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채리는 순간 멍해졌다.이미 배윤호에게 화리를 청했다고? 그런데 그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니, 그럴 리가!저를 약 올리려는 말일까, 아니면 정말일까?배윤호를 입에 올릴 때의 표정을 보면, 정말 예전만큼 마음에 두고 있지 않은 듯했다.하지만 그토록 배윤호를 사랑하지 않았던가. 어찌 그와 갈라설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더구나 송청아는 의지할 혈육도 없는 고아였다. 화리하고 나와 봤자 송씨 집안에서 받아 줄 리 없었다. 전답도, 장원도, 점포도 없으니 당장 몸을 누일 곳조차 없을 텐데, 무슨 배짱으로 헤어지겠다는 것인가?거기까지 생각하자 송채리는 알 것 같았다.송청아는 여전히 제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중이었다. 그래야 저보다 우위에 서서 그 우습고도 가련한 체면을 지킬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리라.송채리는 저도 모르게 낮은 웃음을 흘렸다.‘그래도 형부께 한번 말씀드려 볼 수는 있겠네. 송청아를 내쫓으시라고. 그토록 원한다니 소원은 들어줘야지.’그런 생각에 빠진 송채리는 송청아가 아직도 뜨거운 밀랍 병을 집어 든 줄도 몰랐다.송청아가 눈을 내리깔고 차갑게 말했다.“하지만 내 향전틀을 망가뜨렸으니, 대가는 치러야겠지.”말이 끝나기 무섭게 송청아가 송채리의 손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그 위로 밀랍을 쏟으려는 시늉을 했다.“아악! 아아악!”송채리는 혼비백산해 연거푸 비명을 질렀다. 필사적으로 송청아의 손아귀를 뿌리치고 황급히 뒷걸음질하다가, 마침 약을 가져오던 배윤호와 부딪쳤다.“채리야, 무슨 일이냐!”배윤호가 다급히 그녀를 끌어안았다.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송채리는 익숙한 몸짓으로 돌아서서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울음을 터뜨리며 송청아를 고발했다.“청아 언니가…… 또 저를 해치려고…….”배윤호의 눈이 부릅떠졌다. 송청아에게로 홱 돌아간 눈빛에서 섬뜩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송청아! 또 채리에게 무슨 짓을 한 게야!”송청아는 여전히 태연히 서서 소매를 가볍게 여몄다. 햇빛 아래 가냘픈 자태에는 서늘한 아름다움이 감돌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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