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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해로운 다정: Chapter 51 - Chapter 60

62 Chapters

50. 염원했던 여자

앞으로 다가온 정한에게서 그만의 향과 선선한 밤공기 냄새가 훅 끼쳤다.“일이… 좀 많았어.”“그래?”그의 눈길이 자연스럽게 혜서의 손끝으로 향했다. 반면 혜서는 그의 눈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연락은 왜 피했어.”“피하다니. 못 본 거야.”“…….”손톱 끝을 탁탁 뜯는 혜서를 보며 정한이 작은 실소를 내쉬었다. 거짓말도 못하면서 늘 이렇게 절 속이려 드는 게 괘씸하기도 했지만 귀엽기도 했다.“우리, 해야 할 이야기가 많지 않아?”정한이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먼저 말했지만 혜서는 숙인 고개를 들지 못했다.두 사람 사이에서 은숙의 일을 아직 풀어내지 못했다.“내가… 내가 널 볼 면목이 없어, 정한아.”하루 종일 그의 연락을 피한 이유에는 은숙의 일이 컸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인 건지 정한이 그간 제 앞에 나타나지 못한 이유에 은숙이 끼어있단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적 없었다.그만큼 10년 전엔 은숙이 정한을 참 좋아했고, 아꼈으니까.“정말… 정말 우리 엄마가 그런 거야? 너한테 그렇게 모질게 하고, 편지를 없애라고 하고…!”그녀가 다그치며 고개를 들었다. 결국 혜서의 눈가가 눈물로 붉어졌다.그런 그녀를 품에 안은 정한이 더욱 흐느껴 우는 혜서를 토닥였다.“아줌마 마음도 이해는 가.”“내가…! 내가 미안해서 널 어떻게 봐… 어떻게… 흑….”정한의 품안에서 혜서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그간 혼자서 감당해내느라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반갑게 달려와 설레는 마음을 품고 문을 두드렸을텐데.마주한 사람들마다 날카롭게 대하며 마음을 모조리 베어놨으니 얼마나 아프고 괴로웠을까.정한을 생각하며 혜서가 더욱 크게 울었다.나쁜 마음과 감정이라면 모조리 끌어다 정한에게 퍼부었다.원망, 미움, 분노, 실망….나타나지 않는 그를, 편지도 하지 않는 그가 매정하다며 욕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을 준비했다.“너 이럴까봐 얘기 못했어. 자책하고 괴로워하다가 결국에는 이렇게 나 밀어낼까봐.”“그래도! 그래도 얘기를 해줬어야지.”“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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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열쇠

일주일간 혜서의 일상은 특별한 것 없이 흘러갔다. 본부장의 말대로 백화점에서는 정한과 선을 지켰고, 조일관은 출소했지만 직접적인 타격도 없었다.그저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갔다.“우리 이제 며칠 안 남았다. 이대로라면 입점 될 거야, 그렇지?”“응. 되고나면 회식이야.”“오케이!”혜서와 새롬이 들떠 말했다. 그간 힘든일도 많았지만 즐거운 일도 많았다. 팝업 스토어들 가운데 여운은 계속해서 부동의 1위를 지켜냈고, 간혹 퇴근후에는 정한과 데이트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그저 여유롭고 감사한 나날들이었다.이대로 그저 이대로만 하루하루가 반복해서 흘러가기를 이때의 혜서는 간절히 바랐다.*“어떻게 됐어요, 지시한 일은?”한성그룹 본사 상무실.태현과 함께 앉아있던 윤미는 제 앞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짧게 물었다.“두 사람 사이에 특별할 것은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연인관계로 보였는데 특이할 점이라면 얼마 전 다정한 대표가 교도소에 들렀다는 겁니다.”“교도소?”윤미의 반문에 남자가 고개를 낮게 끄덕였다.“네. 한참을 그 앞에서 대기중이었는데, 조일관이란 놈이 나오자 자리를 떴습니다. 과거에 다 대표를 찔렀던 피의자였던 놈이더라구요?”“그 놈이 벌써 출소를 했다구요?”태현이 신기한 듯 웃으며 물었다. 남의 일이라 그런지 훌쩍 지나버린 10년이란 시간이 새삼 짧다 느껴졌다.“그리고요?”“그래서 그 놈을 조금 더 알아보니 교도소에서 한동안 다 대표한테 편지를 자주 보냈더라구요.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썩 좋은 내용은 아니었을 겁니다.”처음 듣는 이야기에 윤미의 입가가 느슨히 올라섰다. 굳이 제가 나서지 않아도 한배에 올라타 정한을 괴롭히는 자들이 이토록 많을 줄은 몰랐으니까.“김상미도 알아봐요. 다정한 대표랑 절대 만나서는 안돼요.”이번엔 윤미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거론했다.김상미.과거 정한이 한성에 태어나 눈이 멀기 까지. 그를 돌봐왔던 시터이자 가사도우미였다.“그 여자도 곧 출소예요.”“뭐라구요? 분명 무기징역을 받았는데?”“가석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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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결코 알 수 없는 일

다음날, 퇴근 후 혜서는 백화점에서 나와 꽤 떨어진 곳에 위치한 번화가에서 정한을 기다렸다.이윽고 그녀의 앞으로 익숙한 세단이 서자, 단번에 보조석에 몸을 실었다.“이렇게까지 해야 해?”“응. 보는 눈이 많아.”혜서의 부탁으로 정한은 더 이상 백화점 앞에서 그녀를 기다릴 수가 없었다. 이미 둘 사이를 공공연하게 알 사람들은 알았지만 혜서는 어떻게든 숨기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다.정한은 썩 내키진 않았으나 최대한 맞춰주는 중이었다.“주말에 시간 돼?”“데이트 신청이야?”천천히 차를 출발시킨 정한이 전면의 도로 끝을 살피며 질문했다.“데이트도 하고, 우리 엄마도 뵈려고.”“아….”잊고 있던 정한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혜서에게도 친숙했던 분이었다.‘혜서 놀러 왔니?’학창시절 하교 후, 정한과 함께 집에 놀러가면 늘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시던 예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꽃을 사랑해 늘 정원에 꽃을 가꾸며 기뻐하던 그녀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했다.“응, 당연히 되지.”“혜서 네가 오면 정말 좋아하시겠다.”“그러셨으면 좋겠다.”씁쓸한 미소를 띄운 혜서가 차창밖에 시선을 두었다. 살아계셨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새삼 유일한 가족을 잃는다는 건 어떤 감정일지 실감이 가질 않았다.혜서 역시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이혼으로 인한 이별이었다.아픔으로 생이별을 당한 정한과는 비교가 되질 않을터였다.“아줌마 꽃 좋아 하셨었는데… 꽃 사가자.”“그래.”한참을 달린 차가 정처없이 내달리다 이내 가로수 길에 다다랐다.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기전 단풍이 예쁘게 물든 산책로를 발견한 정한이 멈춰 세운 것이었다.“좀 걸을까.”“응.”나란히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이 익숙하게 손을 잡고 걸었다. 바스락바스락 걸을때마다 낙엽 소리가 나는 길을 걸어나가며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벌써 겨울이 오려나봐.”“추워?”혜서의 말에 정한이 걸음을 멈춰 세웠다. 시선으로 혜서를 훑던 그가 벌어져있는 혜서의 코트 앞섬을 단정히 채워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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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행복해서

깊은 밤, 예슬의 오피스텔.“씨발!”괴성을 지른 예슬이 유리컵을 거세게 집어던지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유리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져 깨졌다.‘이미 마음에 둔 여자가 있습니다.’그날 이후, 정한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그가 제게 그럴 순 없었다. 적어도 그가 그래선 안됐다.“그깟 진혜서, 진혜서! 진혜서!!!”소리를 거세게 지른 예슬이 머리를 쥐어짜듯 움켜잡아 괴로워했다.도대체 언제쯤. 대체 어떻게.어떻게 해야 진혜서에게서 정한을 온전히 빼앗아 가질 수 있는 걸까.괴로움에 몸부림치던 예슬이 소파에 몸을 던지듯 앉았다.“하….”기어이 제가 움직이게 만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진혜서는 눈엣가시였다.늘 더러운 짓을 하게 만드는 그녀가 원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단 한번도 저를 돌아봐주지 않는 정한이 야속했다.추했던 겉모습을 지우기 위해 열심히 운동했고, 성형으로 외모를 가꿨다.진혜서만큼이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못지않게 남자들에게 대시도 받으며 자존감도 많이 올라갔었다.하지만 진혜서만 마주치면 늘 제자리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정한과 혜서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볼때면 속에서 분노가 들끓었다. 어떻게 해서든 둘을 떼어내야 했다.제가 가질 수 없다면 진혜서도 영영 정한을 가지지 못해야 했다.*“와아, 너무 예쁘다….”혜서와 정한은 서울에서 열린 불꽃축제에 함께 놀러왔다. 수많은 인파속에서도 찬란히 번져 빛나는 불꽃놀이가 아름다웠다.“그러게, 예쁘네.”하늘을 올려다보는 혜서의 옆모습을 살피던 정한은 불꽃이 아닌 혜서를 바라보며 답했다.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진혜서도 아름다웠다.저처럼 예쁜 것을 좋아하고, 눈이 부신걸 동경하는 모습이 색다르기도 했다.하나부터 열까지. 아무래도 진혜서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었다.“불꽃놀이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거 처음이다?”“그래? 또 뭐 있어. 안 해 본거.”“너무 많은데?”“앞으로 나랑 같이 해. 차근차근 하나씩.”앞으로라는 말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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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침입

혜서와 정한은 함께 불꽃놀이를 보고난 후 산책로를 거닐고 있었다. 제법 쌀쌀해진 가을 날씨가 거의 끝이 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줬다.“내일 출장 갔다 와야 할 것 같아.”“또?”정한이 다시 자리를 비운다는 생각에 혜서가 조금 시무룩해 했다.“응. 이번엔 잠깐이야. 이틀정도?”“짧네?”“난 하루도 긴데.”대수롭지 않아하는 혜서에게 심술 난 정한이 걸음을 멈춰 끌어안았다.“얌전히 기다리고 있어.”“너도 다치지 말고, 잘 다녀와.”“근데… 언제까지 너라고 할 거야?”“……응?”돌연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던지는 정한의 눈을 바라봤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꽤나 진지한 그의 표정에 혜서가 머뭇거렸다.“아니, 우리 연애 중인 거 아닌가?”“맞지? 너도 이름 부르잖아.”“너라고는 안 해.”사소하게 투닥거리던 둘이 눈을 마주치자 동시에 웃음을 작게 터트렸다.“그럼… 뭐라고 불러줘?”“내가 1년 유급했지만 나이로는 오빠지.”“풉.”“왜 웃어?”혜서의 빵 터진 웃음에 정한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같은 동창이긴 했으나 엄연히 나이로는 1살 많았으니까.“정한아.”“왜.”“다정한.”골리듯 그의 이름을 연이어 부르자 정한이 먼저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즐거워 혜서가 종종걸음으로 뒤따라 걸었다.“나도 이름 불러야 공평하지.”“마음대로 해.”뒤돌아 보지 않고 답하는 정한의 뒷모습이 재밌고, 귀여웠다. 떨어지는 가로수의 낙엽들을 즈려밟으며 걸음을 재촉하던 혜서는 새삼 신기하기도 했다.이렇게 정한의 뒤를 따라 걸으며 웃어본 적이 있었나.늘 그가 넘어지거나 다칠까봐 조금 더 앞에서 걷던 혜서였다. 발걸음 소리를 따라 걸으며 소리에 집중하던 정한의 표정 하나하나가 여전히 생생히 기억에 스쳤다.Rrrrr. Rrrrr.이만 놀리고, 정한에게 다가가려던 때였다. 정한의 벨소리가 울리자 그가 걸음을 멈춰 전화를 받았다.“네.”전화를 받는 정한의 시선이 짧게나마 흔들렸다. 묘한 불안감을 느낀 혜서가 곁에서 침묵하며 그의 전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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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걸림돌

하루가 꼬박 지났다. 밤새도록 혜서는 잠을 어떻게 잔건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오전에 출장을 미루겠다는 정한을 타이른 혜서는 공방에 출근해 새롬과 함께 경찰이 물러난 여운을 청소중이었다.“아마도 주변에서 우리 공방이 잘 되니까 샘나서 그런 걸 거야.”쓰레기 봉투를 꽉 묶어 든 새롬이 성난 듯 말했다.“차라리 그런 거라면 좋겠어.”“뭐? 무슨 이유든 누가 그랬든 이건 범죄야!”작게 고개를 끄덕인 혜서도 연신 주변을 정돈했다.조일관이 출소 후 일상생활을 지내며 신경쓰이지 않았다면 거짓이었다.그가 자신을 잊고 그저 본인의 인생을 살기를 바랐지만 혹여라도 복수심을 품고 있다면 10년 전과 같은 비극이 또 일어날 수도 있었다.“하….”본인도 모르게 한숨이 입 밖으로 새어나온 혜서가 휘청거리자 새롬이 다가와 부축했다.“너 때문 아니야, 진혜서. 생각 그만해.”밤새 잠 한숨 못잔 혜서의 얼굴을 확인한 새롬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경찰 조사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어젯밤 확인 결과 CCTV도 누군가 고의로 훼손한 흔적이 발견됐다.즉 우발적인 범행은 결코 아니란 뜻이었다.“좋은 일이 생기려고 액땜 했다 생각하자.”“응. 나 진짜 괜찮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어떻게 걱정을 안 해. 그러지말고 당분간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내자. 어때?”새롬의 제안에 혜서가 잠시 고민했다. 그만큼 조일관의 출소와 공방의 침입 시기가 겹친 게 은연 중 불안했던 이유였다.“이럴 때 다정한은 어디 간 거야? 너만 두고.”“출장 갔어. 안 간다는 거 내가 다녀오라고 했어.”떠난 정한을 떠올린 혜서가 씁쓸한 미소를 띄었다.맘 같아선 그의 뜻대로 함께 있자고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그에게 작은 걸림돌이라도 되고 싶지 않았다.*“조일관의 소행이 아니란 말씀인가요.”출장길에 나선 정한은 운전을 하며 블루투스로 연결된 전화로 조일관에게 심어둔 남자와 통화중이었다.-네. 어젯밤 자택에서 나온적이 없습니다. 한 번 외출은 했으나 집앞 편의점에서 술을 산 것 밖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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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진실

다음 날 출근한 혜서는 연신 바빴다. 입소문을 탄 건지 여운의 향수는 늘 인기가 많았고, 여럿 인플루언서는 물론 연예인까지 다녀간 만큼 화제를 끌어 모았다.“혜서야, 밥 먹으러 가자.”화장실도 가지 못할 만큼 바쁘게 뛰어다녔더니 새롬이 어느덧 점심시간임을 알렸다.“응. 밖에서 먹을까?”“그러자. 사내에선 눈칫밥이나 먹고 체 할 것 같아.”어깨를 한번 풀어내며 혜서가 활짝 웃었다. 주변을 정리하고 새롬과 백화점 로비로 향했다.“오늘은 데이트 하겠네?”새롬이 혜서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웃었다.“글쎄. 오늘 새벽에 출장에서 돌아와서 피곤할 것 같아.”새벽에 서울로 돌아왔다며 메시지를 남긴 정한의 연락을 확인했다. 간밤에는 불안감에 새롬의 집에서 잠을 잤기에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왜들 그러지?”“응?”함께 출입문으로 향할 때였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직원들을 눈치 챈 새롬이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마다 휴대폰을 확인하며 수군거리고 있었다.“무슨 일이라도 났나?”의구심에 새롬도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바라봤다. 혜서는 팔짱을 낀채 걸으며 곧 재빠른 그녀가 알려줄 이야기를 궁금해했다.“…혜, 혜서야.”“응? 왜그래.”가던 걸음을 멈춘 새롬이 사색에 잠긴 얼굴로 혜서를 바라봤다. 그녀의 흔들리는 눈빛을 확인한 혜서가 제 앞에 들이미는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천천히 기사를 읽어내려가는 혜서의 표정이 짙게 굳어갔다.정한의 약혼 발표 기사였다.*“어머니께서 재밌는 일을 벌이셨네.”한성 백화점의 대표실. 정한 역시 예상치 못한 기사가 순식간에 오르내리자 얼굴에 불쾌감이 적나라했다.“뒷감당 어쩌시려고.”“죄송합니다, 대표님. 기사는 빠르게 정리하겠습니다.”윤 비서가 재차 고개를 숙였다.정한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을 하자마자 맞은 뒤통수에 화를 삼켜내기 바빴다. 윤미가 발칙한 짓을 벌였다. 그렇게 경고를 했건만.기어이 선을 넘어버린 그녀에게 더 이상의 선처는 없었다.진혜서가 봤을 텐데.기사를 보고 상처를 입었을 혜서를 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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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사랑은

“…진혜서.”충격받은 얼굴로 굳어 서있는 혜서를 확인한 정한 역시 적잖이 충격을 받은 얼굴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두 사람의 사이에서 예슬만 덤덤한 모습이었다. 드디어 진혜서가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짜릿한 순간이었다.“내가 잘못 들은 거야? 아줌마가… 아줌마가 내 기사 때문에 돌아가셨다니?”“잘못 들은 거 아니야. 너 때문에 정한이 집에 불이 난 거야.”“기예슬!”예슬이 팔짱을 껴 모든 사실을 털어놓자 화가난 정한이 소리쳤다. 늘 덤덤하고 매사 침착하던 정한이 흐트러지는 모습을 처음 본 혜서가 흠칫 뒷걸음을 쳤다.그가 이토록 화를 낸다는 사실은 제가 들은 모든 것이 사실이란 소리였다.“혜서야, 나랑 얘기 좀 하자. 안 그래도 너한테 가려고….”“자, 잠깐 혼자 있게 해줘.”“뭐?”고개를 외면해 뒤돌아서는 혜서를 향해 정한이 말을 잇지 못했다.“내가 지금 이래저래 경황이 없어. 잠깐이면 돼. 이따 얘기하자, 정한아.”“혜서야.”결국 혜서가 달아나듯 모습을 감췄다. 허탈함에 정한이 손으로 머리칼을 헝클어트렸다.뭐든 세상엔 끝까지 감출 수 있는 비밀은 없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러나 진혜서한테 만큼은, 그래 혜서한테만큼은 감추고 싶은 게 많았다. 그만큼 그녀가 상처 입는 게 죽도록 싫었으니까.“이제 만족해?”“내가 아니어도 알게 됐을 일이야. 박현민도 알고 있거든.”“뭐?”결코 정한과 혜서가 이어질 수 없다는 명확한 사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예슬이 바보같이 현민의 이야기를 꺼냈다.“어떻게 하면 혜서랑 네가 헤어지게 될지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더라고. 그런데 미련하게 진혜서한테 말 한마디 벙긋 못하고 돌아와서는… 쯧.”답답하다는 듯 예슬이 혀를 찼다. 끝까지 제 앞에서 벗어나 진혜서만을 쫓는 정한에게 괘씸했기에 보란 듯이 그의 이야기를 꺼냈다.현민이 본인이 쥐어준 열쇠를 사용하지 않았다. 바보 같이.진작 두 사람의 사이에 예원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흘렸다면 지금 이만큼 돌아오지 않아도 됐을 일이었다.“그래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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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대면

백화점 근처에 위치한 카페에 도착한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할 말이 뭐야?”먼저 입을 연건 혜서였다.“사실을 알아챈 것 치고 멀쩡해졌네?”팔짱을 껴고 커피 한 모금 마시지 않던 예슬이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너한테 들은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믿지 않을 거야.”“…….”떨리는 손을 테이블 아래로 부여잡은 혜서가 말을 이었다.아직 정한에게서 아무것도 들은 게 없었다. 선뜻 지금의 예슬에게 그 무엇을 듣는다 해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일 게 뻔했다.그를 만나 이야기를 듣기전에 흔들리고 싶지 않아 이 자리를 피하려 했으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소리치는 예슬 때문에 결국 따라왔다.“정한이한테서 듣고 나서….”“그러면 아까 대표실에선 왜 도망쳤어?”“…….”예슬의 말에 혜서는 말이 없었다.정한과 예슬의 약혼 기사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예원의 사망 원인까지 듣고 나니 그때의 혜서는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정한이가 말을 할 것 같아? 10년을 감춰 살았어. 너 하나 때문에.”“……!”예슬의 미간이 심하게 좁혀졌다. 따지듯 언성을 높이는 그녀는 마주한 혜서가 원망스러웠다.혜서 때문에 그간 정한이 힘들었고, 많은 것을 잃었다. 그런데 그런 진혜서를 그는 탓하기는커녕 오히려 감싸고 도니 미칠 노릇이었다.“넌 정한이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원망만 늘어놨지? 지금도 그래! 막상 들이닥친 문제는 보지도 않고 피했어. 피한다고 뭐가 달라져? 내가 거짓말을 왜해? 어차피 다 들통날텐데.”울분을 토해내며 예슬이 눈을 부릅떠 따져물었다. 그간 혜서에게 쌓인 게 많았다.“지난 10년 간 너랑 한 약속 때문에 정한이가 약속 장소에 나갔다 돌아온 건 알고 있어?”“뭐?”“그것도 모르고 넌 거기서 또 정한이만 원망해댔겠지.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안했으면서.”입술을 짓씹은 예슬이 계속해서 혜서를 다그쳤다.“아줌마랑 정한이는 한성그룹에서 목숨이 위험했어. 그래서 아줌마가 정한이를 살리기 위해 전주에 숨어 살았고. 그런데 졸업을 앞두고, 너한테 따라붙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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