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장군님이나 잘하세요: Kapitel 71 – Kapitel 80

100 Kapitel

제71화

배유란은 짓누르듯 쏟아지는 눈길에 온몸을 떨었다.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아니…… 저는…… 저는 그런…….”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배진성의 거친 손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었다.짝!매서운 뺨따귀에 배유란은 의자와 함께 바닥으로 나뒹굴었다.곁에 있던 고씨도 더는 태연한 척할 수 없었다. 놀라 비명을 지르며 뒤로 몸을 젖혔다가 하마터면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잠깐 사이 배유란의 뺨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본래도 둥글던 얼굴이 한층 부풀어, 흡사 돼지머리를 보는 듯했다.송청아는 곁에서 남몰래 웃음을 참았다. 뜻하지 않게 배진성이 자신이 맞은 뺨 한 대의 원수를 갚아 준 셈이었다.이윽고 배유란은 아픔을 참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아버지! 저는 장군부 안의 일을 밖에 단 한마디도 옮긴 적이 없어요! 전부 저 설씨가 멋대로 물고 늘어지는 거예요. 그 주인에 그 하인이라더니, 하인들은 안주인을 모함하고 주인은 출가한 딸인 저까지 모함하잖아요!”뒤에 서 있던 진씨가 끝내 분을 참지 못하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큰아가씨도 출가하신 줄은 아시는군요. 그런데 왜 달마다 장군부를 드나드세요? 여기가 큰아가씨 개인 금고라도 되는 줄 아세요?”“뭐라고!”배유란은 달마다 친정에 돈을 얻으러 온다는 말을 무엇보다 싫어했다. 그런데 진씨가 배진성 앞에서 그 사실을 들춰내다니. 체면을 벗겨 바닥에 짓밟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배진성은 오랜 세월 전장을 떠돌아 집안 사정에는 밝지 못했다. 배유란이 수시로 고씨를 찾아온다는 것만 알고, 그저 효성스러운 딸이라 여겼을 뿐이었다.그러나 진씨의 말을 듣고 보니 사정이 전혀 다른 모양이었다. 배진성이 곧장 배유란을 돌아보았다.“네가 번번이 집에 오는 게 무슨 까닭이냐? 장군부에서 돈을 얻어 가려고 오는 게야?”그 눈길을 받자 배유란은 얻어맞은 뺨이 더 욱신거리는 것만 같았다.“아니에요…… 아버지, 오해하지 마세요. 당연히 아버지와 어머니를 뵈러 오는 거지요. 다만 어머니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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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아주버님께서 송 소저를 데리고 도성으로 돌아오시는 동안, 군사들 중 아무도 그분을 보지 못했겠어요? 어쩌면 군중에서는 진작 소문이 파다했을지도 모르잖아요. 도성에 돌아온 뒤 그 소문이 퍼진 거라면, 상소가 어디서 올라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지요. 이 일을 오롯이 제 시어머님 탓으로 돌리셔서는 안 돼요.”말이 끝나자 안채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진씨가 한 말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모르겠는가.그런데도 배진성이 소문을 퍼뜨린 자를 찾겠다며 이토록 요란을 떠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자신과 배윤호의 잘못을 남에게 떠넘겨 대신 죗값을 치르게 하려는 것이었다.그렇게 하면 자신들은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잘못을 인정할 필요도 없었다.그런데 진씨가 그 속내를 가려 주던 마지막 허울마저 벗겨 버렸다. 배진성과 배윤호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낱낱이 들춰냈으니, 손가락으로 코앞을 겨누며 당신들 잘못이라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진씨도 말을 마치자마자 후회했다.방 안의 공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황급히 해명하려 했으나, 배진성의 억센 손바닥이 먼저 날아들었다. 진씨는 팽이처럼 한 바퀴 휘돌더니 곁에 있던 의자에 세차게 부딪친 뒤 바닥에 고꾸라졌다. 몸을 웅크린 그녀의 입에서 통곡이 터져 나왔다.“네가 감히…… 이 어른을 가르치려 들어? 살 만큼 살았느냐! 여봐라, 가법을 시행할 매를 가져오너라! 오늘 내 기필코 저 버릇없는 년의 죄를 다스리겠다!”방 안의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떨었다. 이 부관조차 오늘의 배진성이 두려웠다.하지만 오랫동안 그의 곁을 지킨 이들은 알고 있었다. 오늘 조정에서 부자가 겪은 치욕을 풀 길이 없으니, 집안의 여인들과 하인들에게 화풀이하는 것뿐이었다.그렇다고 이대로 날뛰게 두었다가는 진씨가 오늘 목숨을 건질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려웠다.결국 이 부관이 거듭 만류한 끝에 배진성은 매를 들이지 않았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얼굴이 솥 밑바닥처럼 시커멓게 죽은 채, 허리에 손을 얹고 거친 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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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배진성이 한바탕 불호령을 내린 뒤, 소용장군부에는 닷새 내내 무거운 적막이 감돌았다.처소 사이를 오가는 발길도 뜸해졌다. 하인들 역시 마주쳐도 말을 아꼈다. 자칫 배진성의 심기를 거슬렀다가 더 무거운 벌을 받을까 두려운 탓이었다.송청아는 오히려 그 고요함이 반가웠다. 날마다 곁방에서 향을 배합하거나 제 방에서 책을 읽으며 지냈다.다만 한 가지 성가신 일이 있었다. 배윤호가 매일 한 번씩 서재로 불러 속을 긁는 말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보란 듯이 송채리와 다정하게 굴며 송청아의 심기를 건드리려 했다.그러나 송청아는 진작 그 한 쌍의 더러운 남녀를 마음에서 지운 뒤였다. 둘이 눈앞에서 아무리 애정을 과시해도 아무렇지 않았다.그렇게 집 안에서 닷새를 보내는 동안, 얼굴과 이마의 상처도 신경찬이 보내 준 연고를 바른 덕에 말끔히 아물었다.슬슬 바깥바람을 쐬고 싶어진 송청아는 봄에만 구할 수 있는 향료 몇 가지를 찾아 여산으로 향했다.송채리도 이날은 부모를 모시겠다며 송부로 돌아간 터라, 배윤호만 혼자 서재에 남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닷새 동안 몸조리를 한 덕분에 이제는 침상에서 일어나 걸을 수 있었다. 다만 아직은 서재 안을 오가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조금만 오래 걸어도 엉덩이의 상처가 욱신거렸다.그래서 배윤호는 잠깐 걷다가 다시 평상에 엎드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손에서는 창국공의 수고를 놓지 않았다.신경찬이 수고의 하권을 내주는 대가로 일만 냥을 요구했다는 사실은 이미 배진성에게 전해 두었다.배진성 역시 일만 냥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며칠간 밀린 군무만 마무리하면 고씨에게 말해, 집안 살림에서 일만 냥을 내오게 할 생각이었다.오후가 되어 서재 안을 몇 차례 오가던 배윤호는 문득 허기를 느꼈다.그러자 지난 두 해 동안 군영에서 먹던 토란소 달걀노른자 과자가 떠올랐다. 다쳤을 때면 집에서 보내온 그 과자를 몇 개씩 먹곤 했다.그것을 먹고 나면 어쩐지 상처의 통증도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오늘따라 그 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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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배윤호가 차갑게 물었다.“네가 이 토란소 달걀노른자 과자를 만들었느냐? 오늘은 어째서 예전과 맛이 다르지?”숙수는 고개를 숙인 채 더듬더듬 대답했다.“크, 큰도련님, 소인이 만든 것이 맞습니다. 장군부 부엌에서 삼 년째 과자를 만들고 있지만 늘 같은 배합을 써 왔습니다.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지요?”숙수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자 배윤호는 버럭 화를 냈다.“아직도 변명을 하느냐! 군영에 있을 때 집에서 보내온 과자와는 맛이 전혀 다르지 않으냐. 아무래도 넌 더는 우리 장군부에서 일할 필요가 없겠구나.”숙수의 얼굴이 삽시간에 하얗게 질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무릎을 꿇었으나, 배윤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생계를 잃을까 두려워 황급히 해명했다.“크, 큰도련님, 용서해 주십시오! 군영에서 집에서 보낸 달걀노른자 과자를 드셨다고요? 하지만 소인은 그동안 큰도련님께 과자를 보내라는 분부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이번에는 배윤호가 어리둥절해졌다.“뭐라고? 집에서 보낸 적이 없다고?”숙수는 벌벌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는지 서둘러 말을 보탰다.“보내신 분은 계십니다! 다만 부엌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큰부인께서 직접 만드신 것이었습니다!”배윤호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숙수의 말이 머리를 세차게 후려치는 듯했다.지난 두 해 동안 군영에서 맛있게 먹었던 과자를 송청아가 만들었다니. 전혀 몰랐던 일이었다.그는 그저 소포가 장군부에서 왔다는 것만 알았다. 겉에는 이름도 글귀도 없었고, 송청아의 편지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줄곧 고씨가 부엌에 일러 보내 준 것이라 여겼다.이제야 진상을 알게 된 배윤호는 한동안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이 여인은 입으로는 화리하겠다고 하면서, 실은 뼛속까지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구나.송채리와 달리 송청아의 사랑은 속 깊고 수줍었다. 자신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 곳에서, 줄곧 말없이 마음을 쏟아 왔던 것이다.그토록 소리 없는 사랑이라니, 더욱 마음을 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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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송청아가 눈을 내리깔고 담담히 대답했다.“오늘 향료를 구하러 산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발목을 접질렸어요. 집안 의원에게 보였더니 며칠은 걷지 말라고 해서 수레를 타고 왔고요.”배윤호는 상처가 어떤지 묻기는커녕, 반사적으로 꾸짖었다.“어쩌다 그리 부주의했느냐. 그리고 아녀자가 무슨 일로 자꾸 깊은 산속을 헤집고 다녀? 그깟 향이 그리도 중요하더냐?”송청아는 그가 자신을 탓하리라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덕분에 미리 준비해 둔 말을 꺼내기도 수월했다.“향료만 구하러 간 건 아니에요. 서방님 상처가 빨리 아물도록 약초도 몇 가지 캐 왔어요.”그 말을 듣자 배윤호의 마음이 또 한 번 크게 흔들렸다.쏟아지는 비까지 무릅쓰고 산에 오른 것이 자신에게 쓸 약초를 캐기 위해서였다니!누군가가 이토록 자신을 마음에 두고 염려해 준다는 사실이 따뜻하고도 흡족했다. 배윤호는 깊이 감동했다.“그랬구나. 나를 위해 애썼다.”평소 차갑게 굳어 있던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송청아를 바라보는 그의 목소리에도 부드러움이 깃들었다.“참, 전에 네가 직접 토란소 달걀노른자 과자를 만들어 군영으로 보냈다지? 왜 내게 말하지 않았느냐. 오늘에야 네가 만든 줄 알았다.”토란소 달걀노른자 과자?송청아는 잠시 생각한 뒤에야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떠올렸다.지난 생에서 배윤호가 출정해 있던 두 해 동안, 송청아는 그에게 옷가지며 과자, 상처에 바르는 연고 등을 곧잘 보내곤 했다.배윤호는 집으로 보낸 편지에 토란소 달걀노른자 과자가 맛있다는 말 한마디만 남겼다.그 시절 송청아는 그 한마디를 가슴에 새겼다. 수시로 과자를 만들어 군영으로 보냈고, 소포를 꾸릴 때마다 그리운 마음을 담아 붉은 팥알 몇 개도 함께 넣었다.그렇게 하면 배윤호도 제 마음을 알아주리라 순진하게 믿었다.그러나 배윤호는 그 뜻을 헤아릴 줄 몰랐다. 소포를 받을 때마다 팥알을 쓰레기처럼 툭툭 털어 바닥에 버렸고, 발로 몇 번 밟아 흙 속에 묻어 버리기까지 했다.심지어 그 과자를 송청아가 만들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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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발을 다쳐 거동이 불편하니, 과자는 만들기 어렵겠어요.”그러자 배윤호가 되물었다.“다친 건 발이지 손이 아니지 않으냐. 그런데 왜 못 만든다는 것이냐? 네가 직접 만든 과자가 먹고 싶어 일부러 불렀다. 그걸 먹으면 몸도 좀 편해질 텐데, 넌 부군이 덜 아프기를 바라지도 않느냐?”배윤호는 이만하면 송청아의 체면을 충분히 세워 주었다고 생각했다.다른 사람이 만든 것은 마다하고 그녀가 만든 과자를 먹겠다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은혜가 아닌가. 마땅히 영광으로 여기고 감사한 마음으로 당장 부엌에 가야 했다.송청아는 할 말을 잃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깊은 무력감마저 밀려왔다.세상은 넓고 별별 인간이 다 있다더니. 같은 사람이라고 다 말이 통하는 건 아니었다.오늘에야 제대로 알았다. 종자가 다르면 말도 통하지 않는 법이었다.“죄송하지만 지금은 못 하겠어요. 발이 나으면 그때 다시 말씀하시지요.”송청아는 싸늘하게 말을 끝내고는 더는 상종하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두 손으로 바퀴를 밀어 몸을 돌린 그녀는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엉덩이를 다친 배윤호는 쫓아가지도 못하고 뒤에서 분을 터뜨렸다.“송청아! 네가 그러고도 부인 된 도리를 한다고 할 수 있느냐? 부군이 체면을 세워 주며 네 과자를 먹겠다는데 그것도 못 해? 내가 널 대체 왜 부인으로 맞았는지 모르겠구나!”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좋다. 네가 안 만들면 채리에게 만들어 달라고 하마! 똑똑히 들어라. 앞으로 네가 아무리 많이 만들어 와도 난 한입도 먹지 않을 테다!”송청아는 대꾸하지 않고 바퀴를 굴리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저런 종자와 조금만 더 함께 있다가는 화병으로 죽을 것 같았다.방으로 돌아와 사정을 들은 봉 어멈도 분을 참지 못해 숨을 씩씩 몰아쉬었다.“큰부인께서 이리 다치셨는데도 과자를 만들라 하시다니요. 어쩌면 그리도 사람을 아끼실 줄 모르실까요?”화미가 저녁상을 들여왔다. 송청아는 식사를 하며 담담하게 말했다.“됐다. 우리 큰도련님께서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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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따스한 봄기운이 무르익은 삼월이었다. 꽃들은 비단을 펼쳐 놓은 듯 흐드러졌고, 나뭇가지마다 까치와 꾀꼬리가 고운 소리로 지저귀었다. 도성 곳곳에 봄기운이 가득했다.푸른 덮개에 붉은 술을 드리운 마차 한 대가 도성 남쪽 교외로 향하는 길을 달리고 있었다.마차 안에는 송청아와 배윤호가 양쪽으로 나뉘어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얌전히 눈을 내리깔았고, 다른 한 사람은 고개를 돌려 창밖만 바라보았다. 눈길 한 번 마주치지 않았고, 말 한마디 오가지 않았다.바퀴 구르는 소리만 스미는 마차 안에는 숨이 막힐 듯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송청아가 과자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거절한 날부터, 배윤호는 그녀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대신 날마다 송채리와 살갑게 지냈다.송청아는 그것이 배윤호가 즐겨 쓰는 수법임을 알고 있었다. 일부러 냉대하며 자신이 먼저 굽히고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하지만 지금의 송청아는 지난 생의 그녀가 아니었다. 배윤호가 말을 걸지 않으니 오히려 조용해서 좋았다.그녀 역시 며칠 내내 제 방에 틀어박혀 지내거나 곁방에서 향을 배합했다. 그렇게 칠팔 일을 쉬자 발목도 나았고, 배윤호의 상처도 말끔히 아물었다.집 안에만 오래 머문 탓에 두 사람 모두 슬슬 바깥 구경이 하고 싶던 참이었다.마침 도성 남쪽 교외의 청룡사에서 해마다 열리는 봄 향회가 막을 올렸다. 송씨 집안에서도 장군부로 초대장을 보내 배진성과 고씨, 배윤호와 송청아를 향을 감상하고 불공을 드리는 자리에 초청했다.덕분에 네 사람은 하인 몇을 거느리고 마차 두 대에 나누어 타 청룡사로 향하고 있었다.아침에는 봉 어멈이 무얼 잘못 먹었는지 심하게 토하고 설사를 했다. 송청아는 집에 남아 푹 쉬라고 이른 뒤, 화미만 데리고 나왔다.반 시진쯤 지나 장군부의 마차가 청룡사 부근의 공터에 멈춰 섰다.화미의 부축을 받아 마차에서 내린 송청아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터에는 이미 수많은 마차가 들어차 있었다. 이름난 세가와 공훈 귀족 집안의 마차도 적지 않았다.그 사이로 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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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우선 소용장군부에 마련된 자리가 어디인지 확인한 뒤, 심설화를 찾아 함께 향회를 둘러볼 생각이었다.회랑과 뜰을 몇 차례 지나자 마침내 너른 정원이 나타났다. 곳곳에 심긴 푸른 대나무가 뜰과 곁채에 싱그러운 녹음을 드리우고 있었다.송청아 일행이 막 소용장군부의 자리에 앉으려는데, 뒤에서 달콤하고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윤호 오라버니, 청아 언니. 이제야 오셨네요.”송청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치미는 짜증을 누르고 표정을 가다듬은 뒤 천천히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송채리가 서 있었다.올해 봄 향회는 송씨 집안에서 맡은 터라, 송채리는 어제 아침 일찍 송부로 돌아갔다. 오늘도 장군부 일행과 동행하는 대신 송씨 집안사람들과 함께 온 것이었다.송채리는 선명한 황금빛 비단 치마를 입고 있었다. 소맷부리와 치맛자락에는 개양귀비가 수놓여 있어, 발랄하고 화사하면서도 격조가 느껴졌다.그러나 송청아의 시선은 송채리에게 머물지 않았다. 그녀가 곁에서 부축하고 있는, 귀밑머리가 희끗한 노인에게 못 박힌 듯 멎었다.“할머님…….”그 한마디를 부르는 순간, 송청아의 눈시울이 젖었다.눈앞의 노인은 송부의 노부인 왕씨였다. 두 생에 걸쳐 송청아를 가장 아껴 준 할머니였다.어린 시절 송관산과 여씨는 향료를 찾아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어린 송청아를 보살핀 사람은 왕씨였다. 송청아는 사실상 왕씨의 손에서 자란 셈이었다.그녀의 기억 속 몇 안 되는 따뜻한 추억도 모두 왕씨의 뜰에 머물러 있었다.왕씨는 글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꽃과 풀, 향료의 이름을 하나하나 일러 주었다. 솜씨 좋은 손으로 땅콩엿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왕씨가 땅콩엿을 만드는 날이면 송청아는 앉은자리에서 열 개도 넘게 먹었다. 이가 다 녹을 것처럼 달면서도 자꾸만 손이 갔다.그러다 일곱여덟 살 무렵, 송청아는 백씨 노인에게 기술을 배우러 여산으로 보내졌다. 그 뒤로는 왕씨 곁에서 지낼 기회가 드물었다.그래도 송부로 돌아올 때마다 하루 온종일 왕씨의 방에 머물렀다. 말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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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송청아가 고개를 숙여 향낭을 살펴보았다. 엄지손가락만 한 향낭은 여의 모양으로, 그 위에 보상화 무늬와 연꽃 무늬가 수놓여 있었다. 섬세한 바느질에 선명하면서도 조화로운 색감까지, 틀림없는 왕씨의 솜씨였다.가슴에 잔잔한 감동이 번졌다. 막 손을 내밀어 받으려는데, 곁에 있던 송채리가 시샘 어린 목소리로 끼어들었다.“언니는 참 복도 많으세요. 할머님께서 그 향낭을 딱 하나, 언니 주시려고 만드셨거든요. 저는 갖고 싶어도 못 받았는데. 언니가 안 받으시면 제가 가져도 되지요?”송청아는 그 말을 듣자 곧바로 향낭을 받아 들었다.“고맙습니다, 할머님. 소중히 간직할게요.”살며시 향을 맡아 보니 모란과 작약이 어우러진 그윽한 향기가 났다. 고귀하고 우아한 느낌을 주는 향이었다.왕씨가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지금 허리에 달아 보거라. 잘 어울리는지 이 할미도 좀 보자꾸나.”송청아는 왕씨의 마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향낭이 마음에 들기도 했기에, 말씀대로 허리띠에 매달았다.이날 송청아는 은은한 분홍빛 비단 치마를 입고 있었다. 부용 무늬의 얇은 사가 겹쳐진 옷자락과 허리에 드리운 향낭이 서로 어우러져 한층 고왔다.왕씨는 송청아를 위아래로 찬찬히 살펴보더니, 눈을 가늘게 접으며 칭찬했다.“그래, 곱구나. 우리 청아는 인물이 좋으니 무얼 걸쳐도 다 예뻐. 오늘은 떼지 말고 계속 달고 있으려무나. 구경하다 보면 어느 댁 부인이나 아가씨가 향낭을 보고 물어올지도 모르지. 우리 송씨 향방 이름도 좀 알릴 겸 말이다.”“네, 그럴게요.”송청아는 고개를 숙여 향낭을 손에 받치고 몇 번이고 들여다보았다.왕씨가 손수 만들어 준 향낭인데, 어찌 떼어 놓고 싶겠는가. 날마다 몸에 지니고 다니며 할머니를 그리는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그 뒤 배씨 집안 일행과 왕씨, 송채리는 잠시 헤어져 각자의 자리로 갔다.다만 송채리의 자리는 배씨 집안의 자리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송청아의 표정과 움직임까지 훤히 보이는 거리였다.자리에 앉고서야 배윤호가 이날 처음으로 송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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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지난 생에서는 이 봄 향회에 온 적이 없었다. 오늘 누군가 자신에게 손을 쓰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한 탓에 경계를 늦추고 말았다.약을 먹인 자는 손님이 많은 향회에서 자신이 망신당하는 꼴을 보려는 것일까.아니면…… 다른 수까지 준비해 둔 것인가. 정신이 흐려진 틈을 타 사내를 들여보내고, 절에서 부정한 짓을 벌였다며 제 명예를 송두리째 짓밟으려는 것은 아닐까.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송청아의 몸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른 식은땀이 옷을 흠뻑 적셨다.정말 그런 계략이라면, 다시 얻은 삶에서 애써 세운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말 터였다.그때 배윤호도 그녀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고개를 조금 돌렸다.“왜 그러느냐?”“조금…… 어지러워서요…….”송청아가 힘겹게 대답했다. 그런데 목소리가 모기 소리처럼 가냘픈 데다 말끝에는 뜻하지 않은 교태마저 묻어났다. 스스로도 놀라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배윤호의 눈에 송청아는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보였다. 눈을 살며시 감고 이마를 짚은 채 도톰한 입술을 조금 벌리고 있었고, 양 뺨에는 옅은 홍조가 번져 있었다.그가 손을 뻗어 이마를 짚었다. 손끝에 닿는 살갗이 뜨끈했고, 땀도 흥건했다.“어찌 된 게냐? 열이 나는 것이냐?”조금 서늘한 손바닥이 이마에 닿자 순간 시원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송청아는 저도 모르게 그 손에 더 기대고 싶어졌다.그 충동을 깨닫자마자 그녀는 급히 몸을 뒤로 물려 손길을 피했다.“괜찮……아요…….”송청아가 일부러 제 손을 피하자 배윤호의 미간이 좁아졌다.화미는 송청아의 낯빛을 살피더니 조심스레 권했다.“큰부인, 서쪽에 손님들이 쉬실 수 있도록 마련한 방이 있어요. 제가 모셔다드릴 테니 잠시 쉬시는 게 어떨까요?”송청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화미의 손을 짚어 일어났다.배윤호가 다시 그녀를 보며 무언가 말하려 하자, 송청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서방님께서는 일어나지 않으셔도 돼요. 잠깐 쉬었다 돌아올게요.”마침 배진성이 그를 찾아왔다. 배윤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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