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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오래된 그림자

경기도 외곽. 낡은 간판 하나가 위태롭게 매달린 허름한 여관의 작은 방. 커튼은 굳게 닫혀 있었고, 방 안에는 오래된 담배 냄새와 눅눅한 공기가 뒤섞여 있었다. 황치우는 침대 가장자리에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그런 거 아니야.” “아니야…… 내가 그런 게 아니야. 수아가…… 수아가 나를 밀어냈어! 내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왜 나를 거부하는 거야……!” 방 안에는 치우의 횡설수설하는 중얼거림만 가득했다. “수아 씨가 혼자 넘어진 거잖아.” 그의 손가락이 머리카락 사이를 거칠게 파고들었다. “난 그냥 얘기하려고 했어.” 목소리가 점점 떨렸다. “같이 밥 먹자고…… 그것뿐이었는데.” 머릿속에서는 그날의 장면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겁에 질린 수아의 얼굴. 자신의 손을 뿌리치던 모습. 그리고— ‘싫다고요!’ 치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나를 싫다고 해.” “거짓말이야.” 치우가 고개를 들었다. 충혈된 눈이 허공을 바라봤다. 피투성이가 된 채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수아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죄책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 거친 광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오직 하나, 병적인 집착뿐이었다. “수아 씨는 내 거야. 그 누구도 내게서 수아 씨를 빼앗아 갈 수 없어…….” 그리고 순간적으로 표정이 바뀌었다. 분노가 스쳤다. “그 남자 때문인가?” 카페 창가에 매일 앉아 수아를 바라보던 남자. 비싼 정장. 누가 봐도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 수아는 그 남자가 오지 않던 날이면 계속 문을 바라봤다. 치우도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이 생각날 때마다 속이 뒤틀렸다. “그 사람 기다린 거야?”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매일 갔는데…….” 자신은 수아를 몇 년이나 알고 있었다. 그 남자는 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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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뒤틀린 사랑

처음에는 그저 보고 싶어서였다. 수아가 웃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버지에게 맞은 날이면 더 그랬다. “이 새끼가 또 어디를 싸돌아다녀!” 퍽!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죄송해요…….” “눈 깔아!” 그런 날이면 치우는 밤늦게 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처음 수아를 만났던 공원의 벤치에 앉았다. 주머니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냈다. 이미 몇 번이나 깨끗하게 빨아 보관한 손수건이었다. 그것을 손에 쥐고 있으면— 수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다쳤으니까요.’ 치우는 눈을 감았다. “수아…….” 어느새 그녀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 그날만큼은— 세상에 자신을 신경 써주는 사람이 한 명쯤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감정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학교 정문 앞. 수아가 남학생이랑 같이 있었다. 남학생이 무언가를 말하자 수아가 환하게 웃었다. 멀리서 그 장면을 바라보던 치우의 얼굴이 굳었다. 자신에게 웃었던 것과— 똑같은 웃음이었다. ‘왜?’ 치우의 손이 주먹으로 말렸다. ‘나한테만 웃는 게 아니었어?’ 가슴이 이상하게 답답했다. 그날 밤. 가위를 들었다. 그리고 글자를 하나씩 잘라냈다. 너 는 내 꺼 야 풀로 종이에 붙였다. 한참 동안 그것을 바라봤다. 그리고 수아에게 보냈다. 발신인은 적지 않았다. 며칠 뒤에는 사진도 찍었다. 학교에서 나오는 수아.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수아. 편의점에서 일하는 수아. 처음에는 사진을 혼자 간직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는 수아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항상 너를 보고 있어.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수아를 누구보다 많이 보고, 누구보다 많이 생각하고, 수아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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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대가는 뭔데요?

수아가 병원에 입원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아침 햇살이 넓은 창문을 통해 병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수아는 침대에 기대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팔에는 단단한 깁스가 감겨 있었고 다리 역시 고정된 상태였다. 이마 위쪽에는 여덟 바늘을 꿰맨 상처를 가리는 커다란 흰색 밴드가 붙어 있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여기저기서 통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몸보다 수아를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수아 씨, 물 좀 드실래요?” 중년의 여성이 물었다. 수아가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요. 제가 마실게요.” “팔도 불편한데 어떻게 혼자 해요. 제가 드릴게요.” “정말 괜찮아요.” 수아는 난처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봤다. 간병인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요청한 적 없는.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이상했다. 1인실. 최고의 의료진. 그리고 오늘 아침부터는 개인 간병인까지 배치되어 있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걸…….’ 지아일 리는 없었다. 수아가 다쳤다는 사실을 안 지아는 어젯밤 울면서 당장 서울로 올라오겠다고 했지만, 어린아이도 있고 남편도 있어 수아가 겨우 말렸다. 무엇보다 지아가 이런 병실과 간병인을 마련할 형편도 아니었다. 의문을 품고 있던 그 무렵, 병실 문틈으로 잠시 스쳐 지나가는 비서 김민철의 얼굴을 보게 되면서 수아는 이 모든게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잠시 후, 민철이 병실로 들어와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 수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김 실장님, 더 이상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이런 분에 넘치는 친절, 제가 받을 이유도 없고 받고 싶지도 않아요. 차 전무님께 전해주세요. 당장 이 병실을 나가겠다고요." “…….” “저는 그 사람 여자친구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에요.” 수아의 목소리가 조금씩 단단해졌다. “이런 걸 받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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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그의 세상 안으로

노란 서류 봉투의 입구를 벌린 순간, 수아의 손끝에서 툭 하고 힘이 빠졌다. 봉투 안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끔찍한 악몽 그 자체였다. 최근에 병원 주변을 배회하던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 몇 장, 그리고 옛날 고등학교 시절 받았던 것과 정확히 닮아 있는, 잡지나 신문에서 한 글자씩 오려내어 붙인 삐뚤어지 글귀들의 편지. [넌 처음부터 내 거였어.] [우린 처음부터 함께였어.] "아…… 윽……." 수아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 내리며 숨이 막혀왔다. 도윤의 시선이 수아에게 향했다. “뭐야.” 수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 세상에 자신을 숨길 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병원조차 안전하지 않다는 공포가 수아를 짓눌렀다. 수아가 떨어뜨린 봉투를 확인한 도윤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시커먼 나락으로 가라앉았다. 집어삼킬 듯 서늘한 살기가 병실 안의 공기를 바늘처럼 찔러댔다. 수아은 눈은 공포로 사로 잡혔다. 다시 시작된 것이다. “그 사람이야…….” 수아가 중얼거렸다. 도윤의 눈빛이 달라졌다. “황치우?” 수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창백해진 얼굴이 이미 대답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었어…….” 수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도…… 황치우였어.” 도윤은 말없이 편지를 내려다봤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최근 몇 주 동안 수아를 따라다니기 시작한 사람이 아니었다. 거의 팔 년 전부터였다. 도윤의 눈빛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더 이상 이 병원에 수아를 내버려 두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철저하게 통제된 줄 알았던 공간마저 뚫렸다면, 이제 그녀를 지킬 수 있는 곳은 세상에 단 한 군데밖에 없었다. 도윤은 아무 말 없이 침대 다가와, 굳어 있는 수아의 손목을 부드럽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잡아끌었다. "일어나." 수아는 겁에 질린 눈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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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숨을 곳

펜트하우스 안으로 들어온 뒤에도 수아의 얼굴은 좀처럼 편안해지지 않았다. 눈동자는 계속 흔들렸고, 작은 소리에도 몸이 움찔했다. 도윤은 그런 그녀를 한동안 바라봤다. 평소라면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할 말은 다 하던 여자였다. 그런 수아가 지금은 마치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도윤의 가슴 한쪽이 묘하게 조여왔다. 도윤은 곧바로 집으로 전담 의사를 불렀다 한편, 환자복 차림의 수아를 품에 안은 채 들어서는 도윤을, 가정부이자 집사인 유진과, 그녀의 남편이자 도윤의 전담 기사인 최 태수는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도윤이 누군가를 이렇게 제 집으로, 그것도 다친 여자를 직접 안고 데려온 것은 평생에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최태수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도련님?” 환자복 차림의 젊은 여자. 팔과 다리에는 깁스가 되어 있었고, 이마에는 커다란 흰 밴드가 붙어 있었다. 유진의 눈이 커졌다. “이분은…….” 도윤이 짧게 말했다. “손님방 준비해 주세요.” 유진은 더 묻지 않았다. “네.” “ 물이랑 필요한 것도 같이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유진은 곧바로 안쪽 방으로 향했다. 태수는 수아를 보는 순간 눈빛이 변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수아를 바라봤다. “어쩌다 다치셨습니까?” “계단에서 굴렀어요.”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네.” 유진은 수아 곁으로 다가갔다. “괜찮아요?” 수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네…….” “나는 김유진이에요. 여기 살림 봐주는 사람이에요.” 목소리가 따뜻했다. “불편한 거 있으면 말해요.” 수아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작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 말 하나에도 피곤함이 묻어났다. 유진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잠시 후 의사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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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낯선 아침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눈이 부실 만큼 하얗고 높은 천장. 수아는 흠칫 놀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팔다리에 감긴 깁스와 이마의 통증이 욱신거려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수아는 한동안 눈을 깜빡였다. ‘여기가…….’ “아…….” 그제야 어젯밤 일이 떠올랐다. 병원. 노란 봉투. 그리고 차도윤. 수아는 천천히 주변을 바라봤다. 그때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일어났어요?”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단정한 옷차림의 중년 여성, 유진이 따뜻한 차가 담긴 트레이를 들고 들어왔다. 수아가 고개를 돌렸다. “아…….” 수아가 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안 돼요, 안 돼.” 유진이 얼른 다가왔다. “그냥 있어요. 다친 사람이 뭘 그렇게 급하게 일어나요.” “죄송해요.” “뭐가요?” “어제 제가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어요.” 유진이 웃었다. “그 상황에서 무슨 인사를 해요.” “그래도…….” “김유진이에요.” 유진이 다시 한번 자신을 소개했다. “여기 살림을 봐주고 있어요.” 수아도 작게 고개를 숙였다. “이수아예요.” 유진이 웃었다. "도련님은 아침 일찍 출근하셨어요.” “수아씨 식사 마치고 드셔야 할 약 시간까지 말씀 해 주셨어요." 수아는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에게는 차갑던 그가, 뒤에서는 그런 지시까지 해두었다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복잡했다. 잠시 후, 유진의 부축을 받아 거실로 나온 수아는 멈춰 섰다. 어젯밤은 공포에 질려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펜트하우스의 전경이 온통 시야를 압도했다. 전면을 가득 채운 통유리창 너머로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득한 전망, 대한민국 최상위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압도적인 럭셔리함. “와…….” 수아는 잠시 말을 잃었다. 멀리 한강까지 보였다. “여기가…… 집 맞아요?” 뒤에서 유진이 웃었다. “그럼요.” “너무 커서…….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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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길어진 하루

도윤은 새벽 일찍 눈을 떴다. 늦게 잠들었는데도 평소와 같은 시간이었다. 수아가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안도감을 안겨주었다. 다시 제 눈앞에서 그녀가 사라지는 일 따위는 두 번 다시 겪을 생각조차 없었다. 도윤은 침대에서 내려와 셔츠를 걸쳤다. 그리고 출근 준비를 마친 뒤 자연스럽게 손님방으로 향했다.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그리고 방 문을 살짝 열고 깊이 잠들어 있는 수아의 상태를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어젯밤보다 표정이 한결 편안했다. 도윤은 문 앞에 서서 한동안 그녀를 바라봤다. 도윤은 천천히 침대 가까이 다가갔다. 수아의 머리카락 한 가닥이 얼굴 위로 흘러내려 있었다. 잠시 바라보다 손을 뻗었다.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겼다. 수아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도윤의 손이 바로 멈췄다. 하지만 수아는 깨지 않았다. 도윤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는 작은 미소가 스쳤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고— 이렇게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다는 것이.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 주방에서는 유진이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벌써 나가게요?” “네.” 도윤이 시계를 확인했다. "아주머니, 아침 식사 잘 챙겨주시고 약 시간 절대 거르지 마세요." "걱정 마세요, 도련님. 제가 잘 보살필 테니까 안심하고 다녀오셔요." 유진의 거듭되는 다독임에야 도윤은 겨우 발걸음을 떼어 현관을 나섰다. 지하주차장에는 태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전무님.” “네.” 차가 출발했다. 태수는 운전하면서 룸미러로 도윤을 한번 바라봤다. 평소와 똑같았다. 단정한 정장. 무표정한 얼굴. 손에는 이미 태블릿이 들려 있었다. 그런데 태수는 알고 있었다. 똑같지 않다는 것을. 도윤을 어린아이 때부터 봐왔다. 이명희가 만들어놓은 일정표에 따라 움직이던 어린 도윤도. 아픈 날조차 수업을 빼먹지 않으려던 소년도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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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잡힌 그림자

황치우는 병원 안내 데스크에 노란 봉투를 몰래 남겨두고 빠져나온 뒤, 줄곧 병원 건너편 어둠 속에 숨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 입구에 고급 세단과 경호원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나타나더니, 며칠 전 카페에서 수아를 감싸고 돌았던 그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의 품에는 환자복 차림의 수아가 안겨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치우의 눈동자에 섬뜩한 광기가 번득였다. "감히 내 여자를……." 도윤은 수아를 차에 태웠다. 그리고 잠시 후 차량이 병원을 빠져나갔다. 치우는 이를 뿌득 갈았다. 수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꼴은 죽기보다 견딜 수 없었다. ‘수아를 영원히 가지려면, 저 새끼부터 죽여야 돼.’ 치우는 택시를 잡아타고 그들의 차를 은밀히 뒤쫓았다. 하지만 도착한 곳은 청담동 최고급 펜트하우스 빌라 앞이었다. 높은 담장, 삼엄한 경비 시스템, 곳곳에 배치된 사설 경호원들. 쥐새끼 한 마리 몰래 들어갈 수 없는 완벽한 요새였다. 압도적인 벽을 느낀 치우는 주먹을 꽉 쥐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치우는 도윤이 사는 곳 주변을 맴돌았다. 하지만 가까이 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출입구부터 보안요원이 지키고 있었다. 등록된 차량이 아니면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입주민 확인 없이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건물을 올려다보던 치우의 표정이 굳었다. ‘저 안에 수아가 있다.’ 치우가 이를 악물었다. “기다려.”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방법을 다시 생각하면 돼.” 수아가 평생 저 집 안에 있을 리는 없었다. 경기도 외곽의 모텔. 치우는 급하게 짐을 챙겼다. 이곳도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경찰이 자신을 찾고 있을 것이다. 작은 가방에 옷가지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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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집으로 돌아오다

경찰서를 빠져나온 민철에게서 마지막 보고가 들어온 것은 저녁이 훌쩍 지난 뒤였다. “황치우는 계속 조사 중입니다.” 도윤은 차에 올라타며 물었다. “도주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어렵습니다. 증거도 충분합니다.” 황치우가 경찰서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있다는 민철의 보고를 전해 듣고서야 도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 종일 퇴근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건만, 막판의 보고 처리 때문에 평소보다 늦은 시각에야 집으로 향했다. 도윤이 시계를 확인했다. 수아는 저녁을 먹었을까. 잠들지는 않았을까. 그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태수에게 말했다. “조금 빨리 가주세요.” 태수가 룸미러로 도윤을 슬쩍 바라봤다. “네.”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는 애써 감췄다. 한편 펜트하우스는 평소와 다른 풍경으로 분주했다. 집에서 저녁을 먹는 경우가 손에 꼽히던 도윤에게서 "오늘 저녁은 집에서 먹겠다"는 연락이 갑자기 걸려왔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도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들을 차려낼 생각에 유진의 손길은 한껏 바빠졌다. 수아는 식탁에 앉아 그런 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모, 제가 뭐 도와드릴까요?” “안 돼요.” “오른손은 멀쩡해요.” “그래도 안 돼.” 유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오늘은 환자 노릇이나 해요.”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잘 쉬는 게 할 일이에요.” 수아가 웃었다. “네.” 아침부터 그랬다. 씻는 것도 도와주고, 머리도 정리해주고, 식사와 약도 시간에 맞춰 챙겨주었다. 조금이라도 불편해하면 유진이 먼저 알아차렸다. 수아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보육원에서 자란 수아는 누군가가 이렇게 하루 종일 자신만을 살뜰하게 챙겨주는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자꾸 마음이 따뜻해졌다. 수아는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유진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있었다면…….’ 얼굴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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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며칠만 더

“황치우가 잡혔으면…….” 수아가 잠시 망설이다 도윤을 바라봤다. “저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되겠네요.” 예상했던 말이었다. 그런데 막상 직접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도윤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그는 와인 잔을 내려놓으며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안 돼. 치우는 아직 조사를 받는 중이야. 완벽하게 위험이 끝난 것도 아니고, 네 팔다리 깁스도 풀려면 아직 멀었어. 다 나을 때까지는 이 펜트하우스에서 나갈 생각 하지마." “…….” 수아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병원까지 찾아왔던 놈이야. 그러니 경찰 조사 결과 나올 때까지는 여기 있어.” 그리고.” 도윤의 시선이 수아의 깁스한 팔과 다리로 내려갔다. “그 몸으로 어디를 가.”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뭘.” “생활하는 거요.” “지금 물 한 잔 제대로 들기도 힘들잖아.” 도윤의 서늘한 고집에 수아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늘 하루만 해도 유진의 도움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모른다. 도윤이 단호하게 말했다. “적어도 팔하고 다리 나을 때까지 여기 있어.” 수아의 눈이 커졌다. “그건 너무 길어요.” “길면 어때.” “제가 불편해요.” 도윤이 바로 물었다. “뭐가.” “그냥…….” 수아가 주변을 한번 둘러봤다. “여기는 차도윤 씨 집이잖아요.” “저랑 아무 관계도 없는 남자 집에서 몇 주씩 사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도윤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 관계도 없는 남자. 그 말이 이상하게 거슬렸다 “이상할 거 없어.” “저는 있어요.” 수아는 단호했다. 도윤은 더 밀어붙이려다 멈췄다 억지로 붙잡으면 오히려 도망갈 여자였다. “그럼 황치우의 조사가 끝나서 감옥에 들어 갈 때까지만 있어” 수아가 잠시 생각했다. 사실 오늘 하루 종일 유진과 함께 지내며 느꼈던 따스함을 생각하면, 당장 차가운 옥탑방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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