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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 Kapitel von 해로운 다정: Kapitel 21 – Kapitel 30

62 Kapitel

20. 설레긴 해?

“이젠 안 보이는데.”“가까이서 봐. 아파 죽겠어. 약도 없고.”“엄살 부리지마.”“매정하네. 작은 상처는 상처도 아니다?”“…….”혜서는 괜히 새롬이 나간 문을 응시하며 원망 섞인 질책을 했다.“이 나이에 싸우고 다녀?”“싸우기 싫어도 자꾸만 이곳저곳에서 시비를 거네.”“…….”“잘 알아내고 있어?”그가 혜서의 찻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잔 안에는 따뜻한 녹차가 담겨 있었다.“알아낸다며. 나에 대해서.”“…….”“엄청 기대중이야. 진혜서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아올까.”심술궂은 얼굴을 한 그가 유독 얄밉게 느껴졌다.“몇 가지는 지금 내가 먼저 나에 대해서 얘기해 줄 수도 있어.”“뭔데?”“내 여자 취향 정도?”“그건 안 궁금해.”화를 돋구는 그의 농담에 절로 한숨이 푹 흘러나왔다.“앞이 보이니까 눈이 높아지더라고.”“농담하지마.”딱히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지만 정한에게 놀아나줄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넌 내가 어떤 기분으로 너에 대해 알아내고 싶은지 하나도 몰라.”“맞아, 몰라.”수긍하던 정한의 표정에도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지고 없었다.“나도 너에 대해 궁금한 것들만 알아내고 있어.”“…….”“사랑하지도 않은 남자랑 결혼은 왜 그렇게 서두르는 건데.”“…….”“설레긴 해?”“묻지 마.”“그럼 나랑은? 나랑 있을 땐 어때.”집요하게 답을 묻는 그를 혜서가 뚫어져라 응시했다.다정한이랑 있을 때?가벼운 물음으로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본인 스스로도 궁금해졌다.늘 정한을 마주할때면 불안하면서도 떨렸고, 불편하면서도 보게 됐다. 그리고….Rrrrr. Rrrrr.생각에 잠겨있다 정신을 차린 혜서의 휴대폰 벨소리가 갑자기 울렸다. 발신자는 현민의 어머니였다.“받아.”양해를 구하는 혜서의 눈빛을 알아챈 정한이 덤덤히 고개를 돌렸다.“네, 어머니.”전화를 받는 혜서에게서 시선을 돌린 정한이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삼켰다.“네, 저녁에 들를게요. 알겠습니다.”넙죽 엎드리며 답하는 혜서를 그가 다시 찬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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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후회

온광고등학교 단체 졸업사진 이었다.모두 환히 웃고 있는 모습 가운데 정한은 없었다.‘그럼 나랑은? 나랑 있을 땐 어때.’현민의 방에서 정한이 떠오르자 금세 미소가 사라졌다.액자를 툭 내려놓던 혜서의 손이 미끄러졌다. 바닥에 케이스가 튕기며 분해되어 사진이 침대 아래로 들어갔다.짧은 한숨과 함께 바닥에 엎드린 혜서가 침대 밑으로 손을 뻗었다.“……이게 뭐지?”감각을 더듬어 사진을 찾던 그때 사진 대신 작은 상자 하나가 손 끝에 닿았다.“엄마, 혜서는요?”병원 퇴근 후 현민은 어머니 서현의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집에 도착했다.“아까 갔지. 얘가 왜 이렇게 땀을…!”“왜 연락도 없이!”버럭 화를 내며 서현의 손길을 쳐낸 현민이 다급하게 혜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까부터 그녀는 받지 않았다.“혹시 내 방에도 혜서가 들어갔었어요?”“그래, 내가 구경하라고 했지.”“엄마는 왜 쓸데 없이!”“현민아! 현민아!”2층 방으로 단숨에 올라가버린 현민을 그녀가 애타게 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왜 안 받는 거야….”방안을 돌아다니며 변한 게 없는지 확인하던 현민은 손에서 휴대폰을 떼질 못했다.혜서가 집에 다녀간 후로 아무런 연락을 받지 않았다. 불길한 기운에 다급히 퇴근해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젠장!”휴대폰을 바닥에 내던진 현민이 거칠게 침대에 걸터앉아 머리를 헝크러트렸다.이내 무언가 떠올랐는지 다급히 침대 밑을 확인하던 현민은 상자하나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그 안에는 10년 전 정한이 3년간 해외에서 혜서에게 보낸 편지들이 들어있었다.“설마… 보진 않았겠지?”편지들을 뒤지며 없어졌는지 확인하려 해도 소용없었다. 너무나 많은 양에 변화된 모습은 알아차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그제야 현민은 후회됐다. 진작에 갖다 버릴 것을.혜서와 결혼하면 모두 태워 남은 죄책감까지 태워버리겠다고 계획한 모든 일을 후회하기 시작했다.상자 앞에 무릎 꿇은 현민은 편지들을 양손으로 구기며 혼자서 실없이 웃기 시작했다.그저 혜서가 보지 않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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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이별

더운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밤에는 아직 선선한 바람이 머리를 간질였다.“하….”밖으로 나와 숨을 크게 들이켰다 내쉬었다.이내 품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든 혜서가 잔잔히 손에 든 편지를 내려다봤다.현민의 방에서 발견한 정한의 편지였다. 그것도 10년 전 편지였다.침대 밑에서 우연히 발견한 상자 안에는 3년 간 정한이 혜서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 수십 장이 빼곡이 담겨 있었다.처음에는 도저히 머리로 이해가 가질 않는 상황이었다. 어째서 이 편지들이 현민의 방에서 나온 걸까.지금까지 어떻게 가지고 있는 걸까.주소는 분명 혜서가 전주에서 살던 때의 주소였다. 받는 이도 진혜서가 분명했다.수많은 궁금증과 오해는 편지를 뜯어보면서 알게 됐다. 정한은 해외에서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가며 수도 없이 혜서에게 편지를 보냈다.그리고 그의 간절한 마음은 단 한번도 진혜서에게 닿은 적이 없었다.‘왜 하필 걔야. 많고 많은 놈 중에 왜 하필 그 새끼냐고.’그래서 그동안 정한은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 해주지 못했던 걸까.그는 그저 혼자서만 현민을 원망하고, 사이에서 비밀을 감춘 채 본인의 상처를 덮어주려 했던 걸까.이내 고개를 내저은 혜서가 두 눈을 감았다.단순히 사이에서 현민이 편지를 가로챘다는 이유만으로 정한이 지금까지 자신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을리 없었다.그럼 왜. 도대체 어째서.“혜서야.”“……!”지끈 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을 때였다. 뒤에서 들려오는 현민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혜서가 눈을 뜨고 뒤를 향해 바라봤다.“그동안 왜 이렇게 연락이 안됐어. 걱정했어.”가로등 빛 하나에만 의존한 채 천천히 다가오는 현민을 피해 혜서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그간 복잡한 마음으로 현민을 대할 수 없어 무작정 그의 모든 연락을 무시했다.“걱정?”“왜 그래 혜서야….”뒷걸음질 치는 혜서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현민이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연락을 피하는 혜서 덕분에 이렇게 무작정 찾아오는것만큼은 피하고 싶었지만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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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이제 만족해?

“도대체 왜 나는 안되는 거야.”“…….”“왜 이런 비참한 짓까지 만들게 해 나를. 왜 나는 안되냐고, 혜서야. 응?”“내가 흔들렸어.”“……!”사실을 고백하는 혜서가 비에 금세 젖어있었다.현민을 질책했지만 혜서는 자기 자신을 가장 많이 질책했다.그간 정한을 만나면서 수도 없이 동요했고, 셀 수 없이 흔들렸다.그 죄책감이 무겁게 혜서를 짓눌렀다. 모든 걸 고백하는 이 순간, 그 무게가 완전히 사라지자 해방된 기분이기도 했다.현민이 편지를 숨긴 사실은 그저 모든 결말의 도화선일 뿐이었다.“알잖아, 정한이가 나한테 어떤 사람인지. 네가 더 잘 알잖아, 현민아.”“상관 없어.”“내가 흔들렸어.”“상관 없다고.”“그 사람 더 이상 불행하게 만들지마.”힘없이 뒤돌아선 혜서가 울음을 힘들게 삼켰다.현민을 사랑하진 않았지만 친구로서 사랑했다.이젠 친구로서도 남을 수 없게 된 그와 이별을 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고, 괴로운 일이었다.“…안 돼, 혜서야.”터덜터덜 저만치 멀어져만 가는 혜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현민이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현민은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끝끝내 돌아서는 혜서를 붙잡을 수 없었다.온 몸의 감각들이 일제히 그녀를 붙잡으라 채근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현민의 흐르는 눈물이 떨어지는 빗물속에 감춰졌다.“혜서야, 넌….”어느새 창백해진 얼굴을 높이 치켜 든 현민의 시선이 검은 하늘로 향했다.“네가 곧 다정한한테는 불행이야.”혼잣말을 되풀이하며 현민이 다시 혜서가 사라진 방향만 한참을 응시했다.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로 인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밤길을 혜서가 무작정 걸었다.절망으로 가득 드러찬 혜서는 비에 흠뻑 젖어 차디찬 몸이 된지 오래였다.어디서부터 잘못 된 만남이었을까.지독한 빗속을 헤집으며 걷던 혜서는 정한을 다시 만났던 그 순간부터 늘 머릿속에 가지고 있던 의문을 다시 또 꺼내어 되새겼다.결국은 이렇게 될 것을 그는 알았을까.“흐윽… 흑….”밀려드는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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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확인

맨몸이 매끄럽게 드러난 그의 탄탄한 몸이 무방비 상태로 시야에 들어오자 놀란 혜서가 뒷걸음질 쳤다.맨몸이 드러난 정한이 성큼 앞으로 다가오더니 본인의 티셔츠를 혜서에게 강제로 입혔다.“이 시간에 이런 꼴로 나타나면 그쪽으로 생각해도 되는 거지?”“무슨…!”“말했지. 이젠 더한 짓도 할 수 있다고.”혜서의 턱 끝을 가볍게 그러쥔 정한의 눈빛이 평소보다 더욱 서늘했다.“이, 이거 놔!”돌연 그가 혜서를 들어올렸다. 강제로 그의 어깨에 걸쳐진 혜서가 연신 발버둥 쳤지만 강압적인 힘을 이길 수가 없었다.“뭐하는 거야?”정한이 조금 더 따뜻한 실내로 혜서를 들인 뒤 소파에 내려놓자마자 노려보며 따져 물었다.“…….”정한은 말 없이 혜서의 앞에 무릎 꿇어 눈을 맞췄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혜서의 체온이 하염없이 차갑고 시리자 눈가를 찌푸렸다. 바들바들 떨어대는 몸이 가여워보이기까지 했다.그럼에도 굽히지 않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노려보기만 하는 고집에 헛웃음이 새어나오기도 했다.혜서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고 왔는지는 몰라도 지금 그딴 건 안중에도 없었다.혜서의 젖은 몸이 적나라하게 곡선을 드러내 자극하고 있었고, 붉어진 뺨과 입술은 자꾸만 눈길을 사로잡았다.게다가 울기까지.이런 꼴로 무작정 찾아와 파혼을 했다 말하는 게 진혜서는 지금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조금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아 계속해서 웃음이 났다.“이런 꼴로 네가 이렇게 울고 있는데도 존나 기쁘면… 나 개새끼지?”“……미쳤어.”“미친놈 할게. 개새끼도 하고.”정한의 시선이 느리게 떨어졌다. 천천히 혜서의 눈, 입술, 그리고 다시 눈으로 향했다.“말해도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했어.”“뭐?”“박현민이 우리 사이에서 편지를 갖다 버렸든 뭘 했든 그때의 난 여전히 네 앞에 나타나지 않았을 테니까.”“왜… 이유가 뭐야.”“말했잖아, 나 그냥 개새끼 한다고.”숨이 멎은 것처럼 조용해졌다.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울어야 할지.혜서는 아무것도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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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아프면 말해

그간 진혜서를 그리워해가며 참아왔던 순간들이 이 순간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 들게 했다.“하아….”단숨에 그의 커다란 손이 옷 속을 파고들어 혜서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순식간에 닿은 감각에 놀란 혜서가 고개를 돌려 신음을 삼켰다.정한에게 무작정 키스를 해버린건 혜서 본인이었지만, 감당 하기 버거운 순간들이었다.꼭 그에게서 확인 하고 싶었다. 여전한 사랑인지 못 이룬 첫사랑에 대한 미련인지.그런데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자 당황한 혜서였다.“자, 잠깐….”혜서가 말릴 새도 없이 다시 입술이 포개어졌다. 입술을 지나 목덜미. 다시 또 입술.정한이 천천히 혜서의 피부 위로 흔적을 채워 나갔다.“하아… 거긴.”정한의 가느다란 입술이 혜서의 다리 사이로 향했다. 자꾸만 움츠러드는 다리를 그가 힘으로 단단히 붙잡아 벌렸다.그럴수록 흐트러지는 혜서의 신음이 정한의 귓가를 더욱 자극했다.“혜서야.”“……으응.”“진혜서.”연신 혜서의 이름을 부르며 그가 손가락을 그녀의 입속으로 넣었다 뺐다. 늘 이름을 부를 때면 순순히 답을 해준 적 없던 나쁜 입이 지금은 매끄럽고 맨질대니 미칠지경이었다.이내 입 안에서 빠져나온 손가락이 혜서의 그곳으로 향했다.“그, 그만!”상당히 정교하고 부드러운 손짓에 한껏 흥분한 혜서가 소리쳤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그럴수록 혜서의 신음이 더욱 커졌다.커다란 눈을 깜빡일 때마다 곧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얼굴이 정한을 계속 자극했다.하얗던 뺨은 어둠속에서도 붉어져 선명했다.불현 듯 혜서의 이런 모습을 본인이 처음 보기를 간절히 바라며 욕심이 일었다.어느새 그가 혜서의 다리를 더욱 활짝 벌렸다.그 사이에 자리 잡은 정한이 다시 혜서의 입과 목덜미로 고개를 숙였다.뜨거운 혀가 연신 닿았다 떨어지며 하얀 피부를 붉게 물들였다. 몸 곳곳에 난 붉은 흔적들을 내려다보던 정한은 손끝으로 혜서의 몸 곳곳을 쓸어내렸다.그러다 이내 또 혜서를 핥고 빨았다.이런 경험이 처음인 혜서는 그가 하는 모든 일에 정신이 없었다.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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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여전히 재밌어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현민은 답답함에 머리를 헝크러트렸다.“그러게 왜 진작 갖다 버리지, 갖고 있었어?”“그러게 말이다. 나도 그걸 가장 후회하고 있어.”“됐어, 어차피 정한이가 알고 있었다며. 버렸어도 진혜서가 알게 됐을 거야.”담배를 깊게 빨아 문 예슬이 잠시 고뇌했다.어떻게 안 거지?예슬은 집안이 유복했던 덕분에 정한이 떠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아버지에게 졸라 유학을 명분으로 비행기에 올랐다.‘안녕, 나 너랑 혜서랑 같은 반이었는데… 기억나?’수술을 위해 입원한 그의 병원을 찾았다.침대에 앉아 허공만 응시하고 있는데도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햇살 때문일까 그의 얼굴에선 여전히 빛이 났다.‘모르겠는데.’‘나 기, 기예슬이야. 너랑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고… 나, 나도 우연히 이 근처로 유, 유학 왔는데… 마침 네가 다니는 병원 옆이더라? 너희 어머니가… 너 좀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셔서 와봤어.’‘…우리 엄마가?’한국에 남겨져 병원에서 치료중인 어머니 예원을 떠올린 정한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엄마… 우리 엄마 괜찮아?’‘응, 아직은… 너희 집 그렇게 불타고… 나도 많이 걱정되고 놀랐어.’순간 예슬의 입에서 화재소리를 들은 정한의 눈가가 바싹 메말랐다.혜서의 스토커가 어떻게 알았는지 전주로 내려와 납치하려는 시도를 하고, 며칠 뒤 정한의 집은 돌연 화재가 나 전부 불타버렸다.CCTV도 목격자도 없는 동네라 범인을 잡기란 어려웠고, 그로인해 예원은 위독한 상태로 병원에서 치료중이었다.그 때문에 갈 곳 없던 정한의 소식을 들은 친아버지이자 한성 그룹 회장 다근현은 직접 아들을 데리러 왔다. 동시에 눈 수술까지 할 수 있었다.그런 정한의 모든 것을 예슬이 곁에서 지켜봤다.그가 아플 때, 힘들 때, 외로울 때, 무너질 때.모두 본인이 곁에 있었다. 진혜서가 아니라.“진혜서가 바보가 아닌 이상 너한테 다시 돌아갈 일은 없어.”“…씨발.”과거를 떠올리던 예슬은 짧게 타들어가는 담배를 그만 비벼껐다.“넌 뭐가 그렇게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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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귀엽지?

며칠 후, 혜서는 여운에서 향수를 만들기 위해 찾아온 수강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향수를 만들 때 가장 먼저 기억하셔야 하는 건 좋은 향과 나에게 좋은 향은 다를 수 있다는 거예요.”10명 남짓의 수강생들이 그녀를 바라보며 테이블에 놓인 병들을 바라봤다.“지금부터 향료를 하나씩 맡아보실 텐데요. 마음에 드는 향을 억지로 고르실 필요는 없어요. 처음 맡았을 때 ‘좋다’보다 ‘계속 맡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향을 찾아보세요.”혜서가 시향지에 향을 가볍게 뿌렸다. 천천히 흔들어 향을 맡던 혜서는 가장 가까이 있는 남자에게 건넸다.“돌아가면서 한번 씩 맡아보실래요?”혜서의 지시에 모두가 돌아가면서 시향지를 천천히 흔들었다.“처음 느껴지는 향을 탑노트, 그다음 중심이 되는 향을 미들노트, 마지막까지 남아서 여운을 만드는 향을 베이스노트라고 해요.”마지막에 앉은 수강생까지 모두 시향을 마치자 혜서가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그럼 같은 향수라도 처음 맡는 향과 끝에 맡는 향이 달라질 수도 있단 말씀인가요?”“네. 그래서 첫인상이 강한 향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난 뒤 어떤 향이 남는지를 더 중요하게 봐요.”“왜요?”“처음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그 사람과의 마지막을 더 오래 간직하고 기억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오늘은 예쁜 향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라, 여러분에게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은지 생각해보면서 골라볼게요.”혜서가 부드럽게 웃자 모두들 향료병을 저마다 고르기 시작했다.“저… 선생님.”“네?”수업이 모두 끝나고 정리하는 혜서의 뒤로 수강생이었던 남자 한명이 천천히 다가왔다.“수업 너무 재밌게 받았습니다. 어머니 선물로 만든건데 너무 마음에 듭니다.”“다행이네요, 마음에 드셨다니. 어머니랑 잘 어울리는 향이었으면 좋겠네요.”“제가 준비해온 건 없고, 이거라도….”수줍게 내민 그의 손을 바라보자 작은 토끼모양의 키링이 놓여있었다.“네? 아, 괜찮은데….”“어제 이 근방에서 뽑은 거예요. 드릴게 이것밖에 없네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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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한줄기 빛

“밥부터 먹어.”“입 맛 없어졌어.”답답함과 여전히 몸은 가까워졌어도 거리를 두는 정한에게 속상한 혜서가 밥 먹기를 거부했다.“애교야?”“뭐, 뭐?”팔짱을 껴 고개를 홱 돌린 혜서를 향해 정한이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황당함에 정한을 바라보자 그는 진심으로 하는 소리 같았다.“화난 거지!”“아. 귀엽길래.”“말 돌리지마.”“얼른 먹어, 다 식겠다. 아니면 먹여줘?”“뭐? 됐거든… 읍!”돌연 작게 잘린 스테이크 한 조각이 혜서의 입안으로 쏙 들어왔다.“예전엔 네가 자주 나 먹여줬었는데.”“…….”정한이 스테이크를 조각내며 예전이 그리운 듯 말했다.그 모습을 확인한 혜서 역시 금방 눈빛에 그리움이 담겼다.앞이 보이지 않던 정한은 혼자서도 식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종종 혜서의 도움을 받기도 했었다.사춘기 시절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을법한 일이었지만 정한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혜서에게 더 먹여달라며 애교를 피우곤 했으니까.그런데 지금은 그랬던 그가 자신의 입에 음식을 처음 넣어줬다.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못했던 일들을 계속해서 보고 느끼니 혜서는 가슴속에서 벅차오르는 무언가를 느꼈다.“내 생각 많이 났어?”“안 났어.”정한의 물음에 혜서가 괜히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했다. 매번 제 물음에 답해주지 않는 그에게 본인도 쉽게 답을 해주기 싫어 나름의 불만표시였다.“연기 진짜 못해, 진혜서.”“…….”“아역배우 어떻게 했던 거야?”“나 가끔 아직도 알아보는 분들 있거든? 선물도 받고.”발끈하는 혜서가 귀여워 정한이 입가를 나른히 끌어올렸다.“어? 키링 어디 갔지?”선물이야기에 수업 후 받았던 토끼 인형 키링이 기억난 혜서가 더듬더듬 가방을 살폈다.분명 여기 달려 있었는데.차에서 가방에 키링을 달았던 기억을 되살린 혜서가 꼼꼼히 주변을 살폈다.“뭐야, 언제 가져갔어?”정한의 긴 손가락에서 돌아가고 있는 키링을 발견한 혜서가 허탈한 얼굴을 했다.“바닥에 떨어졌길래 주웠는데.”“그게 언제… 돌려줘.”“내가 주웠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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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경쟁자

‘정한아! 다정한!’얼마만에 듣는 이름일까. 얼마만에 진혜서의 입에서 나온 제 이름일까.어색함과 그리움이 묻은 소리에 정한이 지그시 혜서를 내려다봤다.더불어 근래에 이런 행복하고 나른한 시간을 보낸 적이, 제게 주어진 적이 있었던가.“가방에 달아.”정한이 혜서의 가방에 손수 키링을 달았다.“너 닮았다고 주는 거야?”“생각해보면 난 너한테 제대로 준 게 없네.”“뭐?”정한이 씁쓸하게 웃었다.그 미소를 보고있자니 많은 생각이 겹쳐 흘렀다.묻고 싶은 건 많고, 들어야 할 대답도 수십가지였지만 혜서는 앞으로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했다.그저 지금의 이런 일상을 잔잔한 하루를 당분간은 아무런 생각과 걱정 없이 즐기고 싶었다.“잠깐만 이러고 있자.”천천히 가까워진 정한이 혜서를 끌어당겨 안았다. 생각지 못한 그의 행동에 혜서가 당황했다. 가까워진 만큼 정한의 빠른 심장박동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앞으로는 떠나지 않을게.”“…….”“약속해.”숨 죽여 말하는 정한의 목소리가 어딘가 떨리는 듯 했다. 무슨뜻인지 되 물을 수 있었지만 혜서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작은 손으로 너른 그의 등을 토닥거려주었다.무엇이 그토록 정한을 과거에 옭아 메고 있는지, 무엇이 그를 자꾸만 괴롭혀대는지 궁금했지만 혜서는 그를 믿고 기다려보기로 했다.“…나도.”한동안 붙어 있던 둘은 금방 떨어질 줄을 몰랐다.*어느새 여운의 팝업스토어가 한창이었다. 첫날부터 광고와 마케팅의 효과로 반응이 좋았다.“이러다 우리 진짜 한성에 입점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혜서야?”“그래야지. 최종 목표잖아.”잠시 손님들이 몰려나가고, 여유가 생길 때 정리중인 혜서 옆에서 새롬이 들떠 말했다.새롬은 한편으로는 여운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얻어 행복하면서도 묵묵히 정리중인 혜서를 보고 있을 때면 무언가 속에서 불편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너….”“응?”천천히 입을 뗀 새롬을 향해 혜서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바라봤다.분명 현민의 이야기가 최근들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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