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현대의 천재 대학원생이 고구려 '바보 온달'이 되어버렸다. 현대 공학 지식으로 영지를 일으키며 궁에서 쫓겨난 평강공주와 깊은 사랑에 빠진 온달. 정해진 전사의 비극적 운명을 과학적 기지로 극복하며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시공간을 뛰어넘어 현대에서 운명적인 제2의 사랑을 완성하는 이공계 로맨스 판타지.
View More* 눈을 떠보니 바보라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지독한 만성 피로와 독서실 특유의 탁한 공기 대신, 코끝을 찔러오는 것은 지독한 흙냄새와 진한 짚 풀 냄새였다.
강진우는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방이 트인 모니터와 겹겹이 쌓인 논문 더미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보이는 것은 흙으로 대충 덧칠한 벽과 구멍이 숭숭 뚫린 창창한 창문, 그리고 다 쓰러져가는 짚신 몇 겨루 뿐이었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지? 내가 밤샘 연구를 하다가 드디어 환각을 보는 건가?'
진우는 차가운 세숫물이 담긴 목기와 바가지 앞으로 다가갔다.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는 억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거친 턱선, 굵직한 골격, 그리고 현대의 세련된 체구와는 차원이 다른 무지막지한 덩치의 사내가 거울 같은 물그림자 속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온달아, 잘 잤느냐? 날이 밝았으니 오늘도 산에 올라 땔감을 주워 와야 하지 않겠느냐?"
구석에서 눈이 어두운 노파가 더듬거리며 베개를 거두었다. 노파의 입에서 나온 그 이름에 진우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온달? 온달이라고? 설마 삼국시대 고구려의 그 바보 온달이란 말인가?'
머릿속에서 일제히 벼락이 쳤다. 진우는 차가운 물로 얼굴을 몇 번이고 씻어내 보았지만, 이 얼토당토않은 현실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는 카이스트에서 유기화학과 물리공학을 복수 전공하며 밤낮없이 실험실을 구르던 명문대 대학원생이었다. 석사 학위 논문 패스를 불과 석 달 앞두고 밤샘 실험을 하던 중 정신을 잃었을 뿐인데, 눈을 떠보니 고구려의 전설적인 인물인 ‘바보 온달’의 몸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어머니, 혹시 오늘이 몇 년입니까? 아니, 지금 왕위에 계신 임금이 누구이십니까?"
진우의 허둥지둥한 물음에 노파는 혀를 차며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에휴, 또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평원왕 전하께서 나라를 다스리신 지가 언젠데 그런 걸 묻느냐? 불쌍한 내 자식, 머리가 아파서 또 이상한 소리를 퍼붓는 게로구나."
평원왕.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설화가 배경이 되는 바로 그 시대였다. 진우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평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진짜 고구려라니? 게다가 바보 온달이라니? 내가 왜 이런 설화 속 주인공이 된 것이지?'
하지만 좌절하고 있을 시간은 오래 주어지지 않았다. 당장 한 끼 밥을 해결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간 진우는, 자신이 왜 마을에서 '바보'라고 불리는지 그 이유를 온몸으로 깨닫기 시작했다.
현대 대학원생의 습관은 고구려 한복판에서도 여감 없이 튀어나왔다. 진우는 지게를 지고 산길을 오르는 와중에도 산천의 지형을 분석하고 토양의 성분을 가늠했다.
"이쪽 토양은 지질학적으로 산성비의 영향이 없으니 배수만 잘해주면 고구마나 콩을 재배하기에 최적이겠는데? 도르래 원리를 이용하면 목재를 운반할 때 에너지를 절반 이상 절약할 수 있겠어."
지나가던 마을 주민들이 짐승 가죽을 둘러메고 중얼거리는 진우를 보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저기 좀 보게나! 온달 저 바보 놈이 또 흙을 씹어보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네!"
"그러게 말일세! 나무를 베지도 않고 나뭇가지에 줄을 묶어서 이상한 나무토막을 달고 계곡을 건너려 하지 않나? 진짜 천하의 대책 없는 바보라니까!"
진우는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역학 공식과 역학적 이점을 계산해서 지게를 개량하고, 지렛대의 원리로 거대한 낙목을 혼자서 옮겼을 뿐인데,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기괴한 짓을 저지르는 '미친 바보'로 보일 뿐이었다.
"이건 역학적 효율을 고려한 작업이란 말입니다! 당신들이 과학을 아십니까?"
진우가 답답함에 소리를 지르자, 주민들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허허, 저거 봐라! 들리지도 않는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허공에 손짓을 하고 있지 않나? 불쌍해서 원."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진우는 포기라는 것을 배웠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 시대 사람들에게 수학과 물리학은 그저 바보의 미친 소리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편하게 살기로 했다.
지게에 효율적인 장치를 달아 남들보다 세 배는 많은 땔감을 주워오고, 부러진 농기구를 고쳐 노모를 편안하게 봉양했다.
그 과정에서 진우의 머릿속에는 원작 설화의 내용이 아주 생생하게 떠올랐다.
'원래 역사나 설화대로라면, 울보 평강공주가 궁에서 쫓겨나 나를 찾아오게 된다. 그리고 나를 훈련시켜 고구려 최고 장수로 만들고, 나는 훗날 신라와의 아단성 전투에서 화살을 맞아 장렬하게 전사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되지.'
진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죽는다고? 내가 이 개고생을 하려고 고구려에 떨어진 줄 아는가? 절대로 그렇게 허무하게 죽지는 않겠다. 내가 가진 모든 현대 지식과 과학 기술을 동원해서 죽음을 대비할 것이다. 그리고 평강공주를 도와 이 나라를 대제국으로 부강하게 만들어 내고야 말겠다!'
그가 입술을 깨물며 결의를 다지던 바로 그날 저녁이었다.
마을 어귀가 한바탕 소란스러워졌다. 평소에는 구경조차 하기 힘든 화려한 비단 옷을 입은 장정들과 화려한 가마 한 대가 흙먼지를 날리며 시골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보게! 궁궐에서 공주님이 쫓겨나셨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평원왕 전하의 뜻을 거스르고 고씨 가문과의 혼인을 거부해서 궁에서 쫓겨나셨다더군!"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진우의 귀에 똑똑히 박혔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 가을날 아침이었다.카이스트 기계공학동 연구실로 국립문화재연구소와 카이스트가 공동 주관하는 국가적 대형 프로젝트인 '고구려 대기술경 정밀 해제 및 현대 기술 재구성 사업'의 공동 연구진이 도착한다는 전갈이 들려왔다.진우는 실험실 중앙의 대형 정밀 측정기 앞에서 황동 기어의 유격 상태를 조율하고 있었다."강 박사님,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이번 프로젝트의 수석 연구원으로 파견된 신임 박사님이 도착하셨습니다."연구원 조교의 목소리에 진우는 손에 쥐고 있던 회전 측정기를 내려놓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실험실의 투명한 유리문이 조용히 열리며, 한 여인이 정갈한 베이지색 정장 차림으로 걸어 들어왔다.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 맑고 곧은 눈동자, 그리고 품에 고구려 대기술경 영인본 상자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 서 있는 여인의 모습.그 여인이 실험실 안으로 발을 내디븠을 때, 현대의 차가운 연구실 내부 전체가 수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전자기적 파동과 뜨거운 가슴의 소동으로 가득 찼다.진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진우의 눈동자와, 문 앞에 멈춰 선 여인의 시선이 공중에서 완벽하게 일치했다.여인은 진우를 바라보는 순간, 손에 쥐고 있던 자료 상자를 놓칠 뻔하며 자리에 굳어버렸다. 생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내였으나, 사내의 단단한 어깨와 눈빛을 보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억눌려 있던 수천 년 동안의 그리움과 눈물이 쏟아져 내릴 듯 폭발했기 때문이다.여인의 가슴에 걸린 국립문화재연구소 출입증에는 세 글자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수석연구원 연평강]진우는 숨을 죽인 채 천천히 연평강 박사를 향해 걸어 나갔다. 진우의 발걸음 소리 하나하나마다 고구려 평양성의 대동강 물소리와 가평 자치 영지의 온돌 구들장에서 피어오르던 따스한 온기가 되살아나는 듯했다.진우가 연평강의 코앞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연평강 박사는 떨리는 입술을 사르르 떨며 진우의 얼굴을 차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맑은 눈동
모니터 구석의 디지털시계는 진우가 고구려의 세계로 끌려 들어갔던 그 밤의 시간에서 불과 네 시간 남짓 지나있었다."하아... 하아..."진우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짚어보았다. 현대의 익숙한 흰색 가운을 입고 있었으나, 피부 아래 고구려 전장에서 3세대 강철 거포 V3를 지휘하고 고풍로 용광로의 뜨거운 열기를 버텨내며 다져진 단단한 근육의 감각과 서늘한 강철의 기운은 여전히 생생하게 몸에 아로새겨져 있었다.진우는 주먹을 천천히 쥐었다가 폈다. 손바닥 안에는 차가운 감촉의 쇳조각 하나가 쥐여 있었다. 그것은 고구려 국립 천문대의 자격루에서 떨어진 낡은 황동 톱니바퀴 조각이었다. 푸른빛 전자기장의 잔재가 은은하게 피어오르다 사라지는 황동 조각을 바라보는 진우의 두 눈에 붉은 열기가 고였다."꿈이 아니었다... 나는 정녕 고구려에서 온달로서 살아냈고, 백성들을 구했으며, 평강을 만났다."진우는 떨리는 손으로 키보드를 끌어당겼다. 모니터 화면의 검색창에 '고구려 온달', '평강공주', '아단성 전투'라는 단어들을 빠르게 입력했다.화면에 떠오른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의 학술 기록을 확인하던 진우의 입가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기존의 역사 교과서에 적혀 있던 슬프고 허망한 전설, 즉 바보라 놀림받던 온달이 평강공주와 혼인하여 장수가 되었으나 아단성 아래에서 화살을 맞고 비극적으로 전사했다는 기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새로 재편된 정사 기록들이 수천 년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었다.[고구려 평원왕 대의 태대형 온달과 평강공주는 독수리 골짜기와 요하 전선에서 과학
평강은 진우의 목을 감아 안으며 눈물을 흘렸다."서방님... 만약 하늘이 서방님을 다른 세상으로 불러간다 해도, 저 역시 무슨 수를 써서든 서방님을 찾아낼 것입니다. 시공간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 제 영혼은 오직 당신만을 향해 흘러갈 것입니다. 약속해 주십시오, 다른 세상에서라도 저를 다시 알아보시겠다고!"진우는 평강의 촉촉한 입술에 깊고 뜨겁게 입을 맞추었다."약속하오, 평강. 천년의 세월이 지나고 시공간이 바뀐다 해도, 나는 반드시 부인을 다시 찾아내어 내 품에 안을 것이오. 이것은 내 영혼을 건 영원한 맹세요."두 사람의 입술이 은은한 촛불 아래서 포개어졌고, 서로를 향한 영원한 사랑과 서약이 밤하늘의 별빛 아래서 찬란하게 타올랐다.그날 밤, 두 사람은 새로 지은 사저 안방의 따뜻한 황토 구들장 위에서 서로를 향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깊고 아련한 사랑을 나누었다. 훈훈한 구들장의 열기 위로 두 사람의 아련한 숨소리가 어우러졌고, 서로의 몸을 단단히 껴안은 채, 영원한 부부로서의 포옹을 풀지 않았다.다음 날 밤, 마침내 운명의 순간이 다가왔다.평양 국립 천문대와 대동강 군기시 중앙 고풍로 V4 주변 밤하늘에 기이하고 장엄한 천문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구름 한 점 없는 가을 밤하늘 중앙에 칠색의 전자기적 광륜이 거대한 고리 모양으로 피어오르며, 별자리들의 위치가 기하학적 수식처럼 오목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특수 희토류 광석의 자기장과 진우가 집필한 대기술경의 차원 공명이 반응하며, 고구려의 밤하늘에 시공간의 문(空間歪曲)이 환하게 열린
진우는 평강의 손을 꼭 쥐며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소, 부인. 기술이란 어느 한 사람의 머릿속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법이오. 사람이란 언젠가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지지만, 정밀하게 기록된 지혜는 책이 되어 영원히 살아남아 백성들을 지켜주는 법이지요. 내가 만든 이 공학의 원리들이 이 책으로 남아 고구려의 기틀을 천년 동안 단단하게 지켜줄 것이오."평강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 사내는 단순히 전쟁에서 이기는 장수가 아니었다. 민초들의 삶을 진심으로 아끼고, 이 나라의 미래를 천년 앞까지 내다보는 진정한 성현이었다.평강은 곁에 놓인 먹돌을 집어 들고 차분하게 먹을 갈기 시작했다."그렇다면 서방님, 저 역시 곁에서 붓을 들겠습니다. 서방님께서 구술하시고 도면을 그리시면, 제가 정갈한 문체와 이두로 정리하여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목판본 책자로 완성하겠습니다.""부인이 나와 함께해 준다면 이보다 더 뛰어난 대기술경이 없겠소."진우와 평강은 은은한 촛불 빛 아래서 서로의 눈을 깊게 응시했다.촛불이 아련하게 흔들리는 누각 안에서, 두 사람은 함께 붓을 들었다. 진우가 현대 공학의 수학적 원리와 수식을 고구려의 언어로 풀어내면, 평강은 특유의 명민한 수리 감각과 정갈한 문장력으로 이를 완벽한 장부와 지침서 형태로 정돈해 나갔다.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붓을 움직이는 소리와 황동 자격루의 톱니바퀴 소리가 밤의 정적을 달콤하게 채웠다.가평의 초라한 흙집 툇마루에서 처음 만났던 바보 온달과 쫓겨난 공주. 온갖 오해와 귀족들의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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