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기다리라고 하기에는 미안했고, 기다리지 말라고 하기에는 마음에 남은 게 너무 많았다. 좋아하지 않아서 떠나는 게 아니었다. 그 반대라서 어려웠다. “기다리지 마요.” 태혁의 눈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이재는 그걸 보고도 말을 바꾸지 않았다. 한참 뒤 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날 밤은 이상하리만큼 평범하게 지나갔다. 태혁은 거실에서 잤고, 이재는 침대에 누웠다. 처음 이 집에서 잤던 밤처럼 문을 열어두지도 않았다. 불을 끄고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금방 잠들었다. *** 다음 날 아침. 이재가 캐리어를 끌고 나오자 태혁은 이미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칫솔도, 화장품도, 옷도 전부 캐리어 안에 들어 있었다. 이재가 신발을 신는 동안 태혁이 손잡이를 가져갔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재는 말리지 못했다. 복도로 나오자 캐리어 바퀴가 낮게 굴렀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 태혁이 버튼을 눌렀다. 둘 사이에 캐리어 하나가 놓였다. 이재는 내려오는 숫자를 바라보다 괜히 옷소매 끝을 만지작거렸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태혁이 캐리어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재가 뒤따라 들어서려는데 태혁은 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정말 안 데려다줘도 돼요?” “네. 경호팀이 밑에서 기다린대요.” 태혁은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손을 놓았다. “알았어요.” 이재가 안으로 들어섰다. 태혁은 문밖으로 물러났다.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도 문은 알아서 움직였다. “도착하면…….” 태혁이 말을 멈췄다. 이재가 고개를 들었다. 몇 초쯤 그렇게 서로를 보고 있었다. 무슨 말을 삼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연락해요.” 이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태혁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읽기 어려웠다.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문이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좁아지는 틈 사이로 태혁이 보였
Last Updated : 2026-09-2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