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다가온 정한에게서 그만의 향과 선선한 밤공기 냄새가 훅 끼쳤다.“일이… 좀 많았어.”“그래?”그의 눈길이 자연스럽게 혜서의 손끝으로 향했다. 반면 혜서는 그의 눈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연락은 왜 피했어.”“피하다니. 못 본 거야.”“…….”손톱 끝을 탁탁 뜯는 혜서를 보며 정한이 작은 실소를 내쉬었다. 거짓말도 못하면서 늘 이렇게 절 속이려 드는 게 괘씸하기도 했지만 귀엽기도 했다.“우리, 해야 할 이야기가 많지 않아?”정한이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먼저 말했지만 혜서는 숙인 고개를 들지 못했다.두 사람 사이에서 은숙의 일을 아직 풀어내지 못했다.“내가… 내가 널 볼 면목이 없어, 정한아.”하루 종일 그의 연락을 피한 이유에는 은숙의 일이 컸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인 건지 정한이 그간 제 앞에 나타나지 못한 이유에 은숙이 끼어있단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적 없었다.그만큼 10년 전엔 은숙이 정한을 참 좋아했고, 아꼈으니까.“정말… 정말 우리 엄마가 그런 거야? 너한테 그렇게 모질게 하고, 편지를 없애라고 하고…!”그녀가 다그치며 고개를 들었다. 결국 혜서의 눈가가 눈물로 붉어졌다.그런 그녀를 품에 안은 정한이 더욱 흐느껴 우는 혜서를 토닥였다.“아줌마 마음도 이해는 가.”“내가…! 내가 미안해서 널 어떻게 봐… 어떻게… 흑….”정한의 품안에서 혜서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그간 혼자서 감당해내느라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반갑게 달려와 설레는 마음을 품고 문을 두드렸을텐데.마주한 사람들마다 날카롭게 대하며 마음을 모조리 베어놨으니 얼마나 아프고 괴로웠을까.정한을 생각하며 혜서가 더욱 크게 울었다.나쁜 마음과 감정이라면 모조리 끌어다 정한에게 퍼부었다.원망, 미움, 분노, 실망….나타나지 않는 그를, 편지도 하지 않는 그가 매정하다며 욕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을 준비했다.“너 이럴까봐 얘기 못했어. 자책하고 괴로워하다가 결국에는 이렇게 나 밀어낼까봐.”“그래도! 그래도 얘기를 해줬어야지.”“하
Last Updated : 2026-09-2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