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님이나 잘하세요의 모든 챕터: 챕터 41 - 챕터 50

100 챕터

제41화

오늘 제왕과 인연을 맺은 것이 복일지 화일지는 알 수 없었다.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장군부로 돌아가면 사나운 폭풍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신경찬은 긴 대로에 선 채, 멀어져 가는 마차에서 못내 눈을 떼지 못했다.그때 청인이 곁으로 다가와 목소리를 낮췄다.“전하, 알아냈습니다. 소용장군부의 장남은 배윤호라 합니다. 이번 달에야 몽국과의 전쟁을 마치고 도성으로 돌아왔는데, 군영에서 여인 하나를 데려왔다고 합니다. 그 여인이 바로 송씨 가문의 친딸이라 합니다. 또한 모레 폐하께서 여러 장수를 위해 베푸시는 전승 축하연에서, 배윤호가 정사품 효기장군에 봉해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배윤호…….”신경찬이 그 이름을 나직이 되뇌었다. 그의 눈빛이 차츰 차갑게 가라앉았다.“네가 소중한 줄 모른다면, 내가 대신 아껴 주면 될 일이지.”*송청아의 예상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이튿날 오전, 도성 밖 군영에서 돌아온 배윤호는 곧장 그녀의 침소로 들이닥쳤다. 광풍처럼 방 안으로 휘몰아친 그는 침상에 누운 송청아를 단숨에 잡아 일으켰다.“송청아! 이 부군도 몰라보는 천한 것! 네가 감히…… 감히 보는 눈이 그리 많은 곳에서 다른 사내와 어울려 다니는 것이냐? 나 배윤호가 죽기라도 한 줄 알았느냐!”어제까지만 해도 군영에 있던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도성에 돌아와서야 부인이 다른 사내와 놀아났다는 소문을 듣고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다.그는 자신이 송청아에게 부군으로서 할 도리는 다했다고 여겼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토록 염치없는 짓으로 사내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제 체면은 물론, 소용장군부의 체면까지 대체 무엇으로 알고 이러는가.아직 잠기운이 가시지 않은 송청아는 느닷없이 몸이 들려 올라가자 옷고름마저 반쯤 풀어졌다. 얇고 매끄러운 잠옷이 희고 윤기 도는 어깨에 느슨하게 걸쳐져, 그 아래 속살이 언뜻 드러났다.그러나 송청아는 배윤호의 눈에서 쏟아지는 분노를 보고 오히려 속 시원하다는 듯 웃었다.‘잘됐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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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아니나 다를까, 배윤호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정신을 가다듬은 그는 곧 미련 없이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숙여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허리띠를 여미면서도 목소리는 차갑기만 했다.“네 죄는 저녁에 따져 묻겠다. 지금은 어서 일어나 손님을 맞으러 가자.”말을 마친 배윤호는 그대로 몸을 돌려 곁방을 나갔다.송청아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몸은 여전히 제 뜻과 상관없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조금 전 배윤호는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 영안이 불쑥 찾아와 소식을 전하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그에게…….앞으로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말아야 했다. 자칫하다가는 소용장군부를 무사히 떠나는 것조차 어려워질 터였다.송청아는 몸을 일으켜 봉 어멈과 화미를 불렀다. 두 사람의 시중을 받아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단장을 마치고 녹음재 뜰로 나섰다. 마침 배윤호가 송세안과 송채리를 데리고 들어오는 참이었다.그 뒤로는 오 어멈과 시녀 몇이 나무 상자를 들거나 보따리를 짊어진 채 따라오고 있었다. 가져온 살림살이가 제법 많은 것이, 아무래도 이곳에 눌러앉을 모양이었다.송청아는 걸음을 멈췄다. 손수건을 쥔 채 일행을 바라보는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떠올랐다.“이게 다 뭐예요?”송세안은 송청아를 보자마자 큰오라비 행세를 하며 꾸짖었다.“큰오라비와 동생을 보고도 인사조차 하지 않느냐? 갈수록 예의가 없어지는구나!”송청아는 이미 그를 오라버니로 여기지 않은 지 오래였다. 그래서 조금도 개의치 않고 되물었다.“채리도 제게 인사하지 않았잖아요. 그럼 저보다 더 예의가 없는 셈이네요?”장군부의 환영 연회가 있던 날, 송씨 집안으로 도망치듯 돌아간 송채리는 그 뒤로 한 번도 바깥나들이를 하지 않았다.평생 당할 망신을 그날 하루에 다 당했다. 그 모든 일의 원흉이 바로 송청아였다.오늘도 얼굴을 보자마자 이가 갈렸다. 하지만 이제 막 장군부에 발을 들인 마당에 벌써부터 송청아와 척을 질 수는 없었다. 송채리는 치미는 울분을 억지로 삼키고 허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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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하지만 배윤호와 송세안이 곁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송채리도 끝까지 장단을 맞춰야 했다.“장군부에는 처음이라 모르는 게 많아요. 앞으로 언니와 형부께서 너그러이 봐주세요.”송채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온순하고 사려 깊은 모습을 보였다. 배윤호와 송세안은 어김없이 그런 모습에 마음이 누그러졌다.이윽고 송채리가 머물 처소를 정하려는데, 배윤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송청아가 선뜻 나섰다.“채리는 남쪽 난각에서 지내면 되겠네요. 제가 향을 만드는 곁방에서도 가깝고, 서방님 서재와도 가까우니까요.”다들 송채리를 이 집안의 큰며느리로 들이고 싶은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녀도 기꺼이 뜻을 맞춰 두 사람이 가까워질 기회를 만들어 줄 참이었다.배윤호는 자신이 하려던 말을 송청아가 먼저 꺼내자 적잖이 놀랐다.줄곧 송채리를 질투하던 여자가 아니던가. 그런데 이제는 제 처소에서 가장 가까운 방을 내주겠다고 먼저 나서다니. 또다시 일부러 물러서는 척하며 제 마음을 떠보려는 수작인가?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배윤호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송청아가 무슨 수를 쓰든 송채리는 반드시 장군부에 들어올 터였다. 송청아 역시 송채리와 한 지붕 아래 살며 한 사내를 부군으로 섬기는 일에 차츰 익숙해져야 했다.“그래. 남쪽 난각은 이미 치워 두었다. 그럼 그리로 가지.”배윤호는 그렇게 말하고 일행을 난각으로 이끌었다.송씨 집안에서 데려온 시녀와 어멈들이 짐을 풀고 방을 정돈하는 사이, 송청아는 문득 송세안이 가져온 과자 상자 몇 개를 발견했다. 어릴 적 함께 즐겨 먹던 과자였다.순간 송청아의 눈길이 그 위에 멎었다.잊고 있던 어린 날의 기억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그때의 큰오라버니는 늘 그랬다. 어디를 다녀오든 그녀가 좋아하는 주전부리를 잊지 않고 사 왔다.둘은 나란히 앉아 웃고 떠들며 과자를 나누어 먹곤 했다. 송청아가 입가에 부스러기를 묻히면 송세안은 제 소맷자락으로 살살 닦아 주었다.그러고는 웃으며 ‘얼룩 고양이가 다 되었구나’ 하고 놀리곤 했는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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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아, 어제 창국공부의 생신 연회에서 정원을 돌며 보물찾기에 참여했다가 받은 거예요. 창국공께서 오래전 몽국과 전쟁을 치르실 때 친필로 남기신 작전 수고라더군요. 몽국의 내정과 대외 정세, 주변 지형은 물론이고 직접 군사를 다스리고 전투를 치르며 쌓으신 경험까지 담겨 있다니, 꽤 귀한 물건이지요.”그 말에 배윤호의 눈이 단번에 빛났다. 늘 깊고 차갑게 가라앉아 있던 눈빛과는 사뭇 달랐다.“정말 네가 그 수고를 얻었단 말이냐?”지난 두 해 동안 배윤호는 변방에서 몽국 군대와 싸웠다. 비록 크게 승리하기는 했으나, 당시에는 직급이 낮아 중요한 전투 여럿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다.그 수고를 손에 넣어 창국공이 몽국을 상대로 쌓은 실전 경험을 익힐 수만 있다면, 효기장군에 오른 뒤 다시 몽국과 맞붙었을 때 반드시 큰 공을 세울 수 있으리라.배윤호가 이토록 흥미를 보이자 송청아는 다시 한번 미끼를 던졌다.“그 수고는 벌써 서방님께 드렸잖아요. 이제 와서 거짓말을 할 리가 있겠어요?”송청아는 그에게 남몰래 눈을 찡긋한 뒤, 재빨리 송세안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무언가 눈치를 주는 듯한 모습이었다.배윤호는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모든 것을 깨달았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어제 송청아가 보물찾기에 참여한 것은 모두 자신에게 그 수고를 구해 주기 위해서였구나!조금 전 자신이 또 송청아를 오해한 모양이었다.그녀는 남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제왕과 함께 정원을 돌며 자신을 위해 수고를 얻어 왔다. 게다가 지금은 제 큰오라비가 달라고 하는데도 내주지 않고, 오직 자신을 위해 남겨 두려 하고 있었다.이토록 어진 부인을 두고 그리 모질게 꾸짖었다니.심지어 그런 수모를 겪고도 그를 원망하기는커녕, 끝까지 수고를 지켜 주려 하지 않는가.정녕 자신을 뼛속 깊이 사랑하는 여인이었다!송청아로서는 배윤호의 생각이 그토록 엉뚱한 방향으로 뻗어 나갔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그녀는 그저 두 사내의 관심을 수고에 묶어 둘 생각이었다. 당나귀 코앞에 당근을 매달아 놓듯이.이 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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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송청아는 곁에 앉아 원숭이 재주라도 구경하듯 두 사내를 지켜보았다. 둘 다 실물은 구경조차 못 하고 그저 그녀의 말로만 들은 수고 한 권을 두고, 얼굴까지 붉히며 다투고 있었다.사람의 속내가 드러나는 꼴이 참으로 볼만했다.그러다 송세안이 제게 불똥을 튀기려 하자, 송청아는 얼른 선을 그었다.“서방님께서 달라고 하셔서 드린 거예요. 이제는 저도 어찌할 수 없어요. 큰오라버니께서 정 원하시면 서방님께 부탁해 보세요.”송세안은 준수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으나 달리 도리가 없었다. 한동안 속만 끓이던 그는 결국 굴욕감을 억누르고 배윤호에게 저자세로 청했다.“그 수고를 며칠만 빌려줄 수 없겠소? 베껴 쓰고 곧바로 돌려주겠소.”그러나 배윤호는 여전히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한층 더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 상대를 제 아래에 두는 우월감을 즐기는 듯했다.“그건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제가 충분히 살펴보고 더는 필요가 없어지면 형님께 보내 드리지요.”송세안이 다시 입을 열려는데, 곁에 있던 송채리가 먼저 끼어들었다.“큰오라버니,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형부께서 다 보시면 꼭 보내 주실 거예요. 그렇지요, 형부?”배윤호는 송채리에게만큼은 늘 애틋했다. 말을 건넬 때조차 다른 사람을 대할 때보다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서운해하거나 실망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그는 송채리를 바라보며 나직이 대답했다.“그래.”그제야 송세안의 화도 차츰 누그러졌다. 그는 흐뭇하고도 애정 어린 눈으로 송채리를 바라본 뒤, 송청아 쪽으로 고개를 돌려 비꼬았다.“역시 이 오라비를 생각해 주는 건 채리뿐이구나. 내 편을 들어 줄 줄도 알고. 누구는 여동생이라는 것이 마음속에서 진작 큰오라비를 지운 모양인데.”송청아는 못 들은 척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그와 감정을 다툴 생각은 없었다. 송세안은 이제 그녀가 털끝만큼의 감정조차 쏟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으니까.송세안이 떠난 뒤, 송채리는 당연하다는 듯 녹음재에 자리를 잡았다.송채리는 온종일 배윤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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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송청아는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그의 손에서 책을 도로 빼내며 느긋하게 말했다.“수고를 얻은 건 맞아요. 다만 제왕 전하와 함께 찾은 것이니, 우선 전하께서 왕부로 가져가셨지요. 돌아가서 사람을 시켜 한 부 베낀 뒤 그 필사본을 제게 주시겠다고 하셨어요. 받으면 서방님께 드릴게요.”사실 수고는 지금 그녀의 개인 창고에 고이 잠겨 있었다. 하지만 이 미끼를 그리 쉽게 내줄 생각은 없었다.게다가 송청아에게는 집 밖으로 나가 제왕을 만날 구실도 필요했다. 깨끗이 세탁한 비단 도포를 돌려주어야 했으니까.배윤호는 그 설명이 못마땅했다.“그럼 오전에는 어째서 그리 말했느냐? 나는 수고가 여기 있는 줄 알았다.”“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큰오라버니께서 가져가시게 두나요? 서방님께서도 그리되면 곤란하니 제 말에 맞장구치신 것 아니에요?”고작 필사본 한 부로는 배윤호의 욕심을 채울 수 없었다.처음부터 필사본을 주겠다고 했다면 별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창국공이 직접 쓴 수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가 탐내는 것은 당연히 그 친필본이었다. 이제 와 베낀 것을 주겠다니 성에 찰 리 없었다.뱀이 코끼리까지 삼키려 든다더니, 사람의 욕심이 꼭 그 꼴이었다.“제왕 전하께 청해서 친필본을 달라고 할 수는 없겠느냐? 그분은 날마다 먹고 마시며 노닐 뿐, 군사를 이끌고 싸우지도 않으시니 그런 수고가 있어 봤자 쓸모없지 않으냐.”그제야 송청아가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놀랍다는 기색이 떠올랐다.“저더러 제왕 전하께 부탁하라고요? 그게 어찌 예법에 맞겠어요? 또 제가 외간 사내와 정을 통한다는 소문이라도 돌면 어쩌시려고요? 서방님께서 직접 가시면 되잖아요.”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그가 완전히 미끼를 문 것이다.배윤호는 또다시 사내의 체면을 앞세웠다.“내가 어엿한 사내대장부인데, 고작 수고 한 권을 얻자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서야 되겠느냐? 너는 제왕과 다관이나 주루처럼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에서 만나거라. 남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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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그러나 배윤호는 송청아가 속으로는 분명 서운해하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다만 애써 내색하지 않을 뿐이었다.어쩌면 짐짓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 죄책감을 자극하고, 끝내 자신을 붙잡아 둘 속셈인지도 몰랐다.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쯤은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런 잔꾀에 넘어가 줄 마음은 없었다.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송청아의 너그럽고 평온한 태도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고 짜증이 일었다.배윤호는 그 불편한 감정에서 얼른 벗어나려는 듯 몸을 일으켰다. 그녀에게 건네는 목소리는 다시 차가워져 있었다.“채리는 앞으로 장군부에서 오래 지낼 것이다. 주인인 우리 두 사람이 조금도 소홀히 대해서는 안 돼. 특히 너는 언니이니 더 양보해야 한다. 오늘 밤에는 내가 가서 곁을 지킬 테니, 그 일로 채리를 원망하지 말거라. 다시는 안채에서나 부리는 음험한 수작을 써서도 안 된다. 앞으로 채리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모두 네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말을 마친 배윤호는 돌아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나가 버렸다.송청아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픽 웃었다.‘아무것도 안 했는데 또 나만 악인이 되었네.’뭐, 아무렴 어떠랴. 그가 나갔으면 그만이었다.이내 졸음이 밀려왔다. 송청아는 다시 자리에 누워 이불을 덮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빠져들었다.반면 남쪽 난각의 등불은 밤새 꺼질 줄 몰랐다.이튿날 아침, 송청아가 일어나자 봉 어멈이 곁에서 간밤의 일을 늘어놓았다.난각에 계신 그분이 큰도련님을 밤새 들볶았다는 것이었다. 의원을 불러 달라더니, 잠시 뒤에는 송씨 집안으로 사람을 보내 약을 가져오라 하고 약을 바르고 나서도 잠잠해지기는커녕, 큰도련님의 손을 잡아야 잠들 수 있다며 고집을 부렸다고 했다.결국 배윤호는 밤새 침상 곁을 지키다가 동이 틀 무렵에야 비스듬히 기대어 잠깐 눈을 붙였다. 그리고 지금은 송채리가 깨어나자마자 부엌에 일러 그녀가 먹을 음식을 따로 준비하게 하는 중이란다.송청아는 별다른 표정 없이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송채리에게 발진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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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배진성은 몇 마디를 더 당부했다. 창국공의 수고는 반드시 손에 넣고, 송청아가 다시는 그처럼 분수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감시하라는 것이었다.그 이야기를 마친 뒤, 배진성은 다른 일을 물었다.“송 소저는 벌써 우리 집에 와 있다지? 간밤에는 발진이 다시 도졌다던데?”“예, 아버지. 다행히 이번에는 증세가 심하지 않았습니다. 어젯밤 송씨 집안에서 특별히 만든 연고를 발라 주었더니 오늘은 가라앉았습니다.”“그렇다면 다행이구나.”배진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윤호야, 송 소저에게 잘해 주거라. 네가 효기장군 자리에 오르는 데에는 송씨 집안의 도움도 적지 않았다. 앞으로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은 되도록 다 들어주어라. 이미 우리 집에 들어왔으니 남녀 간의 예법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거리낄 것 없이 마음껏 하거라.”배윤호는 흠칫했다. 아버지가 남녀 간의 예법까지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실 줄은 몰랐다.그에게 송채리는 어디까지나 여동생 같은 존재였다.그녀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안쓰럽고 마음이 아픈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남녀 사이의 연정과는 다르다는 것쯤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다만 아버지 앞에서 감히 반박할 수는 없었다. 배윤호는 고개를 숙여 알겠노라 답했다.마지막으로 배진성이 한마디를 더 보탰다.“내일 아침 조회에서 폐하께서 우리의 전공을 헤아려 상을 내리실 것이다. 내일이 지나면 너도 폐하께서 친히 봉하신 효기장군이 되는 게야. 조정에서는 반드시 말과 행동을 삼가거라. 조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명심하겠습니다.”*미시가 가까워질 무렵, 송청아는 곁방에서 향을 만들고 있었다.그때 배윤호가 송채리를 데리고 찾아왔다.송채리는 꽃과 나비 문양이 수놓인 분홍빛 도는 주홍색 새 치마를 입고 있었다. 머리에는 가는 금실을 엮어 옥을 박은 순금 보요를 꽂고, 귀에는 비취로 만든 은행잎 모양 귀걸이를 달았다. 귀밑머리에는 가지에서 갓 따 온 연분홍 복사꽃 두 송이까지 꽂혀 있었다.꽃과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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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송채리가 말한 향성 백씨 노인은 삼국에서 가장 명성이 높으면서도 베일에 싸인 조향의 대가, 백묵이었다.백씨 노인은 평생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았다. 오직 사방을 떠돌며 신비로운 곳을 찾아다니고 새로운 향을 구하는 일만을 즐겼기에, 행적이 일정치 않아 그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전해지는 말로는, 그는 태후의 마흔 번째 생신에 초청을 받아 축하의 향을 만든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사용한 것이 바로 백조조봉 향전틀이었다. 완성된 향이 더없이 화려하고 기품 있어 태후도 크게 흡족해하셨다고 했다.그러나 그 뒤로는 누구도 백씨 노인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훗날 제자를 둘 거두었다는 소문만 들려왔을 뿐, 그 둘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그런데 그 백조조봉 향전틀이 송청아에게 있다니.설마 그녀가 백씨 노인의 제자란 말인가?송청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자 안의 향전틀을 바라보는 눈빛이 한순간 부드러워졌다. 짙은 그리움이 눈가에 어리며 묻어 두었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올랐다.“맞아. 사부님께서 태후의 마흔 번째 생신을 축하하는 향을 만드실 때 쓰셨던 향전틀이다. 혼례 전에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혼인 선물로 주셨지. 그 뒤로는 어디 계신지 알 수가 없다. 소식을 듣지 못한 지도 벌써 두 해가 되었고.”십 년 전, 송청아가 일곱여덟 살이었을 무렵이었다. 운 좋게 백씨 노인의 눈에 들어 제자가 된 그녀는 도성 외곽 여산에서 조향과 제향, 약리를 배웠다. 그렇게 사부를 따르며 보낸 세월이 꼬박 여섯 해였다.백씨 노인은 그녀를 거둔 뒤 제자를 한 명 더 들였다.지난 생의 송청아는 죽는 순간까지도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죽어서 혼령이 된 뒤에야 송씨 집안이 그를 고용하는 모습을 보았다.과연 백씨 노인의 제자다운 인물이었다. 그는 놀라운 조향 재능과 실력으로 송씨 집안의 향과 향약을 삼국에 널리 알렸고, 마침내 천하제일이라는 명성을 안겨 주었다.하지만 이번 생에는 송청아가 먼저 움직일 생각이었다.송씨 집안보다 한발 앞서 그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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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그러나 배윤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채리는 네 동생이지 남이 아니지 않으냐. 동생에게 주어 봤자 너희 자매 손안에 있는 건 마찬가지다. 게다가 채리가 도성에 돌아온 지도 꽤 되었는데, 너는 아직 변변한 선물 하나 주지 않았어. 모처럼 먼저 갖고 싶다는데, 그쯤 내주면 어떻단 말이냐?”송청아의 차갑고 무심한 얼굴을 바라보던 송채리의 눈에 순간 독기가 스쳤다.그러나 다음 순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바꾸었다. 송채리는 배윤호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형부, 언니가 싫다시면 그만두세요. 저 때문에 두 분 사이가 틀어지는 건 싫어요.”배윤호가 무어라 더 말하려는데, 송채리가 그의 곁을 빠져나와 송청아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마치 구박이라도 받은 새색시처럼 잔뜩 주눅 든 얼굴로 그녀의 손을 붙들었다. 비위를 맞추려 애쓰는 그 모습만 보면, 송청아가 그녀를 몹시 괴롭히기라도 한 것 같았다.“제가 아까 철없이 굴었어요. 형부도 그저 제가 안쓰러워 그러신 거예요. 저희에게 화내지 마세요. 향전틀은 언니가 잘 간직하세요. 대신 저 도구들이 어디에 쓰는 건지 더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그 모습을 본 배윤호가 송청아를 향해 코웃음을 쳤다.“언니라는 사람이 어찌 그리 속이 좁으냐. 채리를 좀 보아라. 너도 저 아이에게 너그럽고 사려 깊게 구는 법을 배우거라.”송청아는 속으로 냉소했다.엄연히 제 물건이었다. 송채리가 억지로 달라고 하는 것을 내주지 않으면, 그게 속이 좁은 것인가?제 모든 것을 송채리에게 양보해야만 너그러운 사람이 된단 말인가?지난 생에도 송채리는 이 향전틀을 달라고 했었다.그때의 송청아는 아직 송채리의 진면목을 몰랐다. 낯이 얇아 차마 거절하지 못한 데다, 배윤호에게 인색하다는 말까지 들을까 두려웠다. 결국 제 마음을 꾹 누르고 향전틀을 내주었다.하지만 송채리는 조금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가져간 지 며칠 만에 부주의로 깨뜨리고 말았다.송청아는 산산이 부서진 향전틀을 품에 안고 밤새 울었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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