 힘을 아주 천천히 풀어냈다. 그것은 '더 이상 폭력을 쓰지 말고 내치라'는, 오직 두 사람만이 아는 은밀하고도 절대적인 통제의 수화였다.카일락은 거친 숨을 삼키며 간신히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엎드린 관료를 향해 내리꽂히는 시선은 여전히 잔혹했지만, 방금 전의 통제 불능한 살기는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꺼져."카일락의 입에서 역겨움이 가득 찬 축객령이 떨어졌다."내일 아침까지 내 눈앞에 제대로 된 장부와, 그 쥐새끼들의 배후를 추적한 명단을 가져와라. 그때까지도 네놈의 혓바닥이 지금처럼 의미 없는 변명만 뱉어낸다면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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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에 걸린 쥐의 목줄 (1)

에이든하르트 대공성의 밤은 짐승의 내장 속처럼 어둡고 기괴했다. 살을 에는 북풍이 창틀을 할퀴며 지나갈 때마다, 재무부 실무실 한구석에 선 총괄 관료의 어깨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잿빛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그의 손아귀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아침 나절, 집무실에서 마주했던 대공의 흉포한 붉은 눈동자가 아직도 망막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내 은화들이 외부로 줄줄 새어나가는 역겨운 냄새가 난다는 뜻이다.'그 서늘하고 살벌한 음성이 귓가에서 환청처럼 맴돌았다. 관료는 마른침을 집어삼키며 헐떡였다.대공이 진실을 눈치챈 것이 분명했다. 그 미쳐버린 폭군이 어떻게 서부 광산의 채굴량 조작을 알아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일 아침까지 장부와 배후를 대령하지 못하면, 자신의 가죽이 벗겨져 성벽에 내걸릴 것이라는 그 끔찍한 선고만이 유일한 현실이었다.'도망쳐야 한다. 당장 밤을 틈타 바르토 백작의 영지로…….'하지만 빈손으로 남부를 향해 도주할 수는 없었다. 쓸모가 없어진 자신을 바르토 백작이 순순히 거두어줄 리 만무했다.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빼돌린 자금의 흐름이 적힌 진짜 장부와, 로젤 황실에서 내려온 밀서들을 챙겨야만 했다. 그것만이 자신의 목숨을 연장해 줄 유일한 교섭용 패였다.관료는 주위를 번득이는 눈으로 살피며 복도를 빠져나갔다. 그의 걸음은 대공성 지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은밀한 서고를 향하고 있었다.어두컴컴한 지하 서고의 공기는 무덤처럼 습하고 차가웠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 관료는 서고 구석의 두꺼운 철제 책장을 밀어냈다. 그 뒤에 교묘하게 감춰져 있던 작은 벽면 금고가 모습을 드러냈다.달각떨리는 손으로 품속 깊이 숨겨두었던, 짙은 자줏빛 밀랍 흔적이 묻은 황동색 열쇠를 꺼내어 자물쇠에 꽂아 넣었다. 무거운 금속음과 함께 금고의 문이 열렸다.관료는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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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에 걸린 쥐의 목줄 (2)

관료의 턱이 덜덜 떨렸다. 대공이 미쳐서 데리고 노는 정신 나간 요부라고만 생각했던 여자의 입에서, 너무도 정확하고 치명적인 정치적 맥락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그는 다급히 카일락을 올려다보았다. 감히 주군의 앞에서 한낱 장식품이 기밀을 들먹이며 나대는 불경한 상황. 당연히 대공이 불같이 화를 내며 그녀를 통제하리라 믿었다.하지만 카일락은 바닥에 엎드린 관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장부를 넘기는 아일라의 하얀 손끝만을 맹목적으로 좇으며, 혹여나 이 차갑고 어두운 지하의 공기가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지는 않을까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뿐이었다.그 끔찍하고 기괴한 굴복의 광경을 마주한 순간, 관료는 자신의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진짜 공포의 정체를 깨달았다.이 북부를 지배하는 것은 저 미쳐버린 폭군이 아니었다. 카일락 에이든하르트라는 압도적인 무력을, 완벽하게 제 통제 아래 두고 목줄을 쥔 보이지 않는 포식자. 저 서늘하고 오만한 눈동자의 여자가 바로 이 모든 덫을 설계한 진짜 주인이었다."전하, 대공비 전하……! 부디 제 목숨만은……!"총괄 관료는 기어이 방향을 틀어 아일라의 발밑을 향해 처절하게 머리를 조아렸다.대공을 향한 무의미한 충성 맹세는 멈췄다. 살기 위해서는 저 사냥개의 목줄을 쥔 주인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것을, 정치판에서 평생을 구른 관료의 본능이 직감한 것이다."당장 저 새끼의 주둥이를 찢을까, 아일라? 네가 원한다면 혀를 뽑아서 바닥에 흩뿌려 주지."카일락이 당장이라도 관료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듯 으르렁거렸다. 아일라는 장부를 덮으며 아주 가볍게 손을 들어 그의 살기를 억눌렀다.아일라는 자신의 발끝에 엎드려 사시나무처럼 떠는 관료를 향해 시선을 내렸다. 공포로 찍어누르고 무력으로 짓밟는 것은 저 자루 없는 검이나 하는 짓이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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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으로 걸어 들어간 늑대 (1)

에이든하르트 대공성의 옥좌 뒤편, 깊고 서늘한 어둠이 깔린 내실. 그곳에서 잿빛 머리카락의 재무부 총괄 관료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양피지 위에 깃펜을 놀리고 있었다.사각 사각적막을 가르는 날카로운 마찰음만이 맴돌았다. 관료의 이마에서는 쉴 새 없이 식은땀이 흘러내려 잉크가 번질 뻔했지만, 그는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채 문장을 완성해 나갔다.그의 등 뒤로는 거대한 야수가 낮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불온한 기운이 도사리고 있었다. 대공 카일락 에이든하르트였다. 카일락은 옥좌의 팔걸이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채, 제 무릎 위에 안긴 아일라의 하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관료의 뒷모습을 흉포하게 노려보았다.'저 버러지 같은 새끼.'카일락의 붉은 눈동자에 섬뜩한 살기가 일렁였다.그는 이 기괴한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왜 아일라가 저 더러운 횡령범의 목을 치지 않고 살려두는지. 왜 저 벌레에게 바르토 백작을 향한 서신을 쓰게 만드는지, 그 정치적인 셈법 따위는 카일락의 안중에도 없었다.오직 카일락의 심기를 병적으로 긁어대는 것은, 아일라의 시선이 지금 자신이 아닌 저 잿빛 머리카락의 늙은 사내를 향해 있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그녀의 명령이 저 관료를 움직이고 있다는 그 알량한 연결 고리조차도 견딜 수 없이 역겨웠다.스릉카일락의 커다란 손이 검자루를 매만지며 소름 끼치는 쇳소리를 흘렸다. 관료의 어깨가 벼락을 맞은 듯 흠칫 튀어 올랐다."저 새끼의 눈깔을 파버릴까, 아일라."카일락이 아일라의 귓가에 입술을 묻고 짐승처럼 속삭였다."네가 굳이 저런 벌레와 말을 섞을 필요가 어디 있어. 서신 따위는 필요 없어. 네가 바르토 백작의 영지가 눈에 거슬린다면, 내가 당장 기사단을 끌고 가 그 땅을 핏빛 진흙탕으로 만들어줄게. 응? 나만 봐, 아일라. 나한테만 명령해."질투. 대륙을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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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으로 걸어 들어간 늑대 (2)

'하지만 돈을 보내지 않는다면?'백작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서신에 적힌 내용은 명백했다. 재무부 관료가 대공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모든 것을 불어버리겠다는 협박. 며칠 전, 대공이 반역의 기미를 보이던 변방의 소영주들을 단신으로 찾아가 사지를 찢어발겼다는 끔찍한 소문이 북부를 휩쓴 참이었다. 만약 자신이 로젤 황실과 내통하여 대공성의 자금을 빼돌렸다는 사실이 카일락의 귀에 들어간다면?'그 미친 사냥개는 기사단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내 목을 뜯으러 올 것이다.'숨이 막히는 공포였다. 그렇다고 이 사태를 로젤 황실에 보고하여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로젤의 황제는 철저한 이득주의자였다. 쓸모가 있을 때나 뒷배가 되어주지, 꼬리가 밟혀 썩어 들어가는 장기말을 위해 황실의 기사단을 북부의 혹한 속으로 파병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흔적을 지우기 위해 자신을 먼저 암살할지도 모를 일이었다.황실에 기댈 수도 없고, 늙은 쥐새끼의 협박을 무시할 수도 없고, 대공에게 엎드려 자비를 구하는 것은 곧 완벽한 자살 행위였다.바르토 백작은 집무실을 미친 듯이 서성였다. 누구에게 붙어야 살 수 있는가. 충성과 배신 사이, 턱밑까지 차오른 공포 속에서 그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대체 어쩌다 그 무식한 대공 놈이 재무부의 장부를 의심하게 된 거지? 그저 눈이 먼 인형을 끼고 돌아 미쳐가는 줄로만 알았거늘……!"그는 자신을 이 진퇴양난의 수렁으로 밀어 넣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의 존재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시기가 나빴다고, 늙은 재무부 관료의 탐욕이 대공의 변덕을 건드린 것이라고만 착각할 뿐이었다.결국 기나긴 밤의 고뇌 끝에, 바르토 백작은 가장 최악의 패를 집어 들고 말았다.양쪽을 모두 속이며 시간을 버는 것. 영지의 상단을 쥐어짜 절반의 은화만을 마련하여 재무부 관료의 입을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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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물어뜯는 사냥개들 (1)

북부의 밤은 은밀한 거짓말을 숨기기에 가장 완벽한 장막이다.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성벽을 때리는 소리에 묻혀, 쥐새끼들이 갉아먹는 비열한 배신의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에이든하르트 대공성의 서늘한 내실. 타오르는 화로의 열기조차 닿지 않는 어두운 구석에 잿빛 머리카락의 재무부 총괄 관료가 납작 엎드려 있었다. 그의 손에는 서부 상단에서 갓 도착한, 이만 오천 닢의 은화가 보증된 어음이 쥐여 있었다."전하의 예상대로 바르토 백작은 절반의 자금만을 보내왔사옵니다. 로젤 황실에는 북부의 동향이 순조롭다 거짓 보고를 올렸고, 제게는 시간을 벌어달라며 구걸하는 서신을 동봉하였습니다."관료의 탁한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자신의 상관이었던 서부의 권력자가 단 한 장의 위조된 협박장 앞에 얼마나 무력하게 진퇴양난의 수렁에 빠졌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참이었다.아일라는 푹신한 안락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댄 채, 관료가 바친 어음과 서신을 건조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투명할 정도로 하얀 손가락이 바르토 백작의 다급한 필체를 느릿하게 훑어 내렸다.서부의 늑대는 뒷배도 없이 홀로 고립되었다. 두려움에 눈이 멀어 양쪽을 기만하는 최악의 패를 선택한 순간, 그는 이미 사냥꾼의 덫에 목이 반쯤 잘려 나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아일라의 목적은 단순히 바르토 백작 한 명의 숨통을 끊는 것이 아니었다.무력으로 가신의 목을 날려버리는 것은 카일락이 휘두르는 자루 없는 검이나 하는 짓이다. 그녀가 원하는 완벽한 방패를 세우기 위해서는, 이 견고한 가신들의 파벌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물어뜯어 그들 자신의 손으로 붕괴하게 만들어야만 했다."수고했어요."아일라의 서늘한 음성이 떨어지자 관료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찰나였다.스릉소름 끼치는 강철의 마찰음이 내실의 공기를 무참히 찢어발겼다.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거대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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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물어뜯는 사냥개들 (2)

"서신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바르토 백작이 대공의 눈을 속이기 위해, 횡령의 모든 죄를 카엘 자작에게 뒤집어씌우고 그의 목을 대공성에 바치기로 황실과 밀약했다는 내용. 카엘 자작을 희생양으로 삼아 꼬리를 자르겠다는 완벽한 배신의 증거를 만들어 심어두란 뜻입니다."그제야 관료는 아일라가 설계한 덫의 잔혹한 전모를 깨닫고 등골이 얼어붙었다.자금줄이 마르고 대공의 압박에 시달리며 반쯤 미쳐있을 바르토 백작. 그리고 그 백작이 자신을 팔아넘기려 한다는 결정적인 물증을 발견하게 될 카엘 자작. 두 짐승은 서로가 배신했다고 굳게 믿으며, 대공의 칼날이 닿기도 전에 먼저 서로의 목줄을 물어뜯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들 것이다.무력이 아니라 정보와 의심을 무기 삼아 가신들의 파벌을 산산조각 내는 서늘하고도 완벽한 통제."명심하겠습니다, 전하. 당장 사람을 심어 카엘 자작의 영지에 물건을 흘려두겠사옵니다!"관료가 처절하게 머리를 조아리며 도망치듯 내실을 빠져나갔다. 아일라는 텅 빈 어둠 속에서, 폭풍전야처럼 고요하게 숨죽인 북부의 밤을 직시했다.***며칠 뒤, 에이든하르트 대공성의 대회의실.높은 천장 아래로 육중한 흑요석 탁자가 놓여 있고, 북부를 지배하는 핵심 가신들이 숨을 죽인 채 도열해 있었다.상석에는 카일락이 오만한 맹수처럼 기대어 앉아 있었고, 그의 옆에는 얇은 숄을 덮어쓴 아일라가 초점 잃은 인형처럼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가신들의 눈에 아일라는 여전히 주군의 광기를 자극하는 불길하고 무능한 요부, 혹은 텅 빈 장식품에 불과했다. 그들은 아일라를 철저히 투명 인간 취급하며 카일락의 눈치만을 살폈다.그러나 겉보기에는 고요한 대회의실의 공기 밑바닥에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균열이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찢어지고 있었다."주, 주군! 서부 수비대의 카엘 자작이 돌연 군수로를 통제하고 영지의 성문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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