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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이혼 후 꽃길: Chapter 31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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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화

한편, 정채윤은 아파트에서 정태환을 위해 국을 끓이고 있었다. 잠시 뒤 병원으로 국을 가져다줄 생각이었다.그런데 갑자기 권예준이 전화를 했고, 정채윤은 그가 이혼 얘기를 꺼내려는 줄 알고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권예준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저녁에 본가에 다들 모일 예정인데 할머니께서 우리 보고 같이 오라고 하셨어.”정채윤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제야 오늘이 매달 권예준의 본가에서 함께 식사하는 날이라는 걸 떠올렸다.예전이었다면 바로 승낙한 뒤 일찌감치 권예준의 본가에 도착해서 준비를 했을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이혼을 앞둔 상태였기에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하지만...’오늘은 권씨 가문 셋째의 가족들까지 모두 모이는 날이라 평소에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권예준이 그동안 줄곧 이혼 얘기를 미뤄왔던 것은 어쩌면 우선 가족들에게 먼저 알린 뒤 절차를 밟기 위해서일지도 몰랐다.곰곰이 생각해 보면 미리 가족들에게 얘기하는 편이 나았다.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겨서 골치 아파질지도 모르니 말이다.그래서 정채윤은 동의했다.“그래. 알겠어. 저녁에 갈게.”그 말을 들은 권예준은 아주 잠깐 침묵한 뒤 대답했다.“그래.”권나율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엄마가 간다고 할 줄 알았어!’권예준은 권나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나는 오후에 중요한 볼일이 있어서 일 끝나면 조금 늦을 것 같으니까 나율이는 네가 데리러 가.”정채윤은 잠시 멈칫했다. 사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늘 오전에는 기존의 산업단지를 둘러봐야 했고 점심에는 엄석현을 만나러 가야 했다. 만약 얘기가 길어진다면 시간이 지체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엄석현과 헤어진 뒤에는 또 일을 해야 했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나도 바쁘니까 경호원을 보내.”권예준은 흠칫했다.솔직히 뜻밖이었다.예전에는 권나율과 관련된 일이라면 정채윤은 뭐든 늘 직접 하려고 했다.권나율은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 그러나 정채윤이 모임에 참석하겠다고 해서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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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그러면서 직접 안하린에게 차까지 따라 주었다. 정말이지 지극정성이었다.정채윤은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시선을 내려뜨렸다.정채윤은 자신의 처지를 떠올렸다.결혼 후 권예준은 정채윤에게 점점 더 냉담해졌고,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시간은 아주 적었다. 정채윤은 권예준의 차에 앉아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하물며 권예준이 직접 운전해서 어딘가에 데려다준 적은 더더욱 없었다.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권예준은 정채윤의 가족이 아픈데도 찾아오지 않았으니 그 외의 일은 말할 것도 없었다.안하린은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을 감히 바라보지 못하는 정채윤의 모습을 보고 웃음기가 더욱 짙어졌다.안하린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윤세형을 힐끗 바라본 뒤 말했다.“저는 괜찮아요. 시간 아끼게 바로 일 시작하죠. 가장 중요한 건 업무 성과니까요. 쉬는 건 언제든 쉴 수 있지만, 일도 제대로 못 하면서 쭉 쉬는 건 아무 의미 없잖아요.”정채윤은 잠시 멈칫했다가 시선을 들어 안하린을 바라보았다. 안하린은 정채윤이 무능한 사람인 것처럼 은근히 깎아내리고 있었다.그러나 정채윤은 별말 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말을 하든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윤세형이 말했다.“좋아요. 그렇다면 바로 시작하시죠. 우선 두 분은 저와 함께 산업단지를 한 번 둘러보시죠.”“좋아요.”“네.”산업단지는 규모가 상당하여 쭉 둘러보고 나니 어느샌가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남은 구체적인 사항들은 내일 오전에 다시 살펴봐야 했다.휴게실로 돌아온 안하린은 기록해 둔 수첩을 덮었다. 정채윤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수첩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그리고 있었는데, 멀리서 쳐다보니 벌써 몇 페이지나 채운 듯했다. 그 모습을 본 안하린은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굳이 사서 고생을 하네.’정채윤은 능력도 없으면서 왜 굳이 이런 큰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일까?안하린은 정채윤을 더 무시하기 시작했고, 한편으로는 정채윤이 조금 불쌍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대결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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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정채윤은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권예준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뒤에 있는 안하린을 바라보는 것임을 깨달았다.안하린은 권예준을 발견하더니 웃으며 권예준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권예준은 안하린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채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정채윤은 입술을 깨물었지만 사실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안하린은 정채윤을 보지 않고 윤세형에게 말했다.“예준 오빠가 저를 데리러 왔네요. 저는 예준 오빠랑 같이 점심을 먹기로 해서 먼저 가볼게요.”윤세형이 말했다.“네. 그럼 다음에 같이 식사하시죠.”“좋아요.”안하린이 가방을 챙겨서 떠났다. 그리고 밖으로 나간 뒤에는 다정하게 권예준의 팔에 팔짱을 끼면서 뭔가 얘기했다. 권예준은 고개를 숙인 채 부드러운 표정으로 안하린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뭔가를 말했다.천천히 닫히는 유리문 사이로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신경 쓰지 마.”‘나를 신경 쓰지 말라는 건가?’권예준에게 정채윤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다.정채윤은 애써 그들에게서 시선을 뗀 뒤 자리에서 일어나며 짐을 챙겼다.윤세형은 그 모습을 보고 예의상 물었다.“정채윤 씨, 점심에 약속 있으신가요? 없으시면 같이 구내식당으로 가서 식사하시죠.”정채윤은 고개를 저었다.“오늘은 약속이 있어서요. 다음에 같이 드시죠.”윤세형이 대답했다.“네.”정채윤은 그곳을 떠나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하지만 그곳은 교외라 택시가 잘 잡히지 않는 탓에 차를 기다리는 동안 뜨거운 햇볕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정채윤은 피부가 예민해 햇볕에 약했다. 조금만 햇볕을 쬐어도 금세 붉은 발진이 올라와 몹시 괴로웠다.그때 갑자기 왼쪽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정채윤은 손을 흔들어 차를 세우려다가 그 차가 권예준의 차라는 걸 알아봤다. 그리고 조수석에는 안하린이 타고 있었다.권예준도 정채윤을 보았다. 그러나 차를 세우기는커녕 그대로 지나쳐 버렸다.당황한 정채윤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몸이 좋지 않았던 탓인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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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안으로 들어간 정채윤은 엄준후와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은 뒤 직접 자신의 잔에 물을 따랐다. 밖에서 꽤 오랫동안 햇볕을 쬔 탓에 목이 너무 말라 당장 갈증을 해결하고 싶었다.엄준후가 정채윤을 힐끗 바라봤다.엄준후의 시선을 눈치챈 정채윤은 물을 마시다가 멈칫하면서 어색하게 엄준후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팔을 보았다. 팔에 어느새 붉은 발진이 올라와 있었다.엄준후에게 결벽증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정채윤은 입술을 깨물며 설명했다.“햇볕 때문에 그런 거지, 알레르기는 아니야. 전염될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엄준후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탄탄한 역삼각형 체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엄준후는 정채윤을 바라보며 덤덤히 말했다.“물어본 적 없는데.”순간 말문이 막힌 정채윤은 고개를 숙이며 말을 아꼈다. 그런데 갑자기 룸 안에서 에어컨이 켜지는 소리가 들렸다.정채윤은 흠칫하며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엄준후를 바라봤다.엄준후가 휴지로 이마를 닦고 있었다.정채윤은 엄준후가 아마도 더워서 에어컨을 켰을 거라고 생각했다.‘하긴, 나를 위해 에어컨을 켰을 리가 없지.’정채윤은 덤덤하게 고개를 돌렸다.두 사람은 그렇게 침묵을 이어 갔다.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잠시 후 엄석현이 화장실에서 돌아왔다. 두 사람이 어색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엄석현은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둘 예전에는 자주 붙어 다녔잖아. 오랜만에 만나는 걸 텐데 왜 한 마디도 안 하는 거야?”말을 하면서 엄석현은 손자를 못마땅한 듯 흘겨봤다.엄준후는 입꼬리만 살짝 당길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채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엄석현을 부축해 앉힌 뒤, 옆에 놓여 있던 주문용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화제를 돌렸다.“할아버지, 오래 기다리셨을 텐데 많이 배고프시죠? 우리 얼른 주문부터 해요.”엄석현은 손자를 나무라는 걸 그만뒀다. 정채윤이 배가 고플 거라는 생각이 들어 우선 음식부터 주문했다.잠시 후,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와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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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화장실.정채윤은 권나율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나율아, 무슨 일이야? 점심은 먹었어?”권나율은 점심을 먹고 잠시 쉴 생각이었는데 오후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서 안하린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들떠 있었다.권나율은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오후에 조금 일찍 데리러 오면 안 돼요? 저 할머니 댁에 일찍 가서 놀고 싶어요.”정채윤은 잠시 멈칫했다.어린아이의 마음은 사실 무척이나 알기 쉬웠다. 게다가 권나율은 정채윤이 직접 키운 아이였기에,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권나율은 일찍 할머니 댁에 가고 싶은 게 아니라 안하린을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고 싶은 것이었다.정채윤은 시선을 내려뜨리며 일부러 못 알아들은 척 말했다.“알겠어. 그러면 낮잠 자러 가봐.”권나율은 신이 나서 대답했다.“알겠어요. 엄마, 이따 봐요!”말을 마친 뒤 정채윤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권나율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정채윤은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휴대폰을 집어넣고 손을 씻은 뒤 화장실을 나섰다.그런데 뜻밖에도 밖으로 나가자마자 누군가와 부딪쳤다.“죄송합니다.”“죄송해요.”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정채윤은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권예준은 시선을 내려 정채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권예준은 꽤 놀란 듯했고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다.정채윤은 잠시 멈칫했다. 이곳에서 권예준과 마주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권예준은 안하린과 함께 식사를 하러 왔을 것이다.뒤늦게 권예준의 어두운 안색을 발견한 정채윤은 조금 힘겹게 입을 열었다.“나 따라온 거 아니야...”말을 마치기도 전에 권예준이 냉담하게 말했다.“그 말 사실이어야 할 거야.”정채윤은 말문이 턱 막혔다.권예준은 언짢은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복도 끝에서는 안하린이 권예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얘기를 나누었고, 안하린은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정채윤을 힐끗 바라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들떠볼 가치도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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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네, 알겠습니다.”정채윤이 떠나려고 하는데 직원이 다시 정채윤을 불러 세웠다.“어머, 고객님. 잠시만요.”정채윤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왜 그러세요?”직원은 연고를 꺼내 정채윤에게 건네며 빨갛게 발진이 올라온 정채윤의 팔을 가리켰다.“피부가 많이 예민하신가 봐요. 혹시 햇빛 알레르기가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이 연고 한 번 써보시겠어요? 이건 저희 레스토랑에서 고객님들을 위해 제공하는 연고예요.”레스토랑에서 연고를 제공하다니.정채윤은 잠시 흠칫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직원에게서 연고를 건네받았다. 확실히 연고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팔이 간지러웠기 때문이다.“감사합니다.”“별말씀을요.”정채윤은 또 한 번 웃은 뒤 자리를 떴다. 연고 뚜껑을 열고 팔에 연고를 바르니 차갑고 시원한 느낌이 들면서 금세 가려움이 가라앉았다.정채윤은 한결 편안해져서 작게 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꼭 리뷰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하며 연고 뚜껑을 닫고 룸으로 돌아갔다.문을 열고 룸 안으로 들어가며 정채윤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할아버지.”엄석현은 정채윤이 혼자 돌아오는 걸 보고 참지 못하고 물었다.“준후는? 안 왔어?”“네.”정채윤은 웃음기를 살짝 거두며 자리에 앉았다.엄석현은 화가 나서 말했다.“어휴, 답답한 놈. 성격이 저 모양이니까 아직도 여자 친구가 없지! 평생 그냥 혼자 살라고 해!”‘여자 친구가 없다고?’정채윤은 멈칫했다.바로 다음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엄준후가 안으로 들어왔다.“뭘 그렇게 조급해하세요? 다음에는 꼭 여자 친구를 데려올게요.”정채윤은 시선을 내려뜨리며 나름 추측을 했다.엄준후는 아마 그동안 그때의 그 여자를 제외하고도 다른 여자와 만났을 것이다.그럴 만도 했다. 남자들은 늘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기 때문에 한 여자만을 사랑할 리가 없었다.엄석현은 그 말을 믿었다.“그럼 꼭 기억해 둬. 다음에 또 여자 친구 없이 혼자 돌아오면 내가 가만 안 둘 거야!”엄준후는 의자에 앉은 뒤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 손가락으로 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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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정채윤이 다른 남자와 함께 있고, 심지어 둘 사이의 거리가 꽤 가까운 걸 본 안하린은 잠시 멈칫했다.권예준은 눈을 가늘게 떴지만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었고 별다른 반응도 없었다.정채윤은 미간을 찌푸린 뒤 시선을 거두고, 두 사람을 보지 못한 사람처럼 손수건을 쥐고 자리를 떴다.엄준후는 안하린, 권예준을 등지고 있었기에 그들을 보지 못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엄준후는 이내 정채윤을 뒤따랐다.환하게 트인 로비에 선 남자는 체격이 훤칠했고 분위기 또한 남달랐다. 캐주얼한 운동복을 입고 있어도 도도함과 귀티는 감춰지지 않았다. 한눈에 봐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그런 사람이 정채윤과 함께 있었다.안하린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하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듯 생각을 떨쳐냈다.정채윤은 능력도 없었고 뒷배도 없었다. 설령 저렇게 훌륭한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고 해도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될 리가 없었다.아니, 애초에 관심을 끌었다고 할 수도 없었다.정채윤이 뒷배를 등에 업고 남진 그룹에 들어간 걸 생각하면 아마 본인의 외모를 이용하여 낙하산으로 들어간 걸지도 몰랐다.‘정말 갈수록 스스로 타락하네.’안하린은 고개를 저은 뒤 시선을 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정채윤을 바라보고 있는 권예준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안하린은 웃는 얼굴로 권예준의 팔에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가자.”권예준은 안하린을 힐끗 바라봤다.“그래.”두 사람은 그곳을 떠났다....정채윤은 레스토랑에서 나온 뒤에야 멈춰 섰다.뒤따라 나오던 엄준후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래?”정채윤은 잠시 숨을 고르다가 엄준후를 힐끗 바라보았다. 쓸데없는 말은 하고 싶지는 않아서 손수건을 돌려주며 덤덤히 말했다.“나는 택시 타고 돌아가면 되니까 데려다주지 않아도 돼. 볼일 보러 가봐.”엄준후는 정채윤을 잠시 바라보다가 정채윤이 내민 손수건을 힐끗 보더니 차갑게 웃으며 그것을 건네받았다.“그래.”말을 마친 뒤에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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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시끌벅적하게 술을 마시며 노는 곳을 좋아하지 않는 엄준후는 시끄러운 소리에 미간을 구기며 한 손을 주머니 안에 넣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좀 조용한 곳으로 가서 얘기하면 안 돼?”“어? 아, 알겠어.”상대방은 중요한 얘기라도 하려는 줄 알고 소파에서 일어나 룸 밖으로 나갔다.“왜?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거야?”엄준후가 말했다.“네가 관리하는 곳 중에 청수 건축사무소와 협력하는 곳이 있지?”“응. 왜?”“그러면 청수 건축사무소가 정부나 군과도 협력하는 거 알고 있어?”“알지. 왜? 청수 건축사무소에는 대단한 분이 한 분 계시는데, 그분이 아주 뛰어난 기술들을 연구해 내서 몇 년 전부터 군과 정부와 협력하고 있어. 청수에서도 자주 사람을 군으로 보내 연구하고 그러는데 구체적으로 뭘 연구하는지는 나도 잘 몰라. 전부 기밀이거든.”엄준후는 휴대폰을 움켜쥐었다.“그래, 알겠어.”“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물어? 설마 청수에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미리 알아보려는 거야?”“좋아하긴. 너는 술을 마셔도 말이 많네.”엄준후는 쌀쌀맞게 대꾸한 뒤 전화를 끊었다.그러고는 카톡에 들어가 정채윤과의 대화창을 클릭한 뒤 잠시 고민하다가 글을 적었다. 그러나 다시 글을 지우고 아무것도 보내지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휴대폰을 거두어들였다....한편, 정채윤은 엄준후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택시를 타고 회사로 돌아간 정채윤은 어제 미처 완성하지 못한 스케치를 이어서 그렸다.오후 네 시가 넘었을 무렵 팀 회의가 열렸다.윤세형은 안하린이 회의를 이끌도록 했고 정채윤은 철저히 뒷전으로 밀려났다. 윤세형은 정채윤의 설계안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처음에는 안하린과 정채윤에게 동등한 대우를 할 거라고 약속했었지만 그 약속은 이미 오래전에 깨졌다.한 가지 예를 들자면 다들 안하린을 디자이너님이라고 부르면서 정채윤은 정채윤 씨라고 불렀다.신분과 지위 차이가 명확했다.물론 정채윤은 개의치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일을 계속했다.회의가 끝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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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정채윤은 입술을 깨물며 권나율의 옆자리에 앉은 뒤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했다.권나율은 그 모습을 보더니 옆으로 몸을 조금 옮겼다. 정채윤과 붙어 있기 싫은 것 같기도 하고, 정채윤에게 무언가를 들키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기도 했다.권나율은 조심스럽게 책가방 지퍼를 열고 안하린을 위해 준비한 수제 선물을 확인했다. 그리고 선물이 구겨지지 않은 걸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마지막 미술 수업에 선생님이 백합꽃을 접는 법을 가르쳐주면서 잘 접어서 엄마에게 선물해도 된다고 했다.권나율은 처음에는 그것을 엄마에게 주려고 했지만 안하린에게도 하나 주고 싶었다.그러나 시간이 부족해 수업 시간에는 한 송이밖에 접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걸 안하린에게 주기로 했다.‘엄마 건... 나중에 다시 접어 주면 되니까!’권나율은 그렇게 생각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지퍼를 닫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 안하린을 만날 생각에 들떴다.정채윤은 권나율의 책가방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발견하고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다.지난번에 병원에서 권나율은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을 정채윤에게 선물로 주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했다.역시나 예상했던 대로였다.정채윤은 굳이 그 사실을 까발리지 않고 못 본 척했다.권씨 가문 본가는 한적하고 조용한 교외에 자리 잡고 있어 도심에서 꽤 멀었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40분이 지나 있었다.권나율은 차에서 내린 뒤 신이 나서 별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정채윤은 말없이 권나율을 뒤따랐다.권나율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곧장 안하린의 엄마 진명화의 품으로 달려가 와락 안겼다. 그 모습을 본 정채윤은 순간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그때 문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시어머니 이선영이 돌아온 것이었다.안으로 들어온 이선영은 그 광경을 보더니 전업주부로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서도 아이의 마음 하나 얻지 못한 정채윤이 못마땅한 듯 미간을 구기며 정채윤을 힐끗 보았다. 나무라기도 귀찮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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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이선영과 허주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정채윤도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그런데 박여정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너 취업했니?”정채윤은 멈칫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네.”살이 많이 빠진 이유가 그 때문이라는 생각에 박여정은 화가 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빌어먹을! 안성 그룹이 파산하거나 망한 것도 아닌데 권예준 그 자식이 너한테 일을 하라고 한 거야? 너랑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내 앞에서 했던 약속들은 까맣게 잊은 모양이지?”권씨 가문 사람들은 처음에 권예준과 정채윤의 결혼을 반대했었다. 당시 권예준은 박여정의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자신의 아내는 평생 정채윤 한 명뿐이며, 결혼한 뒤에 꼭 정채윤에게 잘해주겠다고 맹세했었다.집안 차이가 컸음에도 박여정은 그때 권예준의 굳은 결심을 보고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했다. 예전 일이 언급되자 정채윤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단단히 화가 난 박여정은 당장 권예준을 찾아가서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 시간이 되도록 권예준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라 또 한 번 화가 치밀었다.박여정은 정채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채윤아, 지금 바로 그 망할 놈한테 연락해서 당장 집에 기어들어 오라고 해!”정채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거리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전화를 걸었다.권예준은 한참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정채윤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예준 오빠 지금 운전 중이에요. 우리 곧 도착해요.”부드러운 안하린의 목소리였다.정채윤은 순간 휴대폰을 꽉 움켜쥐었다. 목구멍에 무언가 걸린 듯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권예준과 결혼한 지 5년, 그동안 권예준은 점점 차가워졌다. 권예준은 정채윤이 서재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고, 자신의 휴대폰에 손을 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동안 정채윤은 단 한 번도 권예준의 휴대폰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그러나 안하린은 권예준의 휴대폰을 마음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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