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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os capítulos de 다정한 지옥: Capítulo 51 - Capítulo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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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분홍색 슬리퍼에 발을 넣고 안으로 들어가자 태혁은 이재의 캐리어를 그대로 침실까지 끌고 갔다. 전에도 몇 번 와본 집이었다. 소파도 식탁도, 지나치게 정돈된 주방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현관에 벗어놓은 자신의 구두와 태혁의 신발이 나란히 놓인 걸 보고 나니 이상하게 전과 같은 곳처럼 보이지 않았다. 태혁이 침실 바닥에 캐리어를 펼쳤다. 급하게 챙겨온 것치고는 제법 많았다. 출근할 때 입을 옷과 화장품, 세면도구에 충전기까지 들어찬 캐리어를 내려다보던 이재가 웃었다. “나 진짜 여기 살러 온 것 같아요.” 태혁도 안을 한번 내려다봤다. “그러네요.” 너무 아무렇지 않게 받아서 이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정리 좀 할게요.” 몸을 숙여 셔츠를 꺼내려는데 태혁이 먼저 집어 들었다. 그대로 옷장 문을 열더니 자기 옷을 한쪽으로 밀어 자리를 만들고, 이재의 셔츠를 빈 옷걸이에 걸었다. “태혁 씨.” “네.” “내가 할 수 있는데.” “알아요.” 그러면서도 재킷까지 가져갔다. 검은 셔츠 옆에는 하얀 셔츠가 걸렸고, 회색 니트 사이에는 베이지색 재킷이 들어갔다. 이재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그 모습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우리 진도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 태혁은 니트까지 옷걸이에 걸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임시 보호입니다.” 딱 잘라 말하는 목소리에 웃음이 났다. 이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 앞으로 갔다. 방금 걸린 니트의 소매를 만지는데 낯익은 향이 코끝에 걸렸다. 태혁에게 가까이 갈 때마다 희미하게 나던 깨끗한 섬유유연제 향이었다. “벌써 냄새 배었어요.” “무슨 냄새.” “태혁 씨한테 나는 섬유유연제 냄새.” 태혁도 옆으로 다가왔다. 이재는 니트 소매를 코끝에 한번 더 가져갔다. “이러다 나한테 태혁 씨 냄새 나겠다.” 시선을 들자 바로 옆에 선 태혁과 눈이 마주쳤다. “나쁘진 않네요.” 태혁의 입가가 조금 올라갔다. “나는 좋은데.” “뭐가요?” “윤이재 씨한테 내 냄새 나는 거.” 낮게 떨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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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샤워를 끝내고 나서 작은 문제가 생겼다. 이재는 세면대 옆에 두었던 옷을 집어 들고 미간을 찌푸렸다. 언제 이렇게 됐는지 티셔츠와 바지가 모두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문을 조금 열었다. “태혁 씨.” 거실에서 곧장 대답이 돌아왔다. “네.” “옷 좀 줘요.” 잠시 뒤 발소리가 욕실 앞에서 멈췄다. “잠옷은요?” “다 젖었어요.” 문밖이 조용해졌다가 낮은 웃음이 났다. “어떻게 하면 다 젖어요?” “나도 몰라요. 빨리 옷 좀 줘요.” 손만 내밀자 부드러운 천이 손끝에 걸렸다. 회색 티셔츠와 트레이닝 팬츠였다. 이재가 바지를 한번 펼쳐보고 다시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이거 흘러내릴 것 같은데.” 태혁은 문 앞 벽에 기대 서 있었다. “끈 최대한으로 묶어요.” “그래도 흘러내리면요?” 시선이 마주쳤다. 태혁의 입가가 느리게 올라갔다. “그래도 좋고.” 이재가 잠깐 말을 잃었다. “……뭐가 좋아요.” “그냥.“ 너무 태연해서 오히려 이재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저리 가요.” 문을 닫으려는데 태혁의 손이 문 가장자리를 잠깐 잡았다. “윤이재 씨.” “왜요.” “진짜 흘러내리면 불러요. 내가 묶어줄게.” 웃음이 섞인 목소리였다. 이재는 그대로 문을 닫아버렸다. 밖에서 태혁이 웃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거울 속 자기 얼굴이 생각보다 빨갰다. *** 옷은 역시 컸다. 티셔츠는 허벅지를 반쯤 덮었고 바지는 허리끈을 한참 당겨야 했다. 전에도 태혁의 옷을 빌려 입은 적은 있었지만, 이제는 거울 속 모습이 전과 조금 다르게 보였다. 남자친구의 옷. 이재는 소매를 손등 위로 한번 내려봤다가 욕실 문을 열었다. 거실에 있던 태혁이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그대로 멈췄다. “봐요. 엄청 크잖아요.” 태혁은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이재 앞으로 왔다. 손등을 덮고 있는 소매를 잡아 한 번 접었다. 그래도 길자 한 번 더 접고, 반대쪽도 같은 모양으로 맞췄다. 이재는 그가 해주는 대로 가만히 서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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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머리를 다 말리고 침실로 들어가자 태혁이 이불을 걷었다. “나 어느 쪽에서 자요?” “더 마음에 드는 쪽에서.“ “알았어요.” 그뿐이었다. 이재가 왼쪽에 눕자 태혁도 자연스럽게 반대편으로 들어왔다. 매트리스가 태혁의 무게만큼 내려앉았다. 이재는 잠깐 천장을 보고 있다가 옆으로 돌아누웠다. 태혁도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둘 사이에 남아 있던 거리는 손을 한 번 뻗으면 닿을 만큼이었다. 이재가 베개 위로 조금 몸을 옮기자 태혁의 팔이 별다른 말 없이 허리로 들어왔다. 그대로 가슴께에 뺨을 붙였다. 몇 번이나 안겨본 품인데 오늘은 팔 안으로 들어가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규칙적인 심장 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자신이 입은 티셔츠에서도 같은 섬유유연제 향이 희미하게 났다. “태혁 씨.” “네.” “이상해요.” “뭐가요.” 이재는 대답 대신 어둠 속의 옷장을 한번 봤다. 그 안에는 내일 출근할 자신의 옷이 걸려 있었다. 욕실에는 칫솔이 하나 늘었고, 현관에는 내일 다시 신을 구두가 놓여 있었다. 아침이 되면 가방을 챙겨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여기서 씻고, 옷을 갈아입고, 태혁과 함께 문을 나서게 된다. 이재가 다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좋아요.” 태혁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뭐가요.” “여기 있는 거.” 잠깐 침묵이 흘렀다. 허리를 감고 있던 팔이 이재를 조금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나도요.” 입술이 이마에 한번 닿았다. 그다음은 눈가였다. 이재가 고개를 들자 마지막에는 입술로 내려왔다. 짧고 느린 입맞춤이 끝난 뒤에도 태혁의 손은 허리 뒤에 그대로 있었다. 이재가 다시 그의 가슴에 뺨을 붙였다. 침대 옆 가방 안에는 수면제가 들어 있었다. 평소라면 불을 끄기 전에 먼저 꺼냈을 약이었다. 오늘은 가방 쪽으로 눈도 가지 않았다. 대신 태혁의 티셔츠를 손끝으로 살짝 잡았다. “태혁 씨.” “네.” “아침에 못 일어나면 어쩌죠.” “깨우면 되죠.” “그래도 안 일어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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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이재는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 따뜻했다. 바로 앞에서 느껴지는 체온에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갔다. 희미한 아침빛 아래 회색 티셔츠가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재는 잠깐 눈을 깜빡였다. 태혁의 팔이 허리를 깊숙이 감고 있었다. 이불 아래로는 다리가 느슨하게 얽혀 있었다. 잠들 때는 등을 안긴 채 누워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몸을 돌려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 있었다. 한쪽 손은 티셔츠 자락까지 쥐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됐지. 손을 슬쩍 놓으려다 말았다. 몸이 이상할 만큼 가벼웠다. 밤중에 깬 기억도 없었다. 꿈을 꿨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푹 잔 것 같았다. 이재는 그대로 고개만 조금 들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태혁의 얼굴이 보였다. 자는 얼굴을 이렇게 오래 보는 건 처음이었다. 검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이마 위로 흐트러져 있었다. 평소에는 날카롭게 느껴지던 긴 눈매도 감겨 있으니 선이 한결 부드러웠다. 반듯하게 뻗은 콧대 아래로 힘이 빠진 입술까지, 자는 동안에는 평소의 서늘한 인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알고는 있었는데 더 잘생겼네. 이재의 시선이 눈썹에서 콧대로, 다시 입술로 천천히 내려갔다. 그때 감겨 있던 눈이 열렸다. 이재는 괜히 시선을 한 번 피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어요?” 막 잠에서 깬 목소리가 낮게 잠겨 있었다. “방금요.” “거짓말.” “어떻게 알아요.” 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허리를 감고 있던 팔에 힘을 줬다. 이재의 몸이 매트리스 위를 조금 미끄러졌다. 코끝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잘 잤어요?” “네.” “다행이네.” 이재는 다시 그의 가슴께에 얼굴을 묻었다. 잠깐만 더. 그렇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태혁도 마찬가지였다. 등을 감싼 손이 천천히 한 번 쓸어내려왔다. 이재는 눈을 감은 채 그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 그의 품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 “출근해야 돼요, 우리.” “맞아요.” 말과 달리 태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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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준호와 수빈은 이미 회의실에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네 건의 사건 자료가 펼쳐져 있었다. 태혁이 들어서자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오셨습니까.” “뭐 나왔어?” 수빈이 자료 하나를 밀었다. “감식 쪽은 아직 특별한 건 없습니다. 현장에 남은 흔적도 앞선 사건들이랑 크게 다르지 않고요.” 태혁이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한가운데에는 네 번째 현장에서 발견된 기사 사진이 놓여 있었다. 십 년 전 기사였다. 제목 한가운데 박힌 이름. 세림호텔. 그리고 여백을 가로질러 적힌 네 글자. 돌아왔다. 태혁의 시선이 그 위에 멈췄다. 준호가 맞은편에서 현장 사진들을 순서대로 당겼다. “근데 이번에 확실해진 건 있는 것 같습니다.” “뭔데.” “범인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거요.” 태혁이 준호를 봤다. 준호가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진을 가리켰다. “처음 두 건은 옛날 사건을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손가락이 세 번째 사진으로 옮겨갔다. 낡은 체크카드. JINWOO SEO. “여기서 서진우 이름을 직접 꺼냈고.” 마지막 사진. 세림호텔. 돌아왔다. “이번에는 이걸 놨습니다.” 수빈이 팔짱을 낀 채 사진을 내려다봤다. “점점 구체적이네요.” “그러니까.” 준호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처음에는 알아보라고 흉내만 내더니 이제는 아예 하나씩 보여주잖아요.” 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네 장의 사진을 차례로 바라봤다. 범행 방식. 서진우. 세림호텔. 우연히 이어진 순서가 아니었다. “십 년 전 수사자료 다시 가져와.” 수빈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 쪽으로 볼까요?” “세림호텔 관련된 것 전부.” “네.” “서진우 가족 관련 자료도 같이.” 준호가 태혁을 바라봤다. “가족 쪽까지요?” “그래.” 준호의 시선이 테이블 위 기사로 내려갔다. 잠시 뒤 그가 낮게 말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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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윤정호가 한동안 태혁을 바라봤다. “십 년 전부터 내가 표적이라고 생각했나.” “가능성은 있다고 봤습니다.” “확신은 아니었고?” “네.” 태혁의 시선이 테이블 위 사진으로 내려갔다. “그래서 확인하러 왔습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윤정호가 천천히 소파에 등을 기댔다. “맞네.” 태혁이 눈을 들었다. “서진우가 노린 건 나였어.” 십 년 동안 가설로 남아 있던 일이었다. 이제 하나는 확실해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되는 사건은 아니었다. 태혁이 물었다. “이유도 알고 계십니까.” 윤정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태혁이 먼저 말을 이었다. “서진우 아버지에 관한 기사는 당시에도 확인했습니다.” 윤정호의 시선이 태혁에게 향했다. “세림호텔에서 보안 업무를 했고, 근무 중 사고를 당한 뒤 뇌사 상태에 있다가 사망한 것까지.” “…….” “유족과 회사 사이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태혁은 잠시 윤정호를 바라봤다. “기사에 나온 게 전부입니까.” 윤정호가 입을 다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먼저 시선을 피한 건 윤정호였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한참을 말이 없던 그가 낮게 입을 열었다. “그때는 회사를 지켜야 했네.”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야.” “서진우 아버지 사고와 관련된 겁니까.” 윤정호의 시선이 다시 태혁에게 돌아왔다. “기사에 난 일이 거짓은 아니네.” “그럼 빠진 게 있겠군요.” “십 년 전 일일세.” 윤정호는 더 말하지 않았다. 선을 긋는 대답이었다. 태혁 역시 더 캐묻지 않았다. 지금은 진술을 강제할 수도, 자료를 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다만 하나는 알았다. 기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윤정호는 그걸 알고 있었다. 태혁이 테이블 위 사진을 손끝으로 당겼다. “현재 범인의 목적도 다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윤정호가 태혁을 바라봤다. “윤이재 씨가 목적이라면 지금까지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태혁의 시선이 사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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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준호가 오래된 진술서 몇 장을 추려 태혁의 책상 앞으로 가져왔다. “팀장님. 이 사람 좀 이상한데요.” 태혁이 고개를 들자 준호가 맨 위에 놓인 진술서를 내밀었다. “김현석. 서진우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십 년 전 참고인 조사 기록이었다. 김현석은 고등학교 시절 서진우와 친하게 지냈지만, 졸업 후 자연스럽게 왕래가 끊겼다고 진술했다. 사건이 벌어질 무렵에는 거의 만나지 않았고, 서진우의 개인적인 사정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동창들의 진술에는 김현석의 이름이 생각보다 자주 등장했다. “본인은 졸업하고 멀어졌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 얘기는 조금 달라요.” 태혁은 준호가 표시해둔 부분을 차례로 훑었다. 둘이 원래 가까웠다는 말. 졸업 후에도 몇 번 함께 있는 걸 봤다는 말. 서진우와 가까웠던 사람을 묻자 가장 먼저 김현석의 이름을 댄 사람도 있었다.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이상할 건 없었다. 친하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달랐고, 오래된 친구와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일도 흔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의 기억을 한데 모아놓자 미묘한 차이가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는 김현석보다, 김현석 본인이 말한 자리가 조금 더 멀었다. 태혁이 진술서를 내려놓았다. “현재 신상 확인해봐.” 수빈이 노트북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 동명이인이 여럿 나왔지만 생년월일과 당시 기록을 대조하자 어렵지 않게 한 사람으로 좁혀졌다. 수빈이 이름을 그대로 검색창에 입력했다. 몇 개의 기사가 화면에 떠올랐다. “기자인데요.” 태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빈이 화면을 돌렸다. 기사 아래 적힌 이름은 김현석이었다. 몇 년 전까지 사회부에서 사건 기사를 주로 썼고, 지금도 다른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화면 한쪽에 기자 프로필 사진이 떠 있었다. 십 년이 지나 얼굴은 조금 달라졌지만 알아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태혁도 기억하고 있었다. 십 년 전, 참고인으로 한 번 마주 앉았던 남자였다. 당시 김현석은 질문에 막힘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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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집에 도착하자 이재가 먼저 현관으로 들어섰다. 신발을 벗어놓고 가방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태혁은 가방만 안쪽에 내려놓았다. 뒤이어 들어오면서도 구두를 벗지 않은 채 손목시계를 확인하는 모습에 이재가 그를 돌아봤다. “일하러 가요?” “잠깐. 확인만 하고 올게요.” 이제야 상황이 이해됐다. 이재는 아직 현관에 서 있는 태혁을 잠시 바라봤다. “그럼 나 데려다주려고 여기까지 온 거예요?” “네.”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었다. “경호팀한테 오늘만 부탁했어도 되는데.” 태혁이 이재를 봤다. “그게 남자친구가 할 일입니까?” 이재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저런 말을 한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한 번씩 속수무책이었다. “……남자친구가 바쁘면 그럴 수도 있죠.” “그래도 데려다주는 건 내가 합니다.” 태혁은 더 설명하지 않았고 이재도 더 말리지 않았다. 싫기는커녕 좋았으니 굳이 반박할 이유도 없었다. 태혁이 현관문 쪽으로 몸을 돌리다 다시 이재를 봤다. “뭐라도 먹어요. 아무한테도 문 열어주지 말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 “알았어요.” 대답을 듣고서야 태혁이 문으로 향했다. 그대로 보내려던 이재는 문득 그의 셔츠 끝을 붙잡았다. 태혁이 돌아보는 순간 발끝을 살짝 들었다. 입술이 짧게 닿았다 떨어졌다. 태혁의 시선이 그대로 이재의 얼굴에 머물렀다. “뭐예요.” “운전 조심하라고.” “좋지 않은 방법이네요.” “왜요?” 태혁이 잡혀 있던 셔츠 끝을 빼내는 대신 이재의 허리를 가볍게 당겼다. 한 번 더 입술이 닿았다. 이번에는 조금 더 길었다. 입술이 떨어진 뒤에도 거리는 그대로였다. “가기 싫어졌으니까.” 이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일하러 간다면서요.” “그러니까 빨리 보내줘요.” “내가 잡았어요?” 태혁의 시선이 아직 제 셔츠를 잡고 있는 이재의 손으로 내려갔다. 이재가 슬그머니 손을 놓았다. “……빨리 가요.” 태혁이 낮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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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다음 날 오전, 김현석은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경찰서에 도착했다. 준호가 조사실 문을 열자 안에 앉아 있던 김현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혁을 알아본 얼굴에 잠깐 반가운 기색이 스쳤다. “오랜만입니다.” 태혁도 그를 기억했다.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실제 얼굴에 예전 모습이 더 많이 남아 있었다. 단정하게 넘긴 머리와 셔츠 위에 걸친 재킷,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는 시선까지. 긴장해서 불려온 참고인이라기보다 취재 때문에 경찰서를 드나드는 기자에 가까웠다. “기억합니까?” “그럼요.” 김현석이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때 직접 조사하셨잖아요.” 십 년 전에도 비슷한 인상이었다. 질문을 들으면 필요한 만큼 생각했고, 필요한 만큼 대답했다. 말이 많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조심스럽지도 않았다. 태혁이 맞은편 의자를 당겼다. “앉으시죠.” 김현석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준호가 옆에서 녹음을 준비하는 동안 태혁은 십 년 전 참고인 조사 기록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갑자기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십 년 전 사건과 관련해서 당시 참고인 진술을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김현석의 시선이 테이블 위 서류로 내려갔다. “십 년 전 사건이면…….” “서진우 사건입니다.” 잠시 멈췄던 시선이 다시 태혁에게 돌아왔다. “그렇군요.” 놀라기보다는 이유를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태혁이 진술서를 펼쳤다. “당시 서진우하고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진술하셨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친하게 지냈고, 졸업 후에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고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다시 확인해보니 졸업 후에도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더군요.” 이번에는 김현석의 눈썹이 조금 움직였다. “십 년도 더 된 일을 최근에 다시 확인하셨다고요?” “네.” 김현석은 잠시 태혁을 바라봤다. “그건 좀 이상하네요.” “뭐가요.” “갑자기 그렇게 오래된 일을 다시 확인하신다는 게.” 질문을 받으면서도 경찰이 왜 그 질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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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왜 그렇게 생각하죠?” 태혁의 질문에 김현석이 시선을 거두었다. “저 기자입니다.” 담담한 대답이었다. “성림동에서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범행 방식 때문에 십 년 전 사건 이야기가 다시 나오는 것도 봤고요.”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경찰이 갑자기 서진우에 대해 물으려고 저를 불렀으니까요.” 김현석이 테이블 위 오래된 진술서를 한번 내려다봤다. “그 정도는 연결해볼 수 있죠.” 논리는 단순했고 자연스러웠다. 기자라면 오히려 그 정도 추론을 하지 못하는 쪽이 이상했다. “정말 관련이 있는 겁니까?” “현재 수사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겠죠.” 김현석은 순순히 물러났다. 태혁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 “서진우가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까?” 김현석의 표정이 처음으로 조금 달라졌다. 놀랐다기보다는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아니요.” “왜요.” “죽었다고 알고 있으니까요.” “어디서 들었습니까.” “뉴스에서 봤습니다.” 김현석이 오히려 태혁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봤다. “그때 그렇게 보도되지 않았습니까?” 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지자 김현석의 표정에 아주 조금씩 의문이 짙어졌다. “……아닙니까?”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김현석도 더 묻지 않았다. 태혁이 진술서를 한 장 넘겼다. “죽었다는 소식 들었을 때는 어땠습니까.” 이번에는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김현석의 시선이 테이블 한쪽에 머물렀다. “결국 그렇게 됐구나 싶었죠.” “그렇게 됐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사람을 많이 죽였잖아요.” 담담한 말이었다. 변명도, 두둔도 없었다. 김현석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덧붙였다. “이미 제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졸업 후에는 멀어졌다면서요.” 김현석이 고개를 들었다. “안 친했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대답이 빠르게 튀어나왔다. 오늘 처음이었다.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표정이 크게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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