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그때 수화기 너머로 갑자기 박여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정채윤이 잠시 멈칫했다.박여정은 권나율에게서 휴대전화를 받아 들더니 못마땅한 목소리로 나무랐다.“나율아,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권나율은 입술을 삐죽이며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고는 의자에서 내려와 냅다 달아나며 말했다.“증조할머니, 저 다 먹었어요! 경호원 삼촌한테 학교 데려다 달라고 할게요!”권나율은 기분이 상한 나머지 정채윤과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얘가 정말!”박여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수화기 너머로 그 말을 들은 정채윤이 말했다.“할머니, 나율이 부르지 마세요. 저는 괜찮아요.”그러고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할머니, 본가에 계셨던 것 아니에요? 갑자기 우리 집에는 어쩐 일이세요?”박여정은 멀어지는 권나율에게 몇 마디 더 당부하고 나서야 다시 휴대전화를 귀에 댔다.“어젯밤에 왔어. 너희 식구 얼굴이나 볼까 해서 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들어오더라고. 예준이한테 전화해 보고서야 네가 다쳐서 입원한 걸 알았지.”정채윤은 잠시 말이 없었다.박여정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채윤아, 할머니한테 솔직하게 말해 봐. 혹시 예준이가 너 괴롭힌 거 아니지? 그 자식이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으면 말만 해. 내가 다리를 분질러 놓을 테니까!”아무래도 박여정은 권예준이 정채윤에게 손찌검이라도 한 게 아닌지 의심하는 모양이었다.정채윤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할머니, 괜한 걱정하지 마세요.”“그런 게 아니라면 다행이고. 그래도 그놈이 양심은 있는지 어젯밤에는 너랑 같이 있어 주겠다고 하더라.”그 말을 들은 정채윤이 잠시 멈칫했다.“나율이 아빠, 어젯밤에 집에 안 들어갔어요?”“안 들어왔지. 병원에서 너랑 같이 있겠다고 했는데?”정채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권예준은 어젯밤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박여정에게는 자신을 간호하느라 병원에 남겠다고 해 놓고, 정작 병원을 떠난 뒤에는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어디에서 밤을 보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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