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장군님이나 잘하세요: Chapter 51 - Chapter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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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화

방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송청아는 분명 송채리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송채리가 제 손에 밀랍을 쏟고는, 그 여세를 몰아 향전틀까지 바닥에 떨어뜨려 깨뜨린 것이었다.그제야 알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송채리가 꾸민 일이었다.“저는 안 그랬어요.”송청아가 나직이 중얼거렸다.“자기가 직접…….”“형부, 오해하지 마세요. 언니도 일부러 그러신 건 아니에요. 제가 밀랍을 망칠까 봐 급한 마음에 그만…….”송채리는 고운 얼굴을 눈물로 흠뻑 적시면서도, 너그럽게 송청아를 ‘두둔’했다. 그럴수록 배윤호는 그녀가 더욱 안쓰러웠다.그가 고개를 숙여 손을 살피는 틈을 타 송채리가 송청아에게 눈을 찡긋했다.“어쩌죠? 언니의 백조조봉 향전틀까지 깨져 버렸네요. 정말 아까워라…….”간드러진 목소리가 역겨웠다.“낡은 도자기 하나쯤 깨지면 어떠냐. 네 몸보다 귀할 리 있겠느냐.”배윤호의 관심은 온통 송채리의 손가락에 쏠려 있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이라도 받든 듯 손을 조심스레 감싸 쥐고 살피다가, 이따금 입김을 불어 식혀 주었다. 곁에 선 송청아의 눈에 서린 냉기와 비통함은 조금도 알아채지 못했다.“많이 다치지는 않았구나. 여기서 기다리거라. 화상에 바를 연고를 가져오마.”말을 마친 배윤호는 서둘러 방을 나갔다.곁방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송채리는 금세 가련한 표정을 거두었다. 허리를 곧게 펴고 턱을 치켜든 채, 느릿느릿 송청아의 곁으로 돌아왔다. 얼굴에는 경멸과 조롱이 가득했다.“봤어요? 형부가 저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저에 비하면 언니의 이 깨진 도자기는 한 푼 값어치도 없어요.”송채리는 구름 문양이 놓인 비단신으로 바닥의 도자기 조각을 툭 걷어찼다. 조각들이 부딪치며 맑고도 서늘한 소리를 냈다.그런데도 송청아는 말이 없었다. 눈에서도 기대했던 절망을 찾아볼 수 없자, 송채리는 포기하지 않고 거듭 자극했다.“향을 만들 줄 알면 뭐 해요? 지금 언니가 가진 건 전부 원래 제 것이었는데. 이번에 도성으로 돌아온 것도 제 것을 되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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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송채리는 순간 멍해졌다.이미 배윤호에게 화리를 청했다고? 그런데 그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니, 그럴 리가!저를 약 올리려는 말일까, 아니면 정말일까?배윤호를 입에 올릴 때의 표정을 보면, 정말 예전만큼 마음에 두고 있지 않은 듯했다.하지만 그토록 배윤호를 사랑하지 않았던가. 어찌 그와 갈라설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더구나 송청아는 의지할 혈육도 없는 고아였다. 화리하고 나와 봤자 송씨 집안에서 받아 줄 리 없었다. 전답도, 장원도, 점포도 없으니 당장 몸을 누일 곳조차 없을 텐데, 무슨 배짱으로 헤어지겠다는 것인가?거기까지 생각하자 송채리는 알 것 같았다.송청아는 여전히 제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중이었다. 그래야 저보다 우위에 서서 그 우습고도 가련한 체면을 지킬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리라.송채리는 저도 모르게 낮은 웃음을 흘렸다.‘그래도 형부께 한번 말씀드려 볼 수는 있겠네. 송청아를 내쫓으시라고. 그토록 원한다니 소원은 들어줘야지.’그런 생각에 빠진 송채리는 송청아가 아직도 뜨거운 밀랍 병을 집어 든 줄도 몰랐다.송청아가 눈을 내리깔고 차갑게 말했다.“하지만 내 향전틀을 망가뜨렸으니, 대가는 치러야겠지.”말이 끝나기 무섭게 송청아가 송채리의 손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그 위로 밀랍을 쏟으려는 시늉을 했다.“아악! 아아악!”송채리는 혼비백산해 연거푸 비명을 질렀다. 필사적으로 송청아의 손아귀를 뿌리치고 황급히 뒷걸음질하다가, 마침 약을 가져오던 배윤호와 부딪쳤다.“채리야, 무슨 일이냐!”배윤호가 다급히 그녀를 끌어안았다.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송채리는 익숙한 몸짓으로 돌아서서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울음을 터뜨리며 송청아를 고발했다.“청아 언니가…… 또 저를 해치려고…….”배윤호의 눈이 부릅떠졌다. 송청아에게로 홱 돌아간 눈빛에서 섬뜩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송청아! 또 채리에게 무슨 짓을 한 게야!”송청아는 여전히 태연히 서서 소매를 가볍게 여몄다. 햇빛 아래 가냘픈 자태에는 서늘한 아름다움이 감돌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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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그런데 난각에 그 여자가 들어오자마자 이 귀한 물건이 깨져 버리다니!“큰부인, 이 향전틀이 어쩌다 이리되었습니까! 백씨 노인께서 혼수로 주신 물건이잖습니까.”송청아는 다시 눈을 내려 도자기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담담했다.“그러게. 내가 이토록 아끼는 혼수도 그 사람 눈에는 한 푼 값어치가 없더군. 제 채리가 놀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큰도련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세요. 난각의 그분이 계속 큰부인을 업신여기게 두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봉 어멈이 안타까운 마음에 권하자 송청아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배윤호도 알고 있었다. 앞서 송채리가 연극을 했다는 것을.그런데도 그는 송채리의 편에 서서, 도리어 그녀에게 뒤끝이 질기다며 나무랐다.진실을 눈앞에 가져다 놓아도 끝내 보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는 법이었다.그런 사람에게 무슨 해명을 더 하겠는가.“그럴 필요 없네. 조각들을 잘 거두어 상자에 넣어 두게. 나중에 솜씨 좋은 장인을 찾아 고칠 수 있을지 알아봐야겠어.”*배윤호는 송채리와 난각으로 돌아가 그녀의 손에 연고를 발라 주었다.송채리는 창가의 푹신한 평상에 앉아서도 여전히 눈물을 흘렸다.“형부, 향전틀은 정말 일부러 깨뜨린 게 아니에요. 어쩌다 손에 걸려서 떨어진 것뿐인데……. 청아 언니가 이 일로 저를 미워하면 어떡하죠? 앞으로도 저를 용서하지 않으면요?”배윤호는 생각이 어지러웠다. 조금 전 곁방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자꾸만 머릿속을 스쳤다.향전틀에 관해 이야기할 때 송청아의 눈에 어렸던 애틋함과 그리움. 그것이 깨졌을 때의 충격과 아픔. 그리고 방을 나서기 직전 마주했던, 한없이 고요하고 무심한 눈빛까지.문득 배윤호는 깨달았다.송청아도 마음에 상처를 입은 듯했다.송채리가 줄곧 울며 하소연하는 동안, 배윤호는 딴생각에 잠긴 채 건성으로 대꾸했다.“그럴 리 없다. 오늘은 향전틀이 깨지는 바람에 잠시 평정을 잃었던 게야. 사부가 혼인 선물로 준 물건이라니, 그토록 아끼는 것도 당연하겠지.”혼인 선물이기에 송청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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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송채리가 벌떡 일어나 곁에 있는 탁자 모서리로 몸을 던지려 했다.배윤호는 가슴이 철렁해 재빨리 다가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이 무슨 철없는 짓이냐!”송채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겉으로는 여전히 벗어나려 몸부림쳤다.“놓아주세요! 형부마저 저를 믿지 않으시는데, 제가 살아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배윤호는 뒤에서 그녀를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 굵고 힘센 두 팔이 가느다란 허리를 옭아맸다. 그대로 제 가슴에 파묻어 버릴 듯한 기세였다.“믿는다!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짓을 하든 다 믿어!”거의 고함에 가까운 대답이었다. 그와 동시에 송채리도 몸부림을 멈췄다. 팽팽하던 몸에서 힘이 풀리더니, 물처럼 부드럽게 그의 품에 녹아들었다.“믿어 주시면 됐어요.”송채리는 몸을 돌려 그의 목에 두 팔을 둘렀다. 그러고는 살며시 발끝을 세워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배윤호의 눈이 커졌다. 두 손이 반사적으로 그녀를 밀어내려 했다.그러나 붉어진 눈가와 그 끝에서 굴러떨어지는 눈물을 보자 다시 마음이 약해졌다.하아……. 또 한 명, 자신에게 깊이 마음을 준 여인이로구나.송채리의 말대로 그녀를 지옥 같은 곳에서 구해 낸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러니 그녀가 자신에게 의지하게 된 것도 어쩌면 정해진 운명이었으리라.아무래도 이번 생에는 이 여인을 저버릴 수 없을 모양이었다.*하늘은 맑고 공기는 청명했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묘시 삼각, 소국 황궁 정화전 앞의 넓은 광장에는 오품 이상의 문무백관이 양편으로 늘어서 있었다. 모두 홀을 든 채 고개를 숙이고 황제의 행차를 기다렸다.대추빛 붉은 관복과 보랏빛 도는 푸른 관복을 입은 문무 관원들 사이로, 갑옷을 갖춰 입은 장수 십여 명이 눈에 띄었다. 늠름한 기상을 드러내며 무관들의 대열 맨 앞에 선 이들은 소국과 몽국의 전쟁에서 공을 세워 포상을 기다리는 장수들이었다.배진성과 배윤호 부자도 그 안에 있었다.전날 배윤호는 송채리가 막 장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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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배진성은 도성으로 돌아오는 내내 만나는 사람마다 이번에 제 아들이 효기장군에 봉해질 것이라 떠벌리고 다녔다.동료들은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속사정은 훤히 꿰뚫고 있었다.아들이 송씨 집안의 딸과 혼인한 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위 내관이 향을 유달리 좋아해 향약 명가인 송씨 집안을 각별히 아낀다는 사실은 도성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았다.사돈이 위 내관의 귓가에서 부자를 좋게 이야기해 주는데, 효기장군에 봉해지는 것쯤이야 대수겠는가. 아비의 작위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일도 어렵지 않을 터였다.그러니 다른 이들도 배윤호가 효기장군이 되리라 당연하게 여겼다.그런데 황제가 내린 것은 고작 경위지휘첨사 자리였다. 부자가 저토록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더구나 배진성은 이번 일에 적잖은 은자를 쏟아부었을 터였다.돈은 돈대로 쓰고 바라던 자리도 놓쳤으니, 이보다 우스운 꼴이 또 있을까.주위에서 차츰 낮은 수군거림과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한참을 기다려도 배윤호가 무릎을 꿇고 은혜에 감사하지 않자, 위덕전도 인내심이 바닥났다. 사방에서 번지는 웅성거림에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어찌 아직도 무릎을 꿇고 성은에 감사드리지 않는 것이오?”배윤호는 여전히 효기장군이 되리라는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순간 머리에 열이 오른 그는 그만 입을 열고 말았다.“내관, 소신이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이것이 정녕 폐하께서 내리신 명이 맞습니까?”주위의 문신과 장수들이 일제히 숨을 들이켰다.목숨이 아깝지도 않은가!감히 성지의 진위를 의심하다니. 위 내관이 황명을 거짓으로 전하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아니나 다를까, 위덕전의 낯빛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목소리에서도 예의가 걷히고 싸늘한 기운만 남았다.“지금 이 늙은이를 의심하는 것이오, 아니면 폐하의 성지를 의심하는 것이오?”무겁기 그지없는 추궁이었다.위덕전을 의심했다 해도, 성지를 의심했다 해도 배윤호가 무사히 넘어가기는 어려웠다.자칫하면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그런데도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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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풋내기가 감히 경위지휘첨사 자리까지 업신여기다니. 제놈이 천하제일인 줄 아는 모양이었다.‘어디 내 밑에 들어와 봐라. 단단히 버릇을 고쳐 줄 테니!’안 대인의 화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어계 위에서 위덕전 특유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불쑥 울려 퍼졌다.“발칙한 놈! 감히 성지를 의심하다니! 여봐라, 저자를 끌어내어 곤장 스무 대를 쳐라!”위덕전도 노여웠지만, 배씨 부자가 막 전공을 세운 데다 송씨 집안과 사돈이라는 점까지 생각해 마지막까지 몰아붙이지는 않았다.관직조차 깎지 않고 곤장 스무 대로 정신을 차리게 하는 선에서 그친 것이다. 이만하면 황제와 문무백관 앞에서도 체면을 세울 수 있었다.그러나 배씨 부자에게는 백관이 지켜보는 앞에서 배윤호가 곤장 스무 대를 맞는 것이 관직이나 작위를 잃는 것보다도 견디기 어려운 치욕이었다.“내관!”배진성이 황급히 무릎을 꿇고 위덕전에게 빌었다.“못난 자식이 처음 입궁한 탓에 예법을 몰라 실언했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주위의 장수들 사이에서 수군거림과 비웃음이 번졌다.“아들이 모르면 아비도 모른단 말인가? 저런 아비 밑에서 뭘 보고 배웠겠나. 똑같이 안하무인이지. 세상 사람들이 전부 제 비위만 맞춰 줘야 하는 줄 아는 게야.”“그러게 말이오. 진작부터 저 부자가 눈에 거슬렸소. 폐하께서 노하셔서 둘 다 서쪽 변방으로 보내 버리시면 좋겠구려. 모래바람이나 실컷 맞고 나면 어디 또 저리 으스대나 봅시다.”위덕전은 배진성에게 눈길조차 주려 하지 않았다. 곧장 금위병 한 무리에게 명해 배윤호를 붙잡게 했다. 금위병들은 그를 끌고 백관의 대열 뒤편으로 향했다.그제야 배윤호도 자신이 실언했음을 깨닫고 허둥대기 시작했다.금위병 두 명에게 양팔을 붙들린 채 끌려가면서도 필사적으로 해명하려 했다.“내관, 용서해 주십시오! 소신은 결코 폐하께 불경을 범하려던 것이 아닙니다. 이 일에는…… 분명 무슨 오해가…….”하지만 갑옷이 바닥에 끌리는 요란한 소리에 그의 목소리는 이내 묻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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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사방에서 끊임없이 터지는 웃음소리에 배진성은 머리끝이 쭈뼛 섰다.그가 노성을 질러 제지했으나, 문신도 장수도 누구 하나 그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 비웃음은 여전히 거리낌 없이 이어졌다.배진성은 홱 몸을 돌려 어계 위의 위덕전을 노려보았다. 눈에서 음험한 증오가 번뜩였다.‘이 빌어먹을 환관 놈. 감히 내 아들을 이토록 욕보이다니.’언젠가 권세를 손에 넣으면 반드시 무릎을 꿇려 제 신발을 핥게 하리라!*배윤호가 장군부로 실려 돌아왔을 때, 집 안은 이미 발칵 뒤집혀 있었다.하인들은 물을 나르고 천을 가져오느라 분주히 오갔다. 모셔 온 어의도 조수를 데리고 배윤호가 머무는 녹음재 서재로 들어가, 차분히 치료를 시작했다.고씨와 송채리는 서재 밖을 지키고 있었다. 고씨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염주를 굴리며 불경을 외웠고, 송채리는 어쩔 줄 몰라 고씨의 무릎 곁에 엎드린 채 눈물을 쏟았다.배윤호가 정장 스무 대를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곁방에서 달려온 송청아는, 그 광경에 그가 현장에서 맞아 죽은 줄 알았다. 가슴속으로 뜻밖의 기쁨이 밀려들었다.“서방님은 지금 어떠세요?”송청아가 다급히 묻자 송채리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흘겨보았다. 훌쩍이는 와중에도 말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언니도 드디어 오셨네요. 더 늦으셨으면 사람들이 형부보다 향이 더 소중한 줄 알겠어요.”고씨가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날 선 시선이 송청아에게 꽂혔다.“그래도 와 볼 생각은 들더냐? 조금만 더 늦었으면 아예 올 필요도 없었겠다.”송청아의 눈이 반짝였다.“어머님, 서방님 상태가 대체 어떻기에 그러세요!”설마 정말 위독한 걸까?송청아는 서재 문밖에 서 있는 시종 영안에게 시선을 던졌다.영안이 고개를 숙여 아뢰었다.“큰부인, 조금 전 손 태의께서 진찰하셨습니다. 다행히 큰도련님께서는 오랫동안 무예를 익히셔서 몸이 튼튼한 덕에, 이번에는 살갗만 다치셨다고 합니다. 연고를 바르고 열흘쯤 안정을 취하시면 완쾌하실 거랍니다. 지금은 손 태의께서 약을 발라 드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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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고씨가 다가가 송채리의 손을 잡았다. 안쓰러움과 애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역시 채리는 마음 씀씀이가 다르구나. 네가 윤호 곁을 지켜 준다면 나도 안심이 되겠어.”그러고는 송청아를 곁눈질하며 덧붙였다.“누구는 제 부군 걱정하는 것이 동생만도 못한데 말이야.”송청아는 배씨 집안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진작부터 마음에 두지 않았다. 고씨의 빈정거림에도 아무렇지 않았고, 오히려 조금 우습기까지 했다.“어머님도 저 아이가 제 동생이고, 서방님이 제 부군이라는 건 아시네요. 그런데 두 사람이 저러는 게 부적절하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고씨는 말문이 막혔다. 눈에 찔리는 기색이 스쳤으나, 이내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였다.“무엇이 부적절하다는 게냐? 네가 윤호를 돌보지 않으면서 남이 걱정해 주는 것까지 막겠다는 것이냐? 그러다 다른 이가 윤호를 더 잘 보살펴 네 자리까지 대신하고 나면, 그때 가서 어디에 울며 하소연할지 두고 보자!”고씨는 소매를 홱 뿌리치고 안순당의 하인 몇을 거느린 채 돌아섰다.송청아는 그 모욕적인 말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송채리를 붙들었던 손을 놓고, 마음대로 하라는 듯 말했다.“그래. 어차피 너도 달리 할 일은 없을 테니 여기서 기다리렴.”말을 마친 송청아 역시 녹음재의 하인들을 데리고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이번에는 송채리가 멍해질 차례였다.송청아는 배윤호를 그토록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가 다쳤는데도 어째서 저렇게 무관심할 수 있는가?설마 그날 곁방에서 했던 말이 사실이었을까?정말로 배윤호에게 마음이 식어 화리하고 싶은 것일까?송채리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가 녹음재 서재 바깥방에서 머리를 쥐어짜는 동안, 송청아는 벌써 장군부를 나와 운수향재에 도착해 있었다. 평소 향약 재료를 사러 자주 들르는 곳이었다.다만 오늘은 사러 온 것이 아니라, 팔러 온 참이었다.“주 사장, 이번 달 향약 배합법이에요. 지난달에 드린 배합법으로 만든 향은 어떠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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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송청아는 기대에 찬 마음으로 병을 받아 꼼꼼히 살폈다.손안의 유리병은 코담배병만 한 크기였다. 물방울을 거꾸로 세운 듯한 몸체 아래로 작은 받침이 달려 있었다. 매끄럽게 이어지는 곡선은 여인의 유려한 몸을 닮아 은근히 상상력을 자극했다.그 안에 담긴 연보랏빛 액체는 해가 기운 뒤 하늘 끝에 마지막으로 남은 노을 같았다. 곱고도 아련한 빛이었다.송청아는 뚜껑을 열고 병 입구의 구슬을 손목에 대어 한 번 굴렸다. 이어 손목을 코끝으로 가져가자, 맑고 그윽한 나무 향이 금세 스며들었다.처음에는 감송의 싱그러운 풀잎 향이 감돌았다. 이내 부드러운 소합향이 피어오르고, 끝에는 서늘한 용연향 한 줄기가 남아 향 전체에 선명한 여운을 더했다.신비롭고 고귀한 고양이 한 마리 같았다. 어느 순간에는 물처럼 다정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곁을 허락하지 않고 멀찍이 물러서는, 좀처럼 속을 헤아릴 수 없는 향이었다.송청아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과연 운수향재네요. 제가 바라던 향과 느낌이 그대로예요.”주 사장도 들뜬 기색으로 말했다.“예감이 좋습니다. 이 향을 내놓으면 귀한 손님들께서 앞다투어 찾으실 겁니다.”“그랬으면 좋겠네요. 향이 잘 팔려야 제 몫도 늘어날 테니까요.”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던 주 사장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제가 더 붙들고 있어서는 안 되겠군요. 그 귀빈께서 뒤뜰 정자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누구를 가리키는지 알아들은 송청아도 몸을 일으켰다.“고마워요, 주 사장. 바로 가 볼게요.”운수향재 뒤뜰로 들어선 송청아는 꽃과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늘어진 버들가지를 스치고 꽃 사이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자, 눈앞이 문득 환히 트였다.멀지 않은 물가의 팔각정에 붉은 옷을 입은 사내가 탁자를 곁에 두고 앉아 있었다.탁자 위에는 좋은 술 한 병과 정갈한 요리, 먹음직스러운 다과 몇 가지가 차려져 있었다.그는 한 손에 청자 야광잔을 들고 있었다. 붉고 모양 좋은 입술에 잔을 멈춘 채, 탁자에 놓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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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송청아도 남에게 ‘부인’이라 불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굳이 바로잡지 않고 그가 편한 대로 부르게 두었다.그녀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들어 살짝 올라간 입가를 가렸다. 희고 고운 손과 발그스름한 손끝에 은은한 고혹미가 감돌았다.“오신 지 얼마나 되셨느냐고 여쭈었어요. 제가 늦었으니 부디 용서해 주세요.”“얼마 되지 않았소.”신경찬은 마음을 가다듬고 맑게 웃었다.“보시오. 막 술을 따라 놓고 입에 대기도 전에 왔잖소. 자, 이쪽에 앉아서 이야기합시다.”그가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서자 송청아는 가볍게 답하고 고개를 숙인 채 그의 곁을 지나 정자 안으로 들어갔다.신경찬의 시선도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 희미한 연꽃 향이 다시 코끝에 감돌았다.저도 모르게 희고 가느다란 뒷목으로 눈길이 갔다. 그 아래로 옥처럼 고운 살결이 조금 드러나 있었다.별안간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신경찬은 얼른 눈을 감고 부적절한 생각을 떨쳐 냈으나, 몸은 제 뜻과 달리 팽팽하게 굳어 있었다.탁자 맞은편에 앉은 송청아는 깨끗이 빨아 싸 온 비단 도포를 그에게 건넸다.“전하, 도포는 돌아가서 제가 직접 세 번 빨았어요. 불수감 향도 입혀 두었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신경찬은 자리에 앉아 꾸러미를 받아 풀었다.도포는 반듯하게 개여져 있었다. 인두로 정성껏 다려 놓아 잔주름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이, 새 옷과 다를 바 없었다.가까이 대고 가볍게 향을 맡았다. 서늘하고도 맑은 향 끝에 은근한 단내가 감돌았다. 불수감 특유의 그 향이 더없이 알맞게 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내가 불수감을 좋아하는 줄은 어찌 알았소?”신경찬이 눈을 들어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송청아는 조금 짓궂은 눈길로 그를 보았다. 제가 향약을 다루는 사람이라는 걸 잊으셨느냐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지난번 창국공부에서 함께 보물을 찾으러 다닐 때, 전하의 옷에서 불수감 향이 났거든요.”그제야 신경찬도 깨달았다. 조향에 그토록 능한 여인이니, 후각 역시 보통 사람보다 훨씬 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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