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 가을날 아침이었다.카이스트 기계공학동 연구실로 국립문화재연구소와 카이스트가 공동 주관하는 국가적 대형 프로젝트인 '고구려 대기술경 정밀 해제 및 현대 기술 재구성 사업'의 공동 연구진이 도착한다는 전갈이 들려왔다.진우는 실험실 중앙의 대형 정밀 측정기 앞에서 황동 기어의 유격 상태를 조율하고 있었다."강 박사님,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이번 프로젝트의 수석 연구원으로 파견된 신임 박사님이 도착하셨습니다."연구원 조교의 목소리에 진우는 손에 쥐고 있던 회전 측정기를 내려놓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실험실의 투명한 유리문이 조용히 열리며, 한 여인이 정갈한 베이지색 정장 차림으로 걸어 들어왔다.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 맑고 곧은 눈동자, 그리고 품에 고구려 대기술경 영인본 상자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 서 있는 여인의 모습.그 여인이 실험실 안으로 발을 내디븠을 때, 현대의 차가운 연구실 내부 전체가 수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전자기적 파동과 뜨거운 가슴의 소동으로 가득 찼다.진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진우의 눈동자와, 문 앞에 멈춰 선 여인의 시선이 공중에서 완벽하게 일치했다.여인은 진우를 바라보는 순간, 손에 쥐고 있던 자료 상자를 놓칠 뻔하며 자리에 굳어버렸다. 생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내였으나, 사내의 단단한 어깨와 눈빛을 보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억눌려 있던 수천 년 동안의 그리움과 눈물이 쏟아져 내릴 듯 폭발했기 때문이다.여인의 가슴에 걸린 국립문화재연구소 출입증에는 세 글자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수석연구원 연평강]진우는 숨을 죽인 채 천천히 연평강 박사를 향해 걸어 나갔다. 진우의 발걸음 소리 하나하나마다 고구려 평양성의 대동강 물소리와 가평 자치 영지의 온돌 구들장에서 피어오르던 따스한 온기가 되살아나는 듯했다.진우가 연평강의 코앞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연평강 박사는 떨리는 입술을 사르르 떨며 진우의 얼굴을 차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맑은 눈동
Last Updated : 2026-10-25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